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비행기 사고 (1) (38/529)

 38화. 비행기 사고 (1)

 다음 날.

 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애틀랜타 국제공항은 미국 남동부의 관문으로 세계적으로 주요한 허브공항이다. 전 세계,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오는 비행기가 이곳에서 뜨고 내린다.

 워낙 큰 공항이고 항공편도 많다 보니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수속을 끝내고 터미널 안으로 들어섰다.

 손에 든 티켓을 보았다.

 비행기 편명은 BW130. 출발 시간은 오전 11시 34분. 목적지는 올랜도.

 올랜도에는 디즈니월드와 함께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있다. 미국인들에게도 유명한 관광지다 보니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많았다.

 벌써부터 애니메이션 캐릭터 복장을 하고 머리띠를 맨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놀러 간다는 사실에 잔뜩 들뜬 모습이다.

 탑승 수속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노부부, 커플로 보이는 남녀, 아이를 데리고 있는 가족,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 가방을 메고 헤드폰을 쓴 여자 등등.

 전부 처음 보는 얼굴 가운데 아는 얼굴이 하나 보였다.

 40대 흑인 남성이다.

 키는 거의 2미터에 가깝고 몸무게는 120킬로는 되어 보였다. 민머리에 온몸이 근육질로 외모만 봐서는 프로레슬링 선수 같다.

 내 차례가 되자 티켓을 보여주고 탑승구를 따라 비행기에 올라탔다.

 승무원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즐거운 여행 되시기 바랍니다.”

 안타깝게도 즐거운 여행이 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어떤 사건이 벌어질 테니까.

 * * *

 비행기에 올라탄 크리스토퍼 로무는 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그의 좌석은 왼쪽 엔진 바로 옆이었다.

 짐을 올려놓고 앉으니 엉덩이는 거의 팔걸이에 끼다시피 했고, 머리는 헤드레스트 위로 한 뼘 이상 올라왔다. 무릎은 앞 좌석에 거의 닿았다.

 ‘역시 좁군.’

 잠시 후, 한 동양인이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의 덩치 때문에 자연스레 어깨가 맞닿았다.

 크리스토퍼는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저 때문에 자리가 좁겠군요. 미안합니다.”

 동양인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전 한미루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크리스토퍼 로무입니다.”

 상대를 본 크리스토퍼는 물었다.

 “혹시 한국인?”

 “아!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전 주한미군으로 3년 동안 한국에 있었습니다.”

 “정말요? 당신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몇 마디 얘기를 나누다 보니 두 사람은 금세 친해졌다.

 “그냥 크리스라고 부르면 되네.”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네도 군대에 다녀왔겠군.”

 “예. 육군 병장으로 만기전역했습니다.”

 “난 공군에 있었네.”

 “혹시 전투기 조종사?”

 “하하! 그건 아니고 정비사로 일했네. 전투기를 손보는 일을 했지.”

 “오! 그렇군요.”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승무원들은 짐칸의 덮개를 닫고 승객들의 안전벨트를 체크했다.

 비행기는 천천히 활주로를 향해 움직였다.

 그 순간, 크리스토퍼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잠깐. 이게 뭐지?’

 한미루는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시죠?”

 “아니, 엔진 소리가 좀 이상한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크리스토퍼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엔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 같네.”

 한미루는 엔진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당연히 듣는다고 해서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잘못 들으신 거 아니에요?”

 “아니, 지금도 계속 그 소리가 나고 있네. 멈춰서 점검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는 사이 비행기는 점점 속도를 높여 활주로를 향해가고 있었다.

 크리스토퍼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지? 지금이라도 승무원에게 알려야 하나?’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장을 입은 남성, 잡지를 읽고 있는 중년여성, 여행을 가는 것으로 보이는 남녀, 앉아서 장난을 치는 어린아이들 등등.

 만에 하나라도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들 모두가 위험에 처할 것이다.

 ‘알려야 해!’

 그가 결심을 하고 일어서려는데, 옆에 있던 한미루가 먼저 좌석벨트를 풀고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저기요! 저기요!”

 그러자 승무원이 다가와서 말했다.

 “비행기가 곧 이륙합니다. 자리에 착석해주십시오.”

 “엔진이 이상합니다!”

 그의 말에 승무원들은 물론이고, 주변에 앉은 승객들까지 전부 그를 쳐다보았다.

 한미루는 일부러 목소리를 키웠다.

 “비행기를 돌려야 합니다. 이대로 출발하면 위험해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엔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승무원 몇 명이 다가왔고, 한 명은 조종실로 달려갔다.

 “엔진은 아무 이상 없습니다. 소란 피우지 말고 앉아주세요.”

 “이상이 있다니까요! 당장 비행기 세우고 엔진을 점검해주세요.”

 결국 부기장까지 달려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승무원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승객분께서 엔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말씀하셔서요.”

 한미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평소 듣던 소리랑은 뭔가 다른 소리가 났습니다.”

 “잠시만요.”

 부기장의 손짓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는 창문에 귀를 가져다 대며 엔진음에 집중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제가 이제까지 비행기를 열 번 넘게 타봤는데 처음 듣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상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부기장은 침착하게 말했다.

 “제가 비행기를 13년 동안 몰았는데 항상 듣는 소리가 납니다. 이상이 없는 게 분명합니다.”

 “이상하다니까요.”

 “엔진에 문제가 있으면 경고등이 뜹니다. 이 비행기는 안전하니 자리에 앉아주세요.”

