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69화 (470/485)

< 469. 연기가 아닌 삶 >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2021년을 ‘PTW의 해’로 만들어버린 5차 NE 컨벤션이 끝나고, 한 달 간격으로 진행되는 퍼스티스트 월드 이벤트의 꺼지지 않는 열기 속에서 PTW의 팬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2022년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PTW에서는 매번 신박한 방어전 컨셉을 선보이며 웹 드라마 퍼스티스트의 시청률을 계속 끌어올렸는데, 그 덕에 매일 한 시간씩 편집되어 올라오는 PTW의 웹 드라마는 편수로만 180화가 넘어가는 작품이 되었음에도 언제나 처음 보았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계속 시청자들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방어 진영 나이츠를 똑같이 복제하여 AI가 조종하는 적 나이츠와 싸워야 했던 마수 ‘도플갱어’와의 전투라던가, PTW의 메인 서버를 공격하는 디지털 생명체 컨셉의 마수인 ‘둠스데이 프로토콜’을 막기 위해 민준이 나서서 실시간 해킹 방어전을 선보였던 에피소드까지.

특히 둠스데이 프로토콜 에피소드에서 민준은 스컹크 웍스 멤버 50명이 함께 완성한 최악의 바이러스에 맞서 싸워야 했는데, 민준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불려나와 진짜 바이러스가 PTW의 메인 서버를 공격하려는 줄 알고 진심을 다해 방어전에 나서야 했다.

상혁이 철저하게 정보를 숨긴 상태에서 스컹크 웍스 멤버들에게 민준이 설계한 PTW 서버의 방화벽을 뚫을 수 있는 괴물 같은 바이러스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나름 업계에서 전부 한 가닥씩 하는 인물들로 구성된 스컹크 웍스 멤버들은 민준을 잡아보자는 상혁의 제안에 큰 매력을 느꼈고, 결국 존 카밋과 존 스캇을 중심으로 하는 ‘안티 민준 클럽’이 결성되어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완성된 것이었다.

물론 민준이 방어에 실패해 서버가 뚫린다고 해서 메인 서버의 데이터를 몽땅 날려버리는 대참사를 일으키면 수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민준을 제외한 50명의 스컹크 웍스 멤버들은 바이러스가 보안을 뚫는 데 성공하더라도 PTW 서버의 데이터를 날리도록 설계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들은 민준이 설계한 서버 보안 프로그램을 뚫었을 때, 그들이 제작한 바이러스가 워크 패스트와 딥 다이버의 운영 체제, 리얼 엔진의 로그인 페이지 같은 PTW에서 제공하는 주요 컨텐츠의 메인 타이틀 화면에 ‘허접~ 민준은 이런 것도 못 막는 허~접’이라는 유치한 메시지를 띄우도록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민준은 말도 안 되는 실력을 갖춘 슈퍼 프로그래머가 자신이 개발한 방화벽을 뚫으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전력으로 방어에 들어갔다.

그리고 방어에 성공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침입 루트를 역추적하여 상혁이 공격을 위해 수백억을 들여 구축한 공격용 임시 서버까지 털어버렸고.

이후에 서버를 공격한 바이러스가 상혁의 사주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안 민준은 PTW 서버가 뚫리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며 불같이 화를 냈지만, 원래부터 제대로 된 공격 기능이 없는 바이러스였다는 말에 겨우 화를 풀게 되었다.

그 외에도 상혁은 일런 모스크의 스페이스 X와 협업하여 가상의 로켓을 이용한 궤도권 전투를 벌이게 하거나, 부유 요새의 갑판 위를 배경으로 세 부유요새의 크루들이 모두 참여한 연합 방어전을 진행하게 하기도 하는 등 매 전투의 레퍼토리를 바꿔가며 방어전의 내용이 겹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프로그램의 내용을 기획했다.

그와 더불어, 파일럿들의 실력이 궤도에 오르자 훈련 시간을 줄이며 파일럿들에게 ‘번외 활동’을 허용하기도 했고.

그것은 단순히 웹 방송으로만 진행되던 드라마 프로젝트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것이었다.

***

“오늘은 마.침.내! 저희 쇼의 시청자 여러분들이 가장 출연을 원하던 게스트를 저희 스튜디오에 모시게 된 날입니다.

여러분! 방송이 개시되자마자 전 세계 실시간 시청자 수 기록을 송두리째 경신하며, 반년 넘게 역사상 최고의 SF 드라마 자리에서 당당하게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PTW의 웹 드라마 ‘퍼스티스트’의 간판 스타.

부유 요새 블러디 크림슨의 리더 오다 츠요시 씨와 레비아탄의 리더 마성준 씨, 그리고 세 부유 요새의 리더 중 중 유일한 여성이자 홀리 아크의 수장을 맡고 있는 박세경 씨를 뜨거운 박수로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

평소보다 10배는 힘찬 텐션으로 소리친 허먼의 소개가 끝나자,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 방청객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쏟아 내었다.

그리고 그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서, 3명의 남녀가 스튜디오 안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들어왔다.

