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누가더? (2)
11화 누가 더? (2)
그때, 명진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지."
"예?"
"혹시, 자네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지 않은가?"
명진의 말에 태준이 눈을 크게 떴다.
끌리는 말이다.
당연하다.
시험해 보고 싶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다.
101%의 의미가.
101이라는 건, 100을 초월했다는 상징적 의미인지.
아니면 100이후의 또 다른 세상에 첫 발을 내디뎠다는 의미인지 말이다.
"어떻게 말입니까?"
명진은 한 곳을 바라봤다.
거기엔 동굴이 있었다.
"저 동굴은 투왕께서 마지막으로 눈을 감으신 동굴일세."
태준의 눈이 커졌다.
"자네. 처음 나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나?"
"···아뇨."
그랬다.
태준은 명진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 자네의 기감은 분명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였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가?"
태준은 조금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나도 모르네. 자네의 끝이 어디일지. 하지만, 저 동굴이라면 자네가 가진 재능의 끝을 알려 줄 수 있을 것이야. 지금껏 역대 제자 중에서도 저 동굴을 끝까지 통과한 사람은 한 손에도 꼽을 정도이지."
그 순간.
[퀘스트가 발동됐습니다.]
[마지막 시험]
-등급 : 전설
-동굴을 통과하라
-보상 : 동화율 한계 돌파
동화율 한계 돌파라니.
이미 98이냐 100이냐로 싸우고 있는 와중, 101%만으로도 기존 수치를 돌파한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이것조차 한계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돌겠네, 정말.'
이 게임의 동화율이 무엇이던가?
동화율이 높을수록 스킬의 숙련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능력치의 효율 역시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같은 힘 10이라고 해서 똑같은 10이 아니다.
동화율이 높아야만 그 힘을 온전히 사용 할 수 있다.
100%의 동화율을 가졌을 때, 힘 10의 힘을 온전하게 사용 할 수 있다.
101%라면, 10.1.
그렇게 계속 숫자가 높아져 200%의 동화율이라면?
같은 능력치라도 무려 2배의 효율을 뽑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직도 뭐가 남았다는 거야?'
그리고 궁금했다.
'내가 정말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명진의 말대로다.
동화율이란, 괜히 정해진 수치가 아니다.
한 인간의 뇌신경이 버텨 낼 수 있는 정도를 수치화 한 것이 바로 동화율.
'궁금해.'
태준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정말로 자신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
태준은 동굴에 들어왔다.
동굴은 어두웠다.
그야말로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칠흑 그 자체.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고, 한 발 앞이 땅인지, 구렁텅인지조차 알 수 없다.
당연히 대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재밌네.'
태준은 웃었다.
이 동굴의 컨셉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번 퀘스트의 보상은 동화율 한계 돌파다.
그렇다면, 이 던전을 클리어 하기 위해선 동화율로 인한 기감을 극도로 끌어 올려야 한다는 말이겠지.
'어차피 눈을 뜨고 길을 찾는 건 의미가 없다는 말일 테니···.'
태준은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소설에서나 보던 일을 직접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조금 설레기도 했다.
그렇게 눈을 감고 기감을 끌어 올린 그 순간···.
'아!'
느껴진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미세한 공기의 흐름과 먼 곳에서 들려오는 물방울 소리들이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태준은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발을 내디딘 순간, 작은 파문이 일었고 그 파문이 일으킨 파동을 통해 태준은 자신 주변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 낼 수 있었다.
'우선 계속 앞으로···.'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무렵.
찌직- 찌지지직!
어디선가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쥐?'
쥐의 울음소리 같다.
그런데.
퍼덕! 파다닥!
'날개소리?'
날개 소리가 함께 들려온다.
그 말은.
'박쥐다.'
박쥐가 날아오고 있다는 말이었다.
한, 두 마리가 아니다.
'족히 20마리 이상···.'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동굴 속에서 수십 마리의 박쥐가 한 번에 몰려든 다니.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상황이다.
자칫했다간 박쥐들의 공격에 사망에 이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즐거웠다.
이것이야 말로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절호의 무대였으니 말이다.
'자, 와라.'
태준은 자세를 취한 동시에 박쥐들과 자신의 거리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박쥐가 태준에게로 다가 온 그 순간, 태준은 망설임 없이 박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쾅!
일격에 둔탁한 타격음이 터져 나오며, 박쥐는 그 자리에서 풀썩, 하고 쓰러졌다.
'침투경 효과 좋은데?'
평범한 일격이었다면, 박쥐는 절대 지금 스펙으로 원 킬이 날 만한 녀석은 아니다.
