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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화. 출장 (3) (162/529)

 167화. 출장 (3)

 과거 IT기업들은 각자 자체적인 서버를 갖춰야 했다.

 하지만 이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과 인력이 든다. 웬만큼 규모가 되는 회사라면 모를까, 소규모 업체가 이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대단히 비효율적이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클라우드.

 기업은 필요한 만큼의 서버를 빌려 쓰면 된다. 시설을 설치할 필요도 없고 관리할 필요도 없다.

 효율적인 데다가 비용도 적게 들어가는 만큼, 이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시장 규모는 현재 약 3000억 달러.

 매년 20~30퍼센트씩 성장 중이고, IT업체의 지출 중 3분의 1이 클라우드와 관련해 발생한다.

 이러니 빅3 시총이 1조 달러를 우습게 넘어가는 거겠지.

 워낙 규모가 크고 성장세가 빠르다 보니 실리콘밸리에는 지금도 우후죽순으로 클라우드 스타트업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대부분 클라우드 빅3의 데이터센터를 빌려서 쓴다.

 스타트업들이 성장하면 함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인 만큼, 빅3도 스타트업 지원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맞서려 하는 순간 바로 적으로 돌변한다.

 때문에 그동안 알렉스 프레스턴과 롤프 부치는 빅3와의 협력을 중시해왔다. 그런데 시드가 CEO가 되자마자 이를 뒤집고 멋대로 독자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다.

 이러한 행보에 빅3가 우려를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견제를 시작했다. 가장 치명적인 건 자사 클라우드에 있는 데이터 활용에 제한을 두기 시작한 것.

 특정 클라우드에 종속되지 않고, 각 클라우드에 파편화된 데이터를 하나로 모아 활용하는 멀티 클라우드는 스노우 크래시의 가장 큰 강점.

 그런데 제휴가 끊기면 그게 불가능해진다.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 만큼 당장 중단한 건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사업이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스노우 크래시의 가치가 1000억 달러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반영했기 때문.

 점유율과 매출로 볼 때 아직 빅3를 상대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서비스 철회 요구에 대해 시드는 당연히 싫다고 했겠네요?”

 “그렇습니다.”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장 강하게 나오는 곳은 AMZ입니다. 이번에 서비스 영역을 확대한 것에 대해 배신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불쾌함을 표시하더군요.”

 “그쪽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먼저 영역을 침범한 것은 스노우 크래시니까.

 “제재 조치와 함께 인수 의사도 밝혀왔습니다.”

 그 말에 난 당황했다.

 “기업을 압박함과 동시에 인수를 제안했다는 건가요? 그건 제안이 아니라 강요 아닌가요?”

 데이비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업들이 흔히 쓰는 방식입니다.”

 “하긴, 페이스노트가 틴스타그램을 인수할 때도 제안을 거절하면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협박했죠.”

 “제안이야 거절하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상대가 AMZ라는 겁니다.”

 작은 인터넷 서점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이 아는 이커머스 회사로 성장했다.

 이렇게 보면 회사의 주력 사업이 전자상거래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 주력 사업은 클라우드 컴퓨팅.

 AMZ는 클라우드 시장의 선구자다.

 처음에는 자사가 확보한 서버 자원을 입점업체들에게 빌려주는 식으로 영업하다가, 이게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ZWS(Z Web Service)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클라우드 시장 개척에 나섰다.

 이는 AMZ에게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초기에 적자를 감수하고 저가 공세를 펼치다가 어느 정도 시장을 장악했다 싶으면 가격을 올리는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AMZ는 오히려 더욱 가격을 낮추며 점유율을 무한하게 늘려나갔다.

 이게 가능한 건 ZWS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익이 뒷받침됐기 때문. 실제로 AMZ의 수익 65퍼센트가 클라우드 사업에서 발생된다.

 “그리고 루카스 CEO와도 따로 접촉해 영입을 제안한 모양입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시드 루카스의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시드의 천재성이 소문나지 않도록 롤프가 잘 관리했기 때문이다. 또한 시드가 한 일은 전부 자신의 공으로 포장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천재로 불렸던 롤프 부치는 사기 행각이 들통났고, 쫓겨나듯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그 후, 그의 업적으로 알려졌던 일들을 전부 시드가 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IT기업들과 투자자들은 일제히 시드 루카스의 존재를 주목했다.

