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강대강
“이건 정부의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절대로 받아주어서는 안 됩니다!”
급하게 열린 대책 회의에서, 김근수 팀장은 강력하게 자신의 의견을 어필했다.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 라인에 특허권 소송이라는 폭거로 대답한 PTW의 반항행위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대응방식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업은 정부의 방침에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어차피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제일 나은 선택이니까.
그러나 그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PTW가 기존의 기업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라는 사실이었다.
PTW는 이전에도 한 번, 여성가족부의 콘솔 셧다운제 적용이란 강수에 대해서 워크 패스트의 전면 사용 중단이라는 초 강수로 대응해 정부의 의지를 꺾은 적이 있던 기업이었다.
그리고 현재의 워크 패스트는, 당시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전 세계 업무 솔루션 점유율 1위 자리를 독보적으로 지켜내는 중이었고.
‘워크 패스트가 다운되면 전 세계가 정지한다.’라는 세간의 평가는, 절대 허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김근수 팀장은 가장 먼저 그 부분에 관한 확인 작업을 진행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PTW의 대응에서도, PTW가 워크 패스트 전면 다운이라는 초 강수를 취할 것인가에 대해서.
그러나 검토를 맡은 팀원들은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셧다운제의 전면 적용을 위해서는 게임 기능을 지원하는 워크 패스트에도 셧다운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과거의 사건과는 다르게, 이번 검열 사태는 워크 패스트와 하등의 관계가 없었으니까.
만약 정부를 협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PTW에서 워크 패스트의 사용권을 가지고 협박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해당 업무 솔루션을 사용하는 모든 기업들의 연쇄 소송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이전 셧다운 사태를 마무리하면서, PTW에서는 두 번 다시 비슷한 건으로 워크 패스트 서비스를 중단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선언했죠.
기업들은 그 말을 믿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업무 솔루션이 아닌, 한국의 기업이 서비스하는 무료 솔루션을 계속 사용하기로 했고요.
워크 패스트가 PTW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이긴 하지만,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전가의 보도는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PTW가 워크 패스트 서비스를 중단한다면, 오히려 저희에겐 큰 도움이 됩니다.
워크 패스트는 정부 부처에서도 사용하고 있으니, 서비스 중단으로 인한 피해 보상을 역으로 PTW에 요구할 수 있겠죠.
PTW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러니 이번 사태에 워크 패스트의 사용권을 끌고 오지는 않을 겁니다.”
TF 팀 소속의 부하직원이 하는 말을 들은 근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는 이후의 대책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가 통신사에 적용하라고 한 통신 검열 기술이, PTW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건 사실인가?”
그러자 다른 직원이 손을 들며 근수의 질문에 답했다.
“그건 사실입니다. IT 전문가들과 특허 전문가들이 서류를 꼼꼼하게 검토했고, 해당 기능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핵심 기술의 저작권이 모두 PTW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우회도 안 되고?”
“우회 가능한 모든 방법까지 전부 등록해서 방법이 없습니다.
해당 특허는 하드웨어 관련 특허뿐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검열을 수행할지에 대한 모든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으니까요.
PTW에서 제공한 서류를 검토한 IT 담당자는 혀를 내두르더군요.
그 특허에 들어있는 기술들의 상당수가 특허가 등록된 2000년도엔 존재도 하지 않았던 기술인데, 어떻게 우회 가능한 방법을 전부 틀어막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죠.
‘지금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 검열 도구인 황금 방패도 이 특허의 지적 재산권을 심하게 침해하고 있는데, PTW가 이걸 가지고 중국 정부에 소송을 걸면 떼돈을 벌 것이다.’라고요.”
“아니 그럼 중국 정부에 소송을 걸던가! 왜 우리한테 거는데?!”
“중국 정부는 PTW에게 인터넷 검열을 도입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니까요.
저희가 건드린 건 일종의 벌집입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벌이 사는 초 거대 말벌집이죠.
이 사안에 대해서는 양보하고 넘어가는 게 어떨까요?
저희가 인터넷 검열에 대한 강요를 철회한다면, PTW에서도 소송을 취하해줄 것 같은데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이번 통신 검열은 정부에서 직접 가이드 하는 핵심 정책 중의 하나야.
그걸 특정 업체가 제공하는 회선에만 적용하지 않고, 나머지 업체들의 회선에만 적용한다면, 기존 통신사들이 가만히 있겠나?
