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효도하겠습니다 (2)
어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이구! 내가 못 살아. 그런 짓을 왜 해? 그리고 어떻게 들어간 회사인데 그걸 그만둬?그냥 싹싹 빌고 계속 다녔어야지.”
한참을 잔소리하시던 어머니는 괜히 아버지에게 화살을 돌렸다.
“당신이 평소에도 그런 쓸데없는 말 하니까 미루가 보고 배운 거 아니에요?”
“크흠.”
아버지는 할 말 없는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세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회사를 위한 일이었다며? 부실을 알렸으면 회사에서 상 같은 거 안 주나? 나 요즘 용돈 부족한데.”
“상은 개뿔.”
얘가 회사생활을 한 번이라도 해봤으면 이런 말 못 할 텐데.
고소 안 당한 게 다행이다. 만약 부실이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감사팀에 끌려가서 조사받고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나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다른 데 취직은 할 수 있고?”
“음······.”
소문이 퍼져서 힘들겠지? 그냥 내부고발만 한 것도 아니고 회장 아들을 들이받고 나왔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 취직도 힘들 것이다.
“그동안 정신없이 일만 했으니, 당분간 쉬면서 다른 일을 준비해 보려구요.”
옆에서 듣던 세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누가 들으면 일한 지 3년은 된 줄 알겠네. 고작 6개월 다니다가 그만두는 거면서.”
“······.”
회귀한 것까지 포함하면 3년은 다닌 것 같은데.
난 부모님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 비해 확실히 젊어지신 모습이다.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는 집안도 많이 힘들어지며 고생도 참 많이 하셨다.
프리머스 사태로 회사가 망한 이후에는 취직도 안 하고 아르바이트랑 게임만 하고 놀며 지내는 아들을 보며 항상 걱정이 많으셨다. 그래서 선우랑 치킨집한다고 했을 때 쌍수를 들고 환영하셨지.
저번 생에는 속만 썩였지만 이번 생은 다르다.
난 당당하게 말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번 생에는······ 아니, 이번에는 열심히 돈 벌어서 효도하겠습니다.”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부모님은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돈을 좀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지 부모님은 화들짝 놀라셨다.
“도, 돈?”
“예. 열심히 돈 벌어서 효도하려면 돈이 필요해서요.”
어머니는 핀잔을 주듯 말했다.
“어머, 얘는. 우리 집에 돈이 어디 있니?”
“이 집 담보로 대출받으면 되지 않을까요?”
“······.”
“······.”
왠지 주변 공기가 좀 싸늘해진 것 같다.
기분 탓인가?
세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잠깐만요, 아빠. 금방 몽둥이 찾아올게요.”
“······.”
이런 게 내 동생이라니.
* * *
난 아버지와 함께 집 근처 고깃집에 들어갔다.
삼겹살 2인분과 소주를 시켰다.
생각해보니 아버지와 단둘이 얘기하는 건 오랜만이다. 애초에 내가 집에 잘 안 들어오기도 했고.
“한 잔 받아라.”
아버지는 내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잘했다.”
“예?”
“누군가 해야 할 일이고, 그게 옳은 일이라면 하는 게 맞는 일이지. 덕분에 더 큰 피해를 막았다며? 그럼 잘한 거지. 남들이 뭐라고 해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난 당황했다.
“아까는 안 그러셨잖아요.”
아버지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그거야 니 엄마가 뭐라고 할까봐 그런 거고.”
고기가 구워지는 사이 우리 부자는 잔을 부딪쳤다. 아버지는 금방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정말로 취직 대신 사업을 해볼 생각이냐?”
“예.”
“다른 데 취직이 힘들 것 같아서?”
“아니요. 그만둘 때부터 창업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니까요.”
잘 느끼지 못할 뿐, 세상은 항상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는 순차적이고 점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폭발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 지금이 바로 그 초입이다. 다른 사람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 한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나이에는 뭐든 도전해봐야지. 어차피 사업할 거라면 일찍 도전해 보는 게 좋기도 하고.설사 실패하더라도 다 경험이 되기 마련이니. 열심히 할 수 있겠냐?”
