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98화 (299/485)

298. 메타버스의 디스토피아

“진지하게, 정말로 PTW 임원들을 불러놓고 그렇게 말했다고요?”

“예.”

“그리고 PTW의 이상혁이 특허전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고요?”

“맞습니다.”

“저커버그 씨. 하나만 묻겠습니다. 당신 정신 나갔습니까? (Are you out of your mind?)”

VR 기술에 게임의 미래가 있다고 믿었던 존 카믹에게도 3차 NE 컨벤션에서 공개된 딥 다이버의 성능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러나 존 카믹은 그렇다고 반격의 가능성이 아예 제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3차 NE 컨벤션에서 공개된 딥 다이버의 성능은 아무리 노력해도 20년 안에는 도저히 그 가격과 성능을 따라잡을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지만, 그렇다고 딥 다이버가 절대 싼 기기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자신을 매료시킨 옵큘러스라는 장비의 매력은 절대 성능적인 부분에서의 우위가 아니었다.

저렴한 가격.

좀 더 대중적인 가격으로 VR이란 경험을 사용자에게 제공하겠다는 옵큘러스의 이상은 딥 다이버가 발매된 현재에도 아직 충분히 매력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현재의 옵큘러스 VR이 PTW의 딥 다이버만큼 끝내주는 체험을 제공하지는 못하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싼 가격에 VR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아직 승부수를 던질만한 요소는 있다.’

개발자엔 크게 두 타입이 있다.

이미 검증된, 안전한 성공 공식을 따라가는 개발자와 아무도 걸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영역을 탐구하는 개발자.

그리고 존 카믹은 후자였다.

그는 위기에서 오히려 불타오르는 성향의 남자였고 리스크를 즐기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를 CTO로 영입하고 옵큘러스란 회사를 2.5조원이란 거금에 인수한 페이트 북의 CEO, 저커버그가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하기 전까지는.

“일단 정리해봅시다. 지금 제게 말하는 것이, 당신이 MS CEO인 윌 게이트에게 부탁해서 지금 미국에 와 있는 PTW 임원들을 페이트 북 본사로 소환했고, 당연히 매우, 매우매우매우 관대한 오퍼였겠지만, 그들에게 인수와 관련된 오퍼를 제시했다는 이야기입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거절하자 저희가 보유한 옵큘러스의 특허를 이용해서 딥 다이버가 침해한 특허에 대한 소송을 걸겠다고 이야기했고요?”

“그것도 맞고요.”

“도대체 왜 그런 미친 짓을 하셨습니까?”

“그거야 그 시점에서 내가 알기로 PTW는 분명히 후발주자였으니까요!”

오히려 역으로 자신에게 화를 내는 저커버그를 보며 존 카믹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은 자신의 보스이기에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이 황당한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런 배짱을 부린 것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러자 저커버그는 자신을 얼빠진 머저리처럼 쳐다보는 CTO를 바라보며, 자신이 그런 판단을 내린 경위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제가 옵큘러스 사를 인수할 때, 분명히 당신은 이렇게 말했어요.

‘VR 장비를 만드는 핵심 특허를 여러 개 출원했고 그 특허들은 앞으로 우리가 시장을 선점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라고.

전 그 말을 믿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상대는 자신들이 그 핵심 기술을 전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하더군요! 마치 우리가 보유한 특허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존, 이제 제가 묻겠습니다. 당신과 이상혁, 둘 중에 대체 누가 내게 거짓말을 하는 겁니까? 만약 거짓말을 하는 것이 당신이라면, 전 이번 인수 계약 자체를 재고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당신에게 준 CTO자리를 포함해서요!”

존 카믹은 드디어 상황이 어떻게 굴러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깊게 한숨을 쉬며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CEO에게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좋습니다. 설명해드리죠. 우선 그 전에, 저희가 가진 옵큘러스 VR이란 장비의 구조적 특성에 관해 설명해야겠군요.

