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형만 한 아우 (1)
사모펀드는 여러 개의 폐쇄형 펀드를 운용한다.
샤크 매니지먼트는 그중 단 하나의 펀드도 손실을 낸 적 없기로 유명했다.
때문에 어디에 투자할지, 예상 수익률이 얼마일지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 블라인드 펀드라 하더라도 만들기가 무섭게 마감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기록이 깨졌다.
그는 그동안 토머스 모터스에 대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고, 처분할 시기를 가늠 중이었다.
문제는 주가가 계속 오르는 중이었다는 것.
이번 행사에서 중요한 발표가 예정되어 있는 만큼 일단 행사가 끝난 뒤 매각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번 일이 터진 것이다.
단지 마이너스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 정도 손실은 작정하면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이런 일이 터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손실을 그대로 뒤집어썼다니.’
마이클은 그동안 수소차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왔다.
때문에 토머스 모터스의 지분 매각을 추진하는 것과는 별개로 새로운 수소차 회사에 투자할 예정이었다.
넥스트로젠은 수소차의 핵심기술과 차량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로 인수를 위해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인해 주요 LP들이 투자 재검토를 요구했다. 사실상 업계 선두주자가 무너진 만큼 관련 기업 투자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이클은 데이비드 록허트가 쓴 리포트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컨티뉴 캐피탈은 행사 직전CFD 거래를 통해 공매도를 쏟아냈다.
아마 그것 역시 데이비드 록허트가 주도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샤크 매니지먼트로 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번 일을 터트린 것은 바로 샤크 매니지먼트였을 것이다. 가진 주석을 전부 처분하고 공매도와 함께 풋옵션을 매수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손실 대신 엄청난 이익을 얻었을 테고 지금쯤 축배를 들고 있겠지.
마이클 프레스턴은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이비드 록허트를 데려왔어야 했는데!’
인재를 놓쳤다는 사실이 새삼 뼈아프게 다가왔다.
한껏 궁지에 몬 다음 구해주듯 데려오려고 했는데 엄한 놈이 낚아챘다.
“대체 누가 파트너로 나선 거지?”
* * *
토머스 모터스의 주가 폭락은 관련 기업들 전체에 영향을 끼칠 만한 사안이다.
원래대로라면 협력관계에 있던 화안에너지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어야 했지만, 직전에 협약을 엎어버리고 보유지분을 전량 매도했다.
매도 금액은 18억 달러.
원화로는 약 2조 원이다!
컨티뉴 캐피탈의 폭로 이후 주가의 90퍼센트가 날아간 점을 생각한다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에 비해 1조 8천억의 이익을 거둔 셈이다.
종목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이야! 2조 원!
-허민웅이 리포트를 보고 직접 조사해서 매도를 지시했다며?
-온갖 전문가라는 놈들도 몰랐던 걸 허민웅 혼자 눈치챘다고?
-월가의 유명 헤지펀드 샤크 매니지먼트도 물렸다고 합니다. 설립 이후 최초의 손실이라고 하네요.
-WST 기사에 따르면 토머스 모터스 지분을 매입한 건 화안솔루션에 있는 허민홍 부사장이라 함. 그러다가 허민웅이 이어받았는데 이번에 사기라는 것을 밝혀냄.
-ㅋㅋㅋ 형은 멍청하게 속았는데, 동생은 똑똑하게 알아냈네~
-주요 주주들 중 미리 눈치채고 매도한 건 화안에너지가 유일함.
-혼자 최고점에서 다 팔고 빠져나옴 ㅋㅋㅋ
-ㅈㄴ 대단하다. 회장 아들이라 한자리 맡은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능력자 ㄷㄷㄷ
-주식 팔아서 번 돈이 수년치 영업이익임.
-주식의 신!
-허민웅이 화안에너지를 살렸다!
-이쯤 되면 상 하나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화환이라도 보냅시다!
-옳소! 소액주주들끼리 십시일반 합시다!
화안에너지 주주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지만 화안솔루션 주주들은 그렇지 못했다.