 “지금 승객 말을 무시하시는 겁니까? 이대로 출발하면 안 된다니까요.”

 참다 못했는지 주위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이봐!”

 “그만 좀 하세요”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잖아.”

 “비행기 출발 못 하면 어떡할 거야?”

 올랜도행 비행기다 보니 가족 단위의 승객들이 많았다. 소란이 커지자 몇몇 아이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누가 또 그렇게 생각합니까?”

 한미루는 재빨리 창가에 앉아있는 흑인 남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저분입니다! 저분이 엔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했어요. 크리스! 제 말이 맞다고 말 좀 해줘요!”

 승무원과 승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됐고 크리스토퍼는 당황했다.

 ‘아니, 왜 나를 끌어들여?’

 물론 처음 이상이 있다고 말한 건 그가 맞다. 만약 한미루가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그가 나서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기장이 이상 없다고 확인하자 크리스는 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크리스가 분명히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저분은 공군 정비사 출신으로 주한미군으로도 복무한 미국 최고의 항공기 전문가입니다!”

 그는 더욱 당황했다.

 ‘아니, 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게다가 그는 전투기 정비로 분야가 좀 달랐다.

 “저는 크리스 말을 믿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저분 말씀을 못 믿겠다는 겁니까?”

 부기장이 물었다.

 “정말입니까?”

 크리스토퍼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음, 이상한 소리가 살짝 나긴 했는데······.”

 “거봐요! 저분도 이상한 소리가 난다잖아요! 저분이 멈추고 점검하라고 했어요!”

 그의 말에 크리스토퍼는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내가 언제 그랬나?”

 ‘이러면 사람들이 내가 시킨 줄 알잖아!’

 한미루는 더욱 크게 소리쳤다.

 “당장 비행기 돌려요!”

 “어떻게 돌리라는 겁니까?”

 “후진 안 되나요?”

 승객들은 더욱 거세게 비난했다.

 “야, 이 새끼야!”

 “그만 좀 해, 미친놈아!”

 “바빠 죽겠는데 뭐 하는 짓이야?”

 “이 사람 체포해요!”

 “으아앙!”

 한 아이가 울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한미루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엔진을 점검하지 않겠다면 저라도 내리겠습니다.”

 승무원은 경고하듯 말했다.

 “이대로 회항하면 기내난동으로 체포돼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기내난동은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은 다르다. 처벌도 문제지만, 미국에서 추방돼 다시는 입국을 못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미루는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상관없으니 당장 비행기 돌리세요. 전 이 비행기 못 탑니다. 엔진음이 이상하다니까요. 체포하든 처벌하든 전 내리겠습니다.”

 * * *

 마크 필립스.

 민주당 소속의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인 그는 열정적으로 의정활동에 매진했고, 조지아주 주민들은 물론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정치인이면 놀고먹는 직업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

 게다가 자주 워싱턴 D.C.에 머물러야 해서 가족들과는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다행히 오랜만에 휴가를 얻었고 그는 가족들과 함께 이전부터 가기로 약속했던 올랜도를 가기로 했다.

 그의 옆에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그런 아내를 쏙 빼닮은 두 딸이 있었다. 나이는 각각 23세와 25세.

 똑똑하고 예쁜 두 딸은 그의 자랑이나 다름없었다.

 큰딸 엘레나가 핀잔을 주듯 말했다.

 “얼마 만에 가족여행인지 기억도 잘 안 나요.”

 작은딸 리아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드디어 디즈니월드에 가네요. 어떻게 12살 꼬마한테 한 약속을 지금 지킬 수 있어요?”

 “하하······.”

 “지난번에도 일 생겼다고 취소하는 바람에 하와이는 엄마랑 셋이 다녀왔잖아요. 정치인이 그렇게 약속 안 지켜도 되는 거예요?”

 상원의원으로서는 훌륭하지만 남편과 아버지로서는 낙제점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필립스 상원의원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니, 그때는 갑자기 총기 사건이 나는 바람에······.”

 “그전에는 산불 났다고 못 왔잖아요.”

 “그거야······.”

 아내는 그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애들이 아빠랑 여행 가는 걸 얼마나 기대했는지 알아요?”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거 할 말이 없군. 앞으로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할게.”

 리아나는 두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제가 지켜볼 거예요.”

 마크 필립스는 문득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가족들의 지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족은 그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앞자리에 앉은 승객이 몸을 돌려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의원님의 팬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사인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리아나가 테스트라도 하듯 물어보았다.

 “파란색과 빨간색 중 뭘 좋아하세요?”

 “파란색입니다.”

 “그럼 당나귀랑 코끼리 중에는요?

 “무조건 당나귀죠.”

 “좋아요. 종이 주세요.”

 리아나는 종이를 받아 아빠에게 건네주었다.

 한 승객이 사인을 받자 주변에 있던 다른 승객들도 너도나도 종이를 내밀었다.

 리아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줄 서세요. 그리고 앞으로도 민주당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 부탁드려요.”

 “물론입니다.”

 “당장 민주당 당원으로 가입하겠습니다.”

 “공화당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건 의원님밖에 없습니다.”

 “총기 규제법안 반드시 통과시켜주세요.”

 필립스 상원의원은 기꺼이 사인을 하고 그들과 악수를 나눴다. 그러는 사이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별도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자리에 앉아 좌석벨트를 매 주시기 바랍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