안 그래도 새 인터넷의 미친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기존 고객이 다 빠져나가는 상황인데, 거기에 검열까지 풀어준다면 기존 통신사에겐 인터넷 사업을 하지 말라고 정부가 직접 말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그럼 상황이 어찌 흘러가던 무조건 적용은 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군요.
PTW의 새 인터넷에도 인터넷 검열을 적용하던가, 아니면 정부에서 인터넷 검열 정책을 전면적으로 철회하던가.
어느 한쪽이 쓰러지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싸움에서, 우리의 승산은?”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PTW에 특허권에 대한 사용료를 지불하고 해당 특허를 사용하는 방법.
물론 PTW에서 원하는 것은 ‘사용 중지’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사용하는 것이라는 부분을 어필하면 법정에서 사용에 대한 권리를 받아낼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징벌적 배상제도가 없는 대한민국 법으로는 그 사용료도 그리 비싸지 않은 수준일 거고요.
그렇게 된다면 중지를 강제할 수 없는 특허를 가지고, PTW에서 푼돈 약간 받는 정도로 일이 마무리될 겁니다.
유일한 무기가 사라진 이상, 그 이후는 저희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겠죠.”
그러자 다른 팀원이 손을 들며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글쎄요. 그건 어떨까요?”
“무슨 뜻이지?”
“이 소송의 뒤에 숨겨진 악의엔, 단순히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말이죠.”
“무슨 말이지?”
근수가 채근하자 그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우선 PTW에서 가장 먼저 할 행동은, 현재 다른 통신사에 적용된 통신 검열 기능의 사용 중지 명령을 요청하는 겁니다.
이 정도로 특허 침해가 명백하게 입증된 상태에서, 법원에서 해당 기능의 사용 중지 명령을 받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겠죠.
그 상태에서, PTW는 소송을 최대한 길게 끌고 나가려고 노력할 겁니다.
그 막대한 자금력을 사용해서, 유명 로펌으로 구성된 ‘군단’을 만들어 내겠죠.
그리고 저희를 서류의 산으로 묻어버리려고 할 겁니다.
그러면 적어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새 인터넷에 인터넷 검열을 적용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그럼 정부에서도 로펌을 고용해서 대응하면 되잖아.”
“소송에서 지면, 변호에 들어간 모든 비용을 패소한 측에서 지급해야 합니다.
이 소송은 100% PTW의 승리로 끝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저희에게 남는 건 몇 년 이상이나 대형 로펌에 의뢰를 진행하며 쌓인 막대한 변호사 비용이 되겠죠.
저희가 지불한 비용뿐만 아니라, PTW가 변호사 군단을 만들면서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재판 비용을, 대한민국 정부가 지급해야 하는 겁니다.
그 천문학적인 소송 비용에 더해서, PTW에 특허 사용료까지 내고, 그 결과로 저희가 얻는 건 단지 대한민국의 인터넷으로 몇몇 성인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하는 기능뿐이죠.
게다가 PTW는 전 세계 기업 중에서도 이미지가 좋기로 손꼽히는 기업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의 눈에는 이번 소송이 이렇게 비치게 될 겁니다.
인터넷의 자유를 주장하는 선량한 기업이, 자유를 억압하려는 대한민국 정부에 맞서 용감히 싸우고 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정책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인터넷의 바다에 빠져 잘못된 성 관념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막고, 지나치게 자극적인 불법 포르노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는 법이라고!”
“저희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국민들은 대부분 PTW의 편에 설 겁니다.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도록 조종하는 것이, PTW의 CCO 이상혁의 특기니까요.”
“세준 씨는 PTW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있는 듯한 말투로 말하는군.
혹시 더 알고 있는 사실이 있나?
우리가 앞으로 PTW라는 회사를 상대하는데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지금 설명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러자 수근에게 지명받은 직원, 박세준은 자신이 PTW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PTW의 팬이 아니라도 IT업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PTW의 행보에 대한 설명을.
“우선 가장 먼저 이야기 할 부분은 역시 여가부에서 진행했던 콘솔 셧다운제 분쟁에 대한 에피소드 일 겁니다.
당시 콘솔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는 PTW에 대해서, 온라인 게임사를 주축으로 하는 국내 개발사들의 불만이 터져나왔죠.
콘솔 게임이라는 이유로 PTW만 셧다운제를 피해가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요.
