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레벨5의 자율주행
“카아아아아악~ 퉷!”
일린 모스크가 탄 리무진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상혁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모스크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투덜대는 것이었다.
“아, 짜식 드립 좀 치려고 기분 좀 맞춰줬더니 1절만 하지 2절 3절에 뇌절을 치네.”
그러자 옆에 다가온 지수가 상혁을 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엥? 그 이상한 말투로 ‘갈끄니까~’가르쳐준 건 오빠잖아요. 평소에 그렇게 말하지도 않으면서, 대체 왜 그런 거예요?”
“웃기잖아.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CEO를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만들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아마 내일쯤 미국으로 돌아가면 기자 회견에서 그 괴상한 발음으로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말할걸?
‘아아, 안녕하세요. 일린 모스큽니다.
제가 이번에 한국에서 인류의 화성 진출이라는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한국어를 배워왔습니다.
다 같이 따라 해보시죠.
화성, 갈끄니까아아아~~’
그게 전 세계 뉴스에 뜰 거라고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오는데?”
“나중에 단순히 놀리려고 그런 거라는 걸 알면 화내지 않을까?”
이번에 질문한 것은 민준이었다.
그러자 상혁은 고개를 저으며 민준에게 말했다.
“뭐, 자기가 어떻게 알겠어. 내가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 애당초 누가 놀리려고 만든 말투를 내가 가르친 것도 아니고.”
“맞지 않아?”
“여기서는 아니지.”
민준은 상혁이 말한 ‘여기서는’이라는 말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상혁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상혁아.”
“어?”
“레벨 5 자율 주행 기술 같은게 우리한테 있었냐?”
“없었지. 단지 가장 근접해있다는 걸 보여줬을 뿐이야.
예전에 구란트리스모의 딥 다이버 버전을 개발할 때, 폴리포디 디지털 측이랑 프로드라이버와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의 AI 개발에 대해 진행한 적이 있었거든.
그때 만들었던 결과물을 보여준 것뿐이야.”
“게임 안에서 AI가 동작하는 방식이랑 자율 주행 차량이 사고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지 않나?”
“다르지. 하지만 내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LiDAR 센서와 카메라 영상 해석으로 주어진 정보만 가지고 도로에서 주행을 수행하는 AI 셈플이었어.
다른 차량의 위치를 게임 클라이언트에서 받아서 처리하는 게 아니라, 실제 운전자가 사고하는 방식으로 사고하고 대응하는 AI를 보여준 거고.”
“엥? 레이싱 게임용 AI를 개발하는데 그런 건 왜 만든 거야?”
“첫째로, 서킷 주행 중심의 현재의 구란트리스모 시리즈만 가지고는 일반 도로 주행을 메인으로 하는 포르자 호라이즌 시리즈와 계속 대등하게 싸우기는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 일반 도로에서 사람처럼 주행하는 AI를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있었고.
둘째론 어차피 우리가 가진 모션 인식 기술이나 코넥트로 쌓은 인체 데이터에 관한 기술이 가장 잘 쓰일 곳이 바로 자율주행 쪽이었으니까.
언젠간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폴리포디와 협업하는 김에 기초 연구에 대한 기틀을 마련한 거지.
원래는 이번 일이 아니면 묻으려고 한 기술이었어.”
“어? 왜?”
“기술에 하자가 있거든. 모스크는 모르고 사인했지만.”
그렇게 말한 상혁은 웃으며 민준을 향해 말했다.
“자세한 건 부실에 가서 다시 말해줄게. 테슬러와 PTW의 협업과 관련해서, 모두에게 할 이야기도 있고.”
***
부실로 돌아온 상혁은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스크린에 띄워놓고 그에 대한 세부 내역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양사의 협업이 어떤 방식으로 굴러갈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상혁은 계약서의 라인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당 조항의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해주었다.
“우선 가장 먼저 주목할 점은, 이 계약에서 우리의 의무는 테슬러가 ‘레벨 5’의 자율주행 기술을 갖춘 차량을 개발하는데 협력한다는 것이지, 우리가 그걸 만들어서 넘긴다는 게 아니라는 거야.
현재 우리가 가진 영상처리 알고리즘은 렌더링 센터의 지원이 없으면 실시간 주행에 대응할 정도로 효율적이지 못하거든.
아마 그 정도 성능의 구현이 가능한 연산 설비를 테슬러 전기차에 실으면, 200㎞도 가기 전에 배터리가 방전 날 거야.”
