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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화안그룹 망나니 (1) (258/529)

 66화. 화안그룹 망나니 (1)

 바쁘게 토머스 모터스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사이, 쿨라우드 경영진은 결정을 내렸다.

 역시나 시드의 요구를 받아들여 추가로 15퍼센트의 지분을 주기로 했다.

 “이게 계약서예요.”

 시드는 계약서를 우리에게 들고 왔다.

 데이비드는 그것을 면밀하게 검토했다.

 유상증자가 아니라 각자가 가진 지분을 비율대로 내놓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정확히 알렉스 지분은 38퍼센트에서 32퍼센트로, 롤프는 37퍼센트에서 31.16퍼센트로, 프레스티지A PE는 16.84퍼센트로 낮아지게 된다.

 그리고 시드의 지분은 20퍼센트로 올라간다.

 물론 그냥 내주는 것은 아니었고 이런저런 조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15년 안에 퇴사시 이번에 받는 15퍼센트는 물론이고 이미 받은 5퍼센트 주식까지 전부 반납해야 하고, 그 기간 안에는 락업(Lock Up)으로 묶여 처분도 불가능하다.

 “제법 머리를 썼군요. 15년 안에 퇴사시에는 단 한 주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또한 유상증자를 통해 언제든지 지분율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시드를 앞으로 최소 15년 동안 쿨라우드에 묶어놓겠다는 거네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IT업계에서 15년이면 그야말로 정년퇴임까지 일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만약 나중에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유상증자를 해서 지분율을 낮춰버리면 그만이다.

 어쨌거나 지분을 주기로 결정한 건 자신들이 계속 쿨라우드를 지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어차피 내가 인수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다.

 난 변경된 지분율을 다시 살펴보았다. 원하는 비율이 완벽하게 맞춰졌다.

 “괜찮으니까 사인해.”

 * * *

 시드는 계약서에 사인했다.

 금발의 잘생긴 남자는 생색을 내듯 말했다.

 “알렉스가 안 된다고 하는 걸 내가 간신히 설득했어. 그동안 너한테 좀 소홀했던 것 같기도 하고. 말하기 전에 진작 챙겨줬어야 했는데.”

 시드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방구석에서 컴퓨터를 하던 시절 그에 대한 기사들을 보았다. 실리콘밸리의 천재라는 얘기에 같이 한번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뭣도 모른 채 그의 회사에 지원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시드는 미네르바를 처음 본 순간을 떠올렸다.

 그것은 이제까지 본 프로그램 중 가장 완벽했다. 그래서 롤프에게 다시금 존경의 마음을 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롤프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제이슨 킴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었고, 롤프가 한 일이라고는 이름을 바꾸고 회사를 만든 것뿐이다.

 그럼에도 언론에 나가서는 개발 당시의 비화라며 있지도 않은 얘기를 떠들어댔다. 이런 놈을 천재라고 하는 건 진짜 천재에 대한 모독이다.

 시드가 서류에 사인을 하자, 롤프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잘했어. 앞으로는 회사 떠난다는 말 안 할 거지?”

 시드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왜냐하면, 이 회사를 떠날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 * *

 가브리엘라는 공장 사진을 찍어서 보냈고, 모리스는 토머스 모터스에서 일했던 직원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보냈다.

 이렇게 하나씩 자료를 모아보니 그야말로 가관이다.

 데이비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공장은 아직 기초공사를 시작도 안 했고, 수소를 생산한다던 태양광 발전 설비는 가동도 안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상태라면 3년이 지나도 양산은 불가능할 겁니다.”

 시제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양산은 전혀 다른 문제다.

 양산을 위해서는 막대한 돈을 투자해 생산설비를 짓고, 사람을 고용하고, 품질을 관리해야 한다.

 때문에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CES나 모터쇼에 신차를 공개하더라도 그중 막상 양산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렇다면 시제품이라도 제대로 만든 걸까?