그 의견을 받아들여 여가부에서는 PTW의 활동영역인 콘솔 게임에서의 셧다운제 적용을 검토했습니다.
그런 정부의 반응에 대응해서, PTW에서는 정부의 정책에 적극 협력하고 싶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대며 정부에서 요청하지도 않은 워크 패스트의 서버에 셧다운을 적용하는 초강수를 두었었죠.
그것도 전 세계의 워크 패스트를, 한국 시간대에 맞춰서 내려버리겠다고요.
당연히 한국이 밤일 때 미국은 낮이기 때문에, 해외의 수많은 기업들이 워크 패스트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엄청나게 강력한 항의를 받았고, 결국 셧다운제 전면 적용에 대한 정책을 폐지하고 말았습니다.
정부가 기업에 무릎을 꿇었다고, 신문에서도 대서특필했던 사건이었죠.”
“그건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다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고, 다른건 없나?”
“그 이후엔 미국 월가의 헤지펀드들과 붙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딥 다이버가 처음 출시된 시기였는데, 업계에서는 PTW의 새 장비인 딥 다이버가 SANY의 PS 플랫폼 전용 장비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보였기 때문에 월가의 대형 헤지펀드 5곳이 주가 하락을 노리고 MS의 주식에 공매도를 시도했었죠.
그러나 PTW 측에서 MS에 딥다이버의 라이선스를 허용하면서 엄청난 손해가 발생하게 되었고, 당시 미국 증권 위원회인 SEC를 등에 업은 헤지펀드 조직이 PTW에 고의적인 주가 조작 혐의를 제기하면서 매우 큰 사태로 번졌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나?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그때 관여한 헤지펀드 5개가 MS 측에서 필요한 주식을 고정가격으로 구매하는 선에서 피해를 수습했죠.
당시 도람푸 대통령이 직접 사태에 개입해서 중재했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후에 딥 다이버의 군용 버전인 워 다이버를 미군이 독점으로 사용하는 계약까지 맺었던 사례를 보면, 일단 PTW가 도람푸 대통령의 미 행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금도 PTW의 메인 서버가 있는 천하대 부속 건물은 미군에서 직접 파병한 특수부대원들이 경비를 서고 있습니다.
그곳은 PTW의 직원 중에서도 미국 국방성의 승인을 받은 일부 직원만 출입이 가능한 최상위 보안 구역이 되었고요.
미국 안보에 핵심이 되는 기술을 다루는 장소이기 때문에, 현재는 그 장소 자체가 미국 법의 적용을 받는 치외법권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자네 지금 게임회사 이야기 하는 거 맞나?
왜 미국 국방부가 언급되고 도람푸 대통령의 이름이 나오는 거지?
무슨 게임 회사가···.”
“PTW를 일반적인 게임회사라고 보시면 안 됩니다.
전 세계 대기업의 90% 이상이 사용하는 무료 업무 솔루션인 워크 패스트를 개발하고, 전 세계 보안 장비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코넥트를 개발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는 산업용 AR 장비인 딥 다이버를 개발하고, 전 세계 최초로 풀 다이브 VR의 시대를 연 PRD와, 앞으로 구 인터넷의 시대를 종식할 것으로 평가받는 ‘새 인터넷’을 개발한 회사.
그 페이트 북을 특허분쟁으로 무릎 꿇게 만든 회사.
가지고 있는 기술의 영향력으로는 대한민국 정부도 이길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회사.
그곳이 바로 PTW니까요.”
김근수 팀장은 도저히 게임회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PTW의 스케일에 점점 두려움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기업이, 지금 방통위를 상대로 칼날을 돌리려고 한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국세청에 부탁해서 세무조사로 압박하는 방법은 안 먹힐까?”
“안 먹힐 겁니다. 사실 우수 납세 기업으로 표창도 자주 받는 기업이라서요.”
“전에 듣기로는 매출 규모에 비해 법인세가 낮아서 자주 표적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그건 타 기업들이 퍼트린 악의적인 루머입니다.
특히 테슬러와의 레벨 5 자율 주행기술의 독점적 공급 계약이 발표된 이후로, 형대 자동차에서 PTW에 악의적인 기사를 자주 의뢰하고 있었으니까요.
대한민국 게임 업계와도 그리 친하지 않은 기업이고요.
하지만 국세청에서는 오히려 좋아하는 기업에 속합니다.
