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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04화 (305/485)

304. 테스트 투어

“아깝네요. 테스트 도중에 실신하셨으면 1조 원 주고 영입한 인재가 딥 다이버로 공포 게임하다 쓰러졌다고 홍보할 수 있었을 텐데.”

테스트 챔버에서 흐느적거리며 걸어 나오는 카믹에게 스캇이 말하자, 카믹이 그를 노려보았다.

“진짜로 기절할 뻔 하긴 했죠. 당신들 제정신입니까?

모니터로 해도 기겁할 만큼 악랄하게 설계된 게임을 딥 다이버 같이 체감도 높은 장비로 구현하다니?”

처음에 동의서에 사인할 때만 해도, 존은 그 수많은 경고 메시지가 단순히 재치 있는 개발자들의 장난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테스트를 마친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가 보기에, 조금 전까지 자신이 플레이했던 ‘게임’은 봉인되어 마땅한 ‘저주받은 물건’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존이 주목한 것은 딥 다이버라는 이름의 공포 게임이 주는 압도적인 공포감만은 아니었다.

그는 딥 다이버가 테스트 빌드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출시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는 이유를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게 프로토타입이 맞습니까? 테스트 버전 치고는 지나치게 퀄리티가 높던데?”

“그건 그 프로젝트에 붙어 있는 ‘Test’라는 단어의 뜻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존 카믹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의 앞이 아니라 뒤에서 들려왔다.

카믹이 몸을 돌리자, 거기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담한 체구의 여성이 서 있었다.

“누구시죠?”

“조금 전까지 당신이 죽이겠다고 소리치던 사람이요.

미야모토 카렌입니다. 공포 게임인 딥 다이버 외 VR 기기용 R&D 프로젝트 전반을 총괄하고 있는 기획자입니다.”

그녀가 손을 내밀자, 존은 그녀와 악수하며 질문을 던졌다.

“미스 미야모토. 테스트의 의미가 다르다는 건 어떤 의미죠?”

“카렌이라고 부르세요. 제가 방금 말한 테스트의 의미가 다르다는 말은, 그 프로젝트의 경우 단순히 게임의 매거니즘을 테스트하기 위한 빌드가 아니라, 사람을 어느 수준까지 몰아붙여야 기절하는지 테스트하는 용도로 개발된 게임이란 이야기죠.

그리고 그 정도의 완벽한 공포를 자아내기 위해서는, 높은 퀄리티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었고요.”

“그러니까 애당초 저 게임 자체가 테스터를 기절시키기 위한 악의적인 용도로 개발되었다는 이야기입니까?”

“맞아요. 그것을 위해서 여러 가지 장치가 쓰였죠.”

존은 그녀의 말에 흥미를 느꼈다.

“어떤 장치입니까?”

“예를 들어 괴물에게서 도망칠 때, 높은 확률로 직선 구간에서 길이 무너지거나 천장이 내려앉거나 했었죠?”

“아, 맞아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그러니까 욕이 절로 나오던데요?”

“그건 저희가 테스트를 할 때 아예 테스터 몸에다 심박 수 측정기를 달아놓고 심박수가 내려가는 타이밍에 함정을 고의적으로 배치해서 그런 겁니다.

일부러 심리적 흐름의 엇박자를 타게 만드는 거죠.

함정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 부분에서는 나오지 않게 하고, 여긴 안전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함정이 튀어나오게요.”

“아, 어쩐지···.”

그녀의 말대로, 딥 다이버란 게임은 일반적인 공포 게임과 다른 엇박자 같은 호흡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플레이하는 내내 좀 더 불쾌한 느낌을 주고 있었고.

“그 덕에 테스트에 참가한 QA팀 멤버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고 프로젝트가 봉인되긴 했지만요.”

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하자, 카믹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 그가 플레이했던 그 게임은, 진짜로 그 정도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아쉽네요. 공포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을 텐데.”

“정도라는 게 있잖아요? 극소수의 플레이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욕을 하면서 클리어를 포기할 정도의 게임이라면, 출시하는데 리스크가 따른다고 볼 수 있겠죠.

게다가, 진짜로 심장이 약한 플레이어는 신체에 위험을 받을 수도 있고요.”

