293. 리멤버 2008
MS같은 견실한 기업에 공매도를 거는 것이 일견 의아해 보일 수는 있지만, 헤지펀드 세력이 글로벌 대기업에 공매도를 거는 것은 그리 보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헤지펀드들이 폭스바겐의 지분 12%에 해당하는 분량을 공매도하면서 폭스바겐이 지분 확대에 나섰고, 주가가 상승하자 당황한 헤지펀드들이 대량 손실을 감수하고 숏 커버링에 들어가면서 주가가 4배 상승하여 일시적으로 자동차 시가 총액 1위가 된 적이 있었고, 그 유명한 테슬라도 공매도 세력과 싸워 승리한 적이 있었다.
2019년 테슬라 공매도에 나선 공매도 세력이 401억 달러(44조 3천억 원)의 손실을 보기도 했으니, 글로벌 대기업이라고 공매도의 손길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옳다.
확실한 건 공매도에 나서는 헤지 펀드들은 그들이 공매도하려는 기업의 규모가 얼마가 되든 간에 확실하게 공매도가 성공할 수 있는 주가 하락 요인이 존재한다면 도박에 나선다는 것이다.
그리고 MS는, 적어도 3차 NE 컨벤션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 ‘확실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었다.
PTW에서 사전에 유출된 컨소시엄에 참가한 기업들의 제작비를 SANY에서 전액 지원했다는 이야기부터, 신형 주변기기를 만들기 위한 공장도 SANY의 공장이었으며, 무엇보다 3차 NE 컨벤션이 다가옴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던 MS의 움직임이, 이번 PTW의 신형 주변 기기가 SANY의 PS 전용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도박수는 완전히 실패했고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빌려서 판 MS의 주식을 판 돈의 몇 배의 가격을 내고 되사서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공매도 세력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자신들이 매입에 들어가는 순간 주가가 더 폭등할 것을 감수하고 빌린 주식을 사서 갚던가, 아니면 추가로 공매도 규모를 늘려서 패닉셀을 유도하던가.
전자의 경우는 막대한 손실이 확정되고, 후자의 경우는 실제 패닉셀이 발생하면 손실을 무마시킬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 추가한 공매도 분까지 손실이 더 늘어난다는 단점이 있었다.
게다가 들어가는 비용도 천문학적이고.
어찌보면, 손해를 무마하기 위해서 더 큰 손해를 감수하는 것은 비 이성적인 판단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자금이 도는 주식 시작이라는 머니게임에서는, 그것이 말이 되는 행위가 된다.
주식 시장을 지배하는 투자 심리는, 기본적으로 이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영국의 경제학자 존 케인즈는 이런 시장 특성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시장은 당신이 돈을 지불할 능력이 있을 때보다 더 오랫동안 비이성적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케인즈의 말을 확인하기 가장 좋은 시장이 바로 주식 시장이다.
단타 시장이라는 것은, 치밀한 기업 분석이나 수치적 계산보다는 인간의 감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한 의료 기업에서 신약의 FDA 승인이 났다고 하자.
그 뉴스만으로, 주가는 폭등한다.
그 순간 그 주식을 산 모든 투자자가 해당 신약의 정확한 가치와 예상 매출 규모, 그리고 개발에 투자한 기업의 투자액과 신약 판매로 인한 이익 상승분을 전부 파악하고 투자에 나섰을까?
그런 투자자도 있지만, 아닌 투자자가 더 많다.
대부분의 단타 투자자들은 단순히 치솟아 오르는 차트를 보고, 뉴스를 검색해서 신약의 승인 여부를 확인한 뒤, 이 상승세가 얼마나 지속 될 것인지를 판단한 뒤에 수매에 들어간다.
그건 주식이란 매개체를 이용해서 이루어지는 기업에의 투자라기보다는, 단순히 차트의 오르내림을 보고 베팅하는 도박에 가깝다.
그리고 그런 도박에서, 대규모의 하락 세는 패닉셀을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들고 있는 주식이, 실시간으로 미친 듯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손절을 생각하지 않는 투자자는 없으니까.
좀 더 간단하게 비유하면, 단타 투자는 포커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이 미친 듯이 판돈을 올리면, 상대의 손에 좋은 패가 있구나 하고 예상하는 것처럼.
