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49화 (350/485)

349. 4차 NE 컨벤션

“이렇게 스튜디오 밖에서 만나니 색다르군. 우리집은 처음이지?”

허먼이 프로듀서인 제이콥 프라이를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

그러자 프라이는 그런 허먼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손에 든 선물을 내밀었다.

“그래도 제가 진행하는 TV쇼의 메인 호스트 집에 오는데 빈손으로 오기는 뭐해서 적당히 하나 집어왔습니다.”

“버번?”

“메이커스 마크(Maker's Mark). 장인의 버번이죠.”

“마찬가지로 게임 장인인 PTW의 신작 게임 오픈 행사를 즐기는데 이보다 좋은 선물은 없겠군.

들어오게. PRD는 전부 세팅해 놨고 아내는 요리를 준비 중이야.”

“냄새가 좋은데요?”

“PTW 홈페이지에서 이번 행사를 위해 공개된 요리법대로 조리 중이지.”

“레시피가 공개됐나요?”

“1차 NE 컨벤션때는 당시 공개했던 게임인 TAW에 맞게 이세계 판타지 풍의 요리가 부스에서 제공되었지.

2차 컨벤션에서는 미군 병영 스타일의 부스에서 내가 지금껏 먹어본 토스트 중에 가장 맛있는 치즈 토스트가 제공되었고.

PTW는 행사 때마다 요리 연구가들과 함께 행사 컨셉에 맞는 요리를 제공하기로 유명한데, 이번 행사는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만큼 인터넷에 레시피를 공개하고 집에서 이번 게임에 맞는 요리를 직접 해서 먹을 수 있도록 밀키트도 판매하고 있지.”

“행사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쓰는 회사군요.”

“그래도 온라인 행사가 돈은 덜 들걸? 오프라인 행사장은 단 3일짜리 행사인데도 거의 웬만한 테마파크 수준의 퀄리티로 준비하거든.

그래서 난 엄청 기대 중이라고. 그 PTW가 오프라인 행사를 준비하는데 투입되는 모든 노력을 온라인 행사로 준비했다면, 대체 어떤 행사가 될지 말이야.

분명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펼쳐질 테지.”

“실망스러울 가능성은 조금도 생각 안 하시나요?”

“적어도 PTW에 있어서라면 그런 걱정은 기우야. PTW는 돈이 아니라 게임에 미친 회사니까.”

그렇게 허먼의 말을 들으며 거실로 이동한 프라이의 눈에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한 거대한 장비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TV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었던, 가상현실의 물체를 현실의 인간이 만질 수 있게 하는 장비.

PRD(Physical realization device).

그것은 이미지로 보았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크기로 압도적인 위압감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걸 거실에 놓으려면 거실 공간은 아예 포기해야겠네요. 허먼 씨 집의 거실이 좁은 편이 아닌데도 말이죠.”

“그건 맞아. 그래서 우리집은 거실에 있던 TV를 부부침실로 옮겨놨지.”

“아내분이 불평 안 하시나요?”

“사실 딥 다이버가 있는 집이라면 어디든 그렇겠지만, 내가 쪽방에 있든 부엌에 있든 딥 다이버를 쓰고 있으면 거기가 내 집 거실이고 내 집 소파야.

딱히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니까 거실이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고.”

“···그렇게 우기셨다는 말이죠?”

“맞아. 아직 납득은 못 시켰고. 그녀도 딥 다이버로 하는 게임을 좋아하니까 망정이지, 만약에 PRD가 실망스러운 경험을 보여준다면 난 이 물건을 해체해서 중고로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말하며, 허먼은 거실 구석에 있는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는 선물 받은 버번을 만지작거리다가 옆의 테이블에 놓았다.

“아니야. 오늘은 알코올 기운 없이 집중해서 행사를 즐기고 싶군. 이건 뒤풀이 때 따자고.”

그러자 프라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자, 그럼 제가 오늘 쓸 PRD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시죠.”