난 자신 있게 말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다. 1억 정도라면 어떻게 해보마.”
그 돈으로 뭘 하려는 건지 묻지도 않으셨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어차피 너 결혼할 때 1억 정도는 해주려고 했어. 결혼자금 일찍 대준다고 생각해야지.대신 이번에 다 날리면 결혼할 땐 아무것도 없는 거야. 알았지?”
“알겠습니다.”
이 나이 때만 해도 부모님이 얼마나 힘든지 잘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집안 상황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가족이라고 해도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많다.
말씀을 안 하셔서 그렇지 지금 회사 사정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실제로 6년 후에는 공장도 문을 닫는다.
그러니 이번에는 정말 잘해야지.
잘할 자신도 있다.
“자, 그럼 한잔 하자.”
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요, 아버지.”
“왜?”
“기왕 해주시는 거 1억······ 아니, 5천이라도 더 해주시면 안 될까요? 진짜 돈이 많이 필요해서요. 벌면 바로 갚겠습니다.”
아버지는 잔을 든 손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이노무 자슥이 진짜!”
* * *
강남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순서대로 정리해보았다.
열심히 계획을 짜고 있는데 게임 개발하겠다고 집 나갔던 탕아가 집으로 돌아왔다.
몇 주 사이 노숙자로 착각할 만큼 피폐해진 모습이다. 아니, 몰골을 보니 진짜로 노숙하다 온 것 같기도.
“이제 개발은 끝난 거야?”
선우는 탈진한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개발은 마무리됐고 지금 버그 잡는 중이야. 출시도 얼마 안 남았는데 뭔 버그가 그렇게 많은지 죽겠다. 마차가 같은 자리에서 빙빙 돌질 않나, 몬스터에게 맞으니 땅속으로 하반신이 꺼지질 않나.”
선우의 말에 따르면 버그가 없는 게임은 없다고 한다. 그걸 다 고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게임하는데 치명적인 지장만 없으면 그냥 출시한다. 문제가 생기면 추후 패치를 통해 해결하고.
이러한 이유로 인해 캐릭터가 벽을 뚫고 지나가거나, 말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 게임 진짜 대박날 것 같아.”
“응?”
현재 LB스튜디오가 개발하고 있는 게임의 이름은 판타지아 테일즈. 이름만 들어도 대충 짐작하겠지만 판타지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MMORPG다.
선우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다시피 최근 PC MMORPG가 정체기였잖아. 신작도 거의 안 나오고. 아무래도 모바일에 비해 개발비는 많이 드는데 수익은 적은 편이니까.”
“그래서?”
“그런데 모바일은 모바일이고 PC는 PC란 말이야. 컴퓨터로 하는 MMORPG는 나름의 맛이 있는 거 아니겠어? 다른 게임사들 몸 사리고 있는 이때 대작 하나 나와 주면 대기수요를 한 번에 끌어모을 수 있는 거지. 지금 회사에서도 기대감이 장난 아니야. 개발비도 역대급으로 쏟아부은 거 알지?”
회사뿐 아니라 주주들 역시 기대에 부풀어 있고, 덕분에 주가가 연일 사상최고치를 찍고 있다.
뭐, 결과는······.
난 슬쩍 말했다.
“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뭔 헛소리야? 대박 친다에 내 전 재산과 손목을 건다. 넌 뭘 걸래?”
“······.”
응. 그 게임 망해.
1년 안에 서비스 종료한다에 내 전 재산과 손목을 걸 수 있다.
그래픽만 좋으면 뭐 하나? 과도한 현질 유도도 문제지만, 출시 직후 뽑기 확률조작에 운영자가 캐릭터와 아이템을 멋대로 생성해 다른 유저들을 기만한 행위가 걸린 게 결정타였다.
이어진 회사의 대응은 더 큰 문제였고.
결국 실망한 유저들은 전부 등을 돌리고 떠났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선우는 행복회로를 풀가동하며 말했다.
