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누가 더? (1)
10화 누가 더? (1)
데뷔 무대를 구경하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모였다.
이 데뷔전은 일종의 신호탄이다.
이터널 월드가 왕좌를 내주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드디어 2년만에 라스트 엠파이어가 정상에 올랐음을 알리는 신호탄!
이미 저 남자를 시작으로 이전 수많은 게임의 프로 게이머들은 장르를 변경하여 라스트 엠파이어의 문을 본격적으로 두드리기 시작했으니까.
물론 그들 모두는 최소 95% 이상의 동화율을 가진 괴물들이다.
평범한 플레이어들로서는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을 만큼 높은 하늘 위에 서 있는 존재들.
당연히 그 자리에 뉴튜버들과 게임지의 기자들도 빠지지 않았다.
얼마나 빠르게 오크 대전사를 쓰러트릴까에 배팅하는 도박꾼들도 빠지지 않았다.
현재 가장 많은 배팅이 몰린 시간대는 30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30초는 걸릴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결국 30초를 넘느냐, 아니냐에 따라 많은 이들의 희비가 갈리게 되리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루스다!"
"하루야!"
흑사자 길드의 길드장과 부길드장도 직접 그 자리에 나섰다.
그야말로 흑사자의 총력을 기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루스는 황금빛 갑옷을 입고 있었다.
금발과 어우러진 황금빛 갑옷은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그게 바로 루스의 트레이드 마크다.
반면 그 옆의 부길드장 하루의 복장은 정갈했다.
하지만 그런 정갈한 복장 덕분에 그녀의 외모는 더욱 더 빛을 발하고 있었다.
굴곡진 몸매는 말 할 것도 없다.
이내, 루스가 소리쳤다.
"이 자리에 와 주신 여러분께 모두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저의 이야기는 별로 궁금하지 않으실 테죠."
그 말에 구경꾼들은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자, 소개합니다. 저희 흑사자가 자랑하는 차기 랭커, 차기 스타, 이터널 월드의 전설! 후드!"
후드.
그게 바로 데뷔전을 치를 플레이어의 이름.
이터널 월드의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후드가 대중 앞에 섰다.
우레와 같은 환호가 쏟아졌다.
후드는 가볍게 자기 소개를 했다.
사실 소개가 필요 없는 인물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짧은 소개 뒤, 다시 루스가 소리쳤다.
"자, 그럼 여러분. 후드의 여정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면서···."
루스는 그 주변에 있는 흑사자 길드원들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오크 대전사와의 싸움이 시작되기 전, 먼저 흑사자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주변의 몬스터들을 정리했다.
신입의 데뷔전이 다른 몬스터에 의해 방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지금, 주변의 오크들이 모두 쓰러졌고, 루스가 소리쳤다.
"시작하겠습니다!"
그 외침과 함께 후드의 데뷔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순간이다.
동화율 97%.
그 기적적인 수치를 가지고 게임을 새로 시작한 혜성의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순간.
쿠아아아아!
오크 대전사, 놈은 후드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에도 후드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가뿐하지.'
물론, 후드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이보다 더 큰 무대는 이미 질릴 만큼 경험했다.
자신에 대한 한없는 믿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 긴장 할 이유가 없다.
후드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오크를 향해 검을 움직였다.
번쩍!
그의 검이 움직인 순간에 오크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우와아아아아!"
그것을 시작으로 후드는 오크 대전사를 압도했다.
능숙하게 오크 대전사의 공격을 막아냈고, 적절하게 반격을 가했다.
과연 97%의 동화율이다.
심지어 이너털 월드라는 게임의 정점에 올랐던 프로게이머인 만큼, 그의 피지컬은 상상을 초월했다.
-미쳤다!
-지금 치명타 연속 몇 번 터졌지?
-세 번 연속!
-돌았네!
-저게 어떻게 10레벨 ㅋㅋㅋㅋㅋ
그야말로 압도적인 피지컬.
그 모습을 보는 이들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저 남자가 머지 않아 스타 플레이어가 되어 엄청난 돈과 명예를 쓸어 담으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결국···.
쿠우웅!
후드는 오크 대전사를 쓰러트렸다.
-얼마나 걸렸어?
-몇 분이야
-분같은 소리 하네, 초로 세야지!