“경고문을 넣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전 오히려 그편이 이슈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슈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미국엔 수많은 마약 딜러가 있죠.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약에 들어가는 코카인의 양을 줄이려 수많은 첨가제를 넣습니다.

적은 양의 코카인을 가지고, 최대한의 환각효과를 일으킬 수 있도록 부스팅 제제를 추가하는 거죠.”

“레시피(Recipe)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맞습니다. 드러그 딜러마다 자신만의 레시피가 있고, 그중 일부는 순수한 코카인보다 위험하기도 하죠.

그리고 특이하게도, 누군가의 약을 먹고 사망자가 나오면, 그 드러그 딜러의 약 판매량이 폭등합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약이 더 잘 팔린다고요?”

“약쟁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끝내주는 약이길래 먹고 죽을 정도로 환상적이라는 거야?’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이 게임이 가지는 위험성이 이 게임의 세일즈 포인트가 될 거라는 의미죠?”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VR로 가장 강력하게 체험시킬 수 있는 감각 중의 하나가 바로 공포이고, 딥 다이버는 공포를 전달하는데 제가 이제까지 본 그 어떤 게임보다 뛰어난 구조를 가진 게임이니까요.

버리기 너무 아까운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이 출시되면, 예. 물론 엄청나게 욕을 먹겠죠.

이걸 플레이하라고 만든 거냐고 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게임을 플레이하자마자 지워버리는 사람이나 환불하는 사람도 속출할 겁니다.

반대로 그런 악명 때문에 더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입소문이 퍼지고, 도전자가 넘쳐날 겁니다. 앞으로 ‘공포 게임을 잘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바로 이 게임이 되겠죠.

전 딥 다이버가 그 정도의 잠재력을 가진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호버 부츠의 말도 안 되는 전성비 개선이 우선이겠지만요.”

“호버 부츠가 마음에 드셨나요?”

“물론이죠. 저건 또 다른 괴물이에요. 딥 다이버라는 VR기기 자체의 포텐셜도 놀라웠지만, 호버 부츠 와의 연동이 끌어내는 경험은 정말로 끝내줬습니다.”

존 카믹이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감상을 털어놓았다.

“기존에도 유저가 이동할 때 제자리에서 이동할 수 있게 하려는 시도는 여럿 있었지만, 호버 부츠같이 단순히 X,Y 좌표의 고정이 아니라 Z 좌표까지 지원하는 장비는 없었으니까요.

눈앞에 보이는 계단을 실제로 걸어 올라가는 느낌은 제가 진짜로 심해 기지 안에서 돌아다니는 느낌을 전달해 주었어요.

그리고 발에 뭔가가 채일때마다 느껴지는 반동도 매우 좋았고요.”

“그 ‘좋았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서웠다’라는 뜻이기도 하겠죠?”

“예.”

“그 부분에 있어서라면, 조금은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겠네요.

PTW 하드웨어 개발팀에서는 호버부츠의 전성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장비도 개발 중이거든요.”

“오! 정말입니까?! 지금 보러 갈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죠. 스캇 씨. 따로 정해둔 투어 순서가 없다면 연구실에 먼저 들리지 않으시겠어요? 스캇 씨도 함께.”

물론 스캇은 카믹에게 보여줄 프로젝트의 순서를 대략적으로 정해둔 상태였지만, 굳이 그것을 고집할 만한 이유는 없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그럼 가시죠.”

그러자 그녀는 두 사람을 데리고 PTW의 하드웨어 개발을 진행하는 PTW Lab(Laboratory)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호버 부츠의 전성비 극복을 위해 개발 중인 신 장비를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그 장비입니까?”

“예. 개발 중 명칭은 ‘문어 부츠(Octopus Boots)’입니다. 조금 꼴사나운 이름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모양 때문에 자연스럽게 붙은 이름이라서···.”

“호버 부츠랑은 구조 자체가 다르네요.”

“전성비 극복을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거든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카믹은 새 장비의 프로토타입을 향해 다가갔다.

