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 중대발표
상혁은 아직도 박수 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객석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다크 서클이 잔뜩 낀 촉촉이 젖은 눈으로 열심히 박수를 치는 개발자들의 모습과 그들이 만든 멋진 게임을 보며 순수한 게이머로서의 기쁨을 표현하는 기자들의 모습이 있었다.
상혁은 잠시 박수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멋진 게임이 개발 중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게이머로서의 저를 두근거리게 하곤 하죠.
저는 여기 계신 개발자분들뿐만 아니라, 리얼 엔진의 체험 이벤트에 참여하신 대부분의 개발자분이 라이선스 연장 권한을 받기에 충분한 멋진 게임들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투표에서 밀려 이번 라이선스 연장 타이틀에는 선정되지 않으셨더라도, 이후에 리얼 엔진이 공식으로 런칭되면 그 게임들은 지금보다 더 멋진 게임으로 다시 태어나겠죠.
전 그날이 오기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려 합니다.
순수히 ‘내가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라는 열망으로 똘똘 뭉친 개발자들이, 기존의 게임 개발 방식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장벽을 넘어 멋진 게임들을 마구 쏟아내는 밝은 미래를 말이죠.
하지만 기자 여러분께서는 오늘 공개될 게임에 관한 기사보다, 제가 발표하기로 했던 ‘중대 발표’ 쪽에 관심이 많으시겠죠?”
눈을 반짝이는 기자들을 보며, 상혁이 말했다.
“여기서 ‘사실 중대 발표는 없었습니다’ 라고 하면 살해당할 분위기네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게임 업계 기자분들은 물론, 다른 분야의 기자분들까지, 여러분들이 좋아할 만한 ‘빅 뉴스’를, 제가 확실히 가져왔으니까요.”
상혁이 손을 휘두르자, 스크린에 조금 전 공개되었던 게임 중 하나의 이미지가 나타났다.
그것은 PTW에서 부여받은 원작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원작의 팬들이 직접 개발 중인 야구 게임, ‘포수 회귀 2’의 타이틀 이미지였다.
아래에 PTW의 로고와 함께, 원작에서도 사용하지 못했던 MLB 공식 라이선스 마크가 떡하니 박혀있는 타이틀 이미지.
그 이미지를 띄워놓은 채, 상혁은 웃는 얼굴로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원작에서도 라이선스 비용 문제로 사용하지 못했던 MLB의 공식 라이선스를, 어떻게 팬들이 만드는 후속작에서 사용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많은 기자분이 의문을 품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야 당연히 한두 푼 들어가는 라이선스가 아니니까요.
그 막대한 공식 라이선스 비용을, 아마추어 개발팀에서 조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PTW가 라이선스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PTW 자체 개발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팬들에 의해 개발되는 첫 번째 공식 후속작이기 때문에, 그 정도 지원은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저희가 그 막대한 라이선스 비용을 현찰로 때려 박은 건 아닙니다.
물론 저희에겐 그럴만한 자금과 능력이 있지만, 자체 개발도 아닌 팬 프로젝트에 그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정식으로 리얼 엔진이 발매되면, 분명 어떤 수많은 팬이 저희가 만든 게임의 후속작을 직접 만들겠다고 나서게 되겠죠.
저희가 그중에서 특정 프로젝트에만 지나치게 많은 투자를 하게 된다면, 다른 프로젝트의 개발자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 저희가 선택한 방법은, 현금 투자가 아닌 다른 형태로 MLB의 공식 라이선스를 따오는 것이었습니다.
화면을 보시죠.”
상혁이 다음으로 보여준 화면은, PRD가 등장하는 화면이었다.
그러나 그 PRD는 일반적으로 유저가 구입할 수 있는 PRD와는 전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기존의 RPD보다 훨씬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 프레임.
모서리 부분에 씌워져 있는 충격 흡수용 실리콘과 기존 PRD에 장착되어있는 것보다 훨씬 큰 모터.
그것은 가뜩이나 거대한 일반형 PRD보다 훨씬 크고 강한 형태를 가진 새로운 PRD의 사진이었다.
“이 장비의 이름은 PRD-S입니다.
S는 물론 스포츠(Sport)의 약자죠.
게임 기자분들이라면 다들 슈퍼볼에서 공개되었던 PRD의 첫 공식 광고를 기억하실 겁니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가상 경기를 반복하던 소년이, 결국 NFL의 대표 선수가 되는 그 광고를.
그 광고 이후로, 저희는 전 세계의 스포츠 업계로부터 엄청난 숫자의 러브 콜을 받았습니다.