등장 이후에도 사그라들 줄 모르는 박수와 환호성 속에서 쉽사리 인사를 시작하지 못하던 그들은, 허먼이 가까스로 방청객들의 흥분을 자제시키자 마이크를 들고 한명씩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부유 요새 블러디 크림슨의 리더이자 나이츠 홀리 프레일의 파일럿인 오다 츠요시라고 합니다.”

“부유 요새 레비아탄의 리더이자 나이츠 RebirthDP의 파일럿, 마성준입니다.”

“안녕하세요! 부유 요새 홀리 아크의 리더이자 나이츠 메모리아의 파일럿을 맡고 있는 박세경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렇게 허먼 씨의 쇼에 출연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마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실사화한 것 같은 느낌의 귀여운 여성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자, 스튜디오 안에서 다시 한번 뜨거운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그러자 허먼은 다시 팬들을 진정시키며, 마이크를 잡은 채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저 역시 방청객 여러분들이 흥분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지만, 종일 박수만 쳐서는 방송 진행이 되지 않으니 제 신호에 맞춰 빠른 진정 부탁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저희 쇼에서 준비한 3시간짜리 특집 방송을 즐거운 기분으로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리며! ‘The Herman Show’의 퍼스티스트 특집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와 환호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 열기는 허먼이 손짓을 하는 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사그라 들었다.

그렇게 자신의 통제를 잘 따르는 방청객들의 반응을 보며, 깊은 만족의 표정을 지은 허먼은 가장 먼저 현재 KOH 랭킹 1위 파일럿이자 박현민이 조종하는 즈라드와 좋은 라이벌 대결을 펼치고 있는 ‘세최파(세계 최강 파일럿)’, 마성준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마성준 씨. 갑작스럽습니다만 이 질문을 해달라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가장 많았기에 이 질문을 먼저 드리고자 합니다.

최근 퍼스티스트 시청자들의 입에 가장 뜨겁게 오르내리는 포인트가 바로 메인 파일럿인 성준 씨와 서브 파일럿인 아나트라간의 로맨스에 관한 질문인데요.

두 사람, 정말로 사귀는 게 아닙니까?”

“아닙니다. 사이가 좋아 보인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건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로서의 감정 같은 거죠.”

“동료라고 보기엔 그 이상의 뭔가가 느껴지는 관계던데요?”

“다시 말하지만, 그녀와 저는 세계 최강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료일 뿐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저를 한 사람의 남성이 아닌 순수하게 자신의 나이츠에 탑승한 파일럿으로만 대하고 있고요.

제가 원하더라도 그녀가 그런 관계를 원하지 않겠죠.

그리고 저에게는, 유가연이라는 또 다른 영혼의 소울 메이트가 있기도 하고요.”

“그렇쿤요. 아마 그 답변을 들은 전 세계의 아나트라 팬들은 자리에서 펄쩍 뛰며 기뻐할 거로 생각합니다.

다음은 오다 씨에게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최근 퍼스티스트에 출연 중인 멤버들의 외부 방송 출연이 많아졌다고 생각되는데, 그건 멤버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정입니까? 아니면 PTW의 가이드에 따른 결정입니까?”

“둘 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로, 저희는 하루아침에 일반인의 삶에서 벗어나 전 세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유명인의 삶을 살게 되었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몇 크루들은 약속된 1년의 프로젝트 기간 이후에도 이런 삶을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일부 크루의 경우 연예인 전문 매니지먼트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고요.

심지어 블러디 크림슨의 크루인 차현희 씨는 영화의 주연 역할도 제안받았죠.

그렇기에 지금의 방송 출연은 일종의 연습 과정 같은 겁니다.

프로젝트가 종료된 이후에도 이어질 저희의 커리어와, 그에 따른 삶의 방식을 미리 연습해보고 그게 적성에 맞는지 알아보는 과정인 거죠.”

“PTW에서는 프로젝트 종료 이후도 착실히 고려해서 케어를 해주고 있는 거군요.”

“예. 실제 웹 드라마는 36명의 퍼스티스트 참가자의 모습을 하루 한 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편집된 내용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PTW의 그런 배려들이 잘 보이지 않지만, 정말 이런 것까지 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이츠 파일럿이 된 이후의 삶까지 확실하게 케어 받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예를 들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방송에서 자주 나오는 모습인 나이츠 조종에 대한 훈련은 물론이고 원한다면 프로젝트 종료 이후 프로 구단에 입단할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미 저희 크루인 즈라더의 파일럿 박현민 씨는 얼마 전 창단된 아마존의 아너스 구단에 4년간 3천억을 받기로 하고 계약에 사인했죠.

여기 제 옆에 있는 마성준 씨는 5년간 4천억을 받기로 하고 테슬러 의 테크니카 구단과 계약했고요.

그 외에도 여러 참가자들이 프로젝트 종료 이후에 전 세계에서 창설되고 있는 프로 구단에 합류하기로 계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연봉 이야기가 나오니 드리는 말씀인데, 플레이어 출신 프로 파일럿에 비해 퍼스티스트 멤버들의 연봉 수준이 과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물론 퍼스티스트 멤버들의 나이츠 조종 실력이 하나같이 엄청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PRD로 KOHA를 플레이하며 상위권에 올라간 유저들의 실력도 보통이 아니니까요.