-떴다!
-27초!!!
-30초 언더다!
-오늘은 치킨이다!
-난 소고기 회식이다!
-아, 씨발 내 돈!
교차하는 희비.
그 사이에서 오늘의 주인공은 웃고 있었다.
물론 루스와 하루도 마찬가지다.
'그래, 그거지!'
'어머, 30초가 안 걸렸어?'
두 사람조차 설마 후드가 30초 안에 놈을 쓰러트리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후드는 해냈다.
'성공이다.'
'대박이네.'
루스와 하루는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확신했다.
이 시점에서, 후드라는 루키는 이제 막 라스트 엠파이어에 참여하게 될 그 어떤 후발주자들도 따를 수 없는 유리한 스타트를 끊었다고 말이다.
'어디서 이런 인재를 구해 오겠어? 응? 누가 우리보다 더 대단한 루키를 손에 넣을 수 있겠냐고.'
루스는 웃었다.
*
그 무렵 태준은 시험을 마치고 명진으로부터 보상으로 받게 된 스킬북의 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투왕류 비전술 – 파동(波動)]
-등급 : 전설
-투왕의 모든 기술의 근본이 되는 파동을 익힐 수 있는 스킬북이다. 이 스킬북을 사용하여 파동을 익힐 시, 히든 클래스 '파동권사'로 전직 할 수 있습니다.
'파동권사?'
이름부터 확실히 직관적이었다.
파동을 사용해 공격하는 권사라는 뜻이겠지.
'좋아 보이는데?'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전직하겠습니까?]
[전직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신중하게 선택해 주세요.]
전직에 대한 메시지.
그때였다.
'잠깐만.'
이 순간, 태준의 머리에 한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랭커···, 한 번 해 봐?'
라스트 엠파이어의 랭커.
이제 와선 수백 억을 쏟아 넣어도 불가능 할 것이라는 게 정설이라는 라스트 엠파이어의 랭커.
2년이나 늦게 게임을 시작한 주제에 감히 입에도 담을 수 없을 그 말을 지금 태준은 떠올렸다.
충동적인 생각은 아니다.
'어쩌면, 정말 가능할 지도?'
게임을 통해 극에 달한 자신의 재능과, 파동권사라는 히든 클래스가 더해진다면 어쩌면 정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냥 히든 클래스도 아니다.
'투왕의 비전 기술이잖아.'
투왕이 누구인가.
제국의 9왕 중, 모습을 감춘 한 사람.
그야말로 전설 속의 인물이 아닌가.
그가 남긴 기술을 습득 할 수 있다면, 이 스킬의 가치는 감히 돈으로도 헤아릴 수 없을 테지.
순간 가슴이 뜨거워진다.
주체 할 수 없는 투지가 다시금 타오르는 것 같다.
비루한 선수의 커리어를 가지고도 감독에 도전하려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라도 정점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결국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 라스트 엠파이어라는 무대에 서 있다.
심지어 태준에겐 그야말로 압도적인 재능이 주어졌다.
남들은 아직 알지도 못하는 히든 피스도 주어졌다.
'그러면 안 한 이유가 없지.'
그래.
말한 그대로다.
이미 기반 조건은 충분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일까?
'해 보자.'
태준은 결심했다.
올라가 보기로.
랭커.
저 하늘의 별이라 불리는 그 자리에 올라가 스스로 별이 되기로 말이다.
'전직 할 게.'
[파동권사로 전직했습니다.]
태준은 파동권사로 전직했다.
동시에, 태준은 파동권사의 첫 번째 스킬을 획득 할 수 있었다.
[스킬 '침투경'을 획득했습니다.]
침투경!
무협지에서 종종 등장하는 기술 중 하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겉이 아닌 속을 타격하는 기술 중 하나.
그 옵션은 이랬다.
[침투경]
-등급 : 투왕류 비전
-패시브 스킬
-방어력 30% 무시
-치명타 데미지 50% 증가
'사기네.'
등급은 투왕류 비전이라고 적혀있다.
그냥 전설보다도 있어 보인다.
거기에 방어력 30% 무시라는 옵션도 달려있다.
사실 여기까지만 봐도 이미 사기 스킬이라고 할 수 있다.
방어력 30%무시라니.