저커버그 씨. 기본적으로 VR 장비라는 건, 두 가지 분야의 핵심 기술을 포함해서 동작하는 장비입니다.

하나는 원래 TV나 모니터용으로 만들어진 평면의 화상 데이터를 VR 디스플레이에 맞게 입체감 있는 VR 데이터로 바꾸어 양쪽 눈의 디스플레이로 투사하는 기술.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장비의 위치나 각도를 판단해서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인식하는 모션 인식 기술이죠. 그때 제가 말했던 저희가 보유한 핵심 특허들은, 바로 그런 디스플레이 기술에 관한 특허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종전 장비들이 40°정도의 시야각을 보여주었다면, 어안렌즈를 이용한 저희 옵큘러스 VR은 1280x800해상도에서 좌우 110°, 상하 90°의 시야각을 제공하죠.

그리고 그것에 관련된 특허는, 예.

확실히 저희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양쪽 눈앞에 디스플레이를 배치해서 VR 화면을 보여주는 기술로는 저희가 가진 기술이 가장 가성비가 좋고 뛰어난 기술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게 사실이라면 PTW의 이상혁은 왜 저한테 그런 협박을 날린 겁니까?!”

“그야 저희가 쓰고 있는 나머지 하나의 VR 기술인 모션 인식 기술은 PTW에서 보유한 특허를 사용 중이니까요.”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애당초 옵큘러스에서 보유 중인 디스플레이 관련 특허가, 양쪽 눈에 화상을 직접 사출하는 딥 다이버에는 전혀 의미가 없는 기술이라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옵큘러스에서 출원한 VR 디스플레이와 관련된 수많은 특허가 PTW와는 겹치지 않게 되었다는 것.

그러나 나머지 한쪽 기술인 모션 인식 기술의 대부분은 코넥트를 개발하던 시절에 PTW가 대부분의 특허를 선점했다는 점이었다.

“그럼 어째서 당시엔 저에게 그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겁니까? 저희 장비를 구현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기술의 절반을 PTW에서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저희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는 사항입니다.”

“아까 대화 중에 상혁 씨가 넌텐도의 슈퍼 뫄리오 이야기를 했다고 하셨죠?

그가 아주 좋은 예를 들었습니다.

저커버그 씨. 캐릭터가 점프 중에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는 기술의 특허는 분명 넌텐도가 가지고 있지만, 게임 업계의 누구도 그 기술을 사용했다고 넌텐도의 특허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보유한 특허는 일종의 방어용 특허이지 공격용 특허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애당초 문제가 될 소지가 없다고 판단하셨다는 이야기입니까?”

“닌텐도는 터치 디스플레이 관련 특허도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지만, 스마트 폰 앱을 개발할 때 넌텐도의 특허가 문제가 될 거라고 인식하고 개발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건 페이트 북의 모바일 버전 앱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사실 넌텐도가 가진 특허가 워낙 필수적인 것들이 많아서, 그들이 특허로 그 기술들의 사용을 틀어막는다면 태반의 모바일 게임은 출시조차도 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넌텐도는 그런 식으로 특허를 사용하지 않았고, 그래서 모두가 넌텐도의 특허를 공공재처럼 사용하고 있는거죠.

PTW의 모션인식 기술 관련 특허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VR 기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진 일부 특허들이 필수적이지만, 그것을 사용한다고 해서 PTW에서 소송을 걸지는 않았거든요.”

“그럼 그게 지금 와서 문제가 되는 이유가 뭡니까?”

“당신 때문이죠. 저커버그 씨.”

존 카믹이 다시 한번 깊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넌텐도가 얼마 전 자사의 특허를 가지고 한 회사를 고소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한 모바일 게임 업체에서 자사의 터치스크린 조작법의 특허를 가지고 다른 게임회사에 소송을 걸자, 그 특허의 원천 특허를 가지고 있는 넌텐도 측에서 그 회사에 소송을 걸었죠.