기본적으로 탈세를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 데다, 매출대비 세금 비율은 대한민국 기업 중 1위 수준이니까요.”
“버는 매출 대부분을 투자해서 법인세는 조금 낸다면서, 어떻게 매출대비 납세 비율이 1위라는 거지?”
“법인세는 한도가 최대 25%지만, 소득세 한도는 45%니까요.
PTW는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느니 직원들 연봉을 올려주겠다는 마인드로 운영되는 회사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평균 연봉 수준이 가장 높죠.
임원이 아니더라도 세후 기준 10억 이상 연봉자가 발에 차일 정도로 많은 곳이 PTW입니다.
보통 그 정도 연봉을 지급하는 회사는 매출이 더 큰 규모의 회사가 많은데, PTW는 회사 수익의 상당 부분을 직원 연봉과 보너스로 지급하고 있죠.
그러니 법인세 비율이 낮더라도 실질적으로 PTW가 내는 세금은 엄청난 수준입니다.
단지 법인세가 아니라 더 효율이 안 좋은 다른 방식으로 내고 있을 뿐이죠.
그리고 그 효율이 안 좋은 방식은, 역으로 국세청이 보기엔 매우 바람직한 방식이고요.
최악의 케이스는 괜히 건드렸다가 PTW가 기업 이전을 선언하는 겁니다.
안 그래도 미국에 타국 기업을 유치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도람푸 행정부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죠.
그리고 한국 최고의 우량 기업 중 하나를 단지 인터넷 검열 하나 하겠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쫓아냈다는 엄청난 비난을 현 정부가 감수하게 될 겁니다.
제 생각에, 이번 사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는 바로 PTW가 본사 이전 카드를 꺼내 드는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과징금을 물게 하는 방식은?”
“그것도 악수죠. 이쪽에서 어떤 협박 카드를 꺼내든 PTW는 빠져나갈 구석이 있습니다.
그냥 본사를 이전하면 그만이니까요.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모든 비난을 대한민국 행정부에 씌우고 미국으로 도망가겠죠.
게다가 천하대 근처 상권의 비난도 엄청날 거고요.”
“그건 또 왜?”
“천하대 근처 상가 부동산은 대부분 PTW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사서 부수고 새로 지은 건물도 상당하고요.
그리고 그곳에 입주한 상점들은 임대료를 내지 않습니다.
임대로 대신 음식의 퀄리티를 높이고 가격을 낮추는 조건으로 계약을 하고 들어오니까요.
PTW 입장에서는 직원들에게 좀 더 높은 퀄리티의 음식을 제공할 수 있고, PTW 본사가 천하대 안에 있어서 발생하는 천하대 학생들의 불만도 상당히 줄일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낮은 가격에 전국 최고의 음식 퀄리티를 가진 천하대 근처 상권의 존재는, 대학생들에게 최고의 복지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가게 평가가 안 좋으면 계약 연장이 취소되기 때문에, 가게에서도 필사적으로 음식 퀄리티를 유지하려 하죠.
그 결과로, 지금 전국에서 가장 맛집이 많은 곳은 천하대 대학로가 되었습니다.
PTW가 이전하면, 그 혜택을 누리던 상권도 함께 피해를 보게 되겠죠.”
“X발···.”
“그러니 제 생각에는 인터넷 검열 정책을 취소하는 게 최선입니다.
잃을 건 너무 많고, 얻을 건 너무 적으니까요.”
“미안하지만 정부 정책은 단순히 그런 이유로 굴러가지는 않아.
행정부가 가진 가치관과, 무엇이 국민을 위해 옳은 판단인지에 대한 믿음이 정책을 결정하지.
전면 검열이 실시되기 전이면 모를까, 이미 시행된 상태에서 지난번 셧다운제 사건처럼 정부가 또 무릎을 꿇는다면, 그건 현 행정부의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게 될 거라고.
차라리 이권이 얽혀있는 건이라면 취소하기 쉽겠지만, 이건 국민들의 저항을 감수하더라도 이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행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니까.
거기에서 물러나는 건 ‘이게 옳은 일인 건 알지만 상대가 무서우니 포기하겠다.’라고 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겠지.
그리고 다른 기업들에게도, 힘이 있으면 정부를 얼마든지 흔들 수 있다는 나쁜 사례를 남기게 될 거고.
