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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트리시 오코너 (2) (45/529)

 45화. 트리시 오코너 (2)

 숀은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은 지금 투자를 유치하는 중입니다.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관심을 보이는 투자사가 한 곳 있습니다.”

 “얼마를 투자하겠다고 하나요?”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10만 달러를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하네요. 일단 만나서 얘기를 해보려구요.”

 “조건은요?”

 “지분 15퍼센트요.”

 그것 때문에 뉴욕에 잠시 돌아온 건가?

 그러고 보니 그에게 투자했던 회사가 오코너 버거 상장 후 대박이 터졌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이는 지금 하고 있는 회사가 그대로 오코너 버거로 이어졌기 때문. 앱은 망했지만 푸드트럭이 잘되는 걸 본 투자사는 오히려 돈을 추가로 투자했다.

 햄버거 가게에 투자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렇게 되면 얘기가 다르다. 오코너 버거라면 투자할 만하지.

 이전보다 빨리 한국에 들여올 수도 있을 테고.

 난 재빨리 말했다.

 “제가 투자하죠.”

 “예?”

 “굳이 투자사 만나서 아쉬운 소리 하실 필요 없이, 그 10만 달러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내 말에 숀의 눈에 휘둥그레졌다.

 “정말입니까? 조건은요?”

 “동일하게 하죠. 회사의 지분 15퍼센트.”

 그는 반색했다.

 “진심입니까?”

 “예.”

 트리시는 놀라서 물었다.

 “어째서 투자를 하겠다는 거예요?”

 “다른 건 모르겠고 이 햄버거 맛에 반했습니다. 이런 햄버거를 만든 사람이 하는 사업이라면 믿을 수 있죠.”

 내 말에 그녀는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그렇게 대충 투자를 결정해도 되는 거예요?”

 미래를 알고 있으면 그래도 된다.

 난 즉석에서 수표를 꺼내 금액을 쓰고 서명해 숀에게 건네주었다.

 “계약서는 나중에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 받으시면 서명해서 보내주세요.”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받아든 숀은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오!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운이 좋네요.”

 그의 입장에서는 뜬금없는 행운처럼 느껴지려나?

 실제로 운이 좋은 건 나지만. 낯선 사람을 따라온 술집에서 오코너 버거의 창업자를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나?

 우리는 다 같이 맥주잔을 부딪쳤다.

 분위기만 보면 벌써 성공한 것 같다. 숀은 대박의 꿈에 부풀어 있었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얼마나 퍼마셨을까?

 슬슬 취기가 오를 무렵 트리시가 말했다.

 “일어나요.”

 “어디 가게요?”

 “좋은 곳으로 안내할게요.”

 “좋은 곳이 어딘데요?”

 “따라와 보면 알아요.”

 우리는 펍을 나와 밤거리를 걸었다. 바닷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체감상으로는 한국보다 훨씬 추웠다.

 그녀는 나를 허름한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올라가자 저 멀리 어퍼베이와 함께 자유의 여신상이 보였다.

 그녀는 난간에 몸을 기대며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여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예요. 저 바다를 따라가면 유럽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요?”

 뉴욕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오는 관문이나 다름없다. 지금도 대서양을 건너온 배와 비행기들이 들어오는 중이겠지.

 “우리 조상들은 이곳을 통해 미국에 발을 디뎠어요. 미국은 기회의 땅이에요. 그건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과거에 비해 기회의 문이 성공의 문턱은 점점 좁아졌다.

 그러나 찾아보면 기회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다만 그것을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 잡는 사람과 못 잡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난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미국에 오길 잘했네요.”

 트리시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컨티뉴 캐피탈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지켜볼게요.”

 난 그 손을 잡았다.

 “고마워요.”

 * * *

 샤크 매니지먼트.

 미국의 금융재벌 프레스턴가의 장남 마이클 프레스턴이 10년 전 창업한 투자회사다. 가문의 지원과 마이클의 수완 덕분에 샤크 매니지먼트는 급속도로 덩치를 불리며 월가의 유서 깊은 사모펀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제는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중국과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쪽으로도 투자영역을 넓혀나갔다.

 문제는, 투자금은 넘쳐나는데 이를 운용할 사람이 없다는 것.

 ‘죄다 멍청한 놈들뿐이군.’

 금융시장에서는 한 명의 천재가 1만 명의 역할을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에게는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여기에 더해 충성심도 있어야지.’

 투자에 성공해 명성을 얻은 투자자들은 자신만의 회사를 차려서 나가기도 한다. 마이클은 자신의 밑에서 일을 배운 직원이 독립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데이비드 록허트는 딱 알맞은 존재였다.

 그는 뛰어난 투자실력과 함께 고지식한 성격을 지녔다. 그러니 남들이 빅토리 인베스트먼트라는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릴 때도 홀로 남아 끝까지 수습했다.

 그 결과 실패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는데도 말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믿고 부릴 수 있지.’

 빅토리 인베스트먼트 파산 소식을 듣자 마이클은 좋은 기회라고 직감했다. 하지만 그는 바로 고용하는 대신 친한 기자들을 활용해 데이비드 록허트의 잘못을 부각시키는 기사를 쓰도록 했다.

 회사가 잘못된 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 경영진이 멍청했기 때문이다.

 마이클이 이 사실을 알면서도 소문을 퍼트린 건 상대를 궁지에 몰기 위함이다.

 역시나 그는 시장에서 실패자로 낙인찍혔고 오갈 데가 없어졌다. 그에게는 아픈 딸이 있다. 때문에 병원비가 밀렸고, 여기저기 빚을 지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절망에 빠져있는 그에게 결정적인 순간 손을 내미는 거지.’

