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96화 (397/485)

396. 누구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시대

시상식 당일.

이미 라이선스 연장이 약속된 3개의 작품이 확정된 상태였기에, 단순히 발표만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행사에 관심을 가지는 기자는 그리 많지 않았었다.

그러나 상혁은 그런 기자들에게 이번 발표회장에서 ‘중대 발표’를 하겠다고 약속하며 식어버린 기자들의 기대감을 잔뜩 끌어올려 놓았다.

한국의 게임 기자들뿐만이 아닌, 미국과 일본, 유럽의 많은 언론사를 이번 행사에 끌어오기 위해.

그런 상혁의 의도가 잘 통했는지, 3천 명이 넘는 인원이 들어올 수 있는 행사장에는 앉을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자 중 상당수가 머리에 쓰고 있는 딥 다이버는, 이미 생활 깊숙한 곳에 침투해 있는 PTW의 영향력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솔직히 요즘은 딥 다이버 없이는 국제 행사에 못가겠더라고요.”

PTW 팬들에게는 익숙한 게임 전문 기자인 리차드가 자신이 쓰고 있는 딥 다이버를 톡톡 두드리며 말하자, 딥 다이버가 그의 말을 근처의 한국인 기자들에게 실시간으로 번역하여 들려주었다.

그러자 한국인 기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어로 리차드에게 대답했다.

“그렇죠. 일단 바디 캠 역할도 할 수 있으니 취재 도중의 풀 영상도 촬영할 수 있고, 요즘 진행되는 대부분의 프레젠테이션에서는 딥 다이버를 이용한 AR 프레젠테이션이 유행이니까요.

와플은 죽어도 안 쓰는 것 같지만.”

“와플 행사장에서는 보안을 이유로 딥 다이버를 쓰고 출입하는 걸 금한다고 하던데요.”

“어, 그건 맞아요. 저도 전에 딥 다이버 들고 들어가려다 제지 당한적이 있어서.”

“사실 그냥 거슬리니 못쓰게 하는거죠.

기자 입장에서는 딥 다이버를 쓰고 취재하는 게 압도적으로 편하니까요.

실시간 번역기능도 있고, 원하면 행사를 지켜보는 와중에도 인터넷 창을 눈앞에 띄우거나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지금도 이렇게 전 세계의 기자들과 언어의 장벽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매력적인 기능이기도 하고요.”

“배터리 무게 때문에 조금 부담스러운 거랑 SF스러운 디자인 때문에 시선이 끌리는 거 빼면 기능적으로는 만점짜리 제품입니다.”

“말 그대로 세상을 바꿔놓을 장비이긴 하죠.

PRD가 지금 그렇게 하는 것처럼요.”

그 기자의 말처럼, PRD와 리얼 엔진의 공개는 전 세계의 수많은 게이머들에게 ‘누구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시대’에 대한 꿈을 꾸게 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번에 라이선스 연장이 확정된 작품들도, 전부 전문 개발자들이 아닌 아마추어 개발자들의 손에 의해 개발된 게임이었기 때문에.

누가 만들던 AAA급 타이틀을 제작할 수 있게 하겠다는 리얼 엔진의 모토는, 게임 제작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 그 자체를 뒤집어놓는 중이었다.

리차드는 그 점을 지적하며, 자신의 곁에 있는 기자들에게 물었다.

“아직 YAS의 월드 이벤트나 리얼 엔진의 체험 이벤트로 인한 충격도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PTW가 뭘 발표하려는 걸까요?”

“신작 아닐까요?”

“신작이라···. 하지만 PTW LAB으로 발매되는 레이블이 아닌 이상에야 굳이 신작을 발표할 거라면, 5차 NE 컨벤션을 통해서 발표하겠죠.

게다가 오늘 행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번 이벤트에 참여한 개발자들의 게임을 밀어주는 거고요.

그 자리에서 PTW가 신작을 발표한다면, 이렇게 언론 행사까지 마련해서 밀어주려던 노출 효과가 팍 죽어버릴 텐데요?”

“그럼 신작은 아니라면, 지금 가장 말 많은 라이선스 정책에 대한 공식 발표려나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다른 발표일 수도 있겠죠.

뭐라 해도 PTW니까요.

