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전직 시험 (1)
7화 전직 시험 (1)
*
태준은 의뢰소에 도착했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이 오고가고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아직도 제 자리다.
여전히 권태로운 눈을 하고 있는 의뢰소장 타호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조차도 태준을 보자마자 흠칫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놀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상처가 하나도 없어?'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물약으로 치료했을 수도 있겠지만, 입고 있는 옷 역시 너무도 깔끔했다.
조금도 찢겨지지 않았다.
피가 묻어 있긴 했지만, 그건 자신의 피가 아니라 오크의 피일 확률이 크다.
오크 전사와 싸움에서 놈의 공격을 받았다면 아마 저 천쪼가리는 이미 너덜너덜해져야 했을 테니까.
'믿을 수 없군.'
솔직히 반신반의 했다.
붉은 오크만 해도 말이 안 되는 난이도일 텐데, 오크 전사를 상대하겠다니.
코웃음을 쳤건만···.
'심지어 이렇게 빨리?'
속도도 너무 빨랐다.
이동 시간을 제외한다면, 전투 시간은 대략 5분이나 됐을까?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지?'
보고 있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태연하다.
그렇다면, 조금 전의 그 발언은 분명 자신감에서 기인한 발언이었겠지.
오히려 타호가 민망해 졌다.
'크흠. 민망하군.'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왜 그러지? 혹시 무서운가?
이 정도 실력을 가진 녀석에게 자신이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인 것인지···.
그 말을 듣고 이 준이라는 플레이어는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물론 정작 태준은 아무런 생각도 없었지만···.
태준은 대수롭지 않게 투구를 내밀었다.
붉은 색의 투구.
그리고 관자놀이 부분에서부터 'ㄴ'의 형태로 두 개의 뿔이 장식되어 있는 투구다.
"여기 있습니다. 투구."
"아, 음···."
멋쩍게 목을 가다듬은 타호가 그 투구를 받아들었다.
분명히 오크 전사의 투구가 맞았다.
"훌륭하군. 진심이야. 우선 조금 더 자세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어때?"
"좋습니다."
"그럼 나를 따라오게."
그렇게 말하며 타호는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고, 태준도 그 뒤를 따랐다.
*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군. 너무 충격적인 결과라서 말이지."
그 말에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반응이었으니까.
"아, 그렇지. 내 정신 좀 봐. 먼저 보상을 줘야겠지. 자, 마음껏 골라 봐. 여기에서 너에게 필요한 장비 하나를 선물할 테니까."
그러더니 타호가 말했다.
타호의 방에는 수많은 장비들이 가득했다.
태준은 망설이지 않고 무기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골라 든 무기는 꽤 마음에 들었다.
[타호의 건틀렛]
-공격력+33
-힘+2
-공격 속도+8%
-공격력+3%
건틀렛이다.
확실히 기본 너클보다는 착용감이 괜찮았다.
'지금 낀 기본 장비가 겨우 공격력 10짜리지.'
그런데 한 순간에 공격력이 3배 이상 증가했다.
추가 옵션도 달려 있다.
아주 마음에 쏙 드는 장비다.
타호는 태준이 고른 무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할 말이 남은 듯 했다.
물론 태준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있었다.
'전직 시험에 관한 거겠지.'
태준이 그토록 궁금해 하던 것.
이내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 혹시···, 투왕에 대해서 알고 있나?"
투왕.
처음 듣는 이름.
하지만, 있어 보인다.
무언가 엄청나게 강력해 보였고, 또 엄청난 고난이 예상되는 이름이었다.
그러니 태준은 자연스레 가슴이 뛰기 시작한 것이다.
"모릅니다."
그 말에 타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투왕은 이미 역사 속에 사라진 이름이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투왕은 대략 천 년 전, 세상을 공포에 물들였던 이름이지. 그는 제국을 통일한 황제의 절친한 친우였어."
"아···!"
뭔가 있을 것 같다.
황제의 친우.
하지만 사라진 이름.
그 뜻이 무엇이겠는가?
'숙청?'
황제가 무력을 시기한 나머지, 제국을 통일한 뒤 토사구팽.
그리고 그는 역사 속에 사라졌다···, 라는 그런 이야기.
"그는 어느 날 황제를 떠났어. 황제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은둔을 택한 거지. 황제에게 간청을 했다더군. 자신에 대한 모든 흔적을 지워 달라고 말이야."
'틀렸네.'
정 반대였다.
숙청이 아닌, 스스로 물러난 거였다.
하지만 그런 게 뭐 중요하겠나.
냄새가 난다.
심상치 않은 냄새가 말이다.
.
분명하다.