심지어 일부 게이머들은 퍼스티스트 멤버들보다 훨씬 조종 실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연봉 수준은 퍼스티스트 멤버들이 받은 제안에 비해 턱없이 적은 편이죠.

일부 팬들은 그것이 PTW와의 관계를 생각해 다른 기업에서 눈치껏 구는 과정에서 떨어진 떡고물이다 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만, 이러한 연봉 격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러자 이번엔 마성준이 끼어들어 허먼의 질문에 답변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리죠.

우선 지금 저와 계약을 마친 테슬러의 테크니카 구단이 제시한 연봉은, 당연히 제 조종 실력이 마음에 들어서 올라간 금액도 있지만, 제가 PTW에게 약속받은 전용기에 대한 투자도 겸하고 있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전용기는 개인이 구매하려면 조 단위의 금액이 드는 비싼 물건이죠.

싸게 구매하려면 못할건 없지만, 그러려면 일단 월드 파이널에서 우승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현재 밀려있는 민간 주문 건과 퍼스티스트 멤버들의 전용기 제작 일정까지 고려하면, 아마 올해 월드 파이널에서 우승하더라도 전용기를 인도받는 시기는 내년 월드 파이널 즈음이나 되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퍼스티스트 멤버들은 다르죠.

저희는 프로젝트 종료 시점까지 생존해있기만 하면, 각자 타입에 맞는 전용기를 제작 받기로 PTW에게 약속받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전용기가 가지는 가치는 아시다시피 민간 시세로 1조 이상이며,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웹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네임 벨류까지 더한다면 퍼스티스트 멤버들의 가치는 더 올라가죠.

게다가 프로젝트가 종료된 이후, 모두가 각자 소속된 구단에서 프로 활동을 시작한다면, 얼마 전까지 서로의 등을 지키며 최고의 동료였던 사람들이 경쟁자가 되어 아레나의 필드 위에서 싸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대결은, 저희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전 세계의 수많은 팬들에게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되겠죠.

상상해보세요.

내년에 대전에서 펼쳐질 1회 KOHA 월드 파이널에서, 결승전 자리에 박현민 씨와 제가 각자 전용기를 타고 맞붙는 경기를.

그 존재만으로도 엄청난 이슈를 몰고 올 매치가 되지 않겠어요?”

“확실히 그렇군요.

겨우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저희 팬들은 웹 드라마를 통해 여러분의 루키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성장을 매일같이 지켜봐 왔죠.

지금은 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나이츠 파일럿이란 직업에 몸담고 있는지, 조종 스타일은 어떤 스타일인지, 그가 쓰는 나이츠는 어떤 세팅으로 되어있는지 줄줄 외울정도로.”

“사실 그것이 일반 스포츠와 나이츠 리그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새로 생긴 스포츠는 팬층이 생겨나는 속도가 느린 편이지만, 나이츠 리그는 시작부터 글로벌 인기 스포츠가 되기 위해 기획된 스포츠이죠.

그와 함께 방영된 웹 드라마는, 나이츠 조종이나 KOHA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고요.

다들 PTW의 CCO이상혁을 천재라고 부르지만, 저희가 매일 체감하는 그의 천재성은 상상 이상입니다.

그는 그 많은 프로젝트를 관리하면서도 언제나 열정적인 모습으로 매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쏟아내죠.

그리고 이번 나이츠 리그나 웹 드라마 프로젝트도, 그리고 그와 연계하여 자연스럽게 흥행이 보증된 나이츠 리그의 출범도 모두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고요.”

그러자 세 사람 중 유일한 여성 파일럿인 박세경이 끼어들며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짜 감탄했던 게 나이츠가 한 대도 등장하지 않았던 6차 방어전 때였죠.

당시 바로 앞에 진행된 5차 방어전이 세 부유 요새 크루가 모두 참가한 연합방어전이 되면서 지속된 훈련으로 모두가 지쳐있어 방어전을 치를 여력이 없었는데, 상혁 씨는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퍼스티스트 멤버가 참가하지 않는 전자전 형식의 6차 방어전 카드를 꺼내면서 저희에게 장기 휴식을 제공해주었죠.

게다가 36명의 퍼스티스트 멤버 전원이 각각 바라는 이후의 삶을 대신 설계해주고, 그 과정까지 필요한 스텝을 하나하나 제공해주기도 하면서요.

뭐, 그래도 멤버들이 가장 원하는 소원은 이루어주지 않았지만···.”

“멤버들이 가장 원하는 소원이라···. 그게 뭡니까?”

“아마 36명의 퍼스티스트 멤버 누구에게나 물어도 똑같은 대답을 하겠지만, 저희가 가장 바라는 것은 프로젝트 종료 이후에도 지금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대전의 PTW 파크 지하에 있는 부유 요새 설비에서, 머신 스피릿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이츠 파일럿으로서의 삶을 이어나가는 거죠.

하지만 상혁 씨는 저희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들어주면서도 그 부탁만큼은 절대 들어주지 않았죠.