허먼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프라이의 목소리에 숨겨진 다급함속에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콘솔 전문 TV쇼의 프로듀서다운 그의 팸심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렇게 팬심으로 뭉친 두 사람은, 차고로 이동해 PRS를 시험 착용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직 행사가 시작하는 저녁 9시까지는 여유가 있었고, 프라이는 PRD를 보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거, 어떻게 연결하는 겁니까?”

프라이가 묻자 허먼이 PRD에 달린 케이블을 당기며 이야기했다.

그 케이블에는 화살처럼 보이는 4개의 후크가 달려 있었다.

“간단해. PRD에 달려 있는 이 케이블들을 잡아당겨서 PRS에 있는 연결 파츠에 연결하면 끝이야.

연결되는 파츠는 조금 전부 손이 닿는 부위에 위치하니까, PRS를 입은 상태에서 간단하게 연결하는 것으로 끝이지.”

“그럼 먼저 PRS를 입어야겠군요.”

“자네건 가져왔나?”

“백에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프라이는 옷을 벗었다.

그러자 마치 잠수부가 입는 것처럼 생긴 전신 슈트가 드러났다.

“오, 준비 제대로 했는데?”

“될 수 있는 대로 몸에 달라붙는 옷이 좋다고 해서요. 이건 언더아머에서 발매한 PRS전용 슈트에요.

섬유 안에 열 전도성이 강한 특수 섬유가 들어있어서 PRS에 달린 히터 유닛과 쿨러 유닛의 온도 변화를 다이렉트로 몸에 전달해준다고 하더군요.”

“나도 알아. 사실은···.”

허먼이 옷을 벗자, 약간 통통한 편인 그의 몸에 딱 맞는 전신 슈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도 있거든.”

“가격이 좀 셌죠?”

“그래도 원가 대비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니야.

애당초 마진을 너무 붙였으면 PTW에서 언더아머에 라이선스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을 테니까.

아마 같은 소재의 다른 옷을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만들었으면 가격이 10배는 뛰었겠지.”

“그건 그래요.”

프라이는 가방에서 금속 케이스 같이 생긴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LED로 빛나고 있는 버튼을 누르자, 케이스의 형태가 허물어지며 선이 달린 여러 개의 금속 조각의 조합으로 변했다.

“이거 누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무슨 SF 영화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에요. 입을 때는 더 그렇고.”

착용 방법은 간단했다.

마치 군데군데가 비어있는 금속 갑옷처럼 보이는 PRS를, 복장의 지정된 위치에 붙인다.

그럼 자석에 이해 금속 파츠가 달라붙으며 헐렁헐렁한 선들이 달린 SF 병사의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이게 제일 멋지죠.”

마지막으로 손목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작은 기계음과 함께 각 파츠에 내장된 모터들이 여분의 선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전신에 PRS의 파츠들이 밀착되는 것이 느껴지며 프라이는 순식간에 지금 당장에라도 SF 영화의 세트장으로 들어가도 될 것 같은 멋진 모습이 되었다.

“자, 이제 PRD와 연결만 하면 되는 건가요?”

프라이가 그렇게 말하며 PRD의 선들을 자신의 슈트에 연결하자, 허먼이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래. 조금 있으면 아내가 자네 몫의 요리를 차고로 가져다줄 거야.

난 거실에서 플레이할 테니, 자네는 여기서 PRD로 컨벤션에 참여하라고.”

“함께 놀려고 방문한 건데 따로 노는 기분이네요.”

“괜찮아, 가상 컨벤션 안에서는 함께 돌아다니게 될 테니. 그게 VR의 묘미 아니겠어?

몸이 얼마나 떨어져 있든, 가상 공간에서는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거.”

“반대로 바로 옆에 있는데도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아마도 행사 자체는 다중 접속이 가능한 VR 공간에서 이루어지게 될 거야.”

“왜 그렇게 확신하시나요?”