지금 타호의 이 대사가 시작된 건 어찌 되었건 아슬란이 태준에게 주었던 명패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타호가 말하고 있는 그 투왕이라는 이름은 태준을 다시 한 번 새로운 세계로 이끌 수 있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아슬란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새로운 세계로 이끌릴지도 모르겠다고.
타호가 태준의 표정을 읽어냈는지 묘한 웃음을 흘렸다.
"투왕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지만, 아직도 그의 유지를 잇는 자들이 있지."
"아!"
투왕의 유지를 잇는 자들.
남은 전설의 마지막 한 자락.
"혹시 그들을 만나 볼 생각이 있는가?"
게이머로서 포기 할 수 없는 선택지다.
"물론입니다."
"좋아. 이걸 받아."
그렇게 타호는 태준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그건 지도였다.
"이 지도를 찾아 움직여. 그러면 그들의 은거지가 나타날 거야."
"···감사합니다!"
태준은 지도를 받아들었다.
그 순간.
[자격시험]
-등급 : 전설
-투왕의 제자들의 은거지를 찾아 이동해라.
'전설?'
전설 등급의 퀘스트.
그걸 본 순간 태준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대박이다!'
*
"전설, 전설···."
없다.
지금 태준은 게임을 종료하고 전설 등급 퀘스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으나, 드러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당연하다.
전설 등급 퀘스트는 극비 중에서도 극비인 탓이다.
실제로 전설 등급 퀘스트 하나로 그저 그런 중소 길드에서 네임드 길드로 성장해 버린 케이스도 왕왕 있다.
물론 그런 건 천운 중에서도 천운일 뿐이고, 거의 대다수의 전설 등급 퀘스트는 상위 거대 길드가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
사실 그런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어차피 애매한 규모의 길드라면 전설 등급 퀘스트는 수행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지경이다.
난이도가 높으니까.
웬만한 실력과 스펙이 아니고선 감히 도전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난이도의 퀘스트가 바로 전설 등급 퀘스트가 아니던가?
심지어 전설은 한 번 실패하거나 클리어 하면 완전히 사라진다.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퀘스트라는 뜻이지.
그때, 태준은 영상을 찾았다.
"이건가."
전설 퀘스트에 관한 영상이다.
상위 길드에서는 길드 홍보용으로 전설 등급 퀘스트의 장면들을 공개하긴 했다.
물론 퀘스트 내용을 공개하는 건 아니다.
그들이 공개하는 건 어디까지나, 퀘스트 진행 과정 중 보스 몬스터 레이드 정도.
그 정도만으로도 화제성은 이미 엄청났다.
"얘는 3억, 얘는 6억···, 이건 10억이네?"
조회수다.
전설 등급 퀘스트라는 타이틀이 달리면 조회수는 기본 억 단위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플레이어나 몬스터에 따라 10억을 넘기는 것도 다수.
그런데 지금, 그런 퀘스트가 태준에게 주어졌다.
물론 태준이 조회수 때문에 흥분한 건 아니다.
태준이 원하는 건, 그저 게임을 하는 것.
게임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끝없이 시험하고, 도전하는 것뿐이다.
'전설 등급 퀘스트 보면···, 죄다 듣도 보도 못 한 몬스터들이 튀어 나오잖아.'
태준이 흥분하고 있는 건, 바로 그 점이다.
전설 퀘스트의 영상이 왜 인기가 많겠는가?
강력한 보스 몬스터!
게임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몬스터와의 싸움 때문이다.
그 난이도는 역시 사상 최악.
떨린다.
그 단어만으로도 태준의 가슴은 떨리고 있다.
태준은 키보드를 두드렸다.
투왕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서다.
'역시 없네.'
하지만 투왕에 대해 공개된 정보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어?'
투왕이 아닌, 비슷한 무언가는 존재했다.
제국의 8왕.
검왕, 마도왕, 창왕, 궁왕, 거왕, 수호왕, 암왕, 성왕.
각각 검사, 법사, 창술사, 궁사, 도끼 혹은 둔기, 탱커, 도적, 그리고 사제 혹은 성기사 계열인 듯 했다.
역시 빠진 건 격투 계열뿐이었다.
'대충 보니···, 무기 컨셉에 따라 나뉘는 건가?'
그래 보인다.
그리고 격투 계열만 빠져 있다는 건 역시 투왕이 잠적을 해 버린 탓일 테고.
중요한 건, 저들의 이름만 존재할 뿐 아직 그 무엇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
그렇다면, 태준이 투왕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것은 제국의 8왕, 투왕까지 합하여 9왕의 실마리를 찾아낸 최초의 인물이라는 말이겠지.
'확실히 냄새가 나는데?'
벌써부터 흥미롭다.
숨겨진 히든 피스를 찾아 낸 기분이다.