 제조업에서 한 명의 숙련된 노동자가 열 명의 노동자 역할을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IT업계는 한 명의 천재가 1만 명, 10만 명의 역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IT회사들은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직원 몇 명짜리 회사를 수억 달러에 인수하는 것도 전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시드는 스노우 크래시를 수년 만에 미국 클라우드 업계 4위로 만들었을 정도의 천재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입하고 싶을 것이다.

 “AMZ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영입 제안을 하는 모양입니다. 백지수표를 내민 곳도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일전에 루카스 CEO에게 지분 10퍼센트를 그냥 주시는 걸 보며 이해가 잘 안 됐습니다.”

 스노우 크래시의 가치를 1천억 달러라고 하면, 그 10퍼센트만 해도 100억 달러다. 그걸 스톡옵션도 아니고,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줬다.

 “이제 보니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죠?”

 내 말에 데이비드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어쨌거나 뭐 하나 녹록지 않다.

 상황의 심각성 때문인지 데이비드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난 그를 안심시켜주었다.

 “너무 걱정할 것 없어요.”

 “방법이 있습니까?”

 나한테 뭔가 해결책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사실 없지는 않다.

 “기업은 이익을 좇기 마련이죠. 스노우 크래시의 서비스가 빅3보다 우위에 있다는 걸 확인시켜준다면, 결국 이쪽으로 옮겨오지 않겠어요?”

 “문제는 그때까지 버틸 수 있냐는 점이겠죠.”

 자본이 충분하면 무한정 쏟아부으며 버티면 되지만, 아직 그럴 만한 여력은 없다. 이대로 적자가 누적되면 못 버티고 쓰러지게 될 것이다.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에요. 지금처럼 데이터 활용만 하면 빅3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질 뿐이에요.”

 “그럼요?”

 “우리도 온프레미스로 가야죠.”

 “직접 데이터센터를 만들겠다는 겁니까?”

 “그건 힘들겠죠?”

 데이터센터 건설에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단지 건물을 짓고 반도체를 넣는 것뿐 아니라, 전력을 끌어오고 인터넷망을 구축해야 한다. 데이터 저장과 관리에 따른 각종 법적인 문제도 걸려 있기 때문에 국가와 지자체 등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안 그래도 이 문제에 대해 유재호 회장과 얘기를 나눴어요.”

 데이비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유성전자와 말입니까?”

 “예. 데이터센터를 만들어 함께 협업하자고 제안했어요.”

 내 덕에 유성전자는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동우정밀과 팹리스사 인수는 물론이고, 비자금도 두 차례나 뻥튀기(?)시켜줬다. 바보가 아닌 이상 내 제안을 흘려듣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이면 임원들 모아놓고 데이터센터 분야 진출에 대해 회의 중이지 않을까?

 “유성전자라면 좋은 파트너가 되겠군요. 자본도 있고, 전 세계에 지사를 두고 있으니.”

 중얼거리듯 말하던 데이비드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설마 처음부터 협업을 계획하고 있었던 겁니까?”

 “뭐······ 그런 셈이죠.”

 사실 처음 동우정밀 때문에 만났을 때만 해도 여기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유성전자는 한국 최고의 재벌그룹. 여기에 더해 세계 3대 반도체 회사. 친해지면 무조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정 안 되면 유성전자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정말 최악의 상황.

 자력으로 이 위기를 해결하는 게 최선이다.

 어쨌거나 가만히 있는다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일단 ZWS 담당자를 한번 만나봐야겠네요. 미팅 잡아주세요.”

 * * *

 다행히 미팅은 금방 잡혔다.

 난 동호 선배와 김범석을 본사에 두고 혼자 비행기에 올라탔다.

 목적지로 가는 동안 ZWS에 대한 자료를 읽어보았다.

 클라우드 빅3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약 60프로. 이중 ZWS 점유율이 32퍼센트로 2위인 NS와는 10퍼센트 넘게 차이가 난다.