남이 팔면 나도 팔고 남이 사면 나도 산다.
거기에 이성이나 논리는 없으며 오로지 감각과 베짱이 시장을 지배한다.
공매도 대결은 주식을 들고 있는 수천 명이 함께 펼치는 눈치 싸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지금 확실하게 내 패보다 안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면, 오히려 판돈을 더 거는 상대에게 감사하게 되는 법이죠.”
상혁은 그렇게 말하며, 월스트리트 배트에 올라온 글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한 한 게시판 이용자의 분석글이 적혀 있었다.
[단호하게 말하건대, 이번에 MS 주식이 얼마에 나오던 일주일 동안은 무조건 쓸어 담아라.]
그런 제목으로 시작된 게시글은, 본문을 통해서 게시판 이용자들에게 MS의 주식을 구매할 것을 권하고 있었다.
[최근에 SEC에서 MS에 주가 조작 관련 소송을 제기한 것과, 딥 다이버의 미국 내 판매 금지 조치로 인해 많은 레디터(redditor : 레딧 게시판 이용자)들이 MS 주가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갑자기 폭등하던 MS 주식이 쏟아져 나오면서 바로 손절한 레디터도 있는 것도 알고 있고.
하지만 나는, 지금이야 말로 MS 주식을 구매할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 떨어진 시세를 감안해도 3차 NE 컨벤션 전과 비교해서 3배나 오른 지금 MS 주식을 더 구매하라는 건 미친 소리처럼 들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얼마 전 쏟아진 매물은 딥 다이버 판매 중지 때문에 나온 매물이 아니다.]
게시글 작성자는 A4용지 2페이지에 달하는 기다란 분량을 사용해서, 현재 공매도 세력이 MS를 어떻게 공격했고, 손실 방지를 위해서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상세하게 적었다.
그리고 부정적 기사가 올라오자마자 대량의 매물을 추가로 내놓아 패닉셀을 유도한 행위마저도, 전형적인 공매도 세력의 작업이라고 설명하며 MS의 주식을 보유 중인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팔지 말고 홀드(Hold)할 것을 요청했다.
어차피 공매도 세력이 주식을 사서 갚아야 할 때가 오면, 어쩔 수 없이 숏 커버링을 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월스트리트 배트의 서브레딧 이용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가 상세하게 분석한 장문의 보고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작성자가 글의 마지막에 적은, 공매도 세력에 대한 처절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난 2008년을 기억한다(I remember 2008).
벌써 9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난 월가의 장난질이 내 가족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난 평소처럼 직장에 나가고,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세금을 내던 중산층 가정을 월가의 금융 자본이 어떻게 개박살 냈는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정부가 ‘세금’을 써서 수천조의 자금을 지원했을 때, 월가의 양복쟁이들이 그 세금으로 보너스 잔치를 벌였던 것도 기억한다.
그들은 항상 불공평한 게임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자신들이 지려고 하지 않는다.
1922년 피글리 위글리 뉴욕지점이 문을 닫자, 공매도 세력은 피글리 위글리의 주식을 공매도 하며 주가 하락을 위해 온갖 비방과 소문을 퍼트렸었다.
그러자 피글리 위글리 대표 클라렌스 손더스는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20만 주 중 19만 9천 주를 확보했고, 싸움은 기업의 승리로 끝났어야 했다.
당장 주식을 사서 갚아야 하는데, 모든 주식을 기업 오너가 가지고 있으니 사서 갚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피글리위글리 주식을 상장 폐지해버렸다.
그리고 공매도 상환 기간도 늘려주고.
그 세력이 아직도 월스트리트에서 장난질 치는 그 세력들이다.
남한테는 규칙을 지키라고 하면서, 자기들은 규칙을 안 지키는 도둑놈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아무리 뉴욕 증권거래소가 간이 부었어도, 식료품 회사인 피글리위글리가 아닌 MS 주식을 상장 폐지할 순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안심하고 미친 듯이 사서 안고 있어라.
결전의 그 날이 왔을 때, 월가의 쓰레기들이 가격이 얼마가 됐든 그 비싼 주식을 전부 자기 돈으로 사서 갚을 수 있도록.]