 데이비드는 자신이 내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고, 자신에게 온전히 충성을 바칠 것이다.

 “슬슬 때가 됐군.”

 마이클은 이름으로 데이비드에게 면접을 보러 오라는 메일을 보냈고, 역시나 그는 바로 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면접 당일.

 월스트리트 중심 고층빌딩의 사무실로 들어선 마이클은 지원자들의 서류를 훑어보았다. 지원자들의 이력은 하나 같이 화려했다. 그런데 원하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데이비드 록허트의 서류는 어디 갔지?”

 그의 물음에 비서가 대답했다.

 “어제 면접에 못 오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마이클 프레스턴은 깜짝 놀랐다.

 “어째서?”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비서를 내보낸 그는 소리쳤다.

 “이런 젠장!”

 괜히 시간을 끌었다가 필요한 인재를 놓치게 생겼다.

 실패한 투자자를 고용할 만한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그가 원하는 조건을 맞춰주기도 쉽지 않았을 테고.

 ‘대체 어디서 그를 고용한 거지?’

 마이클은 데이비드 록허트의 투자실력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자신의 밑으로 데려와야 한다.

 잠시 고민하던 마이클은 직접 전화기를 들었다.

 * * *

 데이비드 록허트는 병원으로 가 딸을 만나고 그동안 밀린 병원비를 납부했다. 그리고 쌓여있는 공과금 서류를 처리하고, 지인들에게 연락해 빌린 돈을 갚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렇게 주말 동안 바쁘게 볼일을 본 다음 다시 약속장소로 향했다.

 ‘정말 잘한 걸까?’

 어제 만난 동양인을 떠올리니 걱정이 들었다. 과연 그를 믿고 따라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호기심이 일었다.

 어째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 같은 기분이다.

 ‘만약 그제 계약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샤크 매니지먼트 면접을 보고 있었겠군.'

 그렇게 생각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데이비드 록허트 씨입니까?]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전 마이클 프레스턴입니다.]

 ‘마이클 프레스턴이면······ 샤크 매니지먼트 CEO?’

 데이비드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면접이 잡혀있었는데 안 오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못 가게 되었다고 어제 메일로 답변 드렸는데, 혹시 못 보셨습니까?”

 [메일은 확인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면접을 못 보시는 건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새로운 회사에 취직했기 때문입니다.”

 [샤크 매니지먼트보다 규모가 큰 회사인가요?]

 왜 그런 걸 묻는지 모르겠지만 데이비드는 일단 대답했다.

 “그렇진 않습니다.”

 잠시 후, 마이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록허트 씨가 꼭 우리 회사로 왔으면 합니다. 계약조건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그보다 더 드리겠습니다. 또한 위약금이 발생할 경우 대신 물어드리겠습니다.]

 “······.”

 그야말로 파격적인 조건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마이클 프레스턴이 직접 이런 제안을 하다니!

 다행히 컨티뉴 캐피탈과는 아직 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받은 100만 달러를 그냥 돌려주면 되지 않을까?

 [전 록허트 씨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예. 샤크 매니지먼트로 오시면 록허트 씨가 꿈을 펼치실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일생일대의 기회인 셈이다.

 샤크 매니지먼트는 월가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사모펀드. 그가 몸담았던 빅토리 인베스트에 비해서도 수십 배의 자산을 운용한다. 게다가 뒤에는 프레스턴 그룹이 버티고 있다.

 정체 모를 동양인이 며칠 전 만든 투자회사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샤크 매니지먼트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담담하게 말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었는지 반응은 잠시 후 나왔다.

 [어째서입니까?]

 “이미 계약을 했으니까요.”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인 청년은 자신을 믿고 계약서도 쓰지 않고 100만 달러를 먼저 건네주었다. 계약서를 썼든 쓰지 않았든, 돈을 받은 순간 계약은 성립됐다.

 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해서 계약을 파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이클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통화가 끝났다.

 데이비드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실소를 지었다.

 ‘내가 마이클 프레스턴의 제안을 거절할 줄이야.’

 어쩌면 오늘 일을 평생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는 약속장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싸구려 호텔에서 자고 일어난 나는 어제 만난 카페로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속을 달래는데 데이비드 록허트가 들어왔다.

 “다행히 오셨네요.”

 그는 농담처럼 물었다.

 “혹시 걱정하고 계셨습니까?”

 “그럼요.”

 물론 농담이다.

 애초에 믿지 않았다면 먼저 100만 달러를 주지도 않았겠지.

 “사실 오늘 샤크 매니지먼트 면접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못 간다고 말했는데, 오는 길에 CEO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난 깜짝 놀랐다.

 “마이클 프레스턴이요?”

 “예.”

 “뭐라고 하던가요?”

 “저를 고용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CEO가 직접 전화할 정도면, 면접과는 상관없이 처음부터 그를 고용할 생각이었던 건가?

 “정말 잘하셨습니다.”

 “뭘요?”

 “거절하셨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 자리에 나오셨으니까요. 만약 승낙했다면 바로 샤크 매니지먼트로 달려갔겠죠.”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거절했습니다.”

 빨리 미국으로 달려와서 다행이다. 하루라도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짝짝짝!

 난 가볍게 박수를 쳤다.

 “축하드립니다.”

 “뭘요?”

 “인생 최고의 선택을 하신 걸요. 아마 10년 후에 이렇게 생각하실걸요. ‘아! 그때 마이클 프레스턴의 제안을 거절해서 천만다행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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