“그런 용도가 아니면 굳이 새로 통신망까지 깔아가면서 대역폭을 확보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허먼의 말대로, PTW는 대용량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PRD센터를 중계 지점으로 하여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중이었다.

미국 최대의 통신사, 버라이즌과 함께.

PTW가 지금까지 준비한 밑 작업의 규모가 큰 만큼, 행사도 어마어마한 규모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허먼은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됐군.”

허먼이 휴대폰을 확인하며 말하자, 프라이가 물었다.

“아직 9시 되려면 시간 좀 남지 않았어요?”

“행사 오픈 자체는 9시 정각에 시작이지만, PRD 오픈은 30분 전부터 시작이야.

행사가 시작되고 나서 튜토리얼을 시키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미리 준비하라는 거겠지.

난 거실로 가서 PRD를 사용할 테니, 행사장에서 보자고.”

허먼의 말에 프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행사장에서 뵙죠.”

“있다 보자고.”

거실로 돌아온 허먼은 프라이가 한 것처럼 PRS를 꺼내 몸에 걸치고는 신체 사이즈에 맞게 조정했다.

그러자 몸에 입고 있는 슈트에 달린 금속 파츠와 PRS의 히팅 유닛이 결합하며 차가운 감각이 전신에 느껴졌다.

“PRS 착용 끝.”

슈트 위에 PRS를 착용한 허먼은 딥 다이버를 뒤집어쓰고 PRD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케이블을 잡아당겨 PRS와 연결한 뒤, 딥 다이버의 전원을 켰다.

그러자 지금까지 거의 매일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로, 처음 듣는 대화가 귀에 들려왔다.

[장치와 연결 가능한 PRS 및 PRD를 감지했습니다.

자동 세팅 과정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조금 전까지는 연결해도 아무것도 뜨지 않았는데, PRD의 기능 봉인이 해제된 건가?’

아직 시야에 보이는 모습은 자신이 사는 집 안의 거실 속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허먼은 심장이 순식간에 격하게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듣지 못했던 메시지가 딥 다이버에서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곧 본격적인 컨벤션이 시작될 거란 것을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에.

허먼은 힘찬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존재에게 외쳤다.

“그렇게 해.”

그러자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 앞에 반투명한 사람 형태의 UI가 등장하며 화려한 연출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자동 세팅 과정 시작. 물리 현실화 기능 테스트가 시작됩니다.

테스트가 진행되는 동안 신체 각 부위에 압력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상반신 물리 전달 시스템 동작 확인···. 완료.

왼팔 부위 물리 전달 시스템 동작 확인···. 완료.

오른팔 부위 물리 전달 시스템 동작 확인···. 완료.]

눈 앞에 보이는 사람 형태의 UI는 PRS를 입은 허먼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UI는, 허먼의 신체 부위를 하나하나씩 붉은 색으로 체크하며 장비의 동작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물리력 전달 시스템 동작 점검 완료.

현재 상태···. 100%.

감각 전달 시스템의 동작 점검에 들어갑니다.

신체 각 부위에서 느껴지는 온도 및 압력에 집중해주십시오.

본 테스트는 유저가 전달받는 감각의 한계 설정을 겸합니다.

PRS의 온도 조절 유닛은 기본적으로 신체에 영구한 손상을 입히지 않는 강도로 성능이 제한되어 있지만, 사용자가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민감도 조절이 가능합니다.

먼저 가슴 부위의 히팅 유닛 점검 및 세팅을 시작합니다.

가슴 부위의 온도에 집중 부탁드립니다.]

“앗 뜨거!”

순간 허먼은 가슴에서 화끈한 열기가 전달되는 것을 느꼈다.

피부가 데일 정도의 강도는 아니었지만, 뜨거움으로 인한 약간의 통증을 느끼기에는 충분할 정도의 온도.

[현재 순간 한계 온도는 50도입니다.

피부는 40도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도 장시간 노출 시 저온 화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PRS의 히팅 유닛은 높은 온도를 오래 유지하지 않습니다.

