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 게임체인저
[이번 컨벤션은 진짜 전설이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유저들이 바로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상혁의 예상대로, PTW의 커뮤니티 페이지에는 이벤트가 끝나자마자 올라오기 시작한 유저들의 후기가 초당 1페이지 수준으로 무지막지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기에 담긴 내용의 대부분은, 자신이 피날레 이벤트에서 업벤져스 멤버인 누군가와 함께 싸웠다는 내용이었다.
[이글 아이가 화살로 나 구해줌.
죽기 직전이었는데 한방에 적 죽이고 뛰어와서 나 붙잡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줬음.
진짜 최고였다.
이게 가상현실이라는 걸 알아도, 내 옆구리를 휘감는 감각이 그대로 느껴지니까 진짜 현실처럼 느껴지더라.]
[난 다크 위도우와 함께 싸웠음.
진짜 무슨 체조선수처럼 뛰어다니는데 난 PRD의 동작 보조를 받아도 그렇게는 못 뛰어다닐 듯.]
그러나 유저들은, 1시간이라는 긴 전투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업벤져스 멤버들과 얽힌 유저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잠깐만, 무슨 분신술을 쓰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업벤져스 멤버들과 개인적으로 얽혔다는 후기가 많음??
이거 다 뻥 아니야?]
↳ 위대한 캡틴의 이름을 걸고 내 이야기는 진짜다.
↳ 아니면 대역인가?
↳ 그 모든 사람이 함께 싸웠는데, 그게 대역을 쓴 거면 아이론 맨이 수천 명은 필요할 텐데?
↳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고. PTW에서 발표한 피날레 시간의 전 세계 동시접속자가 3500만이야.
하지만 PTW의 기술력과 PRD의 성능으로도 그 모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건 불가능했지.
그래서 유저 각자의 시야엔 장비별로 렌더링 가능한 한계 수치만큼의 인원이 보이게 되었고.
실제 유저들도 여러 채널에 걸쳐서 분산되어 이벤트에 참석했을거라고.
그런데 그 모든 유저가 서로 자기가 업벤져스 멤버들의 곁에서 싸웠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한 유저의 지적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한 게시판은 유저들이 각자의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하면서 격하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민준이 만든 트릭을 알아차리지는 못했기에, 게시판에서의 ‘대역’논쟁은 한 유저의 다음과 같은 말로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아, X발. 그게 뭐가 중요해. 어쨌든 다들 자기가 업벤져스 멤버들 곁에서 싸웠다고 믿고 있잖아.
그리고 업벤져스 배우들도 실제로 팬들과 함께 싸울 수 있어서 즐거웠다는 후기를 올리고 있고.
그럼 그걸로 된 거야.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자고.
PTW에서 뭔가 마법이라도 부렸나 보지.]
‘PTW에서 마법이라도 썼나 보다.’
PTW의 팬들에게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고 했었나요? 그게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이벤트였습니다.”
“그렇죠. 행사에 직접 참여한 3500만에 달하는 딥 다이버 유저들이든, 아니면 인터넷이나 TV생방송을 통해 이벤트를 지켜본 유저들이든, 그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매번 전설을 갱신하며 ‘앞으로 이 이상의 게임 이벤트는 존재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게 했던 PTW가, 이번에도 그 생각을 깨부수며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전설을 만들어냈다는 것을요.”
4차 NE 컨벤션이 전해준 컬쳐쇼크는 2018년을 통틀어 가장 뜨거운 핫 이슈였기에, 전 세계의 수많은 방송사에서는 4차 NE 컨벤션을 주제로 한 수없이 많은 특별 방송을 편성하여 축제의 열기를 이어나갔다.
3일간의 이벤트로도 만족하지 못한, 이벤트 참여의 후폭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수많은 유저들이 끊임없이 관련 이슈를 찾아 헤메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느낀 감동을 타인과 공유하길 바라고 있었고, 누군가가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IT 전문가 풀어내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분석이든, 아니면 유명 스트리머의 입에서 나오는 화려한 이벤트 후기든 간에.