그것은 SF틱한 디자인에, 강력한 자기장으로 부츠를 착용한 사람의 몸을 공중으로 띄우는 호버 부츠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로 되어 있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어떤 구조로 동작하는지는 바로 알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신발을 공중에 띄우는 방식이 단순히 자기력에서 부츠에 달린 기계 지지대로 바뀐 것뿐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리저리 만져보던 존은 카렌에게 물었다.

“호버 부츠의 구동 방식을 기계적으로 구현한 겁니까?”

“예. 물론 가느다란 지지대로 사람 몸의 움직임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지지대는 티타늄 합금으로 되어 있고 매우 강력한 모터가 장착되어 있죠.”

“확실히 이 방식이라면 전기 문제는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상용화도 가능할 것 같고. 문제는···.”

“디자인이 좀 무섭죠.”

마치 모기 다리 같은 기계 촉수 여러 개가 신발에 붙어 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었다.

“실제로 착용감도 호버 부츠와 비슷합니까?”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아직은 그 수준은 아니에요. 스캇 씨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호버 부츠의 테스트를 먼저 시켜드린 것일 테고요.”

“어찌 되었건 양산을 위해서 다른 대체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동작하는 셈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고요. 옵큘러스도 VR시장 진입을 위해 꽤 오랜 시간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해 왔는데, 여기 와보니 저희가 한 것은 그냥 장난에 불과한 수준이라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어찌 보면 자존심이 상할만한 발언이었지만, 스캇은 아무렇지도 않게 옵큘러스와 PTW의 격차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양사의 기술적 격차가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옵큘러스가 걸음마를 하고 있을 때 PTW는 이미 포르쉐를 몰고 가는 수준이군.’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개발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경쟁사의 프로젝트에 비해 한없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전혀 슬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는 그 경쟁사의 ‘수준 높은’ 프로젝트가 자신의 프로젝트가 되었고, 반대로 자신의 ‘떨어지는’ 프로젝트가 경쟁사의 프로젝트가 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다 져가던 체스판을 뒤집어 승자와 패자를 바꾸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상혁 씨와 PTW에게 감사해야겠군요.

만약 제가 옵큘러스에 소속된 상태에서 이 프로젝트들을 보았다면, 자괴감에 자살하고 싶은 기분이 되었을 겁니다.

몇 년을 쏟아부은 프로젝트 앞에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힘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카렌은,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도 솔직하게 옵큘러스의 패배를 인정한 존 카믹에게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 주었다.

“어라? 겨우 이 정도로 놀라시면 곤란한데요?”

“무슨 의미입니까?”

“저희가 개발 중인 프로젝트에 비해서, 지금까지 존 카믹 씨가 보신 프로젝트는 겨우 빙산의 일각이라는 소리죠.”

“공포 게임 외에도 다른 VR 프로젝트가 더 있다고요?”

“물론입니다. 원하신다면 바로 체험도 시켜드릴 수 있고요.

물론 나머지 프로젝트들은 딥 다이버만큼 퀄리티가 높지는 않겠지만, 아이디어나 재미는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안에 전부 체험하고 싶네요.”

마치 놀이공원에 도착한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존 카믹은 즐겁게 PTW 내부를 돌아다니며 투어를 즐겼다.

***

“어떠셨어요?”

존이 투어를 마치고 상혁을 찾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둑어둑하게 저물어가는 저녁 즈음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퇴근 시간 직전에 찾아와 자신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존 카믹의 요청에 전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며, 즐거운 표정으로 커피를 타 그에게 내밀었다.

상혁에게 있어서도, 세계적인 개발자 존 카믹과의 대화는 즐거움 그 자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존은 그런 상혁이 건네주는 커피를 받고는 조용히 커피를 홀짝이며 입을 열었다.

“매우,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음에 드셨나 보죠?”

“이직을 결심하지 않았더라면 땅을 치고 후회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다행입니다.”

“하지만 불만스러운 부분도 꽤 있었습니다.”

“운영에 대한 지적이라면 즐거운 기분으로 받아들이죠.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셨죠?”

상혁이 말하자 존이 소리쳤다.

“그렇게나 멋진 프로젝트들이 회사 안에 넘치는데, 왜 출시작은 그렇게 적은 겁니까?!

솔직히 말하면 저도 PTW게임을 즐겨하던 팬입니다.