가상 공간에서 캐릭터가 화상 데미지를 입기에 충분한 열기에 노출되었을 때, 현재 온도를 기준으로 열 감각이 전달된 뒤 빠르게 안전 온도로 돌아갑니다.

설정된 온도를 낮추시겠습니까?]

“아니, 이대로 해줘.”

허먼은 화상의 위험이 없다면, 가급적이면 높은 수준으로 세팅을 잡고 진행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불에 닿았을 때 실제로 화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조금의 통증이 느껴질 정도는 되어야 리얼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손바닥과는 다르게 열에 조금 더 민감한 부위들도 있었기에, 허먼은 다른 신체 부위의 세팅을 세밀하게 조정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설정값을 찾아 나갔다.

현실감은 그대로 느끼면서, 신체에 부담은 느껴지지 않을 수준으로.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모든 세팅이 끝나자, 허먼이 기다리고 있던 ‘그 대사’가 허먼의 귓가에 들려왔다.

[PRD의 세팅이 완료되었습니다.

VR 공간에서 진행되는 4차 NE 컨벤션 오픈까지는 15분 42초가 남아있습니다.

그 전에 PRD의 원활한 사용을 위한 튜토리얼을 진행하시겠습니까?]

“좋아.”

[튜토리얼 진입 명령을 확인했습니다.

5초 후 튜토리얼 존으로 다이브합니다.

5.4.3.2.1

VR 아바타와 사용자 신체의 동기화 완료.

튜토리얼 존 진입을 환영합니다.]

시야에 보이던 거실의 모습이 점점 하얗게 물드는 것을 보며, 허먼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이게 튜토리얼 존이라고?”

다시 눈을 뜬 허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딥 다이버와 PRD가 자신을 어디로 날려 보낸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물론 허먼은 자신이 현재 있는 장소가 자신의 집 거실에 있는 PRD 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딥 다이버를 쓰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지나가던 아내가 보면 웃음을 터트릴 것이란 사실도.

그러나 그 모든 ‘알고 있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허먼은 시골에서 도시로 처음 상경한 사람처럼 미친 듯이 주변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튜토리얼 존’이란 이름과는 전혀 맞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허먼의 눈 앞에 펼쳐진 풍경.

그것은 튜토리얼 존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인상보다는 일종의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반쯤 부서진 채로 위태하게 매달려 깜빡이는 형광등.

무너진 벽 저편에 보이는 비 내리는 외부의 모습.

사방을 메운 자욱한 연기와 곳곳에서 불타고 있는 뜨거운 불꽃들.

그것은 지진 같은 재난으로 인해 무너진 건물 내부 공간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진짜로 이게 튜토리얼이라고?”

허먼은 당황하며 다시 묻자,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말을 확인해 주었다.

[맞습니다. 여기가 PRD의 튜토리얼 존입니다.]

“무너져가는 건물에서 뭘 하라고?”

[탈출하시면 됩니다.]

“어떻게?”

[그건 직접 알아내 보시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목소리는 더 이상 허먼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야! 임마! 컴퓨터! 딥 다이버! 튜토리얼! 도우미!”

온갖 명칭을 부르다 나중엔 딥 다이버 공통의 시스템 콜 제스쳐인 ‘손바닥 내리기’까지 쓴 허먼은 온갖 시도에도 시스템이 응답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주어진 미션에 따라 이 공간에서 탈출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열심히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튜토리얼의 비밀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던 허먼은 이 황당한 공간을 왜 만든 것인지를 깨닫고 웃음을 터트렸다.

“풉···. 푸하하! 이런 미친 인간들 같으니!”

일반적인 게임에서, 튜토리얼은 조작법과 게임의 룰을 가르치기 위해 존재한다.

조이스틱을 앞으로 밀면 캐릭터가 이동하고, 이동 중에 R2버튼을 누르면 캐릭터가 달려간다던가, ㅁ버튼을 누르면 칼을 휘두르고 X버튼을 누르면 점프를 한다는 식으로.