“그럼 애당초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에 대한 약속을 한 거 아니야?”
민준의 질문에 상혁이 고개를 저었다.
“개선되겠지. STC의 버전 업이 진행되면서, 우리가 가진 프로그램의 최적화 수준이나 칩셋 설계의 효율성도 올라가고 있으니까.
지금의 처리 알고리즘은 순수하게 ‘Non-STC’ 버전으로 개발된 거니까.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는 거고. 그리고 정 힘들면···.”
“힘들면?”
“우리 기술은 문제가 없는데, 테슬러 측 배터리 성능이 구려서 그렇다고 우기면 되지.
어차피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은 나중에 칩셋 성능이 올라가고 전성비가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야.
일린 모스크도 그걸 알고 있으니까 우리 쪽 제안을 받아들인 거고.”
“그걸 알았다고 해도, 스페이드 X의 절반이란 지분을 넘기면서까지 굳이 PTW의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탐내는 이유가 이해가 안 가는데.
비슷한 기술은 지금 구골같은 수많은 대기업에서 연구하고 있잖아.
수준도 상당하고. 심지어 테슬러도 자체 개발 중이던 알고리즘이 있을 테고.”
“거기엔 아주 간단한 이유가 있지.”
민준의 말을 들은 상혁이 말했다.
“전 세계의 업체 중에서, 오직 우리가 만든 장비만이 ‘보이지 않는’ 인간을 감지할 수 있으니까.”
“저기 잠깐만.”
그때, 서연이 손을 들어 상혁의 말을 끊었다.
“상혁 오빠. 사실 이건 제가 그래픽 파트 작업 외에 아무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거기도 하지만, 전 우리가 그 뭐냐, 레벨5? 그런 기술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구체적으로 저희가 가진 기술이 다른 기업보다 어떤 점이 뛰어나길래 일린 모스크씨가 저희에게 스페이드 X의 지분 절반을 넘긴 거예요?”
“흠. 기술적인 이야기라 좀 복잡할 텐데 괜찮아?”
“제가 아는 상혁오빠라면, 분명 아무리 복잡한 개념이라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줄 테니까 괜찮아요.”
자신에 대한 신뢰가 듬뿍 묻어나오는 그녀의 말을 들은 상혁은 씩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민준의 말대로 타 업체에서도 레벨 3~4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가지고 있는 건 맞아.
단지 상용화까지는 넘어야 할 몇 개의 기술적인 장벽과 윤리적인 장벽이 있을 뿐이지.”
“그게 뭐예요?”
“가장 쉬운 예가 노인과 아이 딜레마지.
고속도로에서 AI가 조종하는 자동차가 시속 100㎞로 달리고 있는데, 도저히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인과 아이, 두 사람 중 한 명은 반드시 치어야 하는 상황이 AI에게 주어진다고 쳐.
그럼 AI는 누굴 희생해야 할까?”
“개인의 판단에 따라 다르겠죠.”
“하지만 AI는 그런 상황에서 본인에게 입력된 알고리즘으로 행동하게 되어 있지.
만약 프로그래머가 남은 수명을 기준으로 희생양을 결정하라고 코딩한다면 그것도 문제가 되고, 혹은 연장자를 배려하라고 코딩해도 문제가 되지.
결국, 누굴 죽일지 그 우선권에 대한 문제를 사전에 결정한 게 되니까.”
“아···.”
“그런 윤리적인 딜레마 외에도, 기술적인 문제도 있어.
예를 들어 현재의 센서 기술로는 아무리 기술을 보완해도 주차된 차 너머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오는 보행자를 인식할 수 없거든.
그건 카메라로 확인한 영상정보를 확인하든, LiDAR를 쓰던, RADAR를 쓰던, 적외선 센서를 쓰던 다 똑같아.
일정 두께 이상의 벽 너머를 보는 기술은 아직 없으니까.”
“근데 그건 일반 운전자도 피할 수 없는 문제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땐 그 과실을 운전자 본인이 책임지지만, AI가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모든 과실을 AI를 개발한 개발사에 떠넘기려고 할 거야.
아마 도로에서 AI가 조작하는 차와 관련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제작사를 고소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게 될걸?
그 중엔 보험사도 있을 거고.”
“좋아요. 그런 문제들이 있다는 건 알겠어요.
근데 그건 일린 모스크 CEO도 잘 알고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상혁오빠가 뭘 보여줬길래 계약서에 사인한 거예요?”
