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76화 (477/485)

< 476. 데자뷰 >

PRD의 보급이 더욱 가속화되고, 나이츠 리그가 전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가 되면서 PRS를 입은 채로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처음엔 SF 영화에나 나올법한 전신 슈트를 입고 쇼핑 카트를 미는 것은 꽤 용기를 요구하는 행동이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어색해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PTW의 지속적인 마케팅을 통해 그 모습도 이제는 일상적인 생활의 모습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거기엔 PRS의 가장 큰 단점인 ‘입고 벗기 불편하다’는 부분을 개선하기 위한 상혁의 피나는 노력이 깔렸었다.

“PRS를 입고 밖에 나가는 게 어색하다고?

100년 전에는 여성이 겨드랑이털을 미는 게 전혀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어.

하지만 면도 제품의 새 수요를 창출해야 했던 질레트에서 겨드랑이를 면도한 여성 모델들의 사진을 미친 듯이 뿌려댔고, 이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존재해야 하는 겨드랑이털을 거북하게 생각하게 되었지.

PRS도 마찬가지야.

일단 그걸 입고 나가는 게 어색하지 않은 행동이라는 걸 지속해서 어필하면, 굳이 그걸 벗지 않고도 마트나 편의점에 쉽게 갈 수 있을 거라고.”

물론 그렇다고 상혁이 전신 쫄쫄이를 입은 채 거리를 걸어 다니는 셀럽들의 사진을 사방에 뿌린 것은 아니었다.

대신 상혁은 아주 간단한 복장 하나를 추가하는 것으로 실내에서의 PRS 착용과 실 외에서의 PRS착용 방법을 구분 지었다.

애니메이션 에반○리온의 극장판의 여주인공인 아스카가 입은 것처럼, PRS위에 걸쳐 입는 재킷 형태의 복장을 유행시킨 것.

수천 개의 와이어가 근섬유처럼 배치된 복잡한 내부 구조 덕분에 일부 제조사 외에는 생산할 수 없는 PRS와는 다르게, 단순히 일반 복장과 같은 기능을 가진 재킷은 수많은 의류 브랜드들이 뛰어들기 좋은 시장이었고, 곧 시장에는 온갖 메이커에서 만든 PRS용 자켓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심지어 PRD가 없는 사람도 유행 때문에 PRS를 따로 사서 입고 다닐 정도로.

애당초 PRD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화생활에 3천만 원 이상을 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처럼 통용되고 있는 시점에서, PRD 유저의 상징과도 같은 PRS가 일상복의 영역을 침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눈앞에 있는 수백 명의 사람이 하나도 빠짐없이 PRD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PTW 본사 로비에서 돌아다니는 수많은 직원을 바라본 매튜 브로니악은 황당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PTW 본사는 차원이 다르네.’

사실 그런 모습은 천하대에 다니는 대학생들이나 PTW 본사 직원들에게는 별로 놀랍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그는 달랐다.

그에게는 오늘이 PTW에 입사가 확정된 이후 처음 출근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매튜는 아직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PTW의 입사 제안을 처음 받았을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며 깊게 심호흡했다.

‘처음엔 보이스 피싱인줄 알았지.’

뜬금없이 걸려온 PTW 직원의 전화.

자신을 PTW의 개발자 중 한명이라 밝힌 그는 매튜가 리얼 엔진을 이용해 혼자 개발 중인 게임을 인상 깊게 플레이해 보았다는 말과 함께 혹시 기회가 된다면 PTW에 입사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았고, 그를 허락하자 매튜의 워크 패스트 계정으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보내주었다.

이어진 면접에서, 매튜를 맞이한 것은 메일을 보낸 PTW의 그 개발자였고, 매튜는 면접의 마지막 순간 용기를 내어 그녀를 향해 어째서 자신에게 입사 제안을 한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가 개발 중인 게임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절대 PTW같은 초거대 개발사에서 개발할 만한 게임은 아닌, ‘매니악 성향’ 그 자체인 게임이었기 때문에.