실제 그 기술을 개발한 것은 NDS시절의 자신들이니, 자신들의 특허를 살짝 변형해서 출원한 파생 특허를 가진 그 게임회사에서 타사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것을 용납하지 않은 겁니다.

애당초 그 특허 자체가 넌텐도가 가진 특허의 파생 특허인데, 넌텐도가 허용하고 있는 사용권을 하위 특허 보유자가 자기 것처럼 휘두르는 것을 불쾌하게 느낀 거죠.”

“그러니까 PTW는 제가 그쪽에 특허전 이야기를 한 대목에서 불쾌감을 느꼈다는 거군요? 말하자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PTW 입장에서는···”

저커버그는 그제야 자신이 불러  일으킨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오 젠장, 그럼 만약에, 진짜로 소송전으로 가면 저희가 이길 확률은 얼마입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어안렌즈를 이용한 VR 디스플레이 관련 특허는 온전히 저희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별도의 감지 장치를 이용해 VR 장비의 방향과 위치를 판단하는 헤드 트레킹 기술과, 저희가 사용하려 하는 컨트롤러의 위치와 거리를 판단하는 기술이죠.

전부 모션인식 관련 기술인데 그 분야에 있어서는 PTW는 독보적인 괴물입니다.

그들이 특허 사용권을 주장하면 모션 인식 관련 장비는 전부 기술료를 내야하고, 예외인 업체는 한 개도 없을 정도로요.”

“우회가 불가능 하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들은 자기들의 장비에 없는 특허까지 죄다 출원 신청해놨어요.

코넥트는 카메라로 촬영한 유저의 화상 정보와 적외선 센서를 이용한 거리 데이터를 조합해서 AI가 최종적으로 유저의 모션을 파악하는 기술을 사용하고 있지만, 적외선이 아니라 레이더나 Rider, 심지어 음파를 사용한 모션 인식 기술에 대한 특허도 전부 출원했죠.

그리고 화상 데이터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나 독립적으로 적외선 신호만 사용하는 방식, 그리고 카메라의 영상 데이터만 가지고 유저의 모션을 분석하는 기술 특허도 PTW에서 가지고 있고요. 말 그대로 우회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모션 인식 기술을 저희 옵큘러스가 가져다 썼다고요? 남이 쥔 칼로 요리를 하겠다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적어도 당신이 시비를 걸기 전까지, 그 특허는 아무 의미도 없었단 말입니다!”

저커버그는 옵큘러스의 인수 시점에 모션 인식 관련 특허에 관한 내용을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은 존 카믹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지만,

존 카믹의 주장도 일리는 있었다.

애당초 오늘 있었던 미팅에서 자신이 도발을 시전하기 전까지는, PTW는 특허 사용권에 대해 아무런 권리 주장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아마도 옵큘러스가 그들의 기술을 가지고 발매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저커버그는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그렇게 특허 사용권을 허술하게 관리하는데, 어째서 경쟁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존 씨, 좋아요.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제 잘못이라 합시다. 말 그대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은 거라 치자고요.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PTW가 그토록 타사에서 자사가 보유한 특허권을 사용하는 것에 관대하다면, 어째서 그 오랫동안 코넥트와 비슷한 장비가 시장에 등장하지 않았죠?

지금도 거의 독점 수준으로 모션 인식 시장을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커버그의 질문에 대한 존 카믹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한 것이었다.

“저커버그 씨. 혹시 최근 몇 년 동안 실리콘밸리에서 업무 솔루션 관련 기업이 창업한 사례 기억나세요?”

잠시 고민하던 저커버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럼 메신저 시장이나 보이스 채팅, 화상 통화 관련 업체는요?”

“업죠. 그 분야는 애당초 워크 패스트가 지금 점유율 100%에 가까우니까.”

“점유율은 서비스의 편리함이나 기술 혁신 여부에 따라 뺏어올 수도 있죠.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누구도 워크 패스트 같이 광고 없는 영구 무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 아!”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경쟁사가 같은 분야에 뛰어들려고 해도, 그 낮은 가격에 코넥트 수준의 성능을 가진 모션인식기기를 제공할 수 없다는 거군요?”

