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의외의 추종자 (2)
20화 의외의 추종자 (2)
'미치겠군.'
스스로조차도 소름이 끼칠 정도의 기감이다.
이게 바로 동화율 200%.
그리고 절대 영역이 만들어낸 말도 안 되는 감지 능력이리라.
하지만 한계도 있다.
절대 영역 이외의 영역에서까지도 그 마나의 움직임을 느낄 순 없다.
'그래도 할 만 하지.'
조금만 더 신경을 집중하면 된다.
그러면 피할 수 있다.
어차피 마법이 평생 펼쳐지는 것도 아닐 터다.
길어 봐야 십 몇 초겠지.
'오케이.'
생각을 끝마친 태준은 움직였다.
번쩍- 콰앙!
조금 전, 태준이 서 있던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다시 눈을 움직였다.
태준의 눈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자신이 서 있는 곳과 다음으로 나아가야 할 곳을 확인했고, 그 다음과 그 다음을 끝없이 계산하고 또 계산했다.
다시 발을 움직였고, 또 폭발이 일어났다.
다시, 다시, 또 다시.
끝없이 일어나는 폭발 속에서도 태준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 태준을 보고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은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안색이 굳어가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씨발, 이걸··· 피해?'
감히 상상도 못 한 일.
어느덧, 마법이 끝이 났다.
불길은 사라졌고.
"씨, 씨발!"
마법사는 다시 불길을 뿜어냈다.
그녀의 지팡이에서 열 갈래도 넘게 뻗어 나온 화염은 이내 뱀의 형상으로 변모한 채 태준을 향해 뻗어져 나갔으니.
카아아!
열 마리의 뱀은 모두가 아가리를 크게 벌린 채로 당장에라도 태준을 씹어 삼킬 기세로 태준에게로 가까워졌다.
'자, 그럼···.'
태준은 그 순간 스킬의 쿨타임을 확인했다.
태준이 확인한 쿨타임은 역시 부스터.
부스터의 쿨타임이 돌아온 걸 확인한 태준은 부스터를 사용했다.
그리고 발을 굴렀다.
탓!
순식간에 전방으로 화살같이 쏘아져 나가는 태준은 화염 뱀을 교묘하게 피해나갔고, 순식간에 세 사람 앞으로 다가갔다.
"씨발! 당해 줄 줄 알고!"
당황하긴 했으나, 탱커는 노련하게 방패를 들어 올렸다.
저번처럼 사제를 노출시켜 허무하게 당해 줄 마음 따윈 없다.
저 공격을 막아내면, 다시 마법사는 마법을 캐스팅해서 저 괴물 같은 놈의 머리통을 불태워 버리리라.
부웅!
그때, 태준의 주먹이 탱커의 방패를 두드렸다.
"깝치지 마! 어차피 넌 이거 못 뚫는다!"
"그럴까?"
그때 태준은 웃었다.
그 모습을 본 탱커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대체 저 미소는 무엇인가?
뭐가 저렇게 자신감에 넘쳐서 웃고 있느냔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곧 알게 됐다.
쾅!
태준이 방패를 두드린 순간.
투콰앙!
후속타로 방패를 뚫은 타격이 탱커를 건드렸고.
그 다음으론···.
폭발이 일어났다.
"어, 씨발?"
모두의 눈이 커진 그 순간.
콰아아앙!
방패 뒤로 굉음이 터지며 마법사와 사제의 HP가 줄어들었다.
'이거··· 이상한데?'
격투가 따위가 폭발을 일으킨다는 것도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씨, 씨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든 그 순간···.
팟!
없어졌다.
또 다시 놈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다시 공격이 시작됐다.
콰콰쾅!
또 다시 폭발이 일어났다.
'이 새끼는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지?'
대체 어느 새에 또 이런 스킬을 손에 넣었단 말인가?
하지만 괜찮다.
"깝치지 마!"
탱커가 소리쳤다.
동시에 세 사람의 몸 위로 갑옷 형태의 빛무리가 생성됐다.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을 증가시키는 스킬.
그 뿐인가?
촤아아앗!
사제의 지팡이가 빛을 뿜어내며 그들의 몸 위로 찬란한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다.
체력 회복 스킬이다.
"우리가 그때처럼 당해 줄 것 같아?"
그래.
그때처럼 손쉽게 당해 줄 리가 없다.
영문도 모르고 당해 버렸던 그때와는 달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왔다는 말이다.
하지만···.
콰아아앙!
태준은 그 순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향한 공격을 계속해서 쏟아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태준이 말했다.
"끝까지 한 번 가 보자고."