그리고 PTW의 팬으로서, 이렇게 멋진 프로젝트들을 내버려 두는 회사가 이해가 가지 않네요.

당장이라도 완성해서 출시하면 떼돈을 벌만 한 프로젝트들이 회사에 넘치는데, 왜 2, 3년 주기로 1개에서 3개의 게임만 발매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방금 말씀하신 페이스는 1년에 1개꼴로 게임을 발매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희 회사의 규모를 보면 그게 절대 느린 페이스가 아니라는 건 카믹 씨도 잘 아실 텐데요?”

“그건 알지만···.”

그는 그가 오늘 보았던 수많은 VR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유저들에게 수없이 많은, 그리고 다양한 즐거움을 안겨 줄 프로젝트 들을.

그리고 그것이 퍼졌을 때 유저가 느끼게 될 즐거움에 대해.

그런 수많은 프로젝트가 ‘개발 중’ ‘정지’ ‘봉인’ 같은 단어에 묶여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그에겐 너무나도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상혁도 잘 알고 있었다.

“카믹 씨가 어떤 부분을 안타까워하는지 잘 압니다. 그리고 그 부분은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고요.

하지만 몇몇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지나치게 독창적이거나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인디 게임으로써는 매우 좋은 시도가 될지 몰라도, PTW의 레이블을 달고 출시하기엔 부담이 있는 게임들이죠.

저희는 PTW입니다. 그 말은 저희가 게임을 출시할 때 유저들이 항상 일정 수준의 완성도와 스케일을 기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저는 PTW의 게임을 구매하는 유저들이 항상 이렇게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좋아, 저 게임은 내가 태어나서 한반도 해본 적이 없는 게임이지만, PTW에서 내놓은 게임이니 분명 끝내주게 재미있을 거야.’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 라인을 철저하게 잘 지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PTW의 게임은 아무거나 골라잡아도 수백시간 이상의 즐거움을 보장하는 게임들이니까요.”

“그러니 한두 번 플레이하고 봉인해둘 만한 그런 게임은 출시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 한두 번이 아무리 압도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더라도요.”

“하지만 그런 이유로 묻어두기엔 아까운 프로젝트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딥 다이버 같은 게임은 지금 개발 중인 버전을 데모로 공개하기만 해도 전 세계 공포 게임의 기준을 뒤집어버릴 만한 게임이지 않습니까? 공포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가 너무 무서울까 봐 출시를 주저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딥 다이버가 어지간히 인상적이셨나 보군요.”

그러자 존이 고개를 저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아뇨, 사실 딥 다이버 자체도 VR이 전달할 수 있는 경험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진짜로 저를 매료시킨 프로젝트는 따로 있었습니다.”

“뭔지 알 것 같긴 합니다.”

“그게 누구라도 그 프로젝트를 플레이해보고 흥분하지 않을 플레이어는 없을 테니까요.

전 오히려 왜 PTW가 이번 신작을 ‘스페이스 다이브’로 결정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쪽이 훨씬 압도적으로 재미있는 게임인데 말이죠.”

“뭐, 좀 더 완성도를 높이고 출시하겠다는 계획에서 그런 거니 너무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그 프로젝트는 지금 잠시 중단 중일 뿐 출시 예정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문제없겠네요.”

“마음에 드셨었나 보네요?”

“장난하십니까? 만약 상혁 씨가 그 프로젝트를 묻어버리겠다고 했다면, 어떻게든 퇴사 후에 그 게임을 베껴서 출시해서라도 유저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게임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메타버스에 가장 근접한 게임이기도 했고요.

게다가 프로젝트 자체가 가진 의미도 크죠.

다들 놀랄 겁니다. 절대 속편을 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PTW에서, 기존 작품의 속편을 VR로 제작 중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말이죠.”

“그 부분은 절대 보안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누구보다 정보 보안의 중요성을 잘 아실만한 분이니 딱히 더 말은 안 하겠습니다.

어찌 되었건 지금 말씀하신 모든 것의 요지는 현재 PTW에 묻혀 있는 아까운 프로젝트가 많다는 것이죠?”

“맞습니다. 특히 VR 관련은, 진짜로 어째서 게임을 한 개밖에 출시하지 않은 것인가 궁금할 정도로 기발한 프로젝트가 많았으니까요.