“내가 보여준 건 2가지야. 하나는 우리가 가진 센서 기술이 다른 업체가 가진 기술과 ‘차원’이 다른 점이 뭔지를 보여줬고, 하나는 그 센서로 받은 정보를 처리하는 AI가 다른 업체의 기술에 비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준 거지.”
상혁이 말한 PTW기술의 역사는, 코넥트를 개조하여 휴전선 감시 장비로 대한민국 국방부에 납품할 때의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에 코넥트를 개조해서 휴전선 감시 장비로 대한민국 국방부에 납품하려고 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몇 가지 이슈가 있었어.
첫째로, 일반적으로 휴전선을 넘으려는 북한 병사들이 이따금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넘어오지 않는다는 거야.
들키지 않으려고 위장을 하고 넘어오거나, 혹은 높은 풀로 가려진 카메라의 사각지대에서 월남을 시도하곤 했지.
그래서 우리는, 사람의 형태가 아닌데 실제로는 사람인 ‘무언가’를 코넥트가 인식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어.
길리슈트를 입고 기어서 휴전선을 넘으려는 인간까지 모두 인식하여 보고할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가 집중한 것은 시각 정보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사운드에 집중하자는 거였지.
일단 물체가 움직이면 소리가 나니까, 적외선 센서나 카메라 영상 외에도 일정 이상의 소리가 나면 거기에도 반응하도록 한 거야.”
“오, 성공했어요?”
“아니, 고라니만 무지막지하게 찍혔지.”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했어. 풀숲이 움직이는 소리 중에서도, 정확히 사람이 내는 소리만 집어서 파악할 수 있도록.
물론 그 기능은 게임용 코넥트엔 필요가 없지.
그래서 산업용 코넥트의 가격이 그렇게 비싼 거야.
단순히 숨어서 들어오는 사람만 확인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내는 소리만 정확하게 집어내기 위해선 엄청나게 민감한 센서들의 조합이 필요했거든.
인간이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 이상의 범위를 포집할 수 있는 마이크를 집어넣고, 그 엄청난 소리 정보 속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파악하게 한 거야.
그렇게 모은 정보를, 코넥트는 복합적인 알고리즘으로 처리하지.
우린 그걸 ‘스파이디 센서’라고 불렀어.
예를 들어 카메라에 주차된 차 너머에서 튀어나온 모자챙이 보였다고 치자.
이미 그 사람이 주차된 차 너머 저 멀리서 걸어올 때, 보이지 않아도 스파이디 센서는 그 사람이 오고 있다는 것을 발소리와 심장 소리로 이미 알아낸 상태야.
하지만 단순히 그걸로 확정 짓지는 않아.
그리고 잠시 후, 그 사람이 도로로 뛰어나오면서 아주 찰나의 순간에 모자 챙이 살짝 차 밖으로 비친 거지.
그럼 스파이디 센서는 이렇게 결정해.
‘저게 모자인지 알아봐야겠다.’
초당 15000번씩 뿌리고 있는 LiDAR 센서의 신호를 통해서, 스파이디 센서는 그 모자 챙이 프린트된 그림인지, 아니면 쇼 윈도에 비치는 유리 너머의 마네킹이 쓴 모자인지, 아니면 실제로 도로로 뛰어들어오려는 사람이 쓴 모자인지를 판단하지.
그리고 그 모자에 가상의 인간을 그려.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어쩌면 바람에 날려서 도로로 들어오려는 모자일 수도 있으니까.
모자의 높이가 3m 위에 있다면, 키가 3m인 인간은 없을 테니 그건 바람에 날려온 모자라고 판단하는 거지.
그런 식으로 사람의 몸에 붙어있을 수 있는 물건이라면, 그게 공구든 머리 위에 얹은 식판이든 유유 박스든 택배 박스든 아니면 오토바이든 자동차든, 코넥트는 전 세계 산업현장과 보안 현장에 설치된 데이터로 해당 물건을 들고 있는 ‘사람’의 데이터를 판단해서 수집하는 거야.
마트 입구에 설치된 코넥트는 쇼핑카트를 밀고 있는 수많은 복장의 사람들의 모습을 스스로 학습하여 결과를 전송하고, 산업 현장에 있는 코넥트는 몽키 스패너를 들고 있는 작업자의 복장이나 모습들을, 심지어 그들이 타고 있는 포크 리프트 같은 중장비의 모습까지 전부 판단해서 전송하지.