“그 말도 안 되는 가격엔 그런 메리트가 붙어있는 겁니다. 단순히 소비자가 싼 가격에 물건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을 넘어서요.”

“하지만 그걸로 PTW가 벌어가는 돈은 0원이지 않습니까?”

“대신 게임을 많이 팔죠. PTW는.”

“대충 이해했습니다. PTW에게는 돈보다 시장 지배력이 더 중요하다는 거군요.”

“제가 아는 바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코넥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딥 다이버는 비싸지 않습니까? 물론 그 괴물같은 성능에 비하면 엄청나게 싼 가격이긴 하지만···.”

“사실 저희가 노리는 틈새시장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450달러가 넘는 딥 다이버의 가격을 생각하면, 그건 대중성을 갖추기엔 어려운 장비니까요.

게다가 지금까지 존재하는 대부분의 VR 컨텐츠와의 호환성도 좋지 않죠.

영상도 전용 카메라를 이용하거나 같은 딥 다이버로 촬영한 영상만 100% 성능을 쓸 수 있고, 그게 아니라면 일반 VR 기기같이 시야각이 제한된 올드 모드로 기존 영상을 봐야 하는 단점도 있고요.

성능이나 현실감에서 압도적인 장비라는 건 맞지만, 대중성에서는 옵큘러스가 충분히 강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존 카믹은, 자괴감 섞인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저커버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 CEO님 덕분에 잘못하면 출시도 못하게 생겼군요.”

“젠장, 그건 제 잘못이라고 합시다.

하지만 특허라는 건 일반적으로 사용료를 내고 쓸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럼 그만큼 기기의 가격이 올라가죠. 그 말은 저희가 가진 유일한 강점인 대중성이란 강점에 약점이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저커버그 씨. 만약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저희와 같은 가격에 비슷한 VR기기를 출시하려 한다면, 그쪽은 PTW에 특허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장비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겠죠.

그럼 어느 쪽 장비의 가격 경쟁력이 더 높아지겠습니까? 이건 더 이상 딥 다이버와 옵큘러스 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잘못하면 저희가 노리는 PC 시장에서의 지배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당신이 꿈꾸는 메타버스 세계의 구현도 물 건너가는 거죠.”

“그럼 전 어찌해야 합니까?”

“CEO가 CTO에게 그런 걸 물으시는 겁니까? 질문하셨으니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커버그 씨. 여기서는 자존심을 버리고, 그들에게 사과하셔야 합니다. 어떻게든 그들이 소송을 걸지 않고 이번 사태를 넘어갈 수 있도록 무릎 꿇고 빌기라도 해야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면, 저희는 옵큘러스라는 장비에서 모션 인식 관련 기술의 상당수를 제거하거나 현재 잡혀 있는 모션 인식 기반 조작체계를 전부 뜯어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건 절대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되지 못하겠죠.”

“그들이 제 사과를 받아주겠습니까?”

“아뇨.”

존 카믹은 저커버그의 말을 한마디로 자르며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받아주든 받아주지 않든 시도는 해 봐야죠. 지금 상황에서 ‘절대 갑’은 그들이니까.”

“만약 그래도 먹히지 않으면?”

“그때는 제가 나서겠습니다. 저들이 저커버그 사장님께 악감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저에겐 아무 감정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저는 그래도 이 바닥에서 그럭저럭 인지도가 있는 개발자이기도 하고요.

같은 게임 개발자 출신이니, 그래도 제가 나서면 어느 정도 이야기가 통하겠죠.”

“그럼 처음부터 존 씨가 나서서 이야기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하아···. 저커버그 씨.”

자신이 CEO가 그 특유의 얼빵한 표정을 지으며 둘러대는 말을 들은 존이, 저커버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아는 PTW는, 당신의 사과가 없으면 제가 아니라 미야모토 히게루가 가도 절대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피하려 하지 말고 어떻게든 자신이 싼 똥을 수습해주십시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옵큘러스 VR에 미래는 없으니까.”