지금까지 뭔가 발표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충격적이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죠.

이번에도 뭔가 나올 겁니다.”

그 순간,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잔잔한 음악과 함께 행사장의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기자들의 촬영 장비에서 새어 나오는 작은 빛을 제외한 모든 빛이 사라지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단상 쪽에 있는 거대 스크린 속에 앉아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등장했다.

그것은 마치 TV 인터뷰를 연상하게 하는 분위기의 영상이었다.

“삼국지. 어릴 때부터 참 좋아했습니다.

마우스도 지원하지 않던 쿄에이의 삼국지 1편부터, 지금까지 나온 삼국지 게임은 빠짐없이 항상 하고 있었죠.

그것들은 어떤 때는 무쌍류 액션 게임이었을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한 명의 장수가 되어 삼국시대를 누비는 게임일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군주가 되어 천하를 통일하는 전략 게임일 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오락실에서나 할 법한 사이드 스크롤 액션 게임일 때도 있었죠.

삼국지의 무장들이 전부 미소녀가 되어 등장하는, 19금 연애 게임일 때도 있었고요.

그중엔 물론 전작의 재탕 같은 게임도 있었고, 진짜 엉망인 똥 같은 게임도 있었지만, 전 항상 새로운 게임이 나올 때마다 장르와 관계없이 계속 삼국지 관련 게임들을 플레이했습니다.

제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의 어떤 삼국지도 제 안에 있는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이죠.”

개발자 중 한 사람처럼 보이는 남자의 말이 이어지면서, 스크린에는 지금까지 출시되었던 수많은 장르의 삼국지 게임들이 함께 등장했다 사라졌다.

그리고 남자의 다음 말과 함께,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는 게임 화면이 스크린에 등장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진짜’ 삼국지의 세계를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삼국지 무장전의 장면 하나하나가 교차하면서, 개발에 참여한 다양한 개발자들이 한마디씩을 던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의 욕망과 상상을, 스크린을 통해 비춰주는 것처럼.

“도원결의의 장면 속에 저도 함께 끼어들고 싶었죠.”

“누군가가 조조가 적벽에서 연환계를 쓰는 걸 말렸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상상하곤 했습니다.”

“마속이 언덕 위에 진을 친다고 했을 때 그 자식 죽빵을 날려서라도 말렸어야 했어요.”

“한 사람의 병사로 시작해서 삼군 대원수까지 올라간 전설의 장수가 되어보고 싶었습니다.”

“여포와 일기토를 벌이며 자웅을 벌여보고 싶었죠.”

“단순히 ‘이런 이벤트가 발생했습니다.’가 아닌, 실제 삼국지의 장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캐릭터들과 대화하며, 그들과 흥분하고, 그들과 함께 싸우고, 그들과 기뻐해 보고 싶었습니다.”

“위대한 주군의 신임을 받고, 위대한 장군과 우정을 쌓으며,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존경받고, 위로는 주군에게 신뢰받으며, 적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그런 인물이 되어보고 싶었습니다.”

“전 매 시리즈마다 엄백호로 천하 통일을 시도하는데, 낮은 능력치로도 현명함과 포용력으로 위대한 장수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게임을 해보고 싶었죠.

단순히 제 매력 수치가 낮아서 거절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빨만 잘 털면 제갈량도 구워삶을 수 있는 그런 게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조운, 순욱, 제갈량, 관우 같은 희대의 영웅들이 제가 플레이하는 엄백호를 보며 놀라는 걸 보고 싶었죠.

‘아니 이게 진정 내가 아는 엄백호가 맞는 것인가?’

그 놀란 표정을 보게 할 수 있는 그런 게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저는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개발자가 말하는 그대로, ‘그 충격받은 표정’을 보여주는 삼국지 속 영웅들의 모습을 보면서, 리차드는 속으로 감탄했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영상의 시퀀스 구성이, 리얼 엔진이 지향하는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삼국지 무장전의 소개 영상은 ‘나는 이런 게임이 하고 싶다.’라는 욕망을 ‘그래서 리얼 엔진으로 만들었다.’라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만드는 인상적인 연출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영상의 뒤에 숨어 있는, ‘너도 원하는 게임이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라는 메시지와 함께.