 T1 FCV의 주행 영상이 찍힌 장소는 쉽게 찾기 힘들었다. 토머스 모터스 측이 비밀로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모리스가 친구를 통해 알아낸 몇 개의 장소를 추릴 수 있었고, 구블 위성사진을 뒤진 끝에 간신히 해당 장소를 알아냈다.

 그곳을 직접 찾아간 에드워드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하신 게 맞았습니다! 정말로 기어를 중립에 놓고 있으니 시속 60마일까지도 속도가 나더군요. 지금 드론으로 영상 찍어서 메일로 보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영상을 본 데이비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로 언덕에서 굴렸다니. 보고도 믿기가 힘들군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인데도 놀라운데, 처음 보는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데이비드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대체 이걸 어떻게 눈치챈 겁니까?”

 난 대충 얼버무렸다.

 “저도 그냥 혹시나 했는데 운 좋게 맞았네요.”

 이런 기업이 시총 400억 달러라니!

 창업자이자 CEO인 브레드 버튼은 지분 16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 벌써 60억 달러를 벌어들인 셈이다.

 이쯤 되면 외교부 동원해서 코발트 광산 뻥쳤던 KNC인터내셔널은 귀엽게 느껴질 정도다.

 천조국답게 사기 스케일도 남다르구나.

 난 데이비드와 머리를 맞대고 이걸 어떻게 터트릴지에 대한 계획을 짰다.

 “웬만한 공격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최대한 크고 화려하게 터트려야죠. 모두가 주목할 수 있도록.”

 웬만한 공격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면 더 세게 때리면 그만이다.

 “일단 리포트를 작성해주세요. 두 가지 버전으로.”

 하나는 일이 터지기 전에 공개하고, 다른 하나는 일이 터진 뒤에 공개할 생각이다.

 “언론에는 어떻게 알릴 겁니까? 아는 기자가 있습니까?”

 “다행히 적당한 사람이 한 명 있어요.”

 “화안에너지가 관건이군요.”

 적의 최대 우군을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절반은 이기고 들어가는 셈이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쪽 팀장부터 만나고 오겠습니다.”

 * * *

 미국 앨라바마주 몽고메리.

 혼자서 숙소를 잡고 기다리는데, 유재호 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간은 저녁 8시. 달튼 호텔입니다. 로비에서 말하면 안내해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아! 허민웅 팀장은 성격이 안하무인인 걸로 알려져 있으니 참고하세요.]

 “예. 뉴스로 봐서 알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별명이 화안그룹 망나니다.

 사석에서 권혁준 부회장에게 슬쩍 반말했다가 유재호 회장이 알고 분노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그 외에 유흥주점에서 종업원을 폭행한 게 세 차례고, 음주운전하다가 사고 낸 게 두 차례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클럽에서 술에 취해 패싸움을 벌인 일이다.

 여자 문제로 시비가 붙었다고 하는데, 말리던 가드들까지 주먹으로 때려눕혔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나중에 경찰 조사를 받게 되자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자신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진술했다.

 언론에 알려진 게 이 정도면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얼마나 많겠는가?

 재벌가 남자라면 이 정도 무용담(?)은 다들 하나씩 있는 모양이다.

 유재호 회장은 농담처럼 말했다.

 [그래도 저한테는 깍듯하게 잘합니다.]

 “그런가요?”

 아무리 천방지축이라도 유성그룹 회장 앞에서 건방을 떨 만큼 간이 크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나만 묻죠.]

 “예.”

 [롱입니까, 숏입니까?]

 역시 무슨 일 때문에 만나려는지 눈치챘구나.

 “짐작하시는 대로입니다.”

 기대감으로 치솟은 주가를 더 올리기는 힘들다. 반면 떨어트리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어느 정도로 보고 있습니까?]

 “80 이상입니다.”

 유재호 회장은 짐짓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정도입니까?]

 “지켜보시면 아실 겁니다.”