약속된 프로젝트 기한은 1년이며, 1년 이후 저희들은 각자의 삶을 찾아 PTW를 떠나야 한다고 말하면서요.”

그녀의 말을 들은 허먼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프로젝트 퍼스티스트에 투입된 자금은 천문학적이죠.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경제학적 가치 역시 상상을 초월하고요.

PTW에서 어떤 종류의 PPL도 허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여러분들이 부유 요새에서 사용하는 화장품 하나, 샴푸 하나까지 전부 팬들의 관심사가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이 마시는 콜라는 언제나 얼음이 담긴 유리잔에 담겨서 나오죠?”

“그렇죠.”

“코카콜라 CEO가 트윗으로 이렇게 밝힌 적이 있습니다.

퍼스티스트 멤버들이 마시는 잔에 코카콜라 로고를 박아주면, 그 즉시 일시불로 광고비 4백만 달러를 내겠다고요.

그리고 그 메시지에 맞서서 펩시에서는 이렇게 트윗했죠.

‘그들이 마시는 콜라가 펩시일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PTW에서는 로고를 바꾸지 못할 겁니다.’라고요.

여러분들이 격리된 공간에서 나이츠 조종에 집중하는 사이, 밖에서는 이렇게 여러분들이 마시는 콜라 하나 가지고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곤 합니다.”

“뭐, 사용하는 제품의 어떤 정보도 밝히지 않는 것이 이번 웹 드라마의 원칙이니까요.

4천억이 아니라 4조원을 준다고 했어도 상혁 씨는 받아들이지 않았겠죠.”

“어째서죠?”

“비록 저희가 사는 곳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대전이란 도시 지하에 있는 현실 속 공간이긴 합니다만, PTW에서는 그 공간이 시청자들에게 완전히 격리된 별세계처럼 느껴지길 원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미래에 부유 요새라는 시설이 생긴다면 그 안의 삶은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길 원하죠.

그래서 저희가 사용하는 모든 제품들은, 샴푸 통부터 치약, 면도기까지 전부 SF 스타일로 재디자인된 특주품입니다.

물론 그것을 위해 PTW 본사의 어딘가에선 샴푸의 뚜껑을 따고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을 가진 새 샴푸통에 샴푸를 옮겨 담는 직원이 존재하겠죠.

그러나 그런 작은 노력 하나하나가, PTW가 제작하는 웹 드라마의 디테일을 살려주고 저희에 대한 시청자들의 동경을 사게 만드는 겁니다.

‘아, 저 파일럿은 나랑 같은 샴푸를 쓰는구나!’가 아니라, ‘아, 저 파일럿이 쓰는 샴푸는 대체 어떤 샴푸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거죠.

저희가 먹고 쓰고 마시는 모든 것이 이 거대한 실사 드라마의 소품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안에서 현실의 물건이 노출된다는 것은,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깨부수는 역할을 하게 되겠죠.

마치 역사 드라마를 보는데 여주인공이 틴트를 꺼내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처럼요.”

“SF이기 때문에 몰입을 깨지 않으려는 노력이라는 거군요.

퍼스티스트가 그토록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어느정도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받는 프로젝트를, 단 1년만 진행하는 이유가 뭡니까?

시청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퍼스티스트 멤버들을 웹 드라마로 보고 싶어서 할 텐데요.”

“저도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봤죠.

그러니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뭐라고요?”

“무릇 위대한 사람은 박수 칠 때 떠날 줄 알아야 한다.”

“아···.”

“상혁 씨는 아무리 PTW라도 하나의 프랜차이즈를 그토록 오랜 기간 이끌어가면서 매번 신선함을 주기는 어려운 법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PTW는 KOH 프로젝트만을 위해 설립된 회사가 아니며, 팬들을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창조하고 개발하여 제공해야 하는 회사라고요.

이미 보았던 것과 비슷한 것, 혹은 내용이 훤히 예상되는 뻔한 내용의 엔터테인먼트를 상혁 씨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건 PTW의 직원들조차 마찬가지죠.

세상에서 가장 멋진 프로젝트를 몇십 개나 진행하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새 자극을 찾아 헤매는 것이 PTW의 직원들이니까요.

물론 어마어마한 투자비용이 들어간 설비인 만큼, 프로젝트 종료 이후에도 부유 요새의 설비는 이전처럼 계속 운영되게 될 겁니다.

다만 그때는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저희가 아닌, 미리 사용 예약이 된 나이츠 프로 구단의 선수들이나 월드 파이널에 참가할 각 국의 대표 선수들이 되겠죠.

제가 듣기로는 월드 파이널이 한달 정도의 일정으로 진행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저희가 운 좋게 소속된 구단에서 국가 대표가 될 수 있다면, 다시 한번 제가 쓰던 그 방에서 한 달 정도를 지낼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정도로 편한가요?”

“인류 문명이 편의성을 위해 모든 기술을 쏟아부은 것 같은 시설이 바로 부유요새의 설비입니다.

진짜로, 만약 PTW에서 철저하게 피지컬 관리를 해주지 않았다면 저희 모두 오늘 이 자리에 모두 세 자릿수 몸무게가 되어 방송에 출연해야 했을 정도로요.