“이건 마치 ‘그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군.”
글을 본 민준이 말하자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준이 말하는 ‘그 사건’이, 회귀 전 2021년 초에 있었던 ‘게임스탑(GME)공매도 사건’을 말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자 ‘그 사건’에 대해 아직 모르는 윌 게이트가 민준을 보며 물었다.
“그 사건이라뇨?”
“아, 여기 나온 피글리위글리 사건을 말하는 겁니다.”
“아···.”
민준이 능숙하게 둘러대자 게이트는 다시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그 글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도 함께 떠 있었다.
↳ 나도 월가라면 치가 떨리지만, 함부로 물기엔 MS에 걸린 리스크가 너무 크다.
딥 다이버 판매 중단은 꽤 큰 이슈 아냐?
↳ 그 기사가 뜬 바로 그 날 신문 1면을 가득 채운 기사가 있었잖아.
PTW에서 딥 다이버로 MYOM을 지원한다고.
이 사태가 장기화할 거라고 예상했으면, 이 타이밍에 그 발표를 하지는 않았겠지.
↳ 그러니까 PTW는 MS에 걸린 주가 조작 혐의가 금방 풀릴 거라는데 배팅했다는 거지?
그럼 해볼 만한데?
↳ 최악의 가정으로, 만약 MS가 진짜로 주가 조작에 개입했고, 일부러 딥 다이버의 X-BOX지원 사실을 숨겼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
과징금이 수십 수백조가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MS에서도 공식적으로 이번 딥 다이버의 X-BOX지원 계약은 3차 NE 컨벤션 이후에 진행 되었다고 발표했어.
그리고 계약서 일부도 공개했고.
↳ 그러니까 현재 걸린 소송이나 판매 중지 처분은 전부 공매도 세력에서 일시적인 주가 하락을 일으키기 위해 벌인 공작이라는 얘기지.
↳ 이런 X발. 혹시 어제오늘 집 근처 게임 샵 가본 사람 있냐?
딥 다이버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직원이 못 판다고 그러면서 스티커 붙이고 있더라?
↳ 무슨 스티커?
↳ 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 보낼 예정이라는 스티커던데.
미친, 이게 말이 되냐?
왜 우리나라에 팔려고 들여온 물건을 다른 나라에 보내는데?
↳ 그럼 언제 판매중지 풀릴지 모르는데 그걸 그냥 썩히냐? 당장이라도 해외 가져가기만 하면 싹 다 팔릴 텐데.
지금 유럽하고 아시아에서도 물건 모자라서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한다는데 우린 이게 뭐냐?
이러다 미국만 딥 다이버 못 쓰는 거 아니냐?
이럴 줄 알았으면 미국에서 열리는 NE 컨벤션 무조건 참가하는 거였는데.
그럼 적어도 한정판은 살 수 있었을 거 아냐.
↳ 내가 그 한정판 구매자인데, 소용없다.
지금 딥 다이버 전원키면 [현재 해당 국가에서는 본 장비의 이용을 하실 수 없습니다.]라고 뜸.
아, 진짜 연차까지 내고 구란트리스모 진짜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열 받아서 딥 다이버 집어 던질 뻔.
↳ 그럼 결과적으로는 PTW에서 하지도 못할 장비를 판 거네? 환불해달라고 해.
↳ 미쳤냐? 한정판 환불하면 한정판 어디서 구하라고? 이건 행사 참가자들만 가질 수 있는 특전같은거라고.
그리고 지금 사태는 PTW 잘못이 아니야.
저 빌어먹을 월스트리트 개X끼들이 만든 사태지.
아, 진짜 개빡치네. 나 적금 깨서 MS 주식사러 간다.
이 새끼들 엿먹이지 않으면 화가 안 풀릴거같아.
↳ X팔, 건들게 따로 있지 게임을 건드려? 너희 잘 걸렸다. 방구석 너드가 얼마나 무서운지 본때를 보여주마.
↳ 겸사겸사 돈도 벌고. 지금 한창 오르고 있으니까 지금 사면 못 해도 주당 몇백 달러는 벌 듯? 공매도 청산 시점 가면 엄청 오르지 않을까?
