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퍼플게임즈 (1)
전 세계에서 게임을 즐기는 젊은 층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특히 신흥국에서의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다.
중국과 인도는 말할 것도 없고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의 게임산업 매출도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때문에 글로벌 IT기업들은 이 거대한 시장을 놓고 격전을 벌였다. 인수합병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은 위챈트.
중국 최대 기업이자 세계 최대 게임 회사인 위챈트는 거대한 중국 시장과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게임회사들을 집어삼켰다.
대표적인 사례는 로이엇게임즈.
미국 산타모니카에 있는 이 회사는 바로 토너먼트 오브 레전드(Tournament of Legend), 일명 TOL를 개발한 곳이다.
AOS 장르의 TOL은 출시된 지 10년 가까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다. 현재도 수천만 명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고, 매년 개최되는 e스포츠 대회의 시청자가 2억 명이 넘는다.
본사도 미국에 있고 경영진도 전부 미국인이지만, 정작 이 회사 지분 100퍼센트는 위챈트가 소유하고 있다.
엔플과 구블은 스마트폰 앱마켓에서 게임 판매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게임이 앱마켓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채 10퍼센트가 안 되지만, 매출에서는 무려 80퍼센트를 넘게 차지한다.
또한 구블과 엔플, NS 모두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다운로드 없이 게임을 클라우드에서 구동해 기기로 스트리밍하겠다는 것이다.
10년 후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게임 산업은 무섭게 성장 중이다.
배틀 아일랜드 성공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하나의 게임이 성공하면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게임 회사에 투자하러 가는 길입니다.”
지금 내가 투자하려는 게임은 배틀 아일랜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성공을 거둘 게임이다.
* * *
스타게이트 스튜디오.
산타모니카에 위치한 이 회사는 30명의 직원을 둔 게임회사로, 직접 게임을 만들어 출시하기보다는 주로 대형 게임사들의 하청을 받아 납품하는 일을 했다.
이곳의 직원인 찰스 그리핀, 켄 어틀리, 스티브 보스틱, 루퍼스 베일리는 일이 끝난 뒤 자주 어울려서 놀았다.
어느새 의기투합한 그들은 회사를 나와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네 사람은 각자 5만 달러씩을 각출해 퍼플게임즈를 창업했다. 넷이 공동대표가 됐고 회사 지분은 25퍼센트씩 나눠 가졌다.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 작업실을 얻는 대신 찰스의 집 거실에 모여 작업을 했다.
게임 개발은 힘들지만 즐거운 일이었다. 모두가 경험이 있는 만큼 개발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많은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는 A급 게임들의 경우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반면 인디게임은 얼마든지 개발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퍼플게임즈는 1년간의 개발 끝에 첫 게임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름은 ‘해머 워리어’로 2D 횡스크롤 액션 게임이다. 가격은 9.99달러로 책정했다.
스트림(Stream)에 첫선을 보인 게임은 약 4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회사는 45만 달러의 수익을 얻었다.
기대했던 만큼의 대박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만족했다.
중요한 것은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만든 게임을 사주었고, 즐겁게 플레이해주었다는 것이다.
첫 게임 출시로 자신감을 얻은 그들은 바로 두 번째 게임 제작에 나섰다.
찰스는 자신이 평소 생각하던 것을 말했다.
“샌드박스 형식의 비디오게임 어때?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정해진 목표 없이 블록을 활용해 자유롭게 즐기는 거지.”
샌드박스 게임은 막강한 자유도를 지니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그래픽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낮은 비용으로도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디 게임사들이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했다.
그 유명한 마이 크래프트 역시 처음에는 인디게임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이후 NS에 무려 20억 달러에 인수됐고,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마이 크래프트가 경이적인 성공을 거둔 뒤 샌드박스 게임들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그러나 어느 게임도 마이 크래프트의 아성을 넘지는 못했다.
아니, 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싱글 플레이를 기본으로 하되 멀티 요소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자신이 만든 마을에 다른 유저들을 초대하는 거지.”
“유저들이 얼마든지 게임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모드를 만들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아.”
“건축이나 사냥, 낚시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어때?”
개발 방향이 정해지자 아이디어가 샘솟듯 쏟아졌다. 게임 이름은 블록 밸리(Block Vally)로 정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찰스가 시나리오와 콘셉트를 짜고, 켄이 디자인을 그리면, 스티브와 루퍼스가 이를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했다.
하지만 진행 과정에서 여러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뚜렷한 목표가 없기 때문에 잘못하면 지루함을 유발하기 쉬웠고, 캐릭터가 다양한 활동을 하며 생겨나는 물리엔진의 버그와 로딩도 문제였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자유도를 제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일반 RPG와 다를 게 없어졌다.
처음 개발 기간으로 잡은 1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어느새 3년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개발은 크게 진척되지 않았고 여전히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어느 길로도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은 곧 길을 잃기 쉽다는 말과 동일했다.
창작을 하다 보면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는 때가 있다.
어떤 때는 자신들이 만든 게임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 우쭐해지다가도, 하루 뒤에는 데이터로 만들어진 쓰레기라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졌다.
이미 ‘해머 워리어’로 번 돈도 까먹은 지 오래였다. 그들은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 작업을 하는 식으로 버텼다.
