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LD스튜디오 (3)
LD스튜디오가 브라더후드M의 확률 조작을 한다는 게 사실일까?
놀랍게도 사실이다.
그것도 몇몇 랜덤박스뿐 아니라, 아이템 강화나 스킬 강화 등 확률이 적용되는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확률 조작을 해왔다.
내가 이걸 아는 이유는 훗날 내부 문건이 새나가며 밝혀지기 때문.
의심하던 확률 조작이 사실로 밝혀지자 게이머들은 폭발했다.
유저들은 게임사 측에 사과와 환불을 요구했고, 본사 앞에서 단체 시위를 하고 항의 트럭을 보냈다.
하지만 LD스튜디오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당시 선우는 다른 게임 개발 디렉터를 맡고 있었고, 꽤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다.
선우는 일부 직원들과 함께 회사가 잘못을 인정하고, 환불과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간담회를 열어 사과와 함께 유저들의 입장을 들으려 했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회사 측의 방해로 인해 사전에 중단됐다.
선우는 ‘유저를 개돼지 취급하는 회사가 얼마나 더 갈 수 있겠냐?’며 항의했지만,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를 왜 니 멋대로 키우냐는 질책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는 회사의 착각이었다.
이때의 일을 계기로 민심은 폭발했으니까.
유저들은 회사가 생각하는 것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브라더후드M뿐 아니라 LD스튜디오 게임을 하는 유저들은 다른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호구나 바보 취급을 받았고, 그동안 수백억을 쏟아부은 핵과금러들마저 게임을 접고 떠났다.
매출이 10분의 1로 떨어지고 주가가 폭락하자, LD스튜디오는 부랴부랴 바닥으로 떨어진 민심을 회복시키기 위해 대규모 보상을 뿌리고 사과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브라더후드M의 서버는 텅텅 비었고 순위는 끝없이 추락했다. 그 뒤 LD스튜디오는 다른 신작을 내놓았다.
하지만 유저들은 확률을 조작하고 고객을 개돼지 취급하는 회사가 만든 게임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심지어는 그렇게 내놓은 신작들마저 브라더후드M을 카피한 것에 지나지 않아 더욱 비웃음을 샀다.
게다가 당시 게임업계의 화두는 VR과 메타버스였다.
그동안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과금요소와 랜덤박스를 집어넣어 매출을 올릴지만 고민하던 회사가 이런 흐름을 쫓아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어쨌거나 이때 일로 선우는 회사에 완전히 찍혔다. 그리고 그 뒤로 온갖 고초를 겪다가, 경영진이 위챈트에 회사를 매각할 때 해고당한다.
그러니 내가 그냥 넘어갈 수 있나?
가브리엘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LD스튜디오는 한국 1위 게임사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매출이 중요해도 그런 무리하고 불법적인 일을 할 리 없을 텐데요.”
“아예 그런 인식조차 없다면요?”
“예?”
“한국에서 랜덤박스 확률을 공개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그나마 전부 공개한 것도 아니고 일부는 빠져 있죠. 법과 원칙에 따라 공개한 게 아니라 유저들의 항의와 정치권 눈치를 보느라 등 떠밀려 공개한 거니까요. 과연 그걸 게임사가 반드시 지켜야 할 룰이라고 생각할까요?”
확률을 공개하기 이전까지는 상황에 따라 회사가 멋대로 확률을 조작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이건 확률을 공개한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동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게임사들은 애초에 불법적인 확률 조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겁니다. 아마도 ‘임의 조정’이나, ‘일시적 변경’ 정도로 생각하겠죠.”
데이비드가 물었다.
“그래서 보스의 계획은 뭡니까?”
난 계획을 말해주었다.
“제 계획은 LD스튜디오를 철저하게 박살 내는 겁니다.”
다들 깜짝 놀랐다.
“바, 박살이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 친구가 이 회사 다니다가 잘렸거든요.”
“······.”
* * *
LD스튜디오의 임직원은 약 4500여 명.
워낙 덩치가 큰 회사다 보니 개발팀만 해도 수십 개가 존재한다.
게임 개발 프로젝트에는 수많은 인력과 자본이 들어간다.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중간에 엎어지고, 실제 완성돼 게임으로 나오는 것은 10퍼센트 미만이다.