실제로 여가부를 무릎 꿇린 경험이 있는 PTW에서, 대놓고 지금처럼 정부에 반항하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 때문에 정부가 절대로 자신들을 건드리지 못할 거라는 사악한 생각을 하는 게 분명해.
그러니 절대 취소는 못 하지.
이건 옳고 그름에 대한 정의를 관철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위상을 보여줄 좋은 사례니까.”
“재판으로 가면 100% 지고, 재판 기간 내내 PTW의 여론몰이에 휘둘릴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도람푸 미 대통령과 대놓고 친분을 자랑하고, 미 국방성의 비호를 받고 있으며, 전 세계에 수천만의 팬을 가진 회사를 상대로 싸우시겠다는 겁니까?”
“그래야지.”
“대체 어떻게요?”
“자네 말대로 재판으로 가면 우리가 불리한 게 사실이니까, 재판으로 가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해야지.
일단 자네들은 지금 당장 PTW에 연락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서 미팅 일정을 잡도록 해.
대화 상대는 상대측 법무팀이 아닌, CCO 이상혁이나 CEO 김현주가 포함된 임원 그룹으로 한정하고.
이쪽에서는 방통위 위원장님과 내가 직접 PTW 본사에 방문할 거라고 알려.
어떻게든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카드를 가지고 그들을 회유해야 하니까.
다음 주파수 경매에서 특혜를 줄 수도 있고, 아니면 법인세 감면 같은 특별 혜택을 줄 수도 있고, 아니면 게임 산업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라는 이름으로 직접 지원을 할 수도 있으니까.
이쪽에서 제공할 수 있는 카드를 최대한 제공할 테니 이번 건에 대해서는 PTW에서 정부에게 협력하는 모양으로 양보를 해달라고.
그래서 외부에서 보기에는 PTW가 정부와 손을 잡은 것처럼 보이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겠지.
이쪽에서 제공하는 카드는 인터넷 검열 건과는 무관한 것처럼 포장하면서, 정부가 패배한 모습이 아닌, PTW가 정부 정책에 협력하는 모습으로 연출하면 될 테니까.
일단은 채찍보다는 당근으로 가자고.
저쪽에서도 정부의 협력이 있으면 얼마나 사업이 편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겨우 인터넷에서 불법 사이트 몇 개를 막는 일이다.
근수는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카드를 잘 활용할 수 있다면, PTW에서도 100% 정부의 정책에 협조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PTW라는 기업을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다른 기업과 똑같이 생각한, 김근수 팀장의 판단 오류였다.
애당초 PTW의 쌍두마차인 상혁과 민준은, 오늘의 사태가 올 것을 미리 예견하고 ‘싸우기 위해’ 특허를 준비해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두 사람의 머릿속에 ‘협상’이나 ‘타협’ 같은 개념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근수는, PTW가 정부와 협상할 의지가 눈곱만큼도 없다는 사실을 바로 알 게 되었다.
그가 TF팀을 시켜 PTW에 미팅 연락을 잡기도 전에, PTW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조금 전 박세준이 말했던 것처럼, PTW의 CCO인 이상혁이 주로 사용한다는 ‘언론 플레이’에 의한 공격이었다.
[여가부를 무릎 꿇렸던 한국의 게임 회사 PTW.
이번엔 방통위를 상대로 선전포고.]
[PTW, 방통위와 통신 검열 알고리즘을 개발한 외주 업체를 상대로 법원에 특허권 침해에 의한 기술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
[이번 상대는 방통위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정부인가?
인터넷 사업을 진행 중인 PTW에서 정부의 인터넷 검열에 반기를 들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쏟아지는 언론 보도를 보며, 김근수는 자신의 대응이 한발 늦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상대가, 이번 싸움을 안 보이는 곳에서 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도.
그것은 물론 타협할 생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상혁의 의지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삼국지에는 손권이 여동생과의 결혼을 빌미로 유비를 초대해서 암살하려고 하는 에피소드가 나와요.
그때 제갈량은 일부러 중간에 내려서 유비와 손권의 여동생이 결혼한다고 소문을 대대적으로 퍼트리게 했고.
그렇게 기정사실이 되어버리자, 몰래 유비를 암살하려던 주유의 계획은 바로 개박살 났죠.”
상혁은 기사가 띄워져 있는 타블렛을 집어 들며 현주에게 말했다.