하지만 침투경의 효과로 태준의 공격력은 급격하게 상승했고, 그로 인해 박쥐 한 마리를 원킬로 보내 버릴 정도로 강해진 것.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동화율 1%를 획득했습니다.]
'응?'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태준은 입을 쩍 벌리고 감탄사를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아.'
동화율.
플레이어들이 동화율이란 수치에 목숨을 거는 건, 말했듯 라스트 엠파이어란 게임이 동화율로부터 시작해서 동화율로 끝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금 태준이 박쥐 한 마리를 사냥한 순간 동화율이 1 증가했다.
그렇게 현재 태준의 동화율은 102%.
'그 말은, 박쥐를 잡을 때마다 동화율이 하나씩 증가한다는 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한 건지 스스로도 믿기 힘들 지경이다.
순간, 태준은 급격한 현기증에 균형을 잃을 뻔 했다.
'큭!'
동화율 102.
그 말도 안 되는 수치로 인해 태준에게조차 무리가 가해졌다는 뜻.
하지만 잠시였다.
순식간에 태준은 102의 동화율에 적응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쾅!
두 번째 박쥐 역시 태준의 공격 한 번에 시체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두 번째 박쥐를 사냥한 순간, 또 똑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동화율이 1% 증가했습니다.]
103이다.
소름이 돋았다.
아주 미세한 현기증이 올라왔다.
물론 그 역시도 금방 사라져 버렸다.
'하···.'
헛웃음이 흘러 나왔다.
그 순간에도 태준의 몸은 바쁘게 움직이며 박쥐를 공격했다.
쾅! 콰쾅! 콰앙!
박쥐들 역시 태준을 공격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으나, 태준은 녀석들의 공격을 재빠르게 피해냈다.
동화율이 계속해서 올라간다.
어느 시점부턴 미약한 현기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쿵!
결국 마지막 박쥐까지 처치한 순간, 태준의 동화율은 단번에 125%까지 뛰어 오르게 되었다.
'하아···, 하아···.'
숨을 쏟아냈다.
태준은 다시 한 번 전율을 느꼈다.
'또렷하게 느껴진다.'
동굴 내부가 이전보다 훨씬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아직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동굴 내부였으나, 말 그대로 느껴졌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몬스터가 또 다가오고 있는지 까지도.
'다음은···, 뱀이다.'
이번에 다가오고 있는 뱀은 대략 열 마리 남짓.
머지않아 뱀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쾅!
[동화율이 1% 증가했습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동화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이었다.
*
뱀, 늑대, 호랑이.
별의 별 동물들이 다 튀어 나왔고.
태준은 계속해서 싸워 승리했다.
그렇게 벌써 태준의 동화율은 무려 150%에 다다랐다.
'버틸 수 있어.'
태준은 생각했다.
150의 동화율.
그조차도 아직 태준의 한계가 아니다.
변화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레벨도 올랐고, 숙련도도 올랐어.'
[준]
-레벨 : 10
-힘 : 20+13
-민첩성 : 30+11
-체력 : 10+11
-마력 : 10+11
-포인트 : 0
[스킬]
-너클 마스터리 LV.4
-부스터 LV.3
-침투경
어느덧 10레벨이 된 태준.
너클 마스터리와 부스터의 레벨도 1씩 증가했다.
[너클 마스터리]
-레벨 : 4
-공격 속도+16%
-공격력+8%
-레벨업 당 힘 1 증가
[부스터]
-레벨 : 3
-일시적으로 민첩성을 증가시켜 공격 속도, 이동 속도를 증가시킨다.
-민첩성+20%
-공격력+20
-지속 시간 : 15초
-재사용 대기 시간 : 23초
각 스킬의 변화도 뚜렷하다.
너클 마스터리는 공격 속도가 2% 증가했고, 공격력이 1% 추가로 증가했다.
부스터는 변화가 훨씬 더 컸다.
민첩성은 5%가 추가로 증가하여 이제 총 민첩성 20%를 증가시켜 주는 말도 안 되는 스킬로 변했다.
거기에 공격력도 10을 추가로 증가시켜 준다.
'역시 다 동화율 덕분이지.'
말 그대로다.
동화율이 높은 덕분에 스킬의 레벨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사신 난이도의 시련 역시 제 몫을 확실하게 해 주고 있을 테고.
꿀꺽.
급작스러운 변화에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나, 태준은 기뻤다.
이 게임을 시작한 것이 너무도 만족스러웠다.