거긴 진짜 이를 악물지 않으면 순식간에 인간을 타락시킬 수 있는 악마의 공간입니다.”

“하지만 프로젝트 퍼트티스트에 참가 중인 멤버 중에 살찐 멤버는 한 명도 없지 않나요?”

“그건 일단 나이츠 조종 훈련 자체가 엄청나게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매일 진행되는 트레이닝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저희가 입는 파일럿 슈트 바닥에는 체중을 감지하는 무게 센서가 있어서 일일 목표 체중을 오버하게 되면 담당 트레이너가 바로 알 수 있게 되거든요.

그렇다고 근육 거한이 될 정도로 훈련을 시키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몸에 달라붙는 파일럿 슈트를 입었을 때 보기 좋아 보이는 수준까지는 철저하게 체중 관리를 시키죠.”

“운동이란 건 어떤 사람들에겐 매우 지겹고 힘든 과정일수도 있는데, 용케도 다들 받아들이셨군요.”

“만약 그것이 덤벨을 들거나 러닝머신을 달려야 하는 일반적인 운동이었다면 몇몇 참가자들은 짜증을 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가 하는 훈련은 전 세계의 수많은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 사용하는 PRD-S라는 스포츠 트레이닝 전용 VR 머신으로 진행되죠.

그 안에서, 저희는 PTW가 저희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준 게임 형태의 운동 프로그램을 플레이하며 즐겁게 살을 빼고 근육을 붙일 수 있습니다.

사실 가끔은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일부러 운동 시간을 늘리기도 하고요.”

“운동조차 미래 지향적이라는 이야기군요.”

허먼은 부유 요새에서의 삶에 대한 시청자들의 질문을 몇 가지 더 던져준 뒤, 이번엔 각 출연자가 드라마에 출연하며 뱉었던 명대사를 직접 읽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자 오다와 성준, 세경은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몸을 배배 꼬아가며 자신이 그 대사를 했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부정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마성준 씨의 최고 인기 명대사 중 하나인 ‘너만 쓰러트리면 내가 세계 최강이다.’입니다.

이 대사는 147화에서 진행된 세 부유 요새의 합동 훈련에서, 즈라드의 파일럿 박현민 씨에게 마성준씨가 뱉었던 대사죠.

그때의 영상을 틀어드릴 테니, 같은 표정과 톤으로 이 자리에서 같은 대사를 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성준은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눈빛으로 ‘그 대사’를 말하는 자신의 영상을 보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대사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너··· 너만 쓰러트···. 아니, 진짜로 제가 저때 저렇게 말을 했다고요?

저 진지한 표정으로?”

“원본 영상 보여드릴까요?”

허먼은 마성준이 콕핏에 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현민을 향해 말하던 그 장면을 재생시켰다.

그러자 성준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영상을 보며 허먼에게 말했다.

“믿기지가 않네요. 진짜 했던 대사라니···.”

“딱히 성준 씨만 그런게 아닙니다.

퍼스티스트에 출연한 참가자 대부분이, 묘하게 웹 드라마 속에서는 현실에서 하지 않을 법한 대사를 남발하곤 했지요.

그래서 한때는 시청자들 사이에 이런 루머도 떠돌았습니다.

‘사실 시나리오가 없다는 것은 PTW의 거짓말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모두가 정해진 대사를 정해진 타이밍에 연기하는 게 아닐까?

실제로는 퍼스티스트 멤버들 조차 일반 게이머에서 선정된 멤버가 아니라, PTW에서 준비한 프로 연기자가 아닐까?’

사실 여러분들이 드라마 안에서 하는 말들을 보면 그렇게 의심할 만도 합니다.

보통 일반인 출신의 참가자라면, 아무리 진지한 상황이라도 ‘여기를 통과하고 싶다면 내 나이츠의 잔해를 밟고 가라.’ 같은 애니메이션 주인공이나 뱉을법한 대사를 하지 않으니까요.”

허먼의 설명을 들은 세 사람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는 세경이 세 사람을 대표하여 허먼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허먼 씨. 혹시 파일럿 슈트를 입고 실제 나이츠에 탑승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일이 바로 그겁니다 만은, 안타깝게도 PRD 안에서 간접 체험해본 것 외에는 실제 나이츠를 타볼 기회가 없었네요.”

“그럼 아마 그 감각을 이해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저희 퍼스티스트 멤버들은 현실과 격리된 공간에서 지내면서, 오로지 나이츠 조종사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하루의 상당 시간을 나이츠의 콕핏에 앉아 조종간을 잡으며 지내고 있죠.

그리고 그 일련의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이 전신 슈트를 입은 채 보내고 있고요.

보통 샤워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을 때 외에는, 저희 대부분이 항상 파일럿 슈트를 입은 채로 생활합니다.

그리고 그런 저희의 삶은, 시청자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애니메이션 주인공 같은 생활에 가까운 기분이 들고요.”

“말하자면 분위기가 강제로 여러분을 저렇게 만든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물론 저희도 이런 사석에서는 저런 대사를 내가 했었나? 하고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렇게 바깥에 나와 있을 때의 이야기죠.