화안솔루션 종목게시판은 초상집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화안에너지에서 공문 보냈다는데 대체 뭘 한 거야?
-화안에너지에서 당장 팔라고 리포트까지 첨부해서 알려줬다며?
-혹시 회사에 휴지 모자라서 뒤 닦는데 썼냐?
-이 새끼들 대체 뭐한 거냐?
-뒤에서 토머스 모터스에게 돈 받아 처먹은 거 아니야?
-허민홍을 배임행위로 고발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보유 지분 전부 팔아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팔면 10달러도 못 받을 텐데??
-어차피 상폐 되면 0달러 아님???
-허민홍 진짜 경영 존나 못함. 내가 해도 쟤보다는 잘함.
-어이! 허성훈이~ 판단 잘해라. 장남한테 그룹 맡기면 몇 년 안에 후루룩 다 말아 먹는다~ 화안그룹 순식간에 국밥 되는 거야!
-허민홍 엎드려!!!
-화안에너지 주주입니다. 조문 왔습니다.
-허허! 화안솔루션 살려다가 화안에너지 샀는데 천만다행이네요.
-형만 한 아우 없다더니······ 요 있었넹!
-장 열리면 바로 하한가 직행이네.
-떡락 각 날카롭다!
-요단강 익스프레스! 출발!
-하한가~ 하한가~ 신나는 노래~
-놀리는 니들이 제일 나쁨 ㅜㅜ
* * *
[(WST 단독) 토머스 모터스 지분을 매입한 건 화안솔루션 허민홍 부사장]
[허민홍 부사장, 토머스 모터스 기술력 제대로 확인 안 했나?]
[화안솔루션, 화안에너지의 의견을 무시한 배경은?]
[거세지는 허민홍 부사장의 책임론]
[국내 대기업들의 해외 기업 투자. 신중해야······.]
토머스 사태 직전까지만 해도 한국 언론들은 토머스 모터스에 처음 투자를 결정한 게 허민홍이라며 치켜세우기 바빴다.
그런데 사태가 터지고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안면몰수하고 허민홍에 대한 비난 기사를 쏟아냈다.
‘그동안 받아 처먹은 광고비가 얼마인데 이따위로 기사를 써?’
허민홍은 기사를 보며 소리쳤다.
“홍보팀은 언론 대응 안 하고 뭐 하는 겁니까?”
화안솔루션 임택주 사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저기 연락을 해봤는데 다들 어쩔 수가 없다는 반응입니다.”
처음 이 사건을 보도한 사람은 월스트리트타임즈의 트리시 오코너 기자.
그녀는 직접 퓨어셀 데이 행사장에서 진상을 밝혀냈고, 컨티뉴 캐피탈과 화안에너지를 독점 취재했다.
그렇다 보니 해외언론이고 국내언론이고 전부 그녀가 쓴 기사만을 받아쓰는 신세가 되었다.
“그동안 결이 다른 기사를 써온 만큼, WST 논조에 반하는 기사를 쓰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합니다. 원한다면 저희 쪽 입장도 싣겠다고 합니다만······.”
그런데 딱히 틀린 내용이 없다 보니 밝힐 만한 입장도 없다. 해명한다고 자료를 내봐야 역효과만 날 것이다.
“아무래도 허민웅 팀장이 컨티뉴 캐피탈과 손잡고 일을 벌인 것 같습니다.”
허민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새끼들이 전부 한패였군.’
확실히 그게 아니라면 지금 상황이 설명되지 않는다.
“문제는 사전에 우리에게 위험을 알렸다는 겁니다.”
사실 화안에너지가 보낸 공문은 별것 아니었다.
그냥 이런 리포트가 있으니 지분 매각을 검토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첨부된 리포트 역시 시장에서 나온 리포트와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처음 확인했을 때만 해도 협약을 앞두고 대체 왜 이런 공문을 보냈나 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고작 이메일 하나 보내놓고 할 일 다 했다는 겁니까?”
수소인프라 협약은 화안그룹 전체가 관련되어 있는 일이다. 그룹의 정책을 180도 뒤집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근거가 필요하다.