4차 NE 컨벤션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게시물의 조회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관련 영상의 ‘좋아요’ 수도 미친 듯이 오르는 중이었다.
덕분에 독점적으로 PRD의 생산 및 보급을 맡게 된 테슬러의 주가는 이벤트가 진행되기 직전보다 3배 가까이 치솟아 올랐다.
이미 PTW와의 기술 제휴 발표로 인해, 이전의 주가 역시 엄청나게 높아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1조에 자신들이 구축하려던 메타버스의 핵심인력인 존 카믹을 PTW에 넘긴 페이트 북의 주가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직 페이트 북의 매출 비중에서 옵큘러스 리프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높지 않았지만, 회사의 미래 먹거리로 평가받는 VR분야에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경쟁사가 있다는 것에 투자자들이 불안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이번에 발표된 PRD의 실체는 거의 충격 그 자체에 가까웠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PRD를 먼저 체험할 수 있었던 유저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평가했다.
‘미각과 후각을 제외하면 완벽한 가상현실.’
‘PRS로 전신에 온도라는 감각을 지원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단순히 온도의 변화만으로 이토록 다채로운 연출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기능상의 우월함을 넘어서, 기기가 가진 성능을 100% 활용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컨벤션이었다.’
‘가상 세계 안의 모든 물체에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것.
그것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뭐든지 만지고 입에 넣어보려고 하는 것처럼, 게이머가 자신이 있는 세계 안의 모든 물체의 촉감을 확인하고 싶게 만든다.’
‘게임 내용 없이 그냥 안에 있는 사물을 만지며 노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단 3일간 진행된 이벤트가 그토록 유저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PTW의 이번 4차 NE 컨벤션이, 게이머들에게 또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PRD로 구현된 세계 안에서라면, 그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으니까.
***
“진심이십니까?”
허먼이란 인물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핑계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병가’라는 명목으로 3일을 내리 쉬었던 허먼은, 예상대로 다시 출근하자마자 국장의 호출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허먼에게, 폭시 TV 국장 빌 샤인은 허먼의 예상과는 다르게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덤덤한 목소리로 그에게 오늘 진행되는 5개의 방송에 모두 출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PTW 게임을 전문으로 다루는 TV 쇼의 앵커가 PTW의 가장 큰 행사 기간에 방송을 통으로 쉬었으니 그 정도는 해야지.”
“아니, 병가를 핑계로 대긴 했지만, 말하자면 그것도 일종의 취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3일간 하루 4시간씩 자면서 행사를 완벽하게 즐긴 감상을, 제 방송에서 처음으로 풀고 싶단 말입니다.
남의 방송에 가서 행사가 어땠는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요.”
“딱히 가서 게임 이벤트 이야기를 하라는 게 아니야.
전문가 패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방송국에서 진행되는 여러 TV 쇼에 게스트로 참여해달라는 거지.
만약 거기서 자네가 꼭 자네 방송에서 풀고 싶은 부분을 물어본다면, 답변을 회피해도 좋아.
‘그것에 대해서는 이번 주말에 있을 제 방송에서 이야기할 예정입니다.’라고 해도 좋다고.
결과적으로, 5개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네 TV 쇼의 시청자를 추가로 확보할 기회가 되는 거지.
단, 컨벤션 참여자로서의 자네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닌, PTW 전문가로서의 자네에게 던지는 질문은 충실하게 답변해주도록 하고.”
“그런 조건이면 좋습니다.
안 그래도 소위 말하는 ‘IT 전문가’들이, PTW와 PRD에 대해 자기 멋대로 떠드는 게 마음에 안 들기도 했으니까요.
어제 CNN뉴스 보셨습니까?
PRD를 무려 ‘그냥 게임기일 뿐이다.’라고 이야기한 패널이 있더군요.”
“방송국 입장에서는 다양한 관점을 시청자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겠지.