“제가 개발 중이던 게임을 보고 입사 제안을 하셨으니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만들고 있던 게임은 절대 대중적 취향의 게임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좋게 평가한다 해도 리얼엔진을 다루는 제 실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고요.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부분이 조금 걱정스럽습니다.

설마하니 PTW에서 5년 넘게 미니카 경기를 소재로 한 게임을 만들고 있을 리도 만무하고, 제 실력을 보고 연락을 주었다고 생각하기엔 그리 좋은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러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매튜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맞아요. 솔직히 말해서 리얼 엔진이 아마추어도 AAA급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된 엔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특별한 기술 없이 기본 지원 기능만 사용하여 만들어진 매튜 씨의 게임은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죠.

리얼 엔진이 대중화 된 이후로 정말 많은 개인 개발자들이 마켓에 등장했고, 그중에는 PTW 직원들만큼이나 뛰어난 개발자들도 많으니까요.”

“그럼 게임의 내용을 보고 연락을 주신 거라는 말씀인데, 설마 PTW에서 5년째 개발 중인 게임이 제가 만들고 있던 미니카 게임과 비슷한 내용을 가진 게임이라는 겁니까?

물론 미니카를 사랑하기에 게임까지 만들 정도의 미니카 너드로서의 저에게는 엄청나게 기쁜 소식이지만, 반대로 PTW의 모든 작품을 빠짐없이 플레이한 팬으로서의 저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정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토록 오랜 기간 침묵하면서 수천 명의 개발자가 모여서 만든 게임이 고작 미니카 대회를 다룬 게임이라고 한다면요.

소재에는 언제나 그에 걸맞은 스케일이란 게 있죠.

그리고 미니카 경주는 PTW라는 기업에서 메인 타이틀로 밀기에는 이미 다 죽어버린 소재나 마찬가지고요.

KOH 이후에 그 오랜 기다림을 참고 맞이하는 게임이 미니카를 소재로 하는 게임이라는 소식을 들으면, 대부분의 팬들은 아마 PTW가 정신이 나갔다는 반응을 보일 겁니다.”

“그렇겠죠.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대답하기가 모호하네요.

어떻게 대답하든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대답이 될 테니까요.”

“그게 무슨 의미죠?”

매튜의 질문을 받은 여성이 싱긋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반짝이는 검은 색 눈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가 만들고 있는 게임은 미니카 관련 컨텐츠가 들어‘갈 수도 있는’ 게임이지, 그게 무조건 들어가는 게임은 아니니까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매튜는 그녀가 말한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의 의미를 마치 그가 개발할 미니카 관련 컨텐츠가 정식 게임 속에서 ‘○과 같이’ 시리즈의 미니카 파트 같은 개념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전 세계 수천만, 어쩌면 수억 명이 플레이할지도 모르는 게임의 한 부분을 맡아서 개발할 수 있다는 의미처럼 생각되었고.

그 제안에 매력을 느낀 매튜는 그녀가 내민 계약서에 사인했다.

설사 그가 PTW에 입사해서 만들 게임이 그가 지금까지 만들던 게임과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된다 하더라도, 게임 개발자로서 PTW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의 메리트가 있는 결정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매튜는, 그녀가 말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PTW에 입사하고 다시한번 만난 그녀에게 프로젝트 AWC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후에야 이해하게 되었다.

***

PTW 본사에 들어온 이후, 매튜는 PTW라는 회사가 가진 특이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게임 회사와는 다르게,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직원들은 어프렌티스 등급 직원이든 마스터 등급 직원이든 어느 한 명 상관없이 모두 PRD가 갖춰진 개인 작업실을 배정받고 있었다.

그것도 안에서 직원이 게임을 하는지 아니면 잠을 자고 있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완전히 격리된 작업실을.

그것은 작업자들 간의 소통이 완전히 차단된 독방 같은 이미지를 주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러하지 않았다.

