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프리머스 펀드 (3)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동호 선배는 나를 휴게실로 데려갔다.
“너 혹시 그때 말한 레드홀 스튜디오 주식 샀어?”
“예. 샀어요.”
“진짜? 주가 확인해 봤어?”
“아직요.”
생각난 김에 난 바로 스마트폰으로 장외거래소에 접속해서 주가를 확인했다.
주당 6500원에 산 주식은 어느새 134000원이 되어 있었다. 며칠만에 20배가 넘게 오른 것이다.
동호 선배는 절규하듯 말했다.
“니가 말했을 때 조금이라도 사놓을걸!”
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때 물어봤을 땐 그런 개잡주 사지 말라면서요?”
“신작게임이 이 정도로 뜰 줄 누가 알았나!? 그거 완전 대박이라며?”
“대박이죠.”
레드홀 스튜디오가 출시한 게임은 배틀 아일랜드.
FPS게임은 특정임무를 수행하거나, 1대1, 또는 다대다로 싸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배틀 아일랜드는 NPC가 아닌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싸워 단 한 명만 살아남는다는 배틀로얄 방식이다.
출시 초기에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청소년이용불가인 것도 문제지만, 게임이 지나치게 고사양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그런데 새로운 시도가 먹혀들었다!
전혀 다른 방식의 FPS의 등장에 게이머들은 열광했다.
별다른 마케팅도 없이 순전히 입소문만으로 엄청난 흥행돌풍을 일으켰고, 오버클락을 꺾고 PC방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이는 게임업계 전체를 통틀어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초대박이었다. 그걸 대형 게임사도 아닌, 아직 비상장인 중소 게임사가 터트린 것이다.
레드홀 스튜디오는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도 구조조정을 걱정하던 기업이 이제는 직원을 더 뽑고 성과급 잔치를 벌여야 할 판이다.
이렇다 보니 주가는 계속 치솟았고, 비상장주식 거래소에는 주식이 씨가 말랐다. 팔겠다는 사람은 없는데, 사겠다는 사람은 줄을 섰다.
“넌 소스가 있었으면 나한테 말을 해줬어야지!”
“말해줬잖아요.”
“너 얼마나 샀어?”
“500만 원이요.”
동호 선배는 입을 쩍 벌렸다.
“헉! 그럼 지금 1억도 넘었잖아!”
요즘 SNS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 다들 집에 10억쯤은 있는 것 같지만, 1억만 해도 직장인에게는 엄청난 금액이다.
다들 이 맛에 비상장주식에 투자하는 모양이다.
“너 이 얘기 누구한테 들었어?”
차마 미래에서 보고 왔다고 말할 수 없어서 난 대충 둘러댔다.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친구한테요.”
“그럼 그 친구한테 지금 사도 되는지 한번 물어봐.”
“그런 질문은 고객이 애널리스트에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동호 선배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야. 내가 애널리스트라서 아는데, 이놈들 다 사기꾼들이야. 당장 나만 해도 내 주식은 지금 마이너스 40퍼센트야. 8만 원에 산 주식이 이제 5만 원도 깨졌어! 80층에 사람이 갇혀 있는데 구조대가 올 생각을 안 해!”
흔히들 금융권에 있으면 주식투자를 잘할 거라 생각하기 마련. 하지만 이건 매우 큰 착각이다.
정말로 그랬다면 증권사 직원들은 전부 떼부자 됐겠지.
경제TV에 맨날 출연하고 추천하는 종목마다 떡상해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는 유명 애널리스트도 정작 자기 투자는 말아먹어서 아파트까지 팔았다고 한다.
동호 선배는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이야! 어떻게 2주 만에 500만 원이 1억이 되냐? 나 이런 거 처음 봐.”
난 동호 선배의 어깨를 두드렸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되실 거예요.”
돈을 벌었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내가 과거로 돌아온 게 더욱 확실해진 만큼 빨리 프리머스 펀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 *
난 자료를 만든 다음 부장실로 향했다.
윤영철 부장은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어, 그래. 자료는 다 만들었어?”
“일단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내가 내민 서류를 받아들고 한 장씩 넘겨보았다. 부장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이게 뭐야?”
내가 만들어온 것은 펀드 추천 리포트가 아닌 문제를 지적하는 보고서다.