그러나 기본적으로 패드는커녕 VR 게임기에서 흔히 쓰이는 핸드 컨트롤러조차 없는 PRD에서는 ‘조작법’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단순히 현실에서 움직이는 대로 몸을 움직여 뭔가를 해 내야 했을 뿐.

이 특이한 튜토리얼 공간은 그것을 위해 준비된 공간이었다.

“앗 뜨거!”

허먼은 문을 막고 있는 쇠막대를 치우려다 손바닥에 화끈한 열기를 느끼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구석에 버려진 양동이를 줍더니 천장의 구멍에서 줄줄 흐르는 물줄기를 향해 다가갔다.

양동이에 물을 받아서, 뜨거운 쇠막대를 식히기 위해.

이 공간에 준비된 모든 퍼즐이 그런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밀고, 당기고, 들어 올리고, 때로는 바닥을 기고 때로는 점프를 하면서.

VR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체감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과정에서 PRD가 얼마나 소름 끼치게 현실적으로 감각을 전달하는지 플레이어가 느낄 수 있도록.

그것은 힌트 하나 없는 공간 속에 플레이어를 밀어 넣은 튜토리얼치고는 너무나도 이해하기 쉽게 구현된 퍼즐이었다.

그 퍼즐들을 풀면서, 허먼은 자꾸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이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PRD의 성능 자체가, 이후에 이어질 게임 플레이를 기대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짜로 가상현실 게임을 하는 느낌이 어떤 건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튜토리얼이네.’

허먼은 튜토리얼 존의 끝에 준비되어있는 거대한 문 앞에 서서, 조용히 문 위를 바라보았다.

거기엔 노골적으로 행사 시작 시각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하는 디지털 시계가 달려 있었다.

마치 축제가 시작되는 시간을 알리는 카운트 다운처럼.

시계는 컨벤션 시작까지 남은 시간이 10초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7···. 6···. 5···.’

앞으로 걸어간 허먼은 조용히 철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는 카운트가 0이 되는 순간, 힘차게 손잡이를 꺾으며 철문을 밀었다.

건너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4차 NE 컨벤션의 VR 이벤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그리고 그 순간,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문틈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외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허먼과 마찬가지로, 허먼이 방금 진행한 것과 동일한 튜토리얼을 통과하고 동시에 행사장으로 진입한 사람들의 외침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허먼은 문을 잡은 팔에 힘을 주어 더 힘차게 문을 열었다.

왜 문을 열자마자 밖의 풍경을 본 사람들이 일제히 환성을 터트린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그리고 허먼은, 밖의 풍경을 보자마자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둡고 우중충한 배경의 튜토리얼 존의 건너편에서 허먼을 기다리고 있던 공간.

그곳엔 허먼이 지금까지 본 어떤 테마파크보다도 더 화려하고 웅장한 규모의 가상 행사장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방문을 열었더니 눈앞에 디즈니 랜드가 펼쳐진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여기가···. 4차 NE 컨벤션 행사장······.”

여전히 문손잡이를 잡은 채로, 홀린 듯이 사방을 둘러보던 허먼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X발, X나게 넓네. 아무것도 안하고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도 종일 걸리겠는데?”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허먼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게 실제 테마파크였다면 이 안에 돌아다니는 엄청난 인파를 보며 놀이기구 하나 타려고 몇 시간 씩 줄 설 걱정부터 해야 했겠지만, 이건 VR 컨벤션이니까.

그 말은 놀이공원을 즐기는데 가장 끔찍한 요소인 ‘줄서기’와 ‘걸어 다니기’라는 두 가지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말 그대로, ‘재미만 즐기면 끝’인, 꿈의 놀이공원.

PTW가 4차 NE 컨벤션을 위해 준비한 것은, 무려 롤러코스터까지 딸린 완벽한 테마파크 형태의 VR 행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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