끝까지···!
그 한 마디가 왜 그렇게 섬뜩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
물론 태준도 느끼고 있다.
'역시···.'
쉽지 않다.
강하다.
아무리 동화율이 높고 능력치가 높고 사기적인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게임 내에서 레벨과 아이템의 격차를 이겨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적은 무려 세 명이다.
태준 혼자서 애초에 저들에게 공격 한 번 성공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친 짓이다.
사신 난이도의 시련을 겪고 있는 태준에게는 캐릭터 자체가 날아 버릴 지도 모를 급박한 상황이다.
이 캐릭터가 어떤 캐릭턴가.
무려 200%의 동화율을 가진 괴물같은 캐릭터다.
만약 다시 캐릭터를 생성하면 지금과 같은 것들을 다시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유일 등급이었지.'
튜토리얼 마스터 아슬란의 명패 말이다.
다시 나타날지, 아니면 그 한 번이 마지막이었을지.
세상 누구도 알 수 없는 일.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태준은 오히려 웃고 있었다.
설사 캐릭터가 지워져 모든 게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그게 무서웠으면 사신 난이도를 골랐을 리가 없잖아?'
그래.
그 한 마디가 지금 태준의 진심이다.
뭐, 이런 일이 생길지 몰랐나?
게임을 하는 내내 남의 방해 없이 평탄하게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을 줄 알았나?
심지어 랭커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이 정도야 앞으로 겪게 될 일들에 비하면 준비 운동 수준도 안 될 거다.
그 사실을 태준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즐거웠다.
'미치겠네.'
스스로도 변태 같다고 느껴질 정도지만, 이러한 극한의 상황이 태준은 너무 좋았다.
도무지 뚫고 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적의 전력이 너무도 강력하고, 아군의 전력이 현저히 부족할 때.
하지만 태준은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적의 전력과 전술과 움직임을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그러면 보이는 법이다.
아주 작은 한 점이 말이다.
그리고 그 한 점을 공격한다.
콰아아앙!
"어, 어?!"
"씨, 씨발···!"
한 방으로 안 되면 두 방.
콰쾅!
"이, 이, 개새끼가···!"
그리고 다시, 또 다시.
콰콰콰쾅!
"야, 야! 무, 뭉치지 마!"
"떨어져!"
"난 어쩌라고!"
"그럼 다 같이 얻어맞자는 거야?"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빈틈은 아주 미세한 틈을 두드리고, 또 두드리고 두드리면 기어코 열리는 법이다.
그 내부에서부터 천천히···.
지금과 같이 말이다.
"나, 나 피, 피 없어! 힐, 힐좀!"
"아, 씨! 엠피 없다고!"
"무슨 소리야!"
당연히 스스로가 우세라 생각했던 이들은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늪에 빠져 버리게 되는 것이니.
그들의 내부에서부터 일어난 균열이 수면 위로 드러난 순간, 그 순간이야 말로 승기를 확실하게 잡아 낼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임을 태준은 모르지 않았다.
콰아앙!
그 순간에 가해진 공격은 같은 데미지라고 하더라도 당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그 몇 배의 타격으로 돌아갈 테니까.
"꺄아아아아아악!"
태준의 일격으로 사제는 로그아웃이 된 채 사라져 버렸다.
"씨, 씨바아아알!"
"이게 뭔 개같은 상황이야!"
사라져 버린 사제를 보며 탱커와 마법사는 질겁했다.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이 틈을 뚫고 사제를 로그아웃 시킨다고?
'미, 미친 새끼···.'
그제야 그들은 깨달았다.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될 괴물을 건드려 버렸다는 걸 말이다.
'씨발, 씨발 진짜···.'
도무지 할 말이 없다.
특히나 마법사가 느끼는 절망감은 감히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씨발, 한 번을, 한 번을 안 맞아?'
그게 문제였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저 괴물 같은 격투가는 자신의 공격을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다.
말이 되는가?
대체 어떻게 모든 마법을 피할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진짜다.
눈앞에서 그걸 해 버리는 인간이 있는데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결국 그들의 전략은 완전히 실패 했다는 뜻이다.
단 한 번.
단 한 번의 공격만 성공하면 질 수가 없으리라는 그 전략.
설마 눈앞의 이 괴물이 한 번의 공격도 허락하지 않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야, 씨발. 접자 그냥."
"그래. 이 좆같은 게임."
그들은 체념했다.
다시 한 번 재능이란 벽을 느꼈다.
그 거대한 벽 앞에서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고, 그 순간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 새끼···, 존나 대단한데?'
묘한 존경심이 생겨났다.