“저희가 만들 게임, ‘삼국지 무장전’을 잠깐이라도 플레이해보신다면, 그 플레이어가 누구이든 간에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아, 이게 ‘진짜’ 삼국지구나.”

“전장에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서도 삼국지를 느낄 수 있는 게임.”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말을 타고 질주하며 천하 통일의 대업을 꿈꾸게 만드는 게임.”

“그게 바로 저희가 만드는 ‘삼국지 무장전’이니까요.”

자신감을 담아 말하는 개발자들의 모습을 보며, 지금까지 수많은 게임의 공개 행사를 지켜보았던 게임 전문 기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신선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어느 한 사람의 개발자 대표가 아닌, 개발에 참여한 인원 대다수가 나와 한마디씩 발표하는 게임 트레일러는,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개발진 전체의 애정을 듬뿍 담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저렇게 자신들의 게임에 애정을 담아 만드는 게임이 재미없을 리가 없다.’

라는 느낌을, 삼국지 무장전의 개발자들은 트레일러를 통해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윽고 웅장한 중국 고전풍 음악과 함께 게임 안의 재미있어 보이는 장면이 차례로 펼쳐지며, 트레일러는 마무리되었다.

[삼국지라는 단어만 들어도 자다 벌떡 일어나는 ‘찐’들이 만든, ‘진짜 삼국지’가 찾아옵니다.]

라는 소개 문구와 함께.

영상 속에서 나온 게임의 퀄리티는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모여서 만든 게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오오오오!!!!”

“삼국지에 관심 없는 사용자라도 저 정도 퀄리티의 대규모 전쟁게임이라면 흥분될 만하네요!”

“동양 스타일의 YAS인가? 싱글 플레이 위주로 보이는데 괜찮아 보이는 것 같습니다!”

힘차게 박수를 치며 의견을 나누는 기자들 사이에서, 한 기자가 리차드를 향해 물었다.

“저런 식의 영상편집 스타일은 굉장히 PTW스러운 스타일인데, PTW에서 대신 제작해 준 걸까요?”

그러자 리차드가 그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아마도 그렇겠죠. 보통 저런 장르의 게임 트레일러는 대규모 전쟁 씬을 주르륵 늘어놓으면서 ‘전율하라!’ ‘열광하라!’ 같은 단어들 쭉 보여주다가 타이틀 보여주면서 끝나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그걸 개발자들의 게임에 대한 애정으로 어필하는 시퀀스로 바꾸다니 그건 굉장히 PTW스러운 연출 방식이었어요.

그리고 리얼 엔진의 체험 이벤트가 종료될 시점에서의 삼국지 무장전은, 물론 아마추어가 만든 것 치고는 엄청난 스케일과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절대로 영상에 나오는 것 수준의 퀄리티는 아니었으니까요.

아마 지금 이 시간부터 ‘삼국지 무장전’은 게이머들의 기대작 리스트에 바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적어도 삼국지 팬이라면 전부 침을 줄줄 흘릴만한 게임 소개 영상이니까.

나머지 영상들도 기대되네요.”

리차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스크린이 어두워지며 다음 게임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이번엔 사무실에서 직장 상사 몰래 워크 패스트를 사용해 ‘포수 회귀’를 플레이하는 유저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영상이었다.

메모장 앱처럼 생긴 배경 스킨 위로 수없이 흘러가는 게임 텍스트들.

그것은 단순한 텍스트가 나열된 웹 소설 같은 느낌의 게임 화면이었지만, 영상 속 직장인에게 그것은 단순한 텍스트의 모음이 아니었다.

[긴장된 표정으로 타자 타석에 들어섭니다.

현재 9회 말, 스코어는 5-4.

주자가 3루에 대기 중인 가운데 2아웃 상황에서 타석에는 영혼의 승부를 준비 중인 타자가 보이고 있습니다.]

[긴장되겠죠. 이번 타석에서 월드 시리즈 진출의 여부가 결정되니까요.

게다가 상대는 올해의 사이영 상의 후보이자 타자에게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삼진을 얻어낸 ‘프랭키 킬러’, 허브 딘입니다.