이 게임이 아니었으면,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했을 재능의 끝을 맛볼 수 있을 순간이 아닌가.
태준은 웃으며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조금 더 걸어 나갔지만, 몬스터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끝인 건가?'
조금 아쉽긴 했다.
동화율이 정확히 150%에서 멈춰 버렸다는 사실이 말이다.
물론 여기에서 더 욕심을 낸다는 게 미친 짓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금 더.
조금 더!
정말 그 끝에 다다르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렇게 조금 더 앞으로 걸어간 순간.
태준은 자리에서 멈췄다.
'없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앞으로 뻗어 있던 길이 한 순간에 끊겨 있었다.
'······.'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혹시 길을 잘못 들은 건가?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지금까지 길은 쭉 한 길로 나 있었다.
어둠 속이라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환경이긴 했지만 자신의 확신에 의심 따윈 없다.
이미 동화율 150에 다다른 기감이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길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
태준은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 태준의 바로 앞에는 벽이 하나 가로막고 있었다.
'이 벽을 뚫어야 한다는 건데···.'
캉!
태준은 가볍게 벽을 두드렸다.
두껍다.
대충 봐도 족히 수십cm의 두께는 되어 보이는 벽이다.
그 뿐인가?
벽을 타고 오르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벽은 그야말로 동굴 전체를 완전하게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어디로 파고들 쥐구멍도 존재하지 않는다.
'흐음···.'
다시 생각에 잠겼다.
'답은 분명히 있다.'
언제나 그랬다.
아무런 해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분명 뚫고 나갈 길이 있는 법이었다.
그 순간.
'그렇구나.'
태준은 웃음을 흘렸다.
정답을 찾아낸 듯하다.
애초에 지금까지 해 왔던 시험들을 생각해 보면 답은 어렵지 않게 나온다.
'기감을 활용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시험이 그랬다.
이 동굴의 시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 벽을 뚫고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겠지.
'자, 그럼···.'
태준은 벽 위로 손을 얹은 채 기감을 끌어 올렸다.
느껴야 한다.
분명히 이 벽 어딘가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대략 10초 정도 기감으로 벽을 살피던 중.
'있다.'
태준은 발견했다.
벽의 한 쪽.
다른 부위에 비해 특히나 연약한 부분을 말이다.
"그렇지."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태준은 숨을 골랐다.
그리고 벽의 약한 부분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쾅!
경쾌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지금 태준의 일격엔 침투경의 위력이 더해졌을 터였다.
침투경이 무엇인가?
겉면이 아닌, 그 내부를 타격하는 기술.
투쾅!
이내 그 내부에서부터 둔탁한 타격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쩍- 쩌저적!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준은 웃었다.
자신의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은 순간이었다.
태준은 다급히 발을 굴러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태준이 물러나기 무섭게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릉! 콰콰콰콰쾅!
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굉음은 한참이나 이어졌고 태준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뚫렸다.'
벽이 뚫렸다.
동시에 저 먼 곳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 부셔.'
꽤 오랜 시간 어두운 동굴을 관통하느라 아주 미세한 빛임에도 눈이 부셔왔다.
하지만 괜찮다.
빛이 보인다는 건, 태준이 마지막 시험을 통과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동화율 폭주! 재능의 한계에 도전한 플레이어!]
[시스템이 한계치에 해당하는 동화율을 부여합니다!]
[동화율 200%를 획득했습니다!]
'미친.'
태준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동화율 200%.
150%에서 단번에 200%까지 뛰어 올랐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남들은 98이니, 97이니 떠들어대고 있는 지금 200%라니.
그 수치가 너무도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순간, 급격한 현기증이 몰려왔다.
갑작스레 폭등해 버린 동화율 때문이다.
귀에서는 이명이 울려 퍼지고,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태성의 괴물 같은 뇌신경은 그러한 동화율조차 순식간에 적응해 버린 것이다.
놀라움은 그게 다가 아니다.
[한계 동화율을 손에 넣었습니다!]
[투왕을 만날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뭐···?'
순간, 떠오른 메시지에 태준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지금 앞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키는 족히 2m는 훌쩍 넘는 듯한 장신에 온 몸은 터질 듯한 근육으로 덮여 있다.
그 뿐인가?
그 성난 근육 위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상처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중에서도 태준의 눈을 사로잡은 건, 남자의 주먹이다.
웬만한 성인의 머리만큼이나 거대하고 굳은살이 빼곡하게 박혀있는 주먹.
'투왕.'
그래, 저 남자가 잊힌 제국의 9왕중 한 사람인 투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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