***

그 시각, 페이트 북 본사에서 저커버그에게 선전 포고를 날린 상혁 일행은 한국으로 향하기 위해 LA의 공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제는 미국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밀려있는 일들을 처리해야 할 시기였기 때문에.

사실 PTW는 대부분의 결제를 워크 패스트로 처리하기에 어느 곳에 있던 원격으로 대부분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몇몇 사안들은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할 사항들이 많았기 때문에 상혁은 빠르게 한국에 가고 싶어 했다.

미국이란 나라가, 그만큼 상혁을 피곤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했고.

“너무 게임하고 오래 떨어져 있었어요.

MS와 헤지펀드 건도 그렇고, 지금처럼 페이트 북이 PTW에 시비 거는 것도 그렇고.

개발 외적인 문제는 항상 저를 피곤하게 만드네요.”

상혁은 투덜거리며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상혁의 옆에서, 현주는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어?”

“뭐 하실 말씀 있어요?”

“아니, 그냥 좀 걱정돼서.”

“조금 전 있었던 일 때문인가요?”

“페이트 북은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하던 기업들과는 크기가 다르잖아.”

“크기 자체는 MS가 훨씬 큰데요?”

“MS는 우리한테 호의적이었지.”

“어차피 키를 쥔 쪽은 우리에요. 소송전에 들어가면 100% 페이트 북이 불리할 거고.”

“하지만 상대는 우리보다 큰 기업이야. 분명 소송을 몇 년씩 끌면서 시간을 벌고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까?”

“그런 방식은 일정 규모 이하의 중소기업에나 먹히는 방식이죠. 저쪽에서 무슨 싸움을 걸던, 우린 박살 내면 됩니다.

이쪽에도 현찰은 넉넉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고, 원한다면 대형 로펌으로 군단을 조성할 수도 있고요.

필요하면 삼정이나 MS의 변호인단을 빌려서 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보장하건대, 이건 절대 소송전까지 가지 않습니다.”

“그래?”

“애당초 저희와 다르게 저쪽은 주식회사에요.

특허 관련 소송이, 그것도 이 바닥에서 이미 특허 괴물 취급받는 저희 PTW와 연관된 소송이 걸렸다고 소문이 퍼지면 페이트 북 주가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폭락하지 않을까?”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식을 가진 사람들이죠. 그리고 저커버그는 절대 주주들의 등쌀을 이겨낼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강점은 남의 등을 치고 남을 속여서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데 있죠.

물론 자신이 뺏으려는 것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는 엄청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긴 하지만.”

“그런데 왜 저커버그는 우리에게 시비를 건 것일까? 애당초 PTW가 주로 콘솔 시장에서 활동한다는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니잖아?”

“욕심이 과했던 거죠. 만약 옵큘러스에 이어서 PTW가 가진 딥 다이버까지 손에 넣는다면, 저커버그는 염가형 VR 시장과 고가형 VR 시장 양쪽을 전부 가져갈 수 있으니까.

게다가 AR 쪽은 이미 저희 기술이 독보적이라고 봐도 좋고요.”

“그럼 저쪽에서 합의를 제시하면 받아들일 거야?”

“그건 선생님의 판단에 따를게요. 참고로 저희는 페이트 북과 함께해서 얻을 수 있는 메리트가 전혀 없어요.

그쪽이 수십억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애당초 워크패스트 사용자가 페이트 북 사용자보다 더 많은 상황이고, 딥 다이버는 곧 콘솔 유저의 필수 아이템이 될 거고, 전 세계의 기업들이 산업용 딥 다이버를 자신들의 생산 설비에 투입하겠죠.

그쪽에서는 보급형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지만, 사람들은 마이너한 체험에 값어치를 두지 않아요.

그 차이가 수백만 원이라면 모를까, 애당초 딥 다이버 자체가 원래는 100 만원 넘게 받아야 하는 장비를 40만 원대에 공급하는 거기도 하고, 원래 옵큘러스의 강점이던 넓은 시야각도 저희 장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죠.