만만한 상대라면 분노가 일었겠지만, 이 순간에 태준의 말도 안 되는 재능을 느끼고 나니 왠지 모를 묘한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의외로 멋있는 새끼일지도?'
그렇지 않은가?
비록 아바타라고 할지라도 눈앞의 저 괴물의 외모는 잘생겼다.
그것도 엄청나게.
그 외모에 이 말도 안 되는 피지컬까지 더해지니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존경심이 풍겨 나오는 것이다.
아마 그 옆의 마법사도 같은 마음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부탁한다."
탱커가 말했다.
"···?"
태준은 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랭커들 다 부숴라! 그 개새끼들! 니가 다 부수라고!"
"뭔 개소리를···."
태준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다시 그들의 눈앞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만세! 흑사자 브레이커 만세!"
*
[사신이 아바타의 영혼을 노획했습니다!]
두 번째 보는 메시지.
피케이에서 승리하고 아이템을 고를 수 있는 순간이 찾아 온 것이다.
'후우···.'
싸움이 끝난 뒤 태준은 숨을 쏟아냈다.
정말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조금만 방심했더라면 캐릭터가 삭제되는 건, 트리오가 아니라 태준이었겠지.
하지만 이기지 않았나?
그러면 됐다.
'이런 승리가 제일 짜릿한 법이야.'
아직도 심장이 쫄깃쫄깃하다.
손 역시 가늘게 떨려왔다.
얼마만에 이렇게 집중해서 싸움에 임한 것인지 잘 생각도 나질 않을 정도였다.
'이래서 끊을 수가 없다니까.'
태준은 히죽 웃으며 눈앞에 떠오른 아이템 목록을 바라봤다.
'와우···.'
그 아이템 목록을 보자마자 절로 쏟아진 감탄사는 당연했다.
'이건 진짜 그냥 뺏어가기 미안할 정돈데···?'
한 눈에 봐도 값비싸 보이는 아이템들의 행렬이다.
[흡수의 반지]
-물리 데미지 23% 흡수
-마법 데미지 25% 흡수
'이건 미쳤고.'
물리, 마법 데미지를 거의 1/4 가량이나 흡수해 버리는 아이템이었다.
물론 그 주인은 탱커.
'어쩐지 더럽게 안 뒈지더라.'
그나마 사제가 빨리 쓰러져서 망정이지, 사제가 계속 남아 있었으면 이 싸움의 결과는 역시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으론···.'
마법사의 장비 중 하나가 태준의 시선을 끌었다.
[폭염의 귀걸이]
-화염 데미지+28%
-마법 데미지+10%
'이건···.'
부스터에 추가된 속성.
그 곳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화염 데미지와 마법 데미지가 동시에 퍼센티지로 증가하는 훌륭한 아이템이다.
'사냥이 훨씬 더 빨라지겠어.'
그렇지 않아도 새로 추가된 속성 옵션의 힘을 체감한 지금이다.
탱커를 공격해도, 마법사를 공격해도 사제에게 함께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사기 스킬이 아니던가?
'덕분에 사제 엠피를 빨리 뺄 수 있었지.'
그 말도 사실이다.
스플래시 데미지가 아니었다면, 사제의 엠피가 그렇게 빠르게 줄어들지는 않았을 테니.
'오케이. 마법사에선 이걸로 하고···.'
그 다음은 마지막 사제.
잠시 아이템 목록을 살피던 태준은 하나를 골라냈다.
[속도의 부츠]
-방어력+43
-이동 속도+33%
-공격 속도+16%
-민첩성+10
'훌륭하군.'
태준은 만족했다.
이 정도라면 족히 수백 만원.
어쩌면 천만 원이 넘어 갈 지도 모를 아이템들이다.
'옵션들이 워낙 좋아야지.'
어쨌든 지금 태준은 기분이 최고다.
오크 히어로 최초 클리어에 성공하고, 쓸 만한 아이템도 획득했으니 말이다.
'이런 날엔 치킨이라도 뜯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과 함께 태준은 잠시 게임에서 벗어났다.
*
잠시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적이던 태준은 눈을 부릅떴다.
지금 막 화제가 되는 동영상 때문이다.
[흑사자 브레이커 근접 촬영 영상]
흑사자 브레이커.
이젠 라스트 엠파이어의 유저들이 태준을 부르는 새로운 이름.
심지어 현재 실시간 인기 급상승 영상 1위에 오른 영상이었다.
'흐음···.'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른 채, 태준은 영상을 클릭했다.
그런데 거기엔, 전혀 상상도 못 할 글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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