그리고 실제로 PRD가 단순한 게임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건 PS나 X-BOX같은 기존 콘솔과는 전혀 다른 기기니까.
현재 시점에서, PRD용 게임을 개발할 기술력을 가진 회사는 전 세계에 PTW 단 하나뿐이지 않나?
그러니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라는 설레발은 자제하는 게 좋지.
그 어떤 게임 회사라도, 서드 파티 없이 콘솔 게임기의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을 테니까.”
“PTW는 다를 수도 있죠. 게다가 어중간한 서드파티 게임들보다는 확실하게 퀄리티가 보장되는 퍼스트 파티 게임들을 메인으로 내세우는 회사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마도 PTW는 PRD 게임 개발에 대한 라이선스를 전 세계 게임사에 오픈하게 될 겁니다.”
“그래?”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그 편이 게이머들에게 더 긍정적이고 재미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애당초 3차 NE 컨벤션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했던 업체들이 발매한 게임에서 나온 수익은 전부 개발사들이 가져갔습니다.
PTW는 한 푼도 받지 못했죠.
오히려 기술지원이나 제작 지원에 쓰인 인건비에 5개 도시에서 벌어진 행사비용까지, PTW는 3차 컨벤션을 위해 엄청난 적자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남의 게임을 위해서요.”
“하지만 그건 같은 날 발매된 딥 다이버의 판매량 상승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게 아닌가?
라인업의 확보를 통해서 유저 층을 늘리려는 거였지.”
“문제는 게이밍 용 딥 다이버가 팔릴 때조차 PTW엔 1센트도 남지 않는다는 겁니다.
애당초 원가 이하에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기기이기도 하고, 그 손해를 감당해주는 조건으로 MS 쪽에 라이선스를 허용하기도 했으니까요.
결국 PTW는 게임 팔아서 번 돈을 죄다 그런데 쓰고 있죠.
아마 지금은, 미 국방부에 납품하기로 한 군용 PRD에서 나오는 수익도 전부 게이머들에게 쓰고 있을겁니다.”
“그래. 그런 이야기를 하라고. 시청자들이 듣고 싶은 전문가로서의 견해는 바로 그런 것일 테니까.”
“하지만 게임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겁니다.
그건 제 방송에서 풀어야 할 썰이니까요.”
국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허먼은 가볍게 인사한 뒤 방을 나섰다.
그리고는 방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프라이와 만났다.
초조한 표정으로 허먼을 기다리고 있던 프라이는, 허먼이 나오자마자 그에게 달려들어 질문을 퍼부었다.
“어떻게 됐어요? 잘렸나요? 역시 잘리셨죠? 아니면 감봉? 프로그램 요일이 평일 오전으로 밀렸나요?”
“워워. 진정해. 일단 잘리지는 않았으니까 안심하라고. 딱히 받은 패널티도 없고.”
“그래요? 국장님 성격에 짤 없이 평일 오전으로 방송시간이 옮겨지겠구나 했는데.”
“아니, 게임 뉴스를 다루는 TV쇼인데 누가 그걸 평일 오전에 봐.
그 시간에 방송하려면 차라리 방송 안하고 말지.
대신 오늘 종일 다른 방송에 게스트로 참여해야 해.”
“프로그램 쪽에 피해는 없고요?”
허먼이 고개를 끄덕이자 프라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미소 지으며 허먼을 향해 말했다.
“뭐, 그럼 문제는 없는 거네요.”
“난 방송 5개에 출연해야 한다니까?”
“저희 방송 홍보한다 생각하고 편하게 다녀오세요.
원래부터 정규 TV쇼가 있기 전까진 게스트 전문 방송인이셨잖아요?
잠깐 예전 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시죠.”
“젠장.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 같지만 첫 번째 방송이 바로 눈앞이라 참는다.”
허먼은 프라이에게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복도에 걸린 시계를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스튜디오로 이동해 다른 방송의 게스트로 참여했다.