사실 저런 대사가 ‘애니메이션 스럽다.’라는 감상은, 저희가 현실에서 저런 대사를 읊을 상황이라는 게 전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감상입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떼어내고 저희가 살아가는 삶의 흐름만을 본다면, 저 대사들은 지극히 저 상황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대사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 부끄럽게 느껴질지 몰라도, 저 때의 저희는 저 대사만이 저희의 진심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보면 대사라는 단어는 표현에 어울리지 않네요.

저건 그냥 저희가 뱉은 말일 뿐입니다.

대사는 연기자를 위한 것이죠.

연기자는 일반인이 살아갈 수 없는 상상속의 세계를 연기하는 사람들이고요.

저희는 다릅니다.

저흰 그냥 그 상상 속의 세계에 사는 주민이니까요.

그러니 저희에게 있어서 저런 대사를 한다는 것은 그 세계의 주민들인 저희에겐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죠.

오히려 저런 대사를 뱉을 만한 상황에 자주 처한다는 게 저희가 얼마나 재미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과 저희가 이런 사석에서 그 대사를 다시 읊을 수 있는가는 별개지만요.

저희가 말한 저 발언들이 연기의 ‘대본’이고 저희가 ‘연기자’라면 그것을 바로 재현하는 게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건 저희가 했던 ‘발언’일 뿐이고 저희는 ‘연기자’가 아니죠.

그래서 저 때 당시와 같은 상황이 되지 않으면, 저런 발언을 능숙하게 재현하기는 어려울 듯싶네요.”

“연기가 아닌 삶에서 나온 발언이라······.

그 역시 멋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전 세계 어린이들이 장래 희망 1순위로 꼽는 꿈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발언답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그럼 명대사 읊기는 여기서 멈추도록 하죠.

잘못하면 흑역사 재생하기 대결이 될 것 같으니까요.”

눈치 빠른 허먼은 곧바로 명대사 재현하기를 포기하고, 다음으로 준비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것은 퍼스티스트에 등장한 역대 방어전 영상을 돌아보면서, 당시 방어전에 참가했던 부유 요새 리더들의 코멘터리를 듣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코멘터리를 맡은 각 부유요새의 리더들은,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에피소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며 시청자들을 재미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저기서 방송에선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신기술이 등장했는데요, 연습도 없이 한 번에 어떻게 성공하신 건가요?”

“말씀드렸지만 지금 프로젝트에 참가 중인 파일럿 대부분은 프로젝트 종료 이후에도 프로 나이츠 파일럿으로서의 삶을 이어나가길 원하죠.

그리고 저희가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 어제의 동료는 미래의 적이 될 겁니다.

당연히 그때를 위해 다들 ‘비장의 한 수’ 정도는 연습해두곤 하는데, 저 때는 상황이 너무 다급해서 그 비장의 한수를 꺼내 쓸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물론 저 기술이 공개되자마자, 나머지 파일럿들은 곧바로 밤을 새워가며 대응책을 만들어냈죠.

아마 대회 때 같은 기술을 프로젝트 참여 멤버에게 사용한다면 큰 낭패를 보게 될 겁니다.”

“그런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기술을 공개한 거라는 거군요.

엄청난 각오가 필요했겠는데요?”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저희 멤버 대부분이 매번 새 기술을 연습하고 있긴 하지만, 보통 방어전 때마다 저희 실력에 맞춰 PTW에서 교묘하게 난이도를 올리기 때문에, 보통 방어전에 들어가면 있는 기술 없는 기술을 총동원해서 방어전에 임하게 되니까요.

지금의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방어전에서 팀 멤버 전원이 살아남는 겁니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전용기를 받아 프로젝트 이후에도 함께 나이츠 조종사로서 살아가는 거죠.

아마 제가 아니라 누가 저 상황이더라도 쓸 수 있는 비장의 기술이 있다면 당연하게 썼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허먼은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별세계의 삶을 살아가는 파일럿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떻게 시간이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미친 듯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철저히 준비했던 많은 과정들이 하나씩 종료되면서, 허먼은 약속된 방송 종료 시간이 다 되어 간다는 프로듀서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자 허먼은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이 자리에 참석한 파일럿들을 위해 준비했던 마지막 질문을 꺼내 들었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앞으로의 퍼스티스트의 행보와, 나이츠 리그에 대한 PTW의 계획에 대한 질문을.

“미래는 모르는 거라지만 지금까지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직도 앞으로 남은 반년 정도의 에피소드가 충실한 재미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아직도 매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볼 수 있는 PTW의 웹 드라마가 절반이나 남아있다는 소리이기도 하겠죠.

그러나 때때로 팬들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하거나 소설을 읽으면서도 남은 완결이 다가올 때 진한 아쉬움을 느끼곤 합니다.

정말 재미있는 게임을 할 때면, 지금까지 500시간 이상을 플레이했고 앞으로도 500시간 이상을 더 플레이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즐거운 경험이 더 이어질 수 없음을 진즉부터 아쉬워하곤 하죠.