팀 훈련에 PRD를 이용한 훈련을 하고 싶다는 요청부터, 부상 후 재활 중인 운동선수의 재활 프로그램에 PRD를 사용하게 해달라는 요청까지.
농구, 축구, 야구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의 엄청난 스포츠 팀과 리그들이 PRD의 가능성을 보고 협력을 타진해왔죠.
하지만 저희는 지금까지 그 요청들을 모두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슈퍼볼에 공개된 광고는 일종의 컨셉 광고였지,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상혁이 손을 휘젓자, 격렬하게 충돌하는 미식 축구 선수들의 모습이 화면에 등장했다.
“일반인들이 게임에서 받는 것과는 다르게,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 받는 물리적 피드백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것을 때때로 관절을 꺾고, 갈비뼈를 부러트리며, 숨도 못 쉴 정도의 고통을 안기죠.
NFL의 라인배커들은 675파운드, 그러니까 306㎏이 넘는 무게를 벤치프레스에서 들었다 놨다 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무게를 들던 힘으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상대방을 후려치죠.
그런 강력한 파워는, 일반인의 근력을 기준으로 개발된 일반형 PRD에서 도저히 구현할 수 없었습니다.
일반형 PRD의 목적은 상대의 힘을 그대로 체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비슷한 느낌을 재현하는 게 목적이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기존 PRD보다 훨씬 강력하고 반응 속도가 높은 모터, 그리고 선수의 몸에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물리적 피드백을 전달할 수 있는 케블라 소재의 스포츠용 PRS까지, 오로지 프로 운동선수들을 위한 새로운 PRD를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일반인이 사용하면 신체에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수준의 강력한 물리력을 전달할 수 있는 새 PRD를 말이죠.
그렇게 개발된 새 머신이, 바로 PRD-S입니다.
이 머신엔 선수의 신체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기존 PRD엔 달려 있지 않은 초음파 센서 및, 선수의 몸에서 나온 땀의 염도를 파악하여 신체 내 수분 함량을 체크하는 염도 센서, 오랜 운동을 하더라도 신체 온도를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바디 쿨링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프로 선수들은 이 안에서 진짜 프로 선수가 던지는 것과 완전히 같은 구질을 가진 가상의 야구공을 때리거나, 혹은 가상의 헬스장에서 최대 3톤만큼의 무게가 주는 압력을 자유자재로 느낄 수 있죠.
프로 스포츠 선수들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PRS-PRO에는 필드에 불어오는 바람까지 피부로 체감할 수 있도록 전신에 에어 덕트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입과 코 부분이 뚫려있던 기존의 딥 다이버와는 다른, 입 부분까지 완전히 감싸고 있는 신형 딥 다이버의 내부에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전신에 느껴지는 감각을 100%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 스포츠 전용의 PRD가 바로 PRD-S인 겁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번 ‘포수 회귀 2’에 MLB의 공식 라이선스를 제공하기 위해, MLB 측에 PRD-S의 사용 계약을 대가로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객석에 있던 기자들이 미친듯이 손을 들었다.
상혁의 설명 뒤에 감춰진, 더 큰 그림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상혁이 그중 한 명을 가리키자, 자리에서 일어난 기자가 말했다.
“데일리 스포츠에서 나온 브라이언 키스입니다.
방금 상혁씨는 PRD-S의 사용권을 제공하는 대가로 MLB의 공식 라이선스 권한을 따왔다고 하셨는데, 그럼 그건 ‘포수 회귀 2’에만 적용되는 라이선스입니까? 아니면 리얼 엔진을 이용하는 전체 개발자에게 적용되는 라이선스입니까?”
“전체 유저입니다. 말 그대로, 리얼 엔진으로 야구 게임을 만들려는 모든 개발자들은 MLB의 공식 라이선스를 자유롭게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WND의 윌리엄 저베이스입니다.
그럼 현재 PTW에서는 MLB가 아닌 다른 스포츠의 공식 라이선스 협약도 진행 중이신가요?”
“예. 현재 NFL, NHL, NBA 등과도 협상이 진행 중이며 피파와 라리가, 프리미어 리그, 세리에 A와 분데스리가와도 협상하고 있습니다.
일본 프로 야구 협회와 KBL, KBO도 협상 리스트에 있고요.
대체로 스포츠라는 그룹으로 묶여있는 대부분이 프로리그와는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모든 리그에서, PRD-S 하나를 위해 막대한 이윤이 보장되는 공식 라이선스의 권리를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각 구단 측에서 PRD-S에 얼마나 흥미를 느끼느냐에 따라 갈리겠죠.”