“이쯤에서 추가 게스트를 부를 때가 됐군요.
전 세계에서 PTW 팬덤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람.
PTW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나이.
폴 허먼 씨를 박수로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
허먼이 첫 번째 게스트로 참여한 방송은 평일 낮에 진행되는 주식 관련 방송이었다.
평소라면 시청률이 낮은 게 정상인 방송이었지만, PTW 관련 특집을 방송한다고 광고가 나간 뒤 갑자기 시청률이 급등하면서 진행자는 매우 하이텐션이 된 상태였다.
PTW가 관련된 방송이라면 그것이 주식방송이라도 챙겨 볼만큼, PTW 팬덤의 크기와 열정이 엄청난 것이었기에.
허먼은 그 방송에서, 주식 전문가들과 함께 PTW 관련 주식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말씀은 하시지만, 어디까지나 가정하에서 이야기해보자는 겁니다.
만약 PTW가 유한회사가 아닌 주식회사가 되어서, 미국 증시에 상장을 시도한다면 주가 총액은 얼마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요.”
“글쎄요. 그거야말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가정 자체가 무의미하긴 하지만, 재미로 이야기해볼 만한 주제는 될 수 있겠군요.
객관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미 국방부에 300만대 규모의 PRD를 납품하기로 계약이 되어있는 회사.
그리고 기술 제휴를 발표한 것만으로 테슬러의 주가를 3배 이상 끌어올리고, 그 올라간 주가를 실제 제품 공개로 다시 3배를 더 끌어올린 회사.
창립 이래로 단 한 번도 적자를 보지 않은 회사.
아직도 매년 수천만 카피의 구작 판매 수익을 꾸준히 올리는 회사.
그리고 무엇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새 인터넷 기술을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PRD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VR 기술을 세상에 선보인 회사.
만일 그런 회사가 주식 시장에 상장될 수 있다면, 저는 그 회사의 주가 총액이 시총 1위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와플보다도 더 가치가 높다는 말씀입니까?”
“와플이 내놓은 스마트폰은 우선 삼정이라는 경쟁자가 존재하죠.
반면에 PTW는, 적어도 PRD라는 기기가 발매된 이상 경쟁사가 없다고 봐도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회사도 그 정도 성능의 VR기기를 그 정도 가격에 내놓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저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여가에 대해 가지는 인식이 현실 레져에서 VR 환경으로 옮겨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VR에서의 여가가 현실에서의 레져 수요를 대체할 것이라는 건가요?”
“물론 3일 내내 제대로 식사도 하지 않은 부분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PRD 플레이를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체력이 소모됩니다.
저는 오늘 아침 3일 만에 PRS를 벗고 출근을 위해 옷을 입으려는데, 옷의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체중계에 몸을 싣는 순간 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체중이 3일 만에 무려 7kg이나 빠졌으니까요.
게다가 지금은 온몸이 근육통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그만큼 운동 효과가 크다는 거겠죠.
현실에서의 운동은 생각보다 제약이 크게 걸립니다.
구기 종목 같은 경우는 우선 같이할 동료를 구하는 것부터 힘들기도 하고, 집 근처에 운동할만한 공간을 찾는 것도 일이죠.
하지만 PRD 안에서라면, 저는 우중충한 장마철이라도 집 안의 거실에서 말리부의 햇살을 받으며 파도타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굳이 디즈니랜드에 가지 않아도, 현실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멋진 롤러코스터를 즐길 수 있죠.
VR 세계 안에서라면, 저는 NBA 플레이어들과 동네 농구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원한다면 플레이오프 결승전에 선발 선수로 출전할 수도 있겠죠.
PTW의 이번 4차 NE 컨벤션은, 말 그대로 뭐든지 가능하게 만드는 문을 열어준 겁니다.
겨우 손바닥 안에서 인터넷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수준의 경험이 아니라요.”
“하지만 그것이 높은 영업이익을 보장하지는 않죠.”