때때로 정말 마음에 드는 소설을 볼 때면, 1권을 읽으면서도 이 소설이 몇 권이나 더 남아있는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많은 팬들은 프로젝트 종료 이후에도 여러분들을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접하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영화로, 때로는 나이츠 아레나의 필드 위에서, 때로는 각 멤버가 진행하는 개인 방송을 통해.

1년간 함께 울고 웃고 떠들었던 여러분들이 펼쳐갈 미래의 행보를,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걸어가고 싶어 하는 팬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 팬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살짝이라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미 아마존이 만든 프로 나이츠 구단에 스카웃 된 즈라드의 파일럿 박현민 씨나 테슬러의 구단에 스카웃된 마성준 씨의 정보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나머지 멤버들의 향후 계획은 베일에 싸여있으니까요.”

그러자 가장 먼저 홀리 아크의 리더인 세경이 웃는 얼굴로 자신의 계획에 대해 말했다.

“저는 일단 독립적인 나이츠 구단을 따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어요.

프로젝트 퍼스티스트의 여성 멤버들을 중심으로, 여성만으로 구성되어있지만, 남성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경쟁하는 프로팀을 만들고 싶거든요.

물론 거기엔 현민 씨나 성준 씨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파일럿들이 참가하지 못하겠지만, 저희가 만들 구단이 가지는 상징적 가치는 꽤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원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구성된 프로 로봇 팀이라면 스폰서로 나설 대기업은 얼마든지 있을테니까요.”

“사실 그런 컨셉의 팀이라면 경기력에 대한 걱정이 좀 앞서긴 하는데, 퍼스티스트 멤버가 주축이라면 그런 걱정은 필요 없겠군요.

이미 멤버 한명 한명이 웬만한 프로 나이츠 파일럿의 실력을 상회하고 있으니까요.”

“거기에 전용기의 서포트까지 받는다면 우승권을 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력적으로 박현민 씨가 참가하는 아마존의 프로 나이츠 팀이나 마성준 씨가 들어갈 테슬러 팀보다는 실력적으로 부족할지 몰라도, 그쪽 팀은 두 사람 외에 전용기를 가진 사람이 아직 없는걸로 알고 있으니까요.

반면에 저희가 만들려는 프로팀은 초창기 멤버 전원이 PTW에서 받을 전용기로 무장한 상태로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겠죠.

파일럿의 비쥬얼이나 나이츠의 비쥬얼이나, 어느 면을 보아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을만한 팀 중 하나가 될 거라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적인 나이츠 구단을 만든다는 엄청난 비용이 들 텐데,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입니까?”

“저희의 계획을 들은 상혁 씨가 저희를 도와주기로 하셨습니다.

물론 형평성 문제 때문에 PTW로부터의 직접적인 자금지원은 어렵다고 하셨지만, 대신 저희 팀에 관심을 가질 대기업 스폰서를 연결해주겠다고 하셨죠.

그리고 저희에게 약속된 프로젝트 참가의 개인 보상인 100억원의 보상금을 합치면, 초반 운영비 문제도 별문제가 없을 거고요.

무엇보다 그렇게 독립팀 형태로 참가하면, 아마 전 세계의 프로 스포츠 리그 중 가장 많은 시청자가 확보될 것으로 예상 되는 나이츠 리그의 거대한 시청료 수입을 나눠 받을 수 있죠.

PTW에서는 나이츠 리그 중계로 벌어들이는 수익 전부를 시청율에 따라 각 구단에 전부 지급하겠다고 선언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저희가 돈 때문에 독립 팀을 구성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가 팀을 만들려는 가장 큰 이유는, 프로젝트가 종료된 이후에도 멤버들이 함께 모여 앞으로도 계속 같은 꿈을 꾸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니까요.”

“그렇군요. 전원이 아름다운 젊은 여성으로 구성된, 거기에 실력까지 갖춘 전대 미문의 프로 게임 팀이라.

듣기만 해도 엄청난 팬층이 예상됩니다.

아마 저도 여러분이 만들 프로 팀의 열성 팬이 될 것 같군요.”

“훗. 그날이 되면 멤버 전원과 함께 허먼 씨의 쇼에 다시 방문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전력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그럼 포커스를 돌려서, 오다 씨의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SANY에서 창단 예정인 일본의 프로 구단에 입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일본 동경대에 새로 만들어질 나이츠 파일럿 관련 학과에 초빙 교수로 활동하게 되었죠.

비록 실물 나이츠를 일본에 가져가지는 못하겠지만, 제 전용기가 지급될 때 저에게 약속된 트레이닝용 나이츠를 동경대에 임대할 예정입니다.

임대료는 그리 크지 않겠지만, 일본의 나이츠 플레이어들이 실제 나이츠의 운영 감각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요.”

“성준 씨는 테슬러에서 창단한 프로 나이츠 구단과 계약하셨죠?”

“그렇습니다.”

“그럼 결국 프로젝트 퍼스티스트가 끝나면 멤버 전원이 PTW에서 떠나 각자의 길을 걷게 되겠네요.

남는 멤버는 한 사람도 없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PTW에서 조차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남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고요.”

“사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여러분의 존재 하나하나가 걸어 다니는 슈퍼볼 광고나 마찬가지인데, 그걸 쉽사리 포기하는 것은 이해가 안 가는 결정이긴 하네요.