상혁이 말했다.
“비록 그것이 가상 세계 안에서의 훈련이라 하더라도, 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싸우는 훈련은, 팀원 개개인의 역량 상승에 매우 도움이 됩니다.
평소라면 절대 같이 뛰어볼 수 없는 세계 최고 몸값의 선수들이라도, 가상 세계 안에서는 자유롭게 소환하여 상대할 수 있죠.
야구를 예로 들면, 때때로 선수들은 상대 팀의 선발 투수가 던지는 구질에 익숙해지기 위해 비슷한 구종을 던지는 아군 투수에게 훈련을 부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PRD를 사용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죠.
해당 선수의 구종과 구질, 습관까지 완벽하게 카피한 가상의 선수가, 훈련을 위해 무한히 공을 던져줄 테니까요.
그 경험이 가지는 천문학적인 가치를 생각하면, 게임사에 얻어가는 라이선스 비용 따위는 그리 큰 금액이 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그런 훈련으로 인해 리그 전체 선수들의 능력이 상향 평준화되고, 리그의 재미가 더욱 늘어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MLB 측에서는 그 가능성을 보고 라이선스 권한을 제공한 겁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리얼 엔진을 사용한 다양한 게임들을 통해 프로 스포츠가 주는 즐거움을 게이머들이 만끽할 수 있게 되겠죠.”
설명을 듣자마자 일제히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하는 기자들을 보며, 상혁이 말했다.
“사실 오늘의 중대 발표는 이게 끝이 아닙니다.
한 가지 더 있죠.”
전 세계 프로리그를 상대로 게임 라이선스를 뜯어내 풀어버리겠다는 지금까지의 발표도 충격적이었는데, 거기에 한 가지 더 발표할 것이 있다는 상혁의 발언은 안 그래도 흥분한 상태의 기자들을 더욱 흥분시켰다.
그런 기자들을 보며, 상혁은 오늘의 두 번째 ‘중대 발표’를 진행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미 딥 다이버는 마벌 스튜디오의 촬영 현장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장비죠.
딥 다이버를 통해, 배우들은 그린 스크린의 도움 없이도 실제 영화에 보이는 장면 그대로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 기술을 다른 영화 스튜디오에 앞서 우선 제공하는 대가로, HC 101에 마벌 ‘업벤져스’ 프렌차이즈의 유명 히어로들을 출연시킬 수 있었고요.
물론 거기에 추가적인 라이선스 비용과, 배우들의 출연료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쓰이긴 했지만, 그 결과물은 꽤 괜찮은 것이었습니다.
도시에서 히어로로 활동하면서, 영화나 만화책에서만 보았던 동경하는 히어로들과 함께 싸우는 경험은, 히어로물의 팬이라면 누구나 즐거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영상 제작 매체로서의 유용함이나 편리함을 따지자면, 딥 다이버를 통한 영화 촬영은 PRD와 리얼 엔진을 이용한 영상 제작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전자의 경우 미리 정해놓은 배경과 연출을 만들기 위해 수백 명의 전문가가 투입되어야 하지만, 리얼 엔진은 매우 간단한 방법으로 본인이 만들고자 하는 영상을 만들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만 가정용 머신의 성능이 가지는 한계 때문에, 리얼 엔진으로 아무리 쉽게 영상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헐리우드 영화 수준의 그래픽 퀄리티를 만드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죠.
그러나 그 낮은 진입장벽과 높은 활용성은, 많은 영상 제작사의 관심을 받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상혁은 스크린에 익숙한 영상을 띄웠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퀄리티 면에서는 그를 뛰어넘은 작품이 없다고 평가받는, 전설의 로봇 애니메이션, ‘GOS’의 한 장면이었다.
“이건 저희 PTW가 예전에 만들었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Guardian Of Steel’의 한 장면입니다.
이때 저희는 준 헐리우드 수준의 렌더링 센터를 설립하여 해당 애니메이션의 3D 전투 파트를 제작하고, 56편짜리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전 세계에 출시했었죠.
그건 개발자로서도 로봇 애니메이션의 팬으로써도 참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상혁이 손가락을 튕기자, 같은 영상이 다시 반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영상 속 그래픽의 퀄리티는, 안 그래도 높았던 원작의 그것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그래픽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리메이크? 설마?’