“이게 저희의 ‘소문’입니다. 이 싸움에 윈-윈 따윈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정부가 물러서든, 저희가 한국에서 철수하고 새 인터넷을 한국에서 빼버리든, 결과는 하나뿐이죠.
저희는 어떤 피해가 있어도 인터넷 검열을 새 인터넷에 적용하지 않을 거라는 거요.
비록 그 결과가, 한국에서 사업을 철수하고 새 인터넷의 한국 서비스를 포기하게 되는 결과가 되더라도, 저희는 기꺼이 감수할 겁니다.
새 인터넷에 개 X같은 검열 기능을 도입할 바에는, 그냥 새 인터넷 사업을 접는 게 나을 테니까.”
자신만만한 표정을 하고 있는 상혁과는 다르게, 현주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상대는 헤지펀드 같은 금융 자본이나 페이트 북 같은 일게 기업이 아닌,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였기 때문에.
그것은 절대로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관철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로 인해 직원들이 받을 수 있는 피해도 생각해야해.
본사의 이전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아무리 PTW가 글로벌 기업이라 하더라도 직원의 40% 이상은 한국인이고, 그들 모두 이곳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살아왔어.
그리고 상혁이 네가 천하대 안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들어간 비용도 절대 작은게 아니고.
다른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지금같은 지원 체계를 만든다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 거야.
전투 의지로 불타오르는 것도 좋지만, 최종 카드를 사용하기 전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꼭 생각해줬으면 좋겠는데.”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하는 현주를 보며, 상혁이 미소 지었다.
정부와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혁은 본사 이전이란 카드를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건 ‘최후의 카드’나 ‘최강의 카드’가 아닌, 절대 선택해서는 안 되는 ‘최악의 카드’였다.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더 큰 카드였으니까.
그것을 잘 아는 상혁은 본사 이전을 할 생각이 없다는 생각을 말해 현주를 안심시켰다.
“걱정마세요. 이번 사태 수습에 있어서, 본사 이전 같은 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쓸 수 있는 최종 카드가 그거 아니었어?”
“‘최종’의 카드가 항상 ‘최강’의 카드라는 법은 없죠.
현명한 게이머라면, 가장 강한 카드를 맨 뒤에 배치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앞에 배치해서 초장에 적을 쓰러트리려 할 거예요.
그리고 굳이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언론사에는 ‘본사 이전에 대한 계획도 검토하겠다.’라고 밝혔잖아?”
“그 칼을 쓸 생각은 없지만, 제 뒤에 소 잡는 칼이 놓여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시키고 싶었으니까요.
실제 협상은 전혀 다른 카드로 진행할 거니까, 선생님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어떻게 할 생각인데?”
“말했잖아요.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게 하겠다고.
워크 패스트 카드는 예전에 셧다운 사태 수습하면서 다시는 안 쓴다고 공지했기 때문에 쓸 수 없지만, 그사이 얻은 새 카드는 쓸 수 있어요.
그리고 그 파급력은, 워크패스트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강력하겠죠.
아마 듣는 순간 상대측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게 될걸요?”
“오, 그건 좀 보고 싶다.”
“곧 보게 될겁니다. 이쪽에서 이렇게 언론을 통해 공세를 시작한 이상, 상대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다만 중요한 건 어느 수준의 라인이 움직이느냐는 거죠.
미팅을 요청하는 기관이 어디냐에 따라서, 이번 사태를 대하는 정부의 심각성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 부실 문이 열리며 한 직원이 뛰쳐 들어왔다.
그리고는 상혁과 현주를 향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정부에서 직접 면담 요청이 왔습니다.”
“예상대로네요. 어디죠? 검열 전담 TF? 아니면 방통위원장이 직접 나섰나?”
“청와대요.”
그녀가 말했다.
“미팅 요청을 해온 정부 기관은 대통령 비서실입니다.”
그 말을 들으며, 현주는 속으로 생각했다.
상혁이 언급한 ‘전쟁’의 규모가, 생각보다 큰 스케일로 진행될 것 같다는 생각을.
아무래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상혁은 상쾌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자! 그럼 갈까요?”
“어디를?”
“어디긴 어디에요. 청와대죠.
대통령 비서실은 청와대 안에 있으니까.
운이 좋으면 대통령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사인받아야겠다.”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표정엔, 이번 싸움에서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단 1%도 담겨있지 않았다.
오로지 상대를 어떻게 사냥할지 고민하는, 포악한 맹수의 살기만이 느껴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