현재 우리가 보유한 알고리즘은, 단순히 머리카락이나 대머리의 일부만 있더라도 그 사람의 나머지 자세가 어떤 형태로 되어있고, 그 사람이 어떤 무게 중심을 가진 물건을 들고 있으며, 그 사람이 어떤 탑승물에 타고 있는지를 모두 구분할 수 있어.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전 세계에 있는 탑승물의 형태도 모두 데이터로 파악해둔 상태고.
쉽게 말해 카메라로 받을 수 있는 영상정보가 X 좌표고, LiDAR나 적외선 센서에서 받을 수 있는 깊이 정보가 Y좌표라면, 우리는 거기에 소리라는 Z좌표를 추가한 거지.”
“그러니까 센서나 영상에만 의지하는 게 아니라, 소리까지 포함해서 아예 다른 차원의 인식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거군요?
그리고 그걸 처리하는 AI의 알고리즘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일린 모스크 CEO가 계약서에 사인한 거고요.”
“아니, 지금 말한 AI 알고리즘까지가 내가 말한 ‘차원’이 다른 기술이고, 그걸 다루는 기술은 다른 이야기.”
“엑?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요?”
“말했잖아. 애당초 원래 우리가 개발하던 기술은 보안 영역에서 완벽하게 인간을 인식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이고, 우리가 가진 ‘주행’기술은 구란트리스모 개발 과정에서 완벽한 AI 드라이버를 구현하기 위해 만든 물건이라고.”
“그건 어떻게 다른 건데요?”
“좀 고전 애니메이션 이야기가 되겠지만, 혹시 ‘제로의 영역’이란 말을 알아?”
“어, 그거 사이버 포뮬러···.”
“맞아. 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마치 예지 수준의 능력처럼 보이는 ‘제로의 영역’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레이싱을 펼치지.
거기서 먼저 제로의 영역에 들어갔던 선배 드라이버가 주인공에게 이런 내용의 말을 해.
레이서가 레이스 도중 각종 지각능력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어 매우 예민해져 있는 상태가 되면서, 차의 컨디션, 노면, 풍향의 상태는 물론, 상대의 심리까지 인식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그것으로 예측 능력 수준의 주행이 가능해지는 거라고.
우리가 주행용 AI를 만들려고 했을 때, 이미 스파이디 센서는 그 정도 수준의 예민함을 갖추고 있었어.
단지 그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어떻게 주행을 할지만 개발하면 되는 거였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
서연이 눈을 반짝이며 말하자, 상혁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현재 우리가 만든 AI 드라이버는 상대 차량의 무게와 타이어 상태에 따른 노면과의 접지력, 차에서 나오는 변속기 소리까지 감지해서 거의 제로의 영역에 도달한 수준의 주행 능력을 보여주지.
우리가 개발을 중간에 접은 것도 그 이유에서고,”
“엥? 완벽한데 왜 접어요?”
“인간이 절대 이길 수 없는 반칙스런 AI와 게임하고 싶어하는 플레이어는 없을테니까.”
“아···. 하지만 그 점이, 테슬러 CEO에게는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겠군요.”
“앞에서 달리던 차량 두 대가 충돌하면서 한 대가 스핀 하며 달려오는걸, 그 두 대가 충돌하기도 전에 최적 각도를 계산해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더니 바로 사인하자고 하더라고.”
상혁이 말했던 오로지 PTW만 ‘레벨 5’주행이 가능하다고 말하게 만든 자신감.
그것은 인간의 오감 한계를 초월한 초고성능 센서와 그것을 다루는 신들린 AI 드라이버의 조합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우리는 스페이드 X의 지분 절반을 확보하게 되었어. 민준이 네가 요청한 대로.”
“내가 요청한 건 정확히 말하면 스타링크 시스템의 지분 절반이었는데, 굳이 무리해서 회사 전체의 지분을 확보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을까?”
“그건 상대가 믿을만한 인간일 때 통용되는 이야기고.
일린 모스크라는 인간은 그 정도로 신뢰가 가는 인간은 아니야.
그래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한 거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가진 지분에 손을 대지 못하게 만들 안전장치가.
적어도 상대가 어떤 수를 부리던 이제 우리를 배제하고 스타링크 시스템을 멋대로 쓰지는 못할 거야. 지분이 50:50이니까.”
“그럼 이제 남은 문제는 하나로군.”
“그렇지.”