“프리머스 펀드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
“안정성 높은 채권에만 투자했는데 수익률이 너무 높습니다.”
“최근 수년 동안 선진국 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했잖아. 그러니 채권에 투자하는 프리머스 펀드가 괜찮은 수익을 내는 건 당연하지 않아?”
채권 수익률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가 낮아지면 채권 가격은 오르고,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떨어진다.
“그런데 금리가 오른 해에도 같은 수익을 냈습니다. 시장변화와는 상관없이 매년 일정한 수익을 올렸는데, 구체적인 매매내역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거야 포지션 노출을 피하기 위해 당연한 거고.”
뭐, 그건 그렇다.
언제 어떤 걸 얼마나 샀느냐를 알리고 싶은 운용사는 없을 것이다.
“정리해 놓은 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비슷한 상품에 투자하는 다른 펀드에 비해 수익률이 1퍼센트가량 높습니다.”
1퍼센트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다른 펀드가 5퍼센트 수익을 낼 때 6퍼센트 수익을 냈다는 건 비율로 보면 20퍼센트 수익을 더 냈다는 것이다.
투자에서 안정성과 수익률이 반비례한다는 건 상식이다. 안정적이며 수익률이 높은 상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상황에 따라 일시적으로 차이가 벌어지더라도 금방 메워지기 마련.
얘기를 듣는 윤영철 부장의 표정이 점차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등을 뒤로 기대며 물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야?”
“운용사가 정말 펀드자산을 해당 채권에 투자한 게 맞는지, 수익률을 부풀린 게 아닌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유자산이랑 매매내역 정리해서 제출하라고 해?”
속인 놈한테 속였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
당연히 안 속였다고 하겠지.
“저희 쪽에서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운용사를 감사라도 하자고? DA증권이 판매사지, 금감원이야?”
“독점으로 판매하고 있는 데다가 워낙 규모가 큰 펀드인 만큼, 만에 하나 부실이 있다면DA증권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습니다.”
윤영철 부장은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어이, 한미루. 너 입사한 지 얼마나 됐어?”
“이제 6개월 됐습니다.”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소리쳤다.
“입사한 지 반년밖에 안 된 신입이 뭘 안다고 설쳐! 제발 시키는 일만 해. 그냥 펀드 추천 리포트 만들어오라고 했는데, 뭔 쓸데없는 짓이야? 회사가 우습게 보여?”
“음······.”
이 사람은 여전하구나.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다.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까인 보고서를 지금 시점에서 받아줄 리 없겠지.
* * *
난 쫓겨나듯 부장실을 빠져나왔다.
소리치는 게 밖까지 들렸는지 다들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동호 선배는 일단 날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무슨 말을 했기에 부장님께서 저렇게 화나셨어?”
“프리머스 펀드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을 뿐이에요.”
동호 선배는 당황했다.
“뭔 소리야? 프리머스 펀드의 뭐가 문제인데?”
“비슷한 유형의 다른 펀드 대비 수익률이 너무 높아요.”
난 부장에게 한 얘기를 정리해서 말해주었다.
동호 선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운용사들이 펀드 모집 전에 실적 부풀리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야?”
누가 손실 나는 펀드에 가입하고 싶겠는가?
실적이 좋을수록 펀드가 잘 팔리니, 운용사들은 가입자를 모집하는 동안에는 보유자산 가치를 최대한 높게 잡고, 수익률을 부풀리기 위해 애쓴다.
“수익률 조작뿐 아니라, 프리머스 펀드가 부실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동호 선배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말이야? 거기 선진국 공공기관이 발행한 AAA등급 채권에만 투자하잖아. 그 채권에 부실이 있다고?”
채권 등급이 트리플A라면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안전하다고 봐도 좋다.
“만약 프리머스 펀드가 산 게 다른 자산이라면요?”
“응?”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 투자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부실기업 사모사채 투자했다가 날려먹었다든지.”
“공모가 아닌 사모사채? 그런 기업들 사모사채를 왜 사?”
“수익이 크니까요. 메자닌의 경우 추가 수익도 얻을 수 있을 테고.”
메자닌(Mezzanine)이란 보통 채권과 주식이 결합된 CB(전환사채)나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뜻한다.