“이러다가 나도 스타 개발자로 이름 날리고, 나중에 게임 회사 하나 차리는 거 아니야?”
“······.”
응. 아니야.
넌 나중에 치킨집 차려서 나랑 같이 치킨 튀겨.
잠시 헛된 망상에 빠져있던 선우는 나를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너네 회사 완전 뒤집어졌던데. 그거 대체 누가 그런 거야? 설마 아는 사람이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너도 잘 아는 사람이야.”
“내가 안다고? 누군데?”
“나.”
“응?”
“내가 폭로했다고.”
“뻥치지 말고.”
“진짜야.”
“······.”
잠시 멍하니 있던 선우는 이내 소리치듯 말했다.
“왜? 어째서!?”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불의를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랄까?”
“뭔 헛소리야? 난 너처럼 불의 앞에서 잘 참는 애를 본 적이 없어.”
“······.”
내가 그 정도였어?
어디까지나 이번 한정이다. 얘 말대로 내가 그렇게 정의감에 불타는 성격은 아니라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회사에서 뭐라고 안 해?”
“뭐라고 하지.”
“회사에서 눈치 보이지 않아?”
“눈치 보이지.”
“그럼 어떡해?”
“어떡하긴. 그래서 사표 쓰고 나왔어.”
“······.”
선우는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설마 친구가 백수가 됐을 줄은 몰랐겠지.
“그, 그럼 앞으로는 어쩌게?”
안 그래도 그 얘기를 하려고 했다.
“내가 계획을 좀 짜봤는데.”
“무슨 계획?”
“그동안 모은 돈으로 사업을 좀 해보려고.”
“무슨 돈으로? 퇴직금이라도 받았어?”
“퇴직금은 못 받았지만, 레드홀 스튜디오에 투자해 번 돈이 있지.”
그 말에 선우는 깜짝 놀랐다.
“어! 너 레드홀 스튜디오 주식 샀어?”
“응. 500만 원.”
“그거 엄청 올랐잖아.”
“지금 1억쯤 할걸.”
선우는 입을 쩍 벌렸다.
“1억!? 나도 그때 살걸!”
남이 주식으로 돈 벌면 항상 나오는 얘기지.
“넌 왜 안 샀어?”
“그 게임이 그렇게 뜰 줄 몰랐으니까. 이쪽 업계에 있는 사람 아무도 예상 못 했을걸. 나도 해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확실히 잘 만들긴 했더라. 그런데 넌 어떻게 알았어?”
“일하면서 여기저기서 들은 정보가 있었어.”
이 돈이라도 없었으면 큰일날 뻔했다.
“그걸로 무슨 사업하게?”
“투자회사를 차려서 제대로 투자해보게.”
이번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회사는 어차피 그만둘 생각이었다.
증권사 직원으로 있으면 투자에 여러 제약이 많다. 투자금액이나 매매내역 등을 주기적으로 회사에 보고해야 하고.
그래서 아예 차명으로 거래하는 직원들도 있다.
“1억으로 되겠어?”
난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하지. 그래서 부모님께 1억 5천 빌렸어.”
하마터면 술잔으로 맞을 뻔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 알면 둘 다 죽은 목숨이라고 신신당부하며 빌려주셨다.
“오! 2억 5천.”
“그리고 직장인 신용대출도 받았지. 5천만 원.”
선우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너 이제 직장인 아니잖아.”
신용대출이란 담보 없이 개인의 신용만 보고 빌려주는 거다. 그나마 4대 보험 되는 직장이 있어서 5천이라도 나왔지, 없으면 대출도 안 나온다.
“응. 그래서 그만두기 직전에 풀로 땡겨서 받았어.”
물론 은행도 바보가 아닌 만큼, 직장을 그만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금리를 두 자릿수로 올리고 당장 갚으라고 닦달한다.
어차피 그때까지만 쓰면 되니 상관없다.
“그래서 총 3억을 마련한 거야?”
“응. 너도 투자 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