때문에 프로젝트팀이 만들어졌다 해체되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렇다면 해체된 팀의 직원들은 어떻게 될까?
LD스튜디오는 사내 면접이라는 특이한 제도가 존재한다. 마치 입사할 때 면접을 보듯 회사 내에서 새로운 팀으로 가기 위해 면접을 보는 방식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도 새로운 팀을 찾지 못한 직원은 임금을 삭감하고, 대기발령 조치를 내린다.
이 상태로 1년이 지나면 무급휴가로 전환되며, 이때부터는 사실상 퇴직을 강요한다고 봐도 좋다.
얼마 전, PC MMORPG 판타지아 테일즈를 개발했던 개발3팀이 해체됐고,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개발3팀의 주축은 강선우.
사실상 판타지아 테일즈는 사실상 그의 손에 의해 탄생한 거나 다름없었다.
얼마 안 되는 개발비로 그 정도 완성도의 게임을 만든 것은 충분히 칭찬받을 만한 일이었다.
만약 운영만 잘했다면 향후 LD스튜디오를 먹여 살릴 새로운 IP로 성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운영자 아이템 무단 생성 사건’, 일명 ‘브론즈맨 게이트’로 인해 초기 흥행을 말아먹었고, 회사 측에서는 수습 대신 손절에 나서며, 팀이 해체된 것이다.
강선우의 실력을 아는 만큼 모든 개발팀들이 서로 모셔가려고 했고, 팀장들은 밥을 사며 자기들 팀으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박현종 전무에게 찍혔다는 소문이 퍼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LD스튜디오에서 진태경 사장 다음가는 권력자. 괜히 직원 하나 잘못 받았다가 팀 전체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모든 팀들이 면접 거부 의사를 밝혔고, 인사팀에서는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그렇게 강선우는 LD스튜디오에서 잘렸다.
강선우는 집 근처에서 같은 개발3팀에서 일하던 동료 차수연을 만났다.
“어떻게 지내요?”
그녀의 물음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오랜만에 푹 쉬고 있어요. 회사 안 나가도 되니 좋네요.”
차수연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뭐예요? 걱정돼서 찾아왔는데, 이제 보니 걱정할 필요 없었나 보네요.”
“어차피 그만둘까 생각했으니까요.”
돈이라면 차고 넘치도록 있다.
그가 친구에게 투자한 돈은 지금 얼마가 됐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단지 지분 가치뿐 아니라,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매달 수천만 원씩 통장에 꽂혔다.
지금부터 놀고먹어도 평생 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그러니 굳이 원하지도 않는 팀에 들어가 만들고 싶지도 않은 게임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때요?”
“민정 씨랑 유현 씨는 다행히 새로운 프로젝트팀에 배속됐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걱정이 많죠. LD스튜디오 그만둔다고 해도 딱히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박현종 전무가 개발3팀 전체를 안 좋게 보는 것은 분명했다. 이렇다 보니 다른 직원들 역시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수연 씨는 어쩌게요?”
“음, 고민 중이에요. 아직 선우 씨한테 배워야 할 것도 많은데······.”
“다른 사람한테 가르쳐달라고 하면 되지 않아요? 아니면 따로 회사에서 하는 강의도 있는데.”
“그, 그래도 전 선우 씨한테 배우고 싶어요.”
차수연은 말을 하며 강선우를 슬쩍 보았다.
강선우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음, 내가 좀 잘 가르치긴 하지.’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요. 최대한 알려줄게요.”
차수연은 반색했다.
“정말요?”
“예. 아! 그러고 보니 어제 친구랑 얘기를 좀 해봤는데······.”
“그 주식하시는 친구분이요? 뭐래요?”
“회사에서 잘렸다니까 자기가 복수해주겠다는데요.”
뜬금없는 얘기에 그녀는 당황했다.
“예? 복수요? 어떻게요?”
“글쎄요.”
강선우도 그 점이 의문이었다.
‘설마 이 자식이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지는 않을 테고. 대체 뭘 하겠다는 거지?’
* * *
“어서 오십시오.”
난 40대 후반 정도의 백인 남성을 만났다.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미중년이었다.
난 그가 내민 손을 붙잡으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한미루입니다.”
“컨티뉴 캐피탈에 공동대표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젊은 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의 이름은 허버트 렌츠.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유명한 엠프티풀 리서치(Empty Pool Research)의 대표다. 회사는 컨티뉴 캐피탈과 마찬가지로 월스트리트에 위치해있다.