↳ 100% 오르니까 무조건 사라. 살 수 있는 만큼 다 사.
X발 어차피 공매도 청산 끝나서 주가 떨어져도 딥 다이버 판매 중당 끝나면 또 오를 거다.
그리고 MYOM 딥 다이버 버전 출시되면 또 오를거고.
무조건 사라.
PTW와 함께하는 MS 앞에는 빛나는 미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주식 시장은 인간의 비이성적인 면을 반영한다.
그리고 지금, MS의 주식 차트는 그 비이성적인 인간의 힘으로 미친 듯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고 있었다.
***
“매도 규모를 더 늘릴까요?”
“이미 판매 중단 기사를 띄울 때 패닉셀 유도하려고 공매도 규모를 더 늘렸어요.
여기서 더 늘린다고 내려갈 것 같지는 않은데요?”
“모르죠. 지금 MS 주식을 쥐고 있는 이들이 주식을 안 파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게 지금보다 더 오를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그 확신을 무너트릴 만큼 거대한 하락세를 유도할 수 있다면, 하나둘씩 주식을 내려놓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다들 서로 먼저 팔려고 난리 칠 거고요.
평소라면 그렇게 됐을 겁니다.
전국의 신문 1면에 SEC가 MS에 건 소송과 딥 다이버의 미국 내 판매 금지 조치에 관한 기사가 쫙 실리면서, 시장이 패닉에 빠졌어야 했다고요.”
헤지펀드 매니저인 W. 얼 브라운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는 손에 든 신문을 내려놓았다.
“대신 저희는 이것을 받았죠.”
거기엔 미국 대부분의 신문이 다룬 소식이자, 상혁이 의도적으로 판매 중단 이슈를 묻기 위해 급하게 발표한 기사가 커다란 헤드라인과 함께 적혀 있었다.
[전설의 모션 인식 게임 ‘MYOM’, 딥 다이버를 만나 신화가 될 것인가?]
양손에 멋진 푸른 불꽃을 일으키고 있는 마법사가, 딥 다이버를 쓰고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컨셉 사진은 게이머가 보기엔 무엇보다 흥분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었지만, 이 방에 모인 헤지펀드 대표들에겐 마치 그들을 약 올리는 모습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기사의 진짜 문제는, 그 기사에 실린 사진이 그들을 열받게 한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 기사가 가진 더 큰 문제는, 바로 그 기사 때문에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반격 카드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PTW는 마치 SEC가 판매 중단 조치를 요청한 것이 주가 하락을 유도하기 위한 것임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대놓고 부정적인 이슈를 전부 묻어버릴 만한 큰 뉴스를 던져서 저희의 움직임에 대응했습니다.
그 덕에 추가로 공매도 규모를 늘려서 패닉셀을 유도하려 했던 저희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죠.
물론 주식 시장은 기본적으로 머니 게임이고, 지금 묻힌 부정적 이슈는 더 큰 뉴스에 묻힌거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시도는 할 수 있을겁니다.
당장 내일 신문에라도 다시 기사를 싣게 하고, 추가 공매도를 통해서 패닉셀을 유도하는 거죠.
문제는 단지 그 흐름을 만드는데 도대체 얼마만큼의 추가 자금이 들어가야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지금까지도 손실이 너무 컸어요.
이미 판매 중단에 SEC 소송이라는 강수까지 뒀는데도 주가가 오르는 거라면, 이건 확실하게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겁니다.
지금 상황에서 MS주가를 떨굴 방법은 단 두 개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김정은이 갑자기 미쳤다고 PTW본사 위치에 핵을 한 방 날리던가, 아니면 SANY의 딥 다이버 생산 공장에 불이라도 나던가.”
“김정은이 전쟁을 시작하게 하려면 얼마가 필요하려나···.”
“지금 그거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농담입니다. 워낙 상황이 황당하게 굴러가고 있으니···.”
“정부를 움직이게 하면 어떻습니까?
시장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명분으로 정부가 개입하여 MS측에서 매입한 주식을 일정 가격에 내놓게 한다면···.”
“글쎄요, 가능할지 의문이네요. 일단 아는 의원들에겐 전부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해달라고요.