제가 책임자였다면, 전 그 모든 프로젝트를 개발해서 출시까지 이끌었을 겁니다.

딥 다이버를 구매하는 순간, 그 수많은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유저들을 즐겁게 만들 테니까요.”

“잘됐네요.”

“뭐가 잘 되었다는 겁니까?”

“사실 오늘 존 카믹 씨가 하신 투어의 목적이 그것이었으니까요.”

상혁의 말에 존 카믹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상혁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상혁은 씩 웃으며 그런 존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아시다시피, PTW는 지금 카믹 씨가 앉아있는 ‘부실’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회사입니다.

수많은 개발자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출시되는 게임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이 내려지는 곳은 이곳 부실이죠.

그것은 항상 일관성 있는 퀄리티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한번에 일정 수 이상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퀄리티 유지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죠. PTW라는 이름으로 나가는 게임들은 제가 생각하는 기준 이상을 반드시 충족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카믹 씨의 말대로, 지금까지 회사 내부에서 개발하다 묻힌 프로젝트 중에는 정말 괜찮은 것들이 많이 있죠.

PTW의 정식 레이블로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지만, 게임 자체는 기발하고 참신한 그런 게임들이.

저는 오래전부터 그런 프로젝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커버그가 저희에게 시비를 걸어온 순간, 그 해결책을 떠올렸죠.”

상혁이 말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존 카믹 씨. 바로 당신입니다.”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내뱉은 상혁의 말을, 존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의미입니까?”

“게이머들이 생각하는 PTW라는 레이블이 가지는 특유의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재능있는 개발자들이 만든 수많은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별개의 레이블을 하나 더 만들고 싶다는 의미죠.”

“PTW가 아닌, 또 하나의 게임 회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PTW는, 그리고 팬들이 생각하는 PTW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게임을 기존 블록버스터 타이틀 이상의 퀄리티로 출시하는 회사’라고요.

그러나 모든 게임이 자본을 투자한다고 블록버스터 급의 게임이 될 수 있는 포텐셜을 지닌 건 아니죠.

어떤 게임은 가벼움 그 자체가 매력이자 특징인 게임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게임들을 PTW의 이름으로 발매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PTW의 신작 게임이 발매되었는데, 그 신작의 용량이 겨우 130메가라고 생각해보세요. 팬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래서, 인디 게임스러운 작은 게임들도 출시할 수 있는 별도의 레이블을 만들겠다?”

“그렇죠.”

“그 새 레이블의 이름은 뭐죠?”

“PTW LAB입니다. 단어 그대로, 저희 회사에서의 실험적 프로젝트들을 좀 더 가벼운 느낌으로 만들어 출시하는 인디 전용 레이블이죠.

장르는 공포, 퍼즐, 시뮬을 가리지 않고 기발하고 참신하며 재미있는 게임이라면 그게 어떤 것이든 출시할 생각이고요.”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기존 프로젝트들을 가볍게 다듬어 하위 레이블로 출시하고, 거기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PTW라는 메인 레이블에서 블록버스터 게임을 완성한다는 아이디어는 분명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한 존 카믹은 그제서야 상혁이 자신에게 기대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세계 게임 업계에 당당하게 그 이름을 남기고 있는 유명 개발자인 자신을, 어째서 1조 원이란 금액을 포기하면서 스카우트 해 왔는지에 대해서.

존은 상혁을 보며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물었다.

“혹시 그 레이블의 총 책임자를 시키기 위해, 저를 페이트 북에서 빼 오신 겁니까?”

“맞습니다. 이름만 대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세계적인 개발자. 존 카믹 씨의 이름을 빌려 또 하나의 게임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죠.”

그렇게 말한 상혁은, 씩 웃으며 존 카믹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적어도 그 정도는 돼야 카믹 씨를 두고 1조 원의 가치 이상을 뽑아먹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겠어요?”

상혁이 말한 ‘새 레이블’의 설립.

그것은 앞으로의 PTW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상혁이라는 개발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원탑 체제’가 아닌, 존 카믹이라는 또 한 명의 레전드 개발자를 이용한 ‘투탑 체제’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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