감독이 무슨 생각으로 타자를 내보낸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는 해설자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듯하더니, 화면은 어느새 메이저리그 경기장의 타석에 서 있는 타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머릿속으로 읽고 있던 텍스트가 현실로 그대로 구현된 것처럼.

그것은 ‘포수 회귀’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게임에 자연스럽게 몰입되는 그 순간을 표현하는 연출이었다.

“아···. 저 느낌···. 알지.”

리차드가 말하자 다른 기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포수 회귀는 텍스트만 있는 게임인데도, 읽고 있으면 내가 진짜 메이저리거라도 된 기분이 드니까요.

오히려 엄청나게 그래픽이 좋은데도 TV 앞에서 패드를 잡고 플레이하는 콘솔 야구 게임보다 몰입도가 더 좋은 게임이었죠.”

“스탯이나 육성, 아이템과 스킬 시스템도 재미있고요.

진짜로 한방 크게 때려야 할 때 지금까지 모은 아이템과 스킬을 모두 써서 한방 크게 날리면 그만큼 시원할 때가 없죠.”

영상은 텍스트로 된 게임 화면과 음성으로 된 해설, 그리고 그래픽으로 표현된 경기장의 모습을 교대로 보여주며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자신이 사무실에 앉아 ‘포수 회귀’를 즐기는 듯한 느낌을 보여주고 있었다.

“포수가 회귀를 숨김을 플레이할 때면, 사무실 속 제 책상은 메이저리그 경기가 펼쳐지는 경기장이 되곤 했습니다.

전 그곳에서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수많은 홈런을 날리고, 투수들이 글러브를 바닥에 집어 던지게 했으며, 타자들이 방망이를 무릎으로 부러트리게 했죠.

그건 참으로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개발자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나레이션과 함께, 영상은 투수가 던진 강속구를 포수 글러브로 시원하게 받아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신뢰하는 배터리의 공을 직접 받아보고 싶다.”

그리고는 ‘따아악!’하는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야구공을 담장 너머로 날려 보내는 주인공의 뒷모습을 보여주었다.

“메이저리그를 씹어먹는 마이스터급 투수의 커터를 담장 너머로 날리는 기분을 내 손바닥으로 느껴보고 싶다.”

이어지는 영상은, 몇 번의 실책 끝에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투수를 찾아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저 자식이 두 타석 연속 네 공을 친 건 순전히 우연이라고.

말 그대로 로또에 두 번 당첨될 정도의 행운의 날인 거지.

3번은 없을 거야. 만약 3번째도 저 녀석이 네 공을 친다면, 날 동생이라고 부르게 해주지.”

“그래도···.”

“무서워하지 말고 시원하게 가운데 꽂아 넣어.

저 자식의 착각을 깨부숴주자고.

넌 X도 아닌 병신이고 난 올해 사이 영을 받을 월드클래스 투수라는 사실을, 꿈에서도 나올 정도로 각인해주는 거야!

자신감을 가져. 네 슬라이더는 메이저리그 최고 포수인 내가 인정하는 최고의 슬라이더니까.”

다른 야구게임과는 다른, 오로지 ‘포수 회귀’만이 가진 특징이자, 수많은 야구 팬들이 ‘그래픽이 없는 텍스트 게임’인 포수 회귀를 그토록 사랑하게 만든 시스템.

영상은 선수들의 심리 상태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며 진짜 선수가 된 느낌을 전해준 그 시스템을, 실제 야구 경기를 배경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플레이어를 믿고 힘차게 던진 공이 미트에 꽂히며, 세상에서 가장 기쁜 표정으로 플레이어를 향해 소리치는 투수의 모습과 함께.

“젠장! 네 말이 맞았어! 넌 세계 최고의 포수라고!”

그리고 그런 투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개발자의 나레이션이 흘러나왔다.

“바로 ‘저 말’을, 저도 경기장에서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화면에 흘러나온 [PTW 공식 라이선스 게임]이라는 문구는, 지금도 직장에서 포수 회귀를 즐겨 플레이하는 수많은 기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공식 라이선스?!”

“PTW에서 허락한 건가!?”

“그럼 저게 ‘포수 회귀’의 정식 후속작이라고? PTW가 아닌, 외부에서 PTW의 후속작을 개발한다는 건가?!?”