채권이지만 후에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신주를 받을 권리가 있는 만큼, 주가 상승기에는 큰 수익을 노릴 수 있다. 비상장기업이 상장이라도 한다면 수십 배를 버는 것도 가능하고.
얘기를 듣던 동호 선배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뭔 헛소리야? 그게 말이 되냐?”
“······.”
이게 상식적인 반응이겠지.
터지기 전까지 모두가 이렇게 생각했다. 나도 몰랐다면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이걸 어떻게 알려야 하나?
사실 나야 어차피 회사 그만두고 나가면 그만이다.
펀드 추천 리포트를 쓰기 전인 만큼 지금이라면 내가 잘못하거나 책임질 일도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만둬도 다른 사람이 펀드 추천 리포트를 쓸 테고, 프리머스 펀드는 계속 판매될 것이다.
그럼 그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겠지.
난 동호 선배를 보았다.
그는 연기 속에서 몸을 가누질 못하는 나를 부축해 억지로 끌고 갔다.
덕분에 둘 다 살았지만 동호 선배는 평생을 안고 갈 큰 장애를 얻었다. 나를 버리고 혼자서 탈출했다면 다치지 않았을 텐데.
난 슬쩍 말을 꺼냈다.
“선배는 회사 그만두고 싶은 생각 없어요?”
“갑자기?”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너 내 직장생활 목표가 뭔지 알아?”
“뭔데요?”
“정년까지 꽉꽉 채운 다음 퇴직하는 거야.”
소박한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사장되는 것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목표다. 요즘 세상에 공무원 아니고서는 정년퇴직하기 쉽지 않지.
동호 선배는 쐐기를 박듯 말했다.
“난 우리 회사에 뼈를 묻을 거야.”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회사에 뼈를 묻는 수가 있어!
같은 일이 발생할 경우 또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 선배 죽는 꼴 안 보려면 빨리 해결해야겠구나.
* * *
오전부터 부장에게 깨졌더니 퇴근하고 싶어졌다.
다행히 윤영철 부장은 바로 외근을 나갔다. 책상 앞으로 돌아온 나는 손가락으로 펜을 돌리며 생각했다.
그냥 폭로하고 나갈까?
하지만 부실을 폭로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지금도 공매도나 풋옵션으로 돈을 버는 운용사들이 특정 기업의 분식회계나 부실을 지적하면서 목표주가를 낮추는 리포트를 쏟아내지만, 대부분 소리 소문 없이 묻히기 마련.
내가 과장급이나 되면 모를까, 신입사원 혼자 떠들어봐야 누가 믿어주겠는가?
어차피 사기인 이상 가만히 있어도 문제는 터지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때까지 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난 7층에 있는 리스크부서로 향했다.
증권사에 돈을 벌어오는 부서가 있다면, 이를 백업하고 지원하는 부서도 있다.
트레이딩부서와 리서치부서가 전자라면, 리스크부서는 후자다. 주로 하는 일은 손실과 거래에 대해 감시 역할.
거액의 돈을 다루는 금융사의 특성상 금전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수시로 발생한다. 세상에 금융계만큼 사기꾼이 넘쳐나는 곳도 없다.
냉정하게 말해 전문가와 사기꾼은 종이 한 장 차이지.
투자기법 중에는 사기에 가까운 것들도 있고, 트레이더가 세력과 연계해 주가조작을 하는 일도 있고.
이런 걸 밝혀내는 게 리스크부서가 하는 일이다.
아무래도 역할이 역할이다 보니 다른 부서들과는 교류가 적은 편이다. 리서치부서와 직접적인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럴 때 믿을 건 역시 동기뿐이겠지?
입구로 들어간 나는 아는 얼굴에게 손짓을 했다.
“윤아 씨.”
성윤아는 날 보더니 물었다.
“아! 미루 씨. 무슨 일이에요?”
별로 꾸미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혼자만 눈에 띄는 외모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직장 내에서의 연애는 드라마에 나오는 남녀들이 실컷 하고 있으니, 난 일이나 열심히 할 생각이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이제 슬슬 점심시간인데요.”
“그럼 같이 먹으러 갈까요?”
말하고 보니 괜히 찝쩍거리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다른 것 때문은 아니고 일 때문에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메뉴는 제가 정해도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