“그건 앞으로 PTW가 어떤 형태로 수익 모델을 구축해나가느냐에 따라 달렸겠죠.
물론 그 안에서 즐기는 게임들에 대해서는 기존의 패키지 게임 판매 가격을 따라가겠지만, 대규모 접속을 전제로 한 가상현실 세계를 구축해 월정액 모델을 도입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법일 테니까요.”
“패키지 판매 대신 월 정액제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기존 유저들의 불만이 있지는 않을까요?”
“적어도 DLC 팔이나 랜덤박스보다는 훨씬 나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PTW의 팬들은, PTW가 지금보다 더 수익을 추구하기를 원하고 있어요.
심지어 상당수의 팬들은 본인이 하지도 않는 게임을 몇 개씩 구매하고 있죠.”
“하지도 않을 게임을 일부러 여러 개 구매한다는 말입니까?”
“PTW 팬들이 회사에 가지는 애정은, 아이돌 팬들이 아이돌에게 가지는 그것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벌은 수익을 몇 배로 키워서 돌려주죠.
PTW가 파는 게임이 그들의 주식이나 마찬가지고, 게이머들은 그들의 게임을 사서 그들에게 수익을 안겨줌으로써 PTW라는 회사에 투자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배당금으로, 더 멋진 게임이라는 결과물을 받는 거죠.”
이후에 이어진 다른 방송에서도, 허먼은 NE 컨벤션에서 겪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최대한 자제하면서, 자신이 아는 전문가로서의 지식을 마음껏 풀어놓았다.
그것은 게임 회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팬과 회사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PTW의 팬덤에 대한 허먼 씨의 의견은 잘 알겠습니다.
그 어떤 회사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처럼 들리는군요.
하지만 지금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PTW가 어떤 회사인지에 대한 것이나, PRD가 열어갈 VR 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것은 단 하나죠.
그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PTW 관련 방송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방송을 포기하면서까지 3일간 결근을 하게 만든 것일까 라는 것일 겁니다.
허먼 씨. 3일간 4차 NE 컨벤션에서 겪으셨던, 그 모든 멋진 경험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모든 경험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을 꼽으라면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인상 깊었던 기억이요?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아니라?”
“멋지게 등장한 토르의 손을 잡고 허먼 씨의 아바타가 바닥에서 일어나는 장면은 이미 전 세계 유저들이 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해 전부 지켜보았습니다.
만일 제가 허먼 씨라면, 아마도 그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행사의 부제가 바로 ‘게임 체인저’였지요?
이번 컨벤션에서 그 부제가 어째서 붙게 된 것인지 가장 강하게 느꼈던 순간이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허먼은 3번째로 출연한 방송에서, 진행자가 던진 질문 속에 감춰진 예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게임 체인저라는 단어가 떠올랐던 기억이라.’
허먼은 잠시 고민하다 그 정도는 답변해도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좋습니다. 말씀드리죠. 아마도 이번 컨벤션을 통해 모든 유저들이 한 번씩은 그 순간을 느꼈을 거로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튜토리얼에서 PRD의 성능을 처음으로 체험한 순간에, 또 누군가는 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범퍼카를 즐기면서 떠올리곤 했겠죠.
‘아, 앞으로의 게임 판은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순간을요.
저에게 그 순간은···.”
“어떤 순간이었죠?”
진행자의 질문을 들은 허먼이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그의 질문에 답했다.
“날아가는 아이론 맨의 뒷모습을 보면서, 수천 명의 유저들이 동시에 자신이 게임 캐릭터로 변신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 그 장면! 진짜 멋진 장면이었죠.
비록 저는 그 장소에서 직접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다른 방송의 영상을 보면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닌가 의심했었습니다.
PTW가 구현한 세계의 놀라운 그래픽뿐만 아니라,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한 공간에서 컨트롤 할 수 있게 만든 그들의 기술력 때문에요.