“젠장, 저기에 MLB 라이선스만 붙으면 다른 야구 게임은 다 뒤지겠네?!”

누군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면에 따라 나온 익숙한 로고.

눈앞의 공을 치려는 역동적인 타자의 모습을 표현한 MLB의 공식 로고가 흘러나오자, 기자들은 이제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심지어 원작인 포수 회귀에서도 유저 데이터로만 지원하던 MLB 공식 라이선스가 적용된다고!?”

“어떻게?!”

상혁이 이전에 ‘포수 회귀’를 개발했을 때는, 유저가 직접 만든 선수 데이터를 적용하는 기능을 통해 유저 개인이 MLB의 선수 데이터를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라이선스 논란을 피해갔었다.

기본 버전은 전부 이름을 살짝 바꾼 가상의 선수와 팀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MLB 데이터는 유저가 적용한 것이지 PTW가 도용한 게 아니라는 스탠스를 취한 것이다.

그런 포수 회귀의 후속작이 MLB의 공식 라이선스를 지원한다는 사실은, 기자들의 머릿속에 ‘특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리차드는, 눈 앞의 MLB 로고를 보며 속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사실 라이선스를 따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해도 결국은 돈 문제로 귀결되니까.

문제는 PTW의 자체 개발도 아닌 게임에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어떻게 MLB의 공식 라이선스를 따냈는가 하는 것이었지만, 리차드는 그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PTW가 벌이는 마법 같은 일들이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 고민하는 것만큼, 시간 버리기 좋은 일은 없었기 때문에.

‘뭐 어차피 뭔가 엄청난 교환 조건이라도 걸었겠지.

그나저나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만든 게임이니만큼 라이선스 비용을 대는 건 불가능했을 텐데, 남이 만드는 게임에 들어가는 공식 라이선스 비용을 PTW에서 냈다는 건 매우 충격적이로군.

거기까지 해주는 이유가 있나?’

리차드가 고민하는 사이, 화면에서는 신나는 힙합 스타일의 음악과 함께 ‘포수 회귀 VR’의 멋진 게임 화면들이 차례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자들의 생각에 못을 박는 것처럼, 영상은 ‘포수가 회귀를 숨김 VR’이라는 타이틀의 ‘VR’ 문자가 ‘2’로 바뀌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 게임이 전설로 남은 야구 게임의 공식 후속작임을 전 세계에 선언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Heeeeeell Yeeeeeeeahhh!!!!”

그 순간 야구를 좋아하는 영미권 기자들은 거의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고, 마찬가지로 야구가 인기 스포츠인 한국과 일본 기자들도 잔뜩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PTW는 마지막 게임의 영상을 재생시켰다.

이전의 게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진, 마지막 게임의 영상을.

그것은 코우지가 희정과 함께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포스트 아포칼립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임펄스’의 공식 트레일러였다.

“저게 투표 마지막에 무지막지한 속도로 치고 올라와 3위 자리를 차지한 그 게임인가···.”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 몰릴수록 그 본성을 드러낸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상혁의 제안으로 추가된 영상이 재생되면서, 스크린엔 내전으로 붕괴한 도시에 숨어 있는 한 소년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었다.

단지 통조림 한 캔을 위해 떨리는 손으로 칼을 들이미는 작은 소녀의 모습부터, 나무란 나무는 다 뜯어 태운 나머지 밤의 추위에 벌벌 떨며 어둠을 노려보는 어린 시절의 주인공의 모습까지.

그것은 종군 기자인 아버지를 따라 내전 지역에 갔다가 홀로 고립되었던 주인공의 처절한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그리고 그 영상은, UN군처럼 보이는 평화 유지군에 의해 주인공이 구출되면서, 다시 평화로운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전환되었다.

“학교에 칼을 들고 오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했지?”

“그건 비상 상황에서의 생존을 위해서 다니는 겁니다.

무기가 아니라고요.”

“평화 그 자체인 일본에서 무슨 생존이야 생존은.

네가 특이한 어린 시절을 보낸 건 잘 알지만, 넌 좀 사회에 섞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어.”

‘평화.’