거대한 환기 시설과 개별적으로 연결된 공조 설비가 항상 개발자들의 작업 공간에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었고, 천장부터 바닥까지 모든 벽면이 대형 LED 모니터로 구성된 작업실 벽은 개발자가 원하는 환경에 맞춰 공간 내부의 실내장식을 마음껏 변경할 수 있게 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게다가 PRD가 놓여 있는 공간을 제외하더라도 개인 물품을 놓을 수 있는 캐비닛이나 Non-VR 작업을 위한 컴퓨터가 놓여 있는 책상 등 다양한 최고급 사무용품들이 대기업의 임원 사무실 같은 쾌적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파티션으로 나뉘어진 좁은 공간에 앉아 모니터만을 바라보며 개발하는 모습을 떠올린 매튜는 자신에게 할당된 방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보며 사수인 클레어 데인즈에게 물었다.

“이게 진짜 제 방입니까?”

“오프라인에서라면 그렇습니다.

물론 주 작업이 이루어지는 버츄얼 스튜디오에도 매튜 씨의 방이 준비되어 있고, 그 방은 이것보다 더 화려하고 크지만요.

저 캐비닛 안에는 매튜 씨만을 위해 준비된 PRS와 딥 다이버가 들어가 있습니다.

출근하시면 옷을 갈아입으시고, PRD에 들어가 그날 할당된 작업을 진행하시면 되고요.

그리고 PTW 내부의 어떤 공간에서든, 딥 다이버를 쓰고 있으면 AR 어시스트를 부를 수 있습니다.

아마 다루기는 쉬우실 거예요.

신입 분들이 적응하기 쉽도록, 회사 내부에서 사용하는 AR 어시스트는 리얼 엔진의 서포트 AI와 같은 것을 쓰고 있으니까요.”

“코렛트 말씀이십니까?”

“예. 물론 리얼 엔진에서와 마찬가지로 매튜 씨가 원하신다면 본인 취향에 맞는 어시스트 AI를 선택하여 고를 수 있죠.

말하자면 이 공간은, PRD를 통해 접속한 버츄얼 스튜디오 안이든, 아니면 딥 다이버를 쓰고 돌아다니는 본사 건물 안이든, 24시간 내내 개발 데이터에 접근하고 작업할 수 있는 환경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기능 파악하는 데만도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익숙해지면 정말 무서운 속도로 작업이 가능하죠.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요.

시스템? KOH 안에 있는 모든 무장에 대한 데이터 중 소모 전력 대비 데미지 비율을 DPS 순으로 정리해서 보여줄래?”

[작업자 클레어 씨의 데이터 정리 요청을 확인.

요청자의 현재 위치가 개인실이 아닌 어프렌티스 직원 매튜 브로니악의 개인실로 확인되었습니다.

해당 자료를 현재 위치로 전송할까요?]

“그렇게 해줘. 출력 매체는 종이로.”

[요청을 확인 완료. 해당 데이터의 정리 및 가독성 개선 중.

출력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러자 삐 소리와 함께 벽면의 한쪽에 사각형의 빛나는 사각형이 등장했고, 클레어가 그 사각형을 터치하자 마치 화면이 쪼개지는 것처럼 사각형이 열리며 그 안에 있는 문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클레어는 그것을 집어서 매튜에게 건넨 뒤 그를 향해 말했다.

“이런 식으로 필요한 데이터를 정리된 기획서 형태로 받을 수도 있지만, 딥 다이버를 쓰고 있다면 AR 이미지 형태의 기획 데이터로 전달받을 수도 있죠.

그리고 시간은 좀 걸리지만, 방 안에서 룸서비스 시키듯 음식을 주문할 수도 있고요.

다 먹은 건 다시 여기에 집어넣고 처리를 부탁하면 시스템이 알아서 처리합니다.”

“무슨 SF 영화의 한 장면 같네요.

대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겁니까?”

“뭐, 사실 뒷 과정이 모두 생략되어서 그런 거지, 실제로는 매우 간단하고 무식한 방법을 취하고 있어요.