이번에 참여한 헤지펀드들의 모기업에 묶여있는 기금이 한두 개가 아닌 데다, 수백조 규모의 헤지펀드가 무너지면 그 헤지펀드의 투자를 받은 다른 기업들도 연쇄 도산할 수 있으니까요.
자기 임기 내에 제2의 서브프라임 사태를 보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든 해달라고 압박하는 중입니다.”
“로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예.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로비 중입니다.
워낙 급박한 사안이라 오늘 안에 답을 주기로 했으니, 뭔가 움직임이 있겠죠.”
미국의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로비스트를 운용하기도 하지만, 프리랜서인 로비스트에게 의뢰를 넣는 경우도 많았다.
거대 금융 자본이나 대기업의 의뢰를 받아 로비를 진행하는 전문 로비스트들은, 다양한 의뢰인의 요구에 맞춰 미국의 상하원을 누비며 고객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지금, 브라운이 고용한 로비스트는 그런 프리랜서 로비스트 가운데서도 가장 능력이 좋다고 정평이 난 사람이었다.
잭 갤리건.
그는 지금까지 기업의 요구에 따라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수많은 법안을 로비를 통해 입법시킨 최고의 베테랑이었다.
‘제발 어떻게든 해 줬으면 좋겠는데···.’
브라운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잭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것이 긍정적인 소식이든, 부정적인 소식이든, 이번 사태에 빠르게 대응하려면 국회를 움직일 수 있을지 여부를 알 수 있어야했기에.
그리고 잭은 자신의 명성에 걸맞게 로비 임무에 착수한지 24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브라운에게 답신함으로써,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보였다.
“오, 잭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드디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온 문자를 보며 브라운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자, 나머지 헤지펀드의 대표들이 브라운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내밀어 브라운이 들고 있는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잭이 보낸 문자의 내용은 애타게 기다리던 그들을 실망하게 하고 있었다.
[로비에 실패했습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정부에서 금융 지원을 통해 구제한 것이 여론의 평가가 워낙 안 좋았기에, 현 정부에서는 금융 자본을 위한 구제책을 사용하는데 극도로 조심스러운 분위기입니다.
게다가 그 상대가 공매도를 수행하다 거대 손실을 안게 될 헤지펀드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이상의 대화를 하려고 하지도 않더군요.]
“젠장! 망할 자식! 이 따위 내용을 보낼 거였으면 대체 왜 전설의 로비스트라고 칭하고 다니는 거야?
전설의 허풍쟁이라고 하는게 맞겠네!”
옆에서 문자를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외치자, 브라운이 손을 들어 그를 진정시켰다.
그가 아는 잭 갤리건이라는 로비스트는, 단순히 이런 내용으로 보고를 끝낼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뒤에 내용이 더 있습니다.”
브라운은 침착하게 문자를 밑으로 내렸다.
그리고 상황의 진행 과정과 흥미를 보인 상하원 의원들의 리스트, 그리고 국회의원들의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을 적은 내용을 읽은 후, 마지막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거기엔 그가 생각도 하지 못하던 의외의 수확이 적혀 있었다.
[상하원에서의 수확은 제로였지만, 제가 뛰어다니고 있는 로비의 내용을 파악한 한 사람이 이 안건에 흥미를 보이셨습니다.
그는 자신 역시 사업가 출신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해 기꺼이 중재를 맡아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판단에, 현재 상황에서 그 제안은 나쁘지 않다고 판단되어 의뢰주인 브라운 씨께 별도의 미팅 요청을 드릴까 합니다.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MS 대표 윌 게이트와 현재 미국에 파견 온 PTW의 임원진.
그리고 의뢰주인 헤지펀드 대표집단과 SEC 국장이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주십시오.
장소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입니다.]
브라운은 너무 놀라 자신이 문자를 잘못 읽었는지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분명 문자에 적힌 장소가 백악관(White House)임을 확인하고는 급하게 잭에게 질문했다.
[잭 씨, 지금 보내신 내용의 마지막에 백악관이라고 적으신 게 맞습니까?]
그러자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잭이 보낸 답장이 도착했다.
거기엔 방금 전 보낸 장문의 문자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예. 브라운 씨.
로널드 도람프 대통령께서 이번 사건의 당사자들을 만나고 싶어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