‘그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 것인지, 이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마치 한 편의 영화 트레일러를 보는 듯한 영상이 이어지면서, 기자들은 조용히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앞에서 보여준 주인공의 과거부터 시작된 자연스러운 이야기 흐름이, 뒤쪽에서 나올 ‘중요한 사건’을 암시하고 있는 듯 보였기에.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대지진이 발생하는 시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상은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무너지는 천장.

쏟아져내리는 돌더미.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독백을.

‘아아아!···. 다시 시작된다! 그때의 악몽이!’

흔들리는 화면과 함께 마구 플래시백 되는 어린 시절의 나약한 자신을 떠올리는 주인공.

‘하지만 괜찮아.’

그러나 고등학생이 된 주인공은, 어린 시절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번엔 확실히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그때, 가방을 품에 안은 채로 주먹을 꽉 쥐는 주인공의 손을 잡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지금은 비록 ‘같은 반 여성 A’이지만, 게임이 진행되면서 주인공의 삶의 목표가 되는 가장 소중한 존재.

그리고 이 게임의 유일한 히로인인 ‘나츠하라 미유키’의 목소리였다.

“멍청아! 여긴 위험하다고!”

딱히 친하지도 않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떨어진 그녀는, 주인공의 팔을 잡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천장에서 커다란 돌덩이가 떨어지며 주인공의 시야를 덮쳤다.

희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히로인의 목소리만을 남긴 채.

영상은 그 부분에서 바로 게임 플레이 화면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리차드는 그 게임 화면을 보며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의 다른 게임 수준인데?”

원래 공개되었던 게임은, 히로인 AI의 품질은 최상급이었지만, 게임의 나머지 부분은 평범한 재난 생존 물을 연상하게 하는 게임이었다.

절체절명 도시 같은 스타일의 게임에, 적당히 좀비라는 요소를 섞어놓은 것 같은.

그러나 현재 트레일러에서 보이는 임펄스의 게임 플레이는, 단 일주일이라는 기간 동안 수정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짜임새를 보여주고 있었다.

법이 무너진 도시에서 힘으로 시민들을 약탈하고 다니는 무리와의 조우.

이전보다 ‘생존 전문가’로서의 특성이 매우 강화된 주인공의 행동들.

단순한 AI의 움직임이 아닌, 진짜로 인육을 갈구하는 듯한 다이나믹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좀비들의 애니메이션.

더러움이나 배고픔, 감염이나 부상 등의 다양한 상황에서 실로 진짜 여고생 같은 리얼한 반응을 보여주는 히로인의 모습 등.

리차드는 게임 플레이 화면에 나오는 요소 하나하나가 전부 재미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염분이 많은 음식인 라면을 끓여주면 굉장히 기뻐하지만, 이후에 과도한 염분 섭취 때문에 물을 더 요구하게 되는 히로인이 모습이라던가, 초반에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땔감을 열심히 구해야 하던 상황에서 자원이 부족해지는 후반엔 자연스럽게 서로 껴안고 체온을 유지하려 하는 모습까지.

트레일러에서 보이는 게임의 모든 시스템이 마치 ‘살아있는 인간’과 함께 생존하는 느낌을 구현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아,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힘을 합쳐서 생존해 나가면 상대가 누구든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겠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만드는 트레일러 영상이라 할 수 있었기에, 리처드는 마음속으로 오늘 쓸 기사의 타이틀을 정할 수 있었다.

‘리얼 엔진을 통해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만든, 압도적인 재미를 가진 3개의 초대형 타이틀.

그것이 가진 의미는 개발자가 게임을 만드는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 전주곡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재난 상황에서 발생할 법한 온갖 상황을 보여주던 임펄스의 게임 트레일러가 종료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당신은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습니까?]

라는 철학적인 메시지와 함께.

기자들은 다시 한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오늘 공개된 3개의 영상.

그중에 어느 하나 빠짐없이, ‘훌륭한 게임’임을 부정할 수 없는 좋은 퀄리티로 공개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박수 속에서, 다시 밝아진 행사장의 단상 위쪽으로 한 남자가 뛰어 올라왔다.

그의 정체는 모두가 예상했다시피, 오늘 3개의 트레일러 외에 ‘중대 발표’를 하겠다고 예고했던 PTW의 CCO.

이상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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