각 공간 뒤에 워커 봇이 이동 가능한 좁은 복도가 있고, 릴레이 포인트에서 지정된 위치까지 워커봇들이 물건을 옮기는 거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거나 사용한 PRS를 빨아달라는 요청까지.

이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이 요청들은 워커봇들이 처리합니다.

물론 그들은 로봇이니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작업자들의 요청에 대응하고요.”

“멋지네요. 아직 일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이 회사에서 뼈를 묻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정도로 놀라기는 일러요. 버츄얼 스튜디오 안의 공간은 더 멋지니까.

매튜 씨는 리얼 엔진을 사용한 지 얼마나 되셨죠?”

“한 3년 정도 사용한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직업이 있어서 그렇게 긴 시간을 사용하지는 못했지만요.”

“원래 직업은···. 시스템? 매튜 씨의 이력서 사본을 보내주겠어?”

[작업자 클레어의 개인 정보 서류 요청을 확인.

위치는 종전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해당 자료를 같은 양식으로 현재 위치로 전송할까요?]

“아니, 이번엔 벽 쪽 스크린에 띄워줘.”

“이력서도 나름 개인 정보인데 이렇게 구두 요청으로 확인이 가능합니까?”

“원래는 안 되지만 저는 매튜 씨에게 입사를 추천한 당사자이고 그에 따라 면접관 자격이 함께 부여되어 있어서 일정 기간 자료 검색이 가능한 거죠.

매튜 씨가 제 이력서를 보고 싶다고 요청하면 시스템이 개인 정보 보호를 이유로 거절할 겁니다.”

“그런 부분까지 잘 만들어져있군요.”

그녀는 매튜의 개인실 벽에 띠워진 그의 이력서를 읽고 매튜에게 말했다.

“원래는 하비샵을 운영하셨네요?”

“예.”

“어떤 종류의 하비샵이죠?”

“원래는 프라모델 위주로 판매하는 상점이었는데, 나중엔 게임도 팔고 피규어도 팔고 이것저것 팔게 되었습니다.

바뀌는 유행에 맞춰서 파킷몬 카드도 팔았었고, 그때그때 파는 건 항상 달랐죠.

하지만 주력 상품은 언제나 미니카였습니다.”

“지금은 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 않아요?”

“그렇긴 하죠. 사실 그게 좀 아쉬운 부분이긴 했습니다.

제가 미니카에 빠진 것은 어릴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 때문인데, 결국 깊이 파고들게 되면 애니메이션에 나왔던 멋진 외형의 바디는 다 버리고 뼈대만 남은 미니카를 쓰게 되니까요.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공기역학적 디자인을 가진 기체를 가지고 상대를 압도하거나 하는 전개가 나오지만, 실제로 플라스틱 바디는 무게만 나가는 껍데기에 불과하니까요.

그래서 극한의 속도를 추구하다 보면, 결국 샤시와 배터리, 모터나 롤러같은 필수 부품만 제외하고는 극한까지 무게를 줄인 본체를 가지고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그런 머신들은 너무 빨라서 멈추게 해야 할 때는 손에 스펀지를 대고 멈추게 해야 다치지 않을 정도로 빠르죠.

물론 그것도 나름의 재미라고 할 수 있지만, 전 무게가 좀 더 나가고 속도가 느리더라도 원본 디자인이 남아있는 바디를 사용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쪽이 로망이 좀 더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개발하던 게임에서는, 그런 이유로 원래의 미니카에 적용되는 물리법칙을 크게 왜곡시켰죠.”

“어떤 식으로요?”

“배터리 무게로 인해 발생하는 접지력을 크게 줄여서 실제 경기처럼 외장을 제거할 경우 십중팔구 코스 밖으로 튀어나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본체의 디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운 포스나 미니카 후방에 발생하는 와류 현상의 세기를 크게 올렸고요.

그리고 통상적으로는 발생하지 않는 샤시 프레임 파손이 크게 발생하도록 적용되는 힘도 증가시켰습니다.

내구도를 위해 무게를 더 늘리지 않으면, 경기 중 본체에 전달되는 충격을 미니카가 버티지 못하게 말이죠.