인사를 끝마친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엠프티풀 리서치. 전부터 생각했지만, 이름이 참 멋지네요. 무슨 뜻인가요?”
렌츠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물 안에 있을 땐 모두가 똑같아 보입니다. 머리만 내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수영장의 물이 빠지고 나면 누가 수영복을 입고 있지 않은지가 드러나게 되죠.”
난 감탄하며 말했다.
“바로 그 물을 빼는 일을 하시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사실 알면서 한번 물어봤다.
그는 회계사 출신 투자자로 귀신같이 회계 부정을 파악해내기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사모펀드를 설립한 것은 11년 전.
주로 투자하는 방식은 공매도와 풋옵션. 적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 해당 기업을 철저하게 조사한 다음 폭로했다.
1년에 한두 차례만 투자하지만, 한 번 투자할 때 수익은 최소 50퍼센트다.
“작년에 쓰신 라오후 커피에 대한 리포트 잘 봤습니다.”
“하하! 저 역시 토머스 모터스 리포트를 잘 봤습니다.”
이 두 기업의 공통점은 리포트가 나온 뒤 주가가 대폭락했다는 것.
라오후 커피는 중국 토종 커피 기업.
마뤼양 CEO는 5년 안에 스타벅스를 따라잡겠다고 소리치며, 무료 쿠폰을 뿌리고 유명 모델을 섭외해 광고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여기에 자체 앱을 통한 결제와 주문, 배달, 픽업 서비스를 도입해 IT에 익숙한 젊은 층을 공략했다.
그렇게 급속도로 성장한 라오후 커피는 여세를 몰아 나스닥에 상장까지 성공했다. 상장 이후에도 지점은 두 배가 늘고 주가가 다섯 배가 올랐다.
마뤼양 CEO는 주주들에게 외국 진출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라오후 커피는 중국을 넘어 세계 시장을 공략하겠습니다. 내년에 미국에 1천 개 이상의 점포를 개설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라오후 커피에 제동을 건 곳이 바로 엠프티풀 리서치.
먼저 자산을 전부 라오후 커피 주식을 공매도한 다음 매도 리포트를 발표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가입자 수를 두 배 부풀리고, 매출 50퍼센트를 뻥튀기하는 등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대체 라오후 커피의 회계 부정을 어떻게 밝혀낸 겁니까?”
그나마 투명하게 공개되는 미국기업과는 달리 중국기업들의 회계는 제각각이고,이를 밝혀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알바생 수천 명을 고용해 2천 개 지점에 파견했습니다. 모든 매장의 영상을 찍고, 고객 수와 판매량을 조사했습니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공급 업체를 찾아가 지점마다 사용한 종이컵 수와 빨대, 봉투 숫자까지도 알아냈구요.”
이것도 알면서 한번 물어봤다.
듣고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한 방법이다. 동시에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리포트가 공개되자 라오후 커피의 주가는 하루 만에 70퍼센트가 날아갔다.
분식회계가 사실로 밝혀지자 SEC(미국증권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나섰고, 결국 상장폐지로 이어졌다.
뭐, 그 몇 개월 뒤 컨티뉴 캐피탈이 토머스 모터스를 무너뜨리며 좀 묻히긴 했지만.
“오늘 무슨 일로 저희 회사를 찾아오신 겁니까?”
“평소 팬이라서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하하! 정말입니까?”
“그리고 드릴 말씀도 하나 있어서요.”
“뭡니까?”
난 회사에서 오간 얘기를 그에게 그대로 말해줬다.
그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국 최대 게임사가 랜덤박스 확률을 조작하고 있다는 겁니까?”
“예. 확실합니다.”
렌츠 대표는 나에게 물었다.
“이걸 저한테 말씀해주는 이유는요?”
난 넌지시 제안했다.
“이번 일을 함께하시면 어떨까 해서요.”
그의 별명은 증시의 저승사자.
이유는 찍은 종목마다 전부 폭락시켰기 때문이다. 그가 폭로해서 폭락하지 않은 기업이 한 곳도 없고, 상폐시킨 기업만 여섯 곳이다.
워낙 확실할 때만 움직이기 때문에 걸린 기업은 사실상 끝장난다고 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