적의 방어구가 무엇이건, 방어력의 30%를 무시하고 데미지를 꽂아 넣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좋다.
방어 무시란 옵션은 세상 누구라도 탐낼 만한 옵션이다.
심지어 그게 패시브로 적용된다.
여기까지만 봐도 전설이란 등급이 아깝지 않을 지경이다.
그런데 진짜는 그 다음이다.
'치명타 데미지 50% 증가?'
입이 쩍 벌어지는 옵션이다.
물론 태준이 아닌 플레이어라면 이렇게까지 기뻐할 이유는 없을 수도 있다.
사실 보통 캐릭터의 치명타 확률은 기본 5%부터 시작이다.
치명타가 웬만해선 안 터진다는 소리다.
치명타 확률을 높이기 위해선 당연히 아이템을 세팅해야 한다.
그렇게 수억을 박아 넣으면 치명타 확률을 60%까진 끌어 올릴 수 있고.
70%이상까지 끌어 올리려면 십억을 넘겨야 한다는 말도 들려온다.
물론, 그렇게 되면 다른 능력치에 제한이 생길 테니···.
사실상 60%의 지명타가 한계라고들 이야기 한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다.
태준처럼 맹점을 공격하면 된다.
피지컬이 좋은 상위 랭커들은 치명타율을 대충 4~50%정도만 맞추고 나머지는 피지컬로 채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게 바로 중요한 점이다.
지금 태준은 원할 때마다 치명타를 꽂아 넣을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이건···, 너무 사긴데?'
순간 걱정이 될 정도다.
게임의 난이도가 너무 낮아져 버리는 건 아닐까, 라는 쓸 데 없는 걱정 말이다.
물론 그런 걱정을 할 이유는 없다.
이 게임은 넓다.
강한 몬스터는 수없이 많고 지금 랭킹 1위라고 할 지라도 혼자서 상대 할 수 없는 몬스터는 지천에 깔려 있다.
그러니 지금 태준이 걱정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잘 된 일이지.
더 강한 몬스터를 사냥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보상은 그게 다가 아니다.
[최초의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플레이어 최초로 히든 클래스 '파동권사'를 발견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 증가했습니다.]
최초 업적을 달성한 동시에 능력치까지 증가해 버렸다.
어쨌든, 이 한 번의 전직으로 태준은 엄청나게 강해졌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랭커가 되기로 결심한 이 시점에 태준에게 날개가 달린 셈이지 않은가!
"환영하네. 그대는 이제 투왕의 제자이자, 나의 제자가 된 것일세."
명진이 말했다.
어느새 그의 어미는 반말로 바뀌어 있었다.
당연한 말이다.
말 그대로, 태준 역시 명진의 제자가 된 것이니까.
"내 한 가지 물어도 괜찮겠는가?"
"물론입니다."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이 산에 계속 머물면서 우리와 함께 수행을 쌓아 갈 생각인가?"
태준은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니다.
내려가고 싶다.
랭커가 되겠다는 그 목표를 세운 이상, 조금이라도 빨리 산을 내려가 사냥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내, 태준은 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세상으로 나가 수많은 이들과 경쟁해서 승리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진짜 태준의 욕망.
"저에게 투왕의 기술을 가르쳐 주신건, 진심으로 감사드리지만 저는 이 기술을 사용해서 저 높은 곳에 오르고 싶습니다. 그게 제 진짜 속마음입니다."
그 말에 명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일세. 자네는 모험가이니까. 모험가는 모험가의 길을 걸어야 할 테지, 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라니, 당치 않네. 그 대신 나는 그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네."
"부탁 말씀이십니까?"
명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부디 이 세상에 다시금 투왕, 그 분의 무위를 알려주게. 이제 세상은 투왕의 존재조차 잊었으나, 우리가 이렇게 남아 있음을 우리 대신 그대가 알려 주길 바라네."
태준은 그 말에 답했다.
"맡겨 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투왕과 스승님의 이름을 드높이겠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자신이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 내리라는 다짐이 담긴 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시점에서 태준은 흑사자의 데뷔전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되었다.
'더 높은 곳을 봐야지.'
그래.
진짜 한 번 해 보자.
실력 좋은 루키 따위가 아니라 진짜 저 하늘의 랭커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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