현실이라면 미니카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그 정도 충격량으로 플라스틱 바디가 부서질 정도의 힘은 받지 않지만, 게임 속 세계니까 그런 법칙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현실에서의 미니카 세팅보다 훨씬 세밀하고 생각할 게 많은 미니카 경주를 재현할 수 있었고요.

현실에서 미니카에 무거운 티타늄 프레임을 적용하는 것은 미친 짓이지만, 제 게임 속 세계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 됩니다.

쓸데없이 무게만 늘어나는 쇼크 업소버를 다는 것도, 심지어 각 바퀴당 한 개씩 모터를 4개나 다는 미친 플레이도 제 세계에서는 모두 나름의 강점을 가진 유효한 세팅이 되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되지 않습니까?”

“뭐, 현실 속 미니카의 특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냥 현실 속 미니카를 가지고 놀면 되니까요.

제가 꿈꾸는 세계는, 손바닥에 올라갈 만한 크기의 사이버 포뮬러 같은 자동차를 마음껏 개조하고 가지고 놀 수 있는 그런 세계입니다.

미니카 주제에 제트 부스터도 달려 있고, 미니카 주제에 톱날도 달린, 그런 상상 속 세계 말이죠.”

“미니카를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랑합니다.”

“그럼 잘됐네요. 제가 매튜 씨에게 부탁할 것도, 바로 그 미니카와 관련된 업무이니까요.”

웃으며 말하는 클레어를 보며, 매튜는 드디어 참고 있던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대체 자신이 이곳에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런 매튜의 질문을 받은 클레어는 대답 대신 문을 향해 천천히 몸을 옮겼다.

그리고는 작업실의 문을 열며 매튜에게 말했다.

“매튜 씨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곳이 아니라 버츄얼 스튜디오 안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서 만나려면 저도 PRD에 접속해야 하니, 설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PRD에 접속하면 시스템 어시스트에게 ‘컨스트럭트’로 이동시켜 달라고 이야기하세요.

거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매튜는 그녀가 말한 ‘컨스트럭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말없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녀가 나가자마자 캐비닛에서 PRS를 꺼내 입고는 PRD안으로 들어가 버츄얼 스튜디오에 접속했다.

[어프렌티스 클래스 작업자 매튜 브로니악님의 접속을 확인하였습니다.

현재 매튜님이 참여 중인 작업 프로젝트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로컬 그룹에서 작업 중인 프로젝트들의 리스트를 띄워드릴까요?]

“컨스트럭트로 이동시켜줘.”

[활성화 중인 컨스트럭트 검색 중···.

현재 활성화 중인 컨스트럭트가 3개 검색되었습니다.

어느 컨스트럭트로 이동하시겠습니까?]

[클레어 씨가 접속 중인 컨스트럭트가 있어?]

[검색 수행 완료. 컨스트럭트 타입 ‘튜토리얼’에서 작업자 클레어 데인즈 씨의 접속을 확인.

해당 위치로 전송을 시작합니다.]

순간 눈부신 빛이 매튜의 시야를 가렸고, 매튜는 자신이 있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음을 알게 되었다.

태어나서 그가 처음 보는 것이 확실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공간에.

그 공간의 모습을 본 매튜는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클레어를 향해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먼저 이곳에 접속했던 수천 명의 개발자가 했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이거 매트릭스 아닙니까?”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 안에서, 낡은 TV 옆 붉은 의자에 앉아 있던 클레어가 씩 웃어 보였다.

그가 지금 그녀에게 던진 질문은, 그녀가 PTW에 입사하고 이 곳에 처음 접속했을 때 자신의 추천인에게 던진 질문과 100% 똑같은 질문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때의 기억을 상기하며 웃는 얼굴로 매튜를 향해 말했다.

“모양만 그런 거예요. 이 공간 안에서의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기존에 존재하는 매채 중 가장 가상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는 영화의 한 장면을 빌려온 것뿐이니까.”