허먼 씨도 그런 이유에서 그 순간을 꼽으신건가요?”
그러자 허먼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단순히 그래픽이나 서버 기술력에 대한 감탄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절 진짜로 놀랍게 만든 건,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있는 게임 캐릭터의 장비와 능력을 또 다른 세계에서 호출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좀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시겠어요?”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저희의 육체는, 일종의 ‘통합 아바타’라고 할 수 있죠.
저희는 이 육체를 가지고, 직장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기도 하며, 주말에 농구 코트에서 농구를 하기도 합니다.
각각의 행동에 요구되는 능력은 모두 다르지만, 저희의 육체는 그 모든 능력을 처리할 수 있는 유동성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각각의 능력치는 서로 다른 여러 가지 행동에 대해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헬스를 열심히 해서 근력이 높아진 상태라면, 집에서 요리할 때 후라이팬이 가볍게 느껴지겠죠.”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게임 속 세계에서라면 아닙니다.”
허먼이 말했다.
“같은 엔진으로 만들어진 게임의 후속작에서조차, 전작에서 키워놓은 게임 캐릭터의 능력을 완벽하게 전달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후속작이라는 개념 자체가 시스템의 업데이트를 전제로 하고 있어서, 필연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들이나 버려야 하는 부분들이 생기게 되죠.
하물며 완전히 다른 세계의 세이브를 불러와 또 다른 게임에서 구축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입니다.
현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에 판타지 세계의 캐릭터를 불러오는 것처럼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PTW는 그것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해버렸습니다.
완전히 다른 월드에서 제가 키운 캐릭터의 능력치와 장비를, 전혀 다른 월드인 컨벤션 회장으로 소환했죠.
저는 기본적으로 리얼 엔진의 아바타가 VR 세계에서의 통합형 캐릭터를 추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 게임마다 새 캐릭터를 만들고 육성하는 게 아니라, VR 세계에서의 제 아바타를 하나 만들면 그 아바타를 가지고 리얼 엔진으로 만들어진 어떤 세계라도 탐험하게 할 수 있도록.
그건 심지어 리얼 엔진을 가지고 PTW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 만든 게임을 플레이하더라도 이어지는 특성일 겁니다.”
“지금 말씀하신 그 ‘특성’이, 게임 체인저라는 이번 행사의 부제를 가장 잘 상징하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가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인류 역사상 최초로 게이머들에겐 VR 환경에서 통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육체’가 생기는 거니까요.
현실의 저희는 현실에 존재하는 육체를 위해 엄청난 돈을 씁니다.
병원비를 지불하고, 다니지도 않는 헬스장을 끊기도 하고, 성형에 수만 달러를 쓰기도 하고, 수천 달러짜리 화장품을 바르거나 옷을 사기도 하죠.
하지만 현실에서의 육체는 ‘유전자’나 ‘재산’의 지배를 받기에, 외모적인 부분에서나 재산적인 부분에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세계에서라면 다르죠.
VR 환경에서, 저는 길을 가다 보면 고개가 휙 돌아가는 미녀가 될 수도 있고, 혹은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VR 세상에서의 ‘새 육체’는, 제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것이 가진 몰입감과 중독성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겁니다.
거기엔 전 세계의 유저들이 현실에서는 구멍난 속옷을 입고 있어도, 게임 속 아바타를 위해서라면 수백만 원짜리 코스튬을 지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죠.
그래서 전, PRD를 개발한 회사가 PTW라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건 왜죠?”
“전 세계엔 VR 코스튬을 위해 수천 달러를 지불할 유저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지만, 적어도 제가 아는 PTW는 복장 팔이 같은 치졸한 짓은 안 하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유저들에게 몇만 달러든 거뜬히 뜯어낼 힘이, 가장 돈에 관심 없는 회사에게 주어진 거죠.”
허먼이 미소지으며 던진 말.
그 속에는 PTW가 어떤 일이 있어도 게이머의 등을 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는 절대적인 믿음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