혼란스러워하는 기자들 앞에서, 상혁은 마치 리메이크 버전처럼 보이는 GOS의 영상을 틀어둔 채, 영상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대는 변했습니다. 당시 수천억을 투입해서 만들어야 했던 렌더링 센터의 성능도, 지금은 저렴한 가격으로 더 쉽게 구현할 수 있죠.
STC의 도움으로 저희는 타사보다월등한 성능을 지닌 연산 칩셋들을 설계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지금 PRD에 탑재된 칩셋들의 성능은 GOS를 제작할 당시의 렌더링 센터의 연산 성능을 상회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과거 GOS를 제작할 때 수많은 전문가가 달라붙어 수백 시간을 투입해야 완성할 수 있었던 전투 장면을, 리얼 엔진을 이용하면 혼자서도 몇 주 만에 완성할 수 있죠.
지금 보시는 영상은 리얼 엔진을 이용하여 저희 애니메이터가 제작한 GOS의 리메이크 장면입니다.
일일이 로봇을 구성하는 부속 전체의 애니메이션을 하나하나 구현하는 대신, PRD에 들어가 직접 로봇이 움직이는 모션을 따라 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죠.
리얼 엔진과 PRD를 사용하면, 이렇게 높은 퀄리티의 복잡하고 화려한 애니메이션도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장면마다 일일이 컷을 그려 넣지 않아도, 잘 만든 모델링만 있으면 얼마든지 캐릭터끼리의 감정 교환을 그려낼 수 있고요.
학교나 카페, 수영장 등의 일상적인 배경이라면,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라이브러리로 3분 안에 장면의 배경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리얼 엔진이 무너트리는 개발의 장벽이 단순히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죠.
저희는 리얼 엔진이 품은 이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상혁은 손가락을 튕기자, PRD-S와는 다른 또 하나의 PRD가 화면에 등장했다.
그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모터와 프레임이 강화되어 있던 PRD-S와는 다르게, 일반형 PRD의 옆에 거대한 사각형 박스가 추가된 형태의 장비였다.
“이 장비의 이름은 PRD-C. 물리적 피드백의 성능은 기존 PRD와 같지만, 별도의 연산 설비를 추가하여, 만들어지는 영상의 퀄리티를 크게 높인, 말 그대로 시네마(Cinema) 작업에 특화된 영상 제작 전용 PRD입니다.
그리고 거기엔 게임 전용이 아닌, 영상 작업에 특화된 형태의 리얼 엔진이 번들로 제공될 예정입니다.
앞으로의 영화 산업이나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획기적으로 제작비를 낮추면서도 빠른 속도로 높은 퀄리티의 영상을 제작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신형 PRD인 ‘Physical realization device – Cinema’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상혁의 말이 끝나자, 다시 한번 기자들이 우르르 손을 들며 질문했다.
“게이머를 위한 장비가 아닌 전문 장비이니만큼, 이번엔 높은 가격이 책정될 것 같은데요?
두 신형 PRD의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PRD-S는 전용 딥 다이버와 PRS를 포함하여 대당 20억, PRD-C는 영상 작업 특화형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를 포함하여 대당 14억 정도입니다.”
원래는 3천만 원짜리 장비에, 아무리 특화기능이 붙어있다지만 너무나 비싼 가격이라 할 수 있는 가격을 부른 상혁의 발언에, 기자들은 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 가격이면 돈이 많은 프로 구단은 제외 하더라도, 영상 업계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의 숫자를 생각해보면 부담되는 가격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입니까?”
“저희도 독립 라이선스를 포함한 가격이 그 정도라는 것이지, 안 그래도 가난한 애니메이션 업계에 그 정도 부담을 씌울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기기 가격 대부분을 저희 PTW에서 지원할 생각이고요.”
“PTW에서요?”
“스포츠 리그에 해당 리그의 선수들을 사용할 수 있는 라이선스 권한이 있듯이, 애니메이션에도 해당 캐릭터와 IP를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라이선스 권한이 따로 있습니다.
당분간 저희는 PRD-C를 애니메이션 시장에 적극적으로 공급하면서, 리얼 엔진을 통해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의 게임용 라이선스를 대가로 받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경우 제작위원회 형태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에 저희 PTW가 초기 투자자 형태로 들어가게 되겠죠.
그리고 그건 독점 형태의 계약이 아닌, 별도 계약의 형태가 될 겁니다.
그러니 딱히 저희에게 라이선스를 팔았다고 해서 타사가 그 IP로 게임을 만들 수 없는 건 아니죠.
저희가 원하는 건 단 하나입니다.