사실 아직 절반 밖에 방송이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PTW의 웹 드라마 게시판에는 ‘시즌2’에 대한 요청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이미 수백만 명이 사인한 청원 게시판까지 마련되었고요.

혹시나 여러분들이 아닌 새 멤버들을 영입해서라도, 웹 드라마의 시즌 2가 제작될 희망은 없는 겁니까?”

아쉬운 듯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허먼의 질문을 들은 성준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는 이해가 가지만, 아마도 시즌 2는 절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지금도 웹 드라마 프로젝트의 내용 거의 전부를 PTW의 CCO이상혁 씨가 기획하고 있는데, 그 이상혁 씨는 슬슬 신작 준비를 해야 한다고 발을 빼고 있거든요.”

“성준 씨!”

그 순간, 다급하게 오다가 성준의 옆구리를 찌르자 성준이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그런 성준의 말 실수를 흘려듣지 않은 허먼은 눈을 반짝이며 성준에게 질문했다.

“신작이라. 아직 웹 드라마가 절반밖에 방송되지 않았고, 거기에 나이츠 리그는 지역 예선도 시작하지 못했는데, PTW에서는 벌써 신작을 준비하고 있는 겁니까?”

“이거 혹시 오프 더 레코드로 해 주실 수 있나요?”

“죄송한데 이거 지금 생방송입니다.”

“으아아아···. 제발 잊어주세요!

제가 이 말 한 걸 상혁 씨가 알면 전 끝이라고요!”

그러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하는 성준을 본 허먼이 다급한 목소리로 그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것은 자신의 쇼에 참석해준 게스트를 보호하기 위한 허먼 나름의 배려였다.

“곤란한 질문이라면 그것에 대해 더 묻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작을 개발 중이라는 건, 게임회사에는 그냥 밥을 먹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 많은 개발팀 직원들이 전부 유지보수나 컨텐츠 추가 작업만 할 순 없겠죠.

하나의 게임이 발매되어 흥행하는 와중에도, 개발사는 언제나 다음의 신작을 염두에 두고 개발을 진행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상혁 씨가 신작을 개발중이다.’라는 정보는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자연스러운 정보죠.

그 내용이 뭔지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니, 딱히 그것을 가지고 타박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자 겨우 진정한 표정을 지은 성준이 허먼을 향해 숨을 고르며 말했다.

“휴.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상혁 씨가 제 첫 방송 출연으로 허먼 씨의 쇼를 추천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다른 호스트 같으면 신작이란 말을 듣자마자 집요하게 질문했을 텐데, 허먼 씨는 배려가 넘치시네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 쇼에 출연한 게스트를 곤란하게 하지 않고 보호하려 노력하는 것은 쇼 호스트로서의 당연한 의무죠.”

그렇게 말한 허먼은, 능숙한 마무리를 지으며 오늘의 방송을 종료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허먼의 머릿속은 상혁이 진행하고 있다는 PTW의 신작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 보이는 ‘정점’의 자리에 있는 PTW라는 회사가, 그 정점의 자리에서 팬들에게 선보이려는 신작이 대체 어떤 게임일지 미친 듯이 궁금했기 때문에.

그러나 허먼은 그것에 대해 더 생각하는 것을 멈추기로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PTW의 정보를 다루는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PTW에서 숨기고 싶어 하는 신작의 정보를 빼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에.

게다가 지금은, 굳이 알 수 없는 신작에 기대지 않아도 끝없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게임들이 한창 물오른 재미를 뽐내고 있었고.

허먼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게임기를 켠 채 무슨 게임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가 언제였는지를 떠올렸다.

게임을 하고 싶어서 쇼파 앞에 앉았음에도, 딱히 아무 게임도 끌리지 않아 멍하니 TV만을 바라보고 있던 시절이 언제였는지를.

그것은 그가 PTW라는 회사를 알게 되기 전의 아주 오래된 시절의 기억이었다.

‘이제는 할 게임이 넘쳐서 문제네.

나에겐 그것이 언제나 PTW의 게임이긴 하지만.

아마 팬들도 비슷한 마음이겠지.

게임을 켜도 항상 늘 하던 경험만 해야 할 것 같아서 주저하던 마음이, PTW의 게임을 하게 되면서 언제나 오늘은 무슨 경험을 하게 될까 봐 두근거리게 되는 기분이 된 건.

아마 내 인생에서 내게 가장 큰 기쁨을 선물해준 존재는, 어쩌면 PTW일지도.’

잠시 그렇게 생각하던 허먼은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플레이 했던 PTW 게임들의 즐거운 추억을 돌아보는 와중에, 소중한 딸과 함께 게임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딸의 얼굴을 떠올린 그는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속으로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아무리 PTW가 좋아도 일단 1픽은 내 딸이지.

내 딸이 내게 준 기쁨이 1위.

PTW 게임은 2위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허먼의 마음 속에 소중한 아내의 존재는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었지만, 허먼은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PTW의 게임이란, 아내의 존재보다 더 큰 기쁨을 주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 감정은,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PTW 팬들이 느끼고 있는 공통된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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