스티브는 찰스에게 일단 개발을 중단하고 ‘해머 워리어2’를 만들자고 설득했다. 기존작의 팬들이 있는 만큼, 그러면 적어도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찰스는 이에 반대했다. 격렬한 토론 끝에도 둘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스티브는 두 손을 들었다.
“난 더 이상 못하겠어. 너희끼리 계속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그렇게 스티브 보스틱은 회사를 떠났다.
네 명 중 한 명이 빠졌으니 개발은 더욱 난항을 겪었다.
남은 셋은 침울한 분위기였다.
그들이 개발에 매진하는 사이 게임계의 트랜드는 빠르게 바뀌었다.
눈이 높아진 게이머들이 과연 자신들이 만든 게임을 계속 좋아해줄지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포기할 수도 없었다.
3년 동안 개발한 만큼 어떻게든 끝을 봐야 했다.
“우리 실력으로는 너무 무리한 일을 벌인 걸지도 몰라.”
“개발비는커녕 빵 사먹을 돈도 없어. 어떻게 하지?”
“투자자를 한번 찾아보는 게 어떨까?”
“지금 상황에서 우리 게임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있을까?”
“크라우드 펀딩은 어떨까?”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이란 개발 단계에서 프로젝트를 공개해 익명의 다수에게 투자를 받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인디 게임들도 이런 방식으로 개발비를 모아 성공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물론 실패 사례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 전 세계에서 한 해에 출시되는 인디 게임의 숫자는 수만 개.
완성하지 못했거나, 완성한 뒤에도 상품성이 없어서 출시가 안 된 게임들까지 포함하면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들 중에서 펀딩에 성공한 게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번 올려보자.”
돈도 돈이지만 자신들이 만드는 게임이 정말로 상품성이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찰스는 미국에서 가장 큰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퀵스타터에 게임의 트레일러, 개발 계획, 콘셉트, 디자인 등을 올렸다.
모금 기간은 3개월.
목표 금액은 50만 달러.
그런데 하필 이 시점에서 인디 게임 펀딩과 관련한 각종 사건사고가 터졌다.
출시 전에 무려 100만 달러를 리워드받은 한 인디 게임은 다른 회사 게임을 적당히 베껴서 내놓았고, 65만 달러를 모은 한 회사는 게임을 출시하지 않고 잠적했다.
표절, 퀄리티 저하, 개발비 먹튀 등은 인디 게임계의 고질적인 문제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개발자들의 몫이었다.
50만 달러는커녕 한 달이 다 되도록 1만 달러도 모이지 않았다. 최저금액에 미달되며 펀딩은 자동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세 사람은 절망에 빠졌다.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그런데 투자를 못 받았잖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찰스는 정신을 차리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자, 잠깐. 아직 끝이 아니야.”
“다른 방법이 있어?”
“투자자를 한번 찾아보자.”
“어떻게?”
“직접 메일을 보내봐야지.”
대기업이 유망한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하듯, 대형게임사, 콘솔업체, ESD 등에서는 산하에 전문적으로 인디 게임을 지원하는 부서를 따로 두고 있었다.
그렇게 지원을 받은 인디 게임사들 중에서 대박을 터트려서 대형 게임사에 인수되거나 메이저 게임사로 발돋움하는 곳들도 있다.
이러한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회사는 중국 최대 IT기업 위챈트.
때문에 가장 먼저 위챈트의 인디 게임 지원 부서에 메일을 보내려는데, 메일이 한 통 도착해 있었다.
[퀵스타터에 올라온 당신들의 게임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투자에 대한 논의를 위해 만나서 얘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누가 메일을 보낸 거야?”
“한국인이라는데. 여기로 직접 찾아온대.”
“일단 만나보자. 만나서 손해볼 건 없잖아.”
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어떻게 보면 우리 게임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알아봐준 사람이니까.”
* * *
찰스와 켄은 작업실 근처 카페에서 메일을 보낸 이들을 만났다. 그들의 눈앞에는 20대 중반의 동양인 청년과 금발의 미국인이 나타났다.
동양인 청년은 악수를 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컨티뉴 캐피탈 대표 한미루입니다.”
“컨티뉴 캐피탈이요?”
“예. 전문적으로 투자를 하는 회사입니다.”
찰스와 켄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들어봤어?’
‘아니. 처음 들어보는데.’
그야 당연하다. 불과 며칠 전 만들어진 회사니까.
미국인은 자기소개를 했다.
“데이비드 록허트 변호사입니다.”
그들은 인사를 끝마친 뒤,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한미루는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개발 중인 게임은 잘 보았습니다. 누가 이런 게임을 개발하는지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오늘 기회가 됐네요.”
켄은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정말로 저희 게임에 투자를 해주시는 겁니까?”
“예. 먼저 100만 달러를 투자할 생각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들이 목표했던 모금액보다 두 배는 높았다! 이 정도면 셋이 2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조건은요?”
한미루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게임 지분의 50퍼센트를 갖고 싶습니다.”
“50퍼센트요?”
투자를 받을 경우 일정 부분을 지분을 넘기는 것에는 셋 다 동의했다.
하지만······.
‘100만 달러로 게임 지분 50퍼센트면 우리 게임의 가치를 200만 달러로 평가한다는 건데.’
이전 게임에서 45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렇다면 이번 게임은 어떨까?
찰스는 자신들이 만드는 게임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아무리 돈이 급하다고 해도 헐값에 권리를 넘길 생각은 없었다.
‘100만 달러를 투자해 절반을 가져간다는 건 말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