민준과 상혁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동시에 말했다.
“DARPA.”
“DARPA.”
테슬러와의 협상은 원만하게 마무리되었지만, 아직 존 카믹이 PRD를 공개한 이후 현재 PTW에 제안된 수많은 협력제의 중 가장 우선도가 높은 두 개의 제안 중의 한 가지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찌 보면 PTW 입장에서 독이 될 수도, 아니면 현재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적 장벽을 넘을 기회가 될 수도 있는 협력 요청이었다.
비록 상대가 무기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미 정부 소속의 기술 개발 기관이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그들은 그 ‘인터넷’을 만든 인간들이었으니까.
현재 인류가 누리고 있는 IT 관련 기술의 상당수가, 이 DARPA에서 나온 기술이기도 했고.
하지만 민준은 걱정하지 않았다.
적어도 일린 모스크 정도 되는 인물에게서 그가 끔찍하게 아끼는 비상장 회사의 주식 절반을 뜯어낼 수 있는 이상혁의 능력이라면, 상대가 미 국방성 소속 정부 기관이라고 해도 절대 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다만 PTW의 기술이 사람을 죽이는 병기가 된다는 ‘이미지’가 가진 딜레마는, 앞으로 PTW가 넘어야 할 숙제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알아서 하겠지.’
민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DARPA와의 계약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스페이드 X 개발팀에서 넘어올 위성 인터넷 기술을 스컹크 웍스와 함께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으니까.
그건 엔지니어인 자신의 몫이었다.
그리고 미 정부 기관과의 거래는, 자신의 오랜 친구인 상혁의 몫이었고.
민준은 상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뭐, DARPA 건은 네가 알아서 잘 처리해.
어차피 우리 회사에 손해가 가능 방향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잖아?”
“어? 넌 빠지게?”
“난 이제 스타링크 위성에 들어갈 통신 보드 개발에 들어가야지. 스컹크 웍스 멤버들이랑 함께.”
“오호라, 필요한 건 다 얻었다 이거구나. 이런 매정한 녀석 같으니.”
“그 나쁜 놈이 회사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서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의 가장이에요.
이 인간아. 어차피 너는 그런 거 좋아하잖아. 협상하고, 주도권 잡고. 난 단지 우리에게 넘어올 기술이 좀 더 좋을 뿐이야.
그리고 상대가 DARPA라면, 우리가 얻어낼 만한 기술이 꽤 있겠지?”
“이제 테슬러에 이어서 미 정부기관까지 뜯어내라는거야?”
“그쪽에서 우리에게 원하는 게 있다는데, 공짜로 줄 수는 없잖아.
이번엔 뭘 받아올지 따로 지정하지는 않을게. 서프라이즈라고 생각할 테니까, 제일 쓸만하다고 생각하는 거로 가져다줘.
난 연구동에서 두근대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을 테니까.”
민준이 그렇게 상혁을 놀리며 부실을 나서자, 상혁은 고개를 저으며 현주에게 말했다.
“뭐, 다스베이더가 저렇게 말하는데, 제국은 명에 따라야죠.”
“넌 요다잖아. 다스베이더의 적 아니야?”
“이 우주에서는 아니에요. 그러니 슬슬 DARPA와의 협상을 진행하도록 하죠.”
“연락해둘게.”
“저는 그럼 구할 수 있는 정보들을 종합해서 DARPA에서 우리가 뜯어낼 만한 게 뭐가 있나 알아보도록 하죠.”
“인터넷으로?”
“아뇨, 물론 인터넷으로도 조사는 하겠지만, 진짜 중요한 기술은 그 정도로 허술하게 보관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인맥을 동원해야죠.”
“인맥?”
“저 미 국방성에 인맥 많아요. EOD 개발 때 하도 이 부서 저 부서랑 협력해서.
게임 회사 쇼케이스에 실제 쓰이는 전투기를 무더기로 빌려 쓰는 건 절대 보통 인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요.”
“···난 요즘 들어 점점 우리 회사가 게임회사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도 그래요. 하지만 한 가지만 잊지 않는다면, 저희는 스스로를 게임회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뭔데?”
현주의 말에 상혁이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저희가 하는 이 모든 게, 결과적으로는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한 일이 되어야 한다는 거요.”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얼굴은, 고등학생 시절에 현주에게 ‘게이머를 위한 게임을 만들고 싶다’라고 말하던 그때의 상혁과 전혀 변하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