이렇게 중요하고 확실한 일이라면 직접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그런데 허민웅은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우리한테 알렸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그것만으로도 허민웅 팀장은 책임을 피해 갈 겁니다.”
“젠장!”
신사업은 자리 잡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리고 실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확실하지도 않다. 그래서 그는 신사업인 수소에너지는 동생에게 넘기고, 이미 자리를 잡은 태양광에너지를 맡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차라리 다 같이 날렸다면 그나마 상황이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 저쪽은 고점에서 팔았고, 이쪽은 완전히 물렸다.
무려 회사 자산 1조 7천억 원이 증발했다.
이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할까?
임택주 사장은 허민홍을 보며 복잡한 심경을 감췄다.
‘그게 나는 아니어야 할 텐데.’
* * *
한국 증시가 열렸다. 역시나 관련 기업들은 일제히 폭락했다.
화안에너지 주가는 개장 직후 -3퍼센트 정도로 약간 출렁거렸지만, 이내 회복해-0.6퍼센트에 머물렀다.
이 정도면 보합세라고 봐도 좋았다.
허민웅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하나씩 읽어보았다.
[(투자속보) 화안솔루션 개장 직후 하한가 직행]
[화안에너지 현재 보합세]
[화안그룹 기업들의 엇갈린 표정]
[허민웅 팀장, 빠른 판단으로 화안에너지를 살리다!]
[화안에너지 소액주주들, 허민웅 팀장 앞으로 감사의 화환 보내]
[화안솔루션 주주들, 경영진 배임 혐의로 고발!]
그동안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사회면에 실린 적은 몇 차례 있었지만, 경제면에 이 정도로 커다랗게 실린 것은 처음이었다.
왠지 묘한 기분을 느끼며 기사를 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허민웅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상대는 소리치듯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똑바로 설명해 봐!]
허민웅은 차분하게 말했다.
“기사 봤으면 알 거 아니야? 토머스 모터스 이 새끼들 완전히 사기꾼이더라고.”
[뭐?]
“내가 매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친절하게 공문까지 보내줬잖아. 그거 확인 안 했어?”
허민홍은 이를 갈듯 말했다.
[행사 이틀 전에 말이지?]
“시간이 별로 없었어.”
[전화 한 번 할 시간이 없었다고?]
“정신없이 바빴으니까. 나도 수습하느라 죽는 줄 알았어. 조금만 늦었으면 화안에너지도 그대로 물렸을걸.”
[아무리 바빴어도 전화해서 설명했어야지!]
“아니, 바쁜 와중에 공문까지 보내준 사람한테 왜 화를 내?”
[너 지금······.]
허민웅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허리를 잘랐다.
“난 아무것도 모른 채 등 떠밀리듯 협약 맺으러 미국으로 날아왔어. 다행히 운 좋게 협약식 직전에 사기라는 걸 알아챘고, 그걸 친절하게 알려주기까지 했지. 내가 뭘 더 해야 하는데?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왜? 설마 나도 같이 죽었어야 했다는 거야?”
그 말에 허민홍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동생은 할 일을 했다. 제때 대응하지 못한 건 그의 잘못이다.
“그리고 손해 본 것도 아니잖아. 지금 팔면 원금은 건질 수 있지 않아?”
허민홍은 버럭 소리쳤다.
[그걸 말이라고 해!]
오른 주가는 장부에 자산으로 반영됐고 덕분에 화안솔루션 주가는 세 배로 올랐다. 그런데 그 자산이 90퍼센트나 사라졌다.
당연히 화안솔루션 주식은 폭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 이놈들이 사기꾼인 거 몰랐어?”
[시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처음 브레드 버튼을 만난 것은 형이었잖아. 지분을 인수해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도 형이었고. 그런데 그 뒷일은 나한테 넘겼어.”
[그 얘기를 지금 왜 하는데?]
허민웅은 대놓고 물어보았다.
“혹시 지금처럼 일이 잘못될 경우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해서.”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