저흰 아예 시야 전체를 커버하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유리하다는거지?”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는 싸움이라는 거죠. 그리고 그걸 알기 때문에 저커버그가 저희에게 협박한 거기도 하고.”

“그건 무슨 의미야?”

“사람들은 쉽게 질려 하는 특성이 있어요. 한때는 페이트 북이 세계를 지배할 것 같았지만, SNS의 트랜드는 어느새 빠르게 인스터그램으로 옮겨갔죠.

그리고 사람들은 또 다른 경험을 찾아 옮겨 갈 겁니다. 저커버그 입장에서는, 그 차세대 놀이터가 바로 메타버스인거고요.”

“메타버스라는 말이 난 이해가 안 가던데, 그게 뭘 말하는 거야? 일종의 매트릭스 같은 가상 세계 같은 건가?”

“그 정도면 다 알고 계신 건데요.”

“근데 가상 세계는 일종의 게임에 가깝지 않아? 왜 광고 회사인 페이트 북이 거기에 관심을 가지는 거야?”

“선생님. 광고 시장이라는 것은 점유율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장이에요.

그건 오직 사람들이 많이 보고, 오랜 시간을 머물러 있어야 가치가 있죠.

예전에 사람들은 TV앞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죠. 그렇기에 TV는 가장 강력한 광고매체였고요.

지금은 인터넷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렇기에 인터넷 광고 시장이 그토록 성장한 거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가상 공간이 된다면, 가장 핵심적인 광고 미디어도 가상 공간 안으로 옮겨갈 것이다?”

“저커버그가 꿈꾸는 세계는 그런겁니다.

온전히 자신이 통제하는 가상 세계 안에서,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에게 돈을 지불한 광고주의 광고만을 보게 만드는 거죠.

그 세계 안에는 너튜브도 없고 트윗터도 없을 겁니다. 오로지 페이트 북만 존재하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인 거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서 그 세계의 지배자가 된다는 거지? 조금 소름 돋는다.”

“원래 저커버그란 인간 자체가 좀 소름 끼치는 인간이에요. 그 인간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데 아니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애당초 페이트 북 자체가 인터넷의 익명성을 완전히 무시한 플랫폼이잖아요.

본인의 개인정보를 입력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그것 때문에 유럽에서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여해도 그걸 모른 체하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페이트 북이죠.

저커버그란 인간에게, 페이트 북의 회원들은 그냥 광고 객단가를 올려주는 봇 같은 존재들이에요.

말하자면 매트릭스가 인간을 배터리로 사용하는 거랑 비슷한 개념으로 사람을 보는 거죠.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지배하는 매트릭스를 만들어 그 안에 사람들을 밀어 넣고 싶어 하는 거고요.”

“그게 사실이라면, 저커버그 씨가 보기에 우리는 가장 강력한 걸림돌이었겠네. 그래서 처음 만난 순간에 협박을 시도한 거고.”

“맞아요. 세상 모든 일은 인과 관계가 있죠.

저희가 딥 다이버란 말도 안 되는 VR장비를 발매한 순간에, 저커버그는 생각했을 겁니다. 저걸 어떻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생각하는 매트릭스의 완성은 불가능할 거라고.”

“그래서 상혁이 너도 일부러 과하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거구나?”

“맞아요. 원인과 결과. 그쪽에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저희에게 접근했으니, 전 저희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어 수단을 쓴 거죠.”

“크라켄을 말하는 거야?”

“네. 그건 오로지 오늘 같은 날이 발생했을 때, 거대 기업들과 금융 자본에게서 우리 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준비한 거니까.”

현주는 든든하다는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상혁에게 물었다.

“상혁이 네가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가 이어진다고 말했지?

그럼 이제 앞으로 이어질 일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는 거야?”

“대충은요.”

“어떻게 흘러갈 것 같아?”