 물론 가만히 지켜보지만은 않겠지.

 유재호 회장의 재산은 한국 1위. 하지만 대부분이 주식으로 묶여있고 현금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말로 그럴까?

 세상일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알려진 재산 외에도 선대부터 쌓아둔 막대한 비자금이 있을 것이다.

 유성그룹이 한국 최대의 재벌인 만큼 비자금 규모 역시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건 세금도 내지 않고 고스란히 물려받았겠지.

 굳이 나한테 물어본 걸 보면 판에 낄 생각이 있는 듯했다. 어차피 해먹는 거, 다 같이 해먹으면 좋겠지.

 그 순간,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한테 투자해보시는 건 어떤가요?”

 [투자요?]

 “예.”

 [얼마나 말입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만, 한 1억 정도 어떠세요?”

 유재호 회장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설마 1억 원을 말하는 건 아니죠?]

 “달러입니다.”

 이게 회삿돈이라면 모를까, 개인에게는 만만치 않은 돈이다.

 [저한테 그만한 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하긴 그렇겠네요.”

 유재호 회장 본인은 그 돈이 없을 수도 있겠지.

 “혹시 아시는 투자회사가 있다면 소개시켜주셔도 됩니다.”

 예를 들어 조세피난처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라든지.

 [조건은요?]

 “수익의 절반입니다.”

 [꽤 많군요.]

 “그래도 최소 두 배는 버실 겁니다.”

 [손실이 나면요?]

 “그땐 제가 회장님 옆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월급 모아서 갚으려면 쉽지 않을 텐데요.]

 “한번 믿고 맡겨주세요.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잠시 후, 유재호 회장이 말했다.

 [내일까지 답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 * *

 허민웅은 자신이 머무는 호텔 방에서 손님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전 한미루라고 합니다.”

 “허민웅입니다. 반갑습니다.”

 대체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평범하게 생긴 20대 중반의 한국인 청년이었다.

 혹시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자세히 봤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다. 그런데 이름이 좀 낯이 있다.

 ‘한미루라고?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그 순간,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혹시 프리머스 사태······?”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그게 바로 접니다.”

 프리머스 사태는 재계에서도 유명하다. 한 신입사원의 폭로로 인해 DA금융그룹 후계자가 바뀌었으니까.

 허민웅은 속으로 당황했다.

 ‘이놈이 왜 여기 있어?’

 그는 프리머스 사태를 폭로한 뒤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 있는 자신을 만나러 온 것도 놀라운데, 소개를 시켜준 사람이 유재호 회장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놀랍다.

 ‘대체 이놈이 어떻게 유재호 회장을 아는 거지? 둘이 무슨 사이야?’

 만나보라고 자신에게 직접 전화까지 한 걸 보면 그냥 건너건너 아는 사이는 아닐 것이다.

 허민웅은 슬쩍 물어보았다.

 “그런데 유재호 회장님과는 어떻게 아시는 사이입니까?”

 “일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요?”

 “자세한 얘기는 회장님께 물어보시면 될 겁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아니라서요.”

 “······.”

 이렇게 말하니 더 궁금해진다.

 ‘그러니까 대체 무슨 관계인데?’

 펀드 부실을 폭로하고 퇴사한 증권사 직원과 유성그룹 회장. 아무리 생각해봐도 둘 사이에 무슨 연결고리가 있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유재호 회장에게 연락해서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았다.

 허민웅은 눈앞의 청년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놈이 양정욱을 날렸다고?’

 직원이면 직원답게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 보고를 하는 것까지는 자유지만, 그걸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는 건 경영진이 할 일이다.

 그걸 멋대로 언론에 폭로한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날뛰는 놈이라니.’

 허민웅은 그런 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재호 회장의 소개로 온 이상, 대접은 해주고 적당히 돌려보내야 했다.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한 거야?”

 한미루는 웃으며 말했다.

 “말이 짧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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