그 다음에 눈에 띈 건···.
"어?"
흑사자라는 길드에서 홍보하고 있는 한 플레이어의 데뷔전.
'이터널 월드의 선수···.'
태준도 아는 얼굴이었다.
당연하지.
그 바닥에 10년을 있었는데.
'쟤가 넘어오네.'
이미 이터널 월드에서 실력으로 정점에 도달했던 인물.
이터널 월드에선 나름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 인물이 라스트 엠파이어로 넘어온단다.
이렇게 되면 이터널 월드의 입자가 흔들릴 수도 있을 정도의 사건이다.
게이머들이 라스트 엠파이어로 유입되는 속도는 더 빨라지게 될 터.
'어후···.'
어쩌면 빠져 나온 타이밍이 기가 막혔을지도 모르겠다.
태준은 댓글들을 확인했다.
역시 반응은 파격적.
-저 사람 프로 게이머 아님?
-ㅇㅇ 쟤 이미 이터널 월드 정점임 ㅋㅋㅋ
-곧 스타플레이어 될 듯
-확정이지.
-와 나도 갈아타야겠네
-아직도 이터널 하냐? ㅋㅋㅋ
'재밌겠네.'
그런데 댓글 중, 다시 태준의 시선을 끄는 댓글이 몇 개 보였다.
-그 사람은 어디 소속이지?
-누구?
-그 있어 얼마 전에 타호한테 극찬 받은 사람 듣기로는 명패도 받아 왔다던데?
태준에 관한 이야기다.
소문이 안 날 수가 없다.
태준이 그 자리에 혼자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하지만 태준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으니 플레이어들이 궁금해 하는 것도 당연하다.
-혹시 흑사자 데뷔에 맞춰서 숨겨두고 있는 거 아냐?
-그러니까 뭐 맞불을 놓는다는 건가? 대놓고 흑사자 플레이어 데뷔를 깽판 치겠다, 그런 거야?
-와, 시발 재밌겠는데?
-헐 그거 진짜면 레전드네
'······.'
태준은 예상치도 못 한 일이 전개되고 있는 중이었다.
문득 그런 댓글을 보고 있으니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이터널 월드의 정점에 오른 플레이어의 실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지.
'나 선수 땐 얼굴도 못 쳐다봤던 놈이었지.'
그때 느꼈던 재능의 차이란, 태준을 절망케 만들었을 정도였으니까.
지금도 그럴까?
그건 모르지.
하지만 왜일까.
적어도 이 세계에서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작게 웃음을 흘린 태준은 몸을 일으켰다.
'게임 하자.'
끓어오르는 승부욕을 감히 주체 할 수가 없었다.
*
하운드는 벌써부터 흑사자의 데뷔전에 대한 기대로 뜨거운 상태였다.
"궁금하네, 그 정도 재능이면 얼마나 압도적일지."
"10초컷 가능하냐?"
"난 5초 본다."
"10레벨 짜리가 오크 대전사를 5초만에 잡는다고? 그게 말이 돼?"
"우리랑 같아? 97%면 신계라고, 신계!"
저것이 바로 97%의 동화율에 대한 인식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현재 공개된 97%의 동화율은 총 여섯 명 뿐이니까.
"그런데 그 사람은 누구지?"
"누구?"
"어디선가 몰래 육성하고 있다는 플레이어 말이야. 흑사자한테 맞불을 두려 한다는 그 사람."
"그래서 그 사람 동화율은 몇인데?"
"몰라. 그런데 내가 어디에서 들었는데, 동화율 98%일지도 모른다더라."
"개소리 하지 마! 무슨 98이야? 98이면, 랭킹 1위랑 동급이라는 거잖아?"
"진짜 비밀인데, 그 사람 몸값만 천 억이었대. 여러 길드가 모여서 천억 모아서 스카웃 했다더라."
"와, 미친. 이거 재미 좀 있겠는데?"
이어서 들려 온 이야기는 태준에 대한 이야기였다.
언젠가부터 퍼져나가기 시작한 소문이었다.
튜토리얼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고, 하운드에 등장하자마자 의뢰소장 타호의 사랑을 독차지한 정체 불명의 플레이어!
심지어 마침 흑사자 플레이어의 데뷔전과 겹쳐 소문은 새로운 소문을 끝없이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어이가 없군, 정말···.'
문제라면, 그야말로 엉터리 소문이라는 것.
거의 대다수는 그야말로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무니 없는 정보들 뿐이다.
태준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지금 당장 어그로가 끌려서는 곤란하다.
심지어 태준이 의도치도 않은 오해가 겹쳐진 어그로라면 더더욱 사절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투왕의 제자들을 찾아 움직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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