“그리고 그 매체가 영화 매트릭스 1편이고요?”

“그런 셈이죠. 실제로 효과가 있잖아요?

이 공간에서 이 낡은 TV와 붉은 의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사람이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를 바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효과 하나는 끝내주네요.”

“그럼 분위기를 좀 더 살려볼까요?”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매튜는 그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매튜의 뒤쪽에서 그를 부르는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입니다.”

“모피어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에는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붉은 의자에 앉아 있지만, 검은 피부를 가지고 선글라스를 쓴 양복 입은 남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소리와 외형만요. 저는 지금 모피어스 모양의 아바타를 사용하고 있는 클레어 데인즈입니다.”

“저작권 같은 건 괜찮나요?”

“컨스트럭트는 외부에 노출되는 프로그램이 아닌 사내에서만 사용되는 프로그램이라 별문제가 없어요.

사실 이 공간의 모습도 원래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죠.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만들던 일부 직원들의 장난기가 발동하면서, 결국 현재는 이런 형태가 되어버린 거고요.

그냥 회사 직원들이 장난으로 씌워놓은 스킨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영화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분위기는 나네요.”

“정말 그런지 거울 좀 볼래요?”

“거울이 어디··· 아.”

눈앞에서 사라진 인물이 전혀 다른 외형을 가지고 등 뒤에서 등장하기도 하고, 조금 전엔 분명 존재하지 않았던 전신 거울이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옆에 놓여 있는 것을 보며, 매튜는 정말로 자신이 매트릭스 안에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거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단순한 느낌에서 확신으로 변하게 되었다.

거울 안에서 자신과 똑같은 자세를 취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원래의 매튜가 가진 외형이 아닌 매트릭스의 주인공인 ‘네오’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졸지에 키아누 리브스의 목소리를 가진 네오의 아바타를 조종하게 된 매튜가 당황하며 클레어에게 말했다.

“진짜 귀신놀음 같은 기분이네요.”

그러자 클레어는 이번엔 진짜로 영화 속 모피어스의 말투를 따라 하며 매튜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진짜 귀신놀음은 지금부터 시작이지.”

그리고는 팔을 벌려 자신의 주변을 가득 채운 하얀 공간을 가리킨 채 힘차게 소리쳤다.

“여기는 ‘컨스트럭트.’

원래 설계 당시 이름은 ‘브릿지’였고 전혀 이런 모양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영화 속 한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게 되어버린 꿈속의 공간이지.

그리고 이곳에서, 자네는 PTW가 5년 넘게 개발 중인 프로젝트이자 그 어떤 게이머도 상상하지 못한 환상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거야.

물론 그 프로젝트도 브릿지라는 이름에서 컨스트럭트라는 이름으로 바뀐 이 공간처럼, 원래는 다른 이름이 부여되어 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프로젝트이지.”

“그게 뭡니까?”

“프로젝트의 정식 명칭은 프로젝트 AWC.

이세계 제작기(Another World Creator)의 약자이며 유저가 원하는 어떤 게임 세계든 만들어 낼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게임’을 만드는 프로젝트일세.

하지만 누구도 그 프로젝트를 AWC라고 부르지 않지.

그보다는 더 어울리는 별명이, 이 프로젝트에 붙어 있으니까.

우리 PTW의 개발자들은 이 프로젝트를 부를 때 이렇게 부르네.

프로젝트 매트릭스(Matrix)라고.”

매튜는 자신이 인지도 못 한 사이에 자신과 클레어가 뉴욕 한가운데의 건물 옥상에 올라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모피어스의 목소리와 모습을 한 클레어가 얼빠진 표정으로 서 있는 매튜를 향해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럼 갈까?”

그렇게 말한 그녀는, 영화에서 보였던 바로 그 장면처럼, 말도 안 되는 거리를 점프하여 반대편 건물 옥상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광경은 마치 영화를 본 매튜에게는 마치 데자뷰처럼 느껴지는, 영화에서 본 ‘그 장면’과 완벽하게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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