 미국 시장만 놓고 보면 54퍼센트로 과반이 넘는다.

 이런 엄청난 점유율이 가능한 건 남들이 클라우드가 뭔지 개념도 잡지 못하던 시절부터 시장에 뛰어든 덕분.

 선점효과랄까?

 서버 인프라 역시 세계 최대.

 전 세계에 데이터센터를 두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해저케이블로 꼼꼼하게 연결해 놓았다.

 나중이라면 모를까, 아직 이런 기업을 적으로 돌리기에는 위험이 크다.

 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스노우 크래시를 인수하고 시드를 CEO로 만든 것은 원래는 없었던 일이다.

 미래를 알고 그대로 따라서 움직이는 건 쉽다. 하지만 그걸 바꾸니 온갖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지금 상황 역시 그중 하나겠지.

 역시 세상일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구나.

 너무 서둘렀나?

 하지만 그때가 아니었다면 내가 스노우 크래시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딱 3년만 시간이 주어지면 AMZ를 뛰어넘어 세계 1위 클라우드로 도약할 수 있다. 그때는AMZ가 우리에게 사정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며 보고 있던 자료를 닫았다.

 뭐, 이제까지 어떻게든 되겠지.

 대부분의 IT 대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것과는 달리 AMZ는 시애틀에 본사를 두고 있다.

 원래 소도시에 있던 AMZ가 시애틀로 본사를 옮긴 것은 7년 전.

 효과는 엄청났다.

 그 뒤로 AMZ는 폭풍 성장을 거듭하며,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기업이 됐다. 그리고 시애틀은 그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AMZ는 4만 명을 직접 고용했고, 10만 개가 넘는 관련 일자리를 창출했다. AMZ를 찾는 방문객만 연간 25만 명이 넘는다.

 시애틀 노동자들 평균 소득은 뉴욕보다도 높으며, 몇 년 사이 인구는 20퍼센트 가까이 증가했다.

 난 거대한 도시의 중심에 들어선 빌딩 숲을 보았다.

 처음 4개의 빌딩으로 시작한 AMZ는 고용 인원이 늘어나며 주변 빌딩을 사들이고, 새로운 빌딩을 지으며 어느새 34개로 늘어났다.

 마치 제국의 성 같은 느낌이다.

 난 빌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미리 약속을 잡아놓은 만큼 바로 미팅룸으로 안내되었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는데, 한 남자가 들어왔다.

 30대 후반의 백인 남성. 몸은 마른 편이고, 키는 180 정도. 안경을 꼈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난 속으로 깜짝 놀랐다.

 기껏해야 투자 담당자 정도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사람이 등장했다.

 이건 허를 찔린 기분인데.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해리슨 요한벨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미루라고합니다.”

 우리는 인사를 마친 뒤 자리에 앉았다.

 “록허트 대표와 함께 공동대표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이번에 연락받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유명하시더군요.”

 “뭘요.”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조사를 해본 모양이다.

 나 역시 오기 전 ZWS와 관련한 자료를 살펴봤기 때문에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해리슨 요한벨.

 조지아텍을 나온 엔지니어로 나이는 38세.

 다름 아닌 ZWS의 CEO다.

 “직접 나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마침 시간이 비어서요.”

 아무리 최근 컨티뉴 캐피탈이 이름을 날리고 있다고 해도 쉽게 만나기 힘든 사람이다.

 굳이 직접 이 자리에 나온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컨티뉴 캐피탈에 대한 얘기는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어려운 투자를 여러 차례 성공시킨 걸로 유명하던데. 이제 보니 록허트 대표 혼자 한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겸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얼마 전 주총도 잘 봤습니다. 친구 하나가 엘리언트 매니지먼트에서 일하는데, 보면서 극찬을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한번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온 거구요.”

 “감사합니다.”

 좋은 집에서 태어났다지만, 본인의 능력으로 세계 최대 클라우드 회사 CEO 자리까지 올라선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표정과 몸짓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래서 무슨 일 때문에 오신 건가요?”

 난 바로 본론을 꺼냈다.

 “스노우 크래시에 대한 제재 조치를 취소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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