최대한 많은 IP를 리얼 엔진 라이선스에 포함해서, 원작 IP의 팬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게 하는거죠.
제작사 입장에서는 제작 기간과 제작비를 절감하면서도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것이고, 원작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원작이 높은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고, 리얼 엔진을 사용하는 개발자로서는 라이선스 부담 없이 팬 게임을 마음껏 개발할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그러자 한 기자가 손을 들어 물었다.
“제작사와 원작자, 그리고 원작의 팬들에게는 좋은 일일 것 같긴 합니다만,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 과정을 통해서 PTW에 남는 건 뭐가 있습니까?
일단 지금까지 들은 내용만 보면 단순히 남 좋은 일만 잔뜩 하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상혁이 웃으며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그 과정에서 저희가 얻게 되는 이득은 PRD의 좀 더 빠른 대중화입니다.
아무리 저희가 싸게 판다고 해도, 3천만 원이란 가격은 절대 싸지 않은 가격이죠.
그렇기에 저희는 3천만 원이란 금액을 지불하고 PRD를 구매한 게이머 분들에게, 콘솔의 개발사로서 양질의 게임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리얼 엔진을 이용해 PRD 전용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들에게도, 빠른 PRD의 보급은 매우 중요한 문제고요.
현재의 PRD 전용 타이틀은, 솔직히 말하면 출시하는 순간 최대한 팔린다고 해도 적자를 금치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전 세계의 PRD 유저가 모두 그 게임을 산다고 해도, 겨우 10만 장을 팔 수 있을지 말지 고민해야 하는 수준이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최대한 빠르게 유저들을 PRD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다른 취향의 여러 팬덤들을 이 시장으로 끌고 오는 것이죠.
예를 들어 기존의 PRD에 관심이 없던 유저라도, 포수 회귀의 팬이라면 MLB의 공식 라이선스가 적용된 후속작을 PRD로 꼭 해보고 싶겠죠.
만약 KBO의 라이선스를 저희가 적용할 수 있다면, 메이저리그에는 관심이 없지만, KBO는 즐겨보는 유저가 흥미를 보이게 될 겁니다.
전 세계의 미식축구 팬들, 하키 팬들, 축구 팬들, 특정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팬들.
수없이 쏟아지는 게임 중에서, 그중 하나 정도는 유저의 마음에 드는 ‘갓겜’이 될 겁니다.
원작이 너무 좋아서 3천만 원을 내고서라도 꼭 플레이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멋진 게임들이 수없이 출시되게 만드는 거죠.
그들 모두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게임들을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서, PTW는 리얼 엔진에 다양한 원작들의 라이선스를 포함하게 하려는 겁니다.
저희는 무언가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무언가를 가장 멋진 게임으로 만들 수 있는 개발자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그것을 위한 이 새 라이선스 정책의 발표가, 오늘 중대 발표의 핵심 내용입니다.”
상혁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자들은 저마자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야구를 좋아하는 기자는 리얼 엔진으로 만들어진 야구 게임을, 축구를 좋아하는 기자는 리얼 엔진으로 만들어진 축구 게임을.
개중에는 좋아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며 그것들이 멋진 게임으로 재탄생한 모습을 상상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몇몇 기자들은, 멋진 원작의 판권을 가져오고서도 쓰레기 같은 게임을 만들어내던 몇몇 개발사의 게임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게임이 재미없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원작의 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매해야 했던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는 기자들도 있었다.
그런 기자들에게, 상혁의 ‘중대 발표’는 매력적인 미래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시상식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던 수많은 시청자들도 함께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상혁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기자들과 시청자들을 향해 쐐기를 박았다.
“기존의 컨텐츠 업계가 저희가 만들려는 흐름을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않건, 저희는 우직하게 저희의 길을 걸어갈 겁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게임이 세상에 하나라도 더 나올 수 있는 미래를, 그리고 열정과 꿈을 가진 개발자가 수없이 많은 갓겜을 만들 수 있는 미래를 열기 위해서.
비록 저희가 모든 IP의 라이선스를 전부 확보하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앞으로 나올 IP의 게임용 라이선스 정도는 최선을 다해 확보할 생각입니다.
누구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시대.
그 이후의 스텝은 ‘어떤 게임이든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혁의 중대 발표.
그것은 PTW가 열어가는 앞으로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어떤 미래로 만들려는 지에 대한 상혁의 강렬한 의지가 담겨있는 발표인 동시에, 발표 즉시 업계를 뒤집어놓을 만한 핵폭탄급 파괴력을 가진 ‘중대한’ 발표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