“저쪽에서는 일단 사과를 할 겁니다. 저커버그가 직접. 물론 그 자식은 에고로 똘똘 뭉친 소시오패스지만, 적어도 자신의 꿈과 자존심 중에 어느 게 중요한지는 판단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소시오패스니까요.

게다가 저희가 떠나자마자, CTO인 존 카믹을 불러서 특허 관련 사항에 관해서 물어보기도 했을 거고요.”

“그럼 그 사과를 받아주는 게 좋을까?”

“선생님은 광고로 가득한 가상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싶으세요?”

“아니.”

“그럼 받지 마세요. 그들이 구현하고 제공하려는 메타버스보다, 사람들에게 훨씬 즐겁고 재미있는 세계를 만들 능력이 저희에게 충분히 있으니까.

그쪽에서 착각하는 건, 단순히 디바이스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면 메타버스라는 세계가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실제로 유저를 움직이게 만드는 건 재미죠. 그리고 저희는 전 세계에서 재미를 만드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회사를 가지고 있어요.”

“좋아.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도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다는 거지?”

“그렇죠.”

“그럼 그쪽에서 합의금을 제시하면?”

“안 받는 게 좋겠죠.”

“그럼 아예 전면전을 하자는 거네?”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싸움이니까.”

“상혁이 너는 가끔 무서울 정도로 전투적일 때가 있는 것 같아.”

“사실 저희에게 필요한 건 본보기에요. 다른 회사에서 보기에, 저희는 분명 호구처럼 보일 수 있겠죠.

당장 유료화하는 순간 연간 수십조가 보장될 수 있는 워크 패스트를 기어이 무료로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조 단위 개발비를 투입해서 만든 하드웨어 기술을 기술료도 받지 않고 콘솔 개발업체에 제공해서 하드웨어 가격을 싸게 잡는 것도 그렇고.

Live2D 관련 기술도 4천억이나 들여서 구매한 다음 아예 오픈 소스로 풀어서 공개해놨고.

실제로 코넥트 관련 특허도 여러 업체에서 허락도 없이 막 가져다 쓰고 있죠.

하지만 저희의 모든 호구같은 행동은 그게 사용자를 위한 것일 때만 유효해야 해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게 누구든 저희를 건드리는 순간, 그 상대가 설사 페이트 북 같은 대기업이라도 지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거죠.”

“소송을 통해서? 오래 걸리고 주목도 받기 힘들 건데?”

“그렇죠.”

그렇게 말한 상혁은, 대화 도중에도 계속 두드리고 있던 자신의 노트 북을 현주에게 건네주었다.

“그래서 이걸 쓸 겁니다.”

“언론 보도 자료?”

“예. 제목을 보세요.”

현주는 상혁의 말대로 스크롤을 올려 자료의 제목을 보았다.

그리고 미소지으며 상혁에게 노트북을 돌려 주었다.

“한방에 지옥으로 간 기분이겠네.”

“그렇죠. 저쪽에서는 최대한 빠르게 사과를 통해서 조용히 합의하고 싶을 테니까. 아마도 저커버그가 내일 신문을 보면, 아마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서 고래고래 소리칠 걸요?”

“그리고 우리는···.”

“미국 전역의 신문 1면에 폭탄을 던져놓고 한국으로 튀는 거죠.

그리고 연락이 오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꼬우면 니가 한국으로 오던가.’

아마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날아가고 있는 11시간 30분 내내 열 받아서 잠도 못 잘 겁니다.”

사악한 미소를 짓는 상혁을 보며, 현주는 속으로 생각했다.

‘본인은 저커버그가 소시오패스라더니···. 상혁이는 자신에게 가끔 악마 같은 면이 있다는 건 자각 못 하나?’

뭔가의 천재적인 면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속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며, 현주는 상혁의 무릎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바라본 상혁의 무릎 위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쓰여있는 언론 보도 자료가 띄워진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옵큘러스의 인수자 페이트 북. VR기기의 절대 강자 PTW에게 소송전을 선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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