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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09화 (204/529)

209화. 이스케이프(Escape) (8)

보고를 받은 사이토 마사키 회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구요?”

“사마라 전 회장님이 집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순간,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대체 왜?’

탈출이 물리적으로 가능하고 말고를 떠나서 도망칠 이유가 없었다.

일단 현재 나온 혐의만 가지고 실형은 무리였다. 때문에 가만히만 있으면 다시 구속될 위험은 없었다.

또한 사마라 회장은 여전히 자신의 해임이 부당하다는 소송을 벌이는 중이었다. 이는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석 중에 도망치면 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언제 사라진 겁니까?”

“확실치가 않습니다. 아들 결혼식에 참석할 사람들을 접대할 때까지만 해도 있었다고 하는데…….”

집을 몰래 빠져나갔다고 해도 일본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붙잡히면구속당하는 건 물론이고, 큰 망신을 사게 된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멍청한 짓을 벌인 거지? 탈출극을 벌여 국제적 이슈라도 불러일으킬 생각인가?’

현재 사마라의 존재는 키오노스에 큰 위협이었다.

그의 취임 전까지 키오노스는 방만한 경영을 해왔다.

사마라는 회장 취임 이후 이사회와 임원들의 비위 행위를 조사했다. 능력이 없는 이들은 그걸 빌미 삼아 쳐냈지만, 능력이 있는 이들은 그 사실을 묻어두고 중용했다.

만약 그가 그 자료를 공개하기만 해도 지금 임원 중 절반은 잘릴 것이다.

게다가 그는 10년 넘게 키오노스를 경영한 만큼 회사의 각종 비리와 문제를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를 체포하고 구속한 것부터가 억지였다.

SPME와 키오노스의 합병을 막기 위해서는 그를 이사회에서 몰아내야 했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했다.

때문에 일본 정부는 검찰을 움직였고, 그 틈을 타서 사이토는 사내 쿠데타를 벌인 것이다.

여기에 연루된 정치권과 검찰 인사들도 한둘이 아니다.

이를 폭로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타격이다.

‘만약 프랑스 정부와 SPME까지 움직인다면?’

그땐 진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간신히 부활한 일본 반도체 산업이 무너질 수도 있다.

사이토는 비틀거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지금은 안 돼.’

적어도 일본 정부의 투자를 받을 때까지만이라도 버텨야 했다.

“지금 검찰과 경찰이 도주 경로를 추적 중이라고 하니 금방 잡힐 겁니다.”

사이토는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을 겁니다.”

“예?”

사마라는 그의 스승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는 스승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절대 자신의 안위를 내팽개치고 무모한 일을 벌일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는 건…….

“지금쯤이면 일본을 빠져나갔을 겁니다.”

* * *

탈출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 난 일본에 머물렀다.

호텔에만 가만히 있기도 심심해서 혼자 관광을 다녔다.

돌아다니며 느낀 점은 물가가 생각보다 싸다는 것.

몇몇 품목은 한국에 비해 비쌌지만, 보통 물가 비교에 많이 사용되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나 맥도날드의 빅맥의 경우 한국과 비슷하거나 약간 싸다.

일본의 경제 규모나 1인당 GDP를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이는 일본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져들며 지속적인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기 때문.

전세계가 고속성장하고 있는 지금도 일본은 나 홀로 침체를 겪는 중이다.

기업의 수익이 줄어드니 근로자의 임금이 줄어들고, 임금이 줄어드니 물가가 낮아지고,물가가 낮아지니 다시 기업의 수익이 줄어드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이를 살려보기 위해 그동안 무던히 애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진 이유는 버블 붕괴와 고령화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산업 전환에 실패했기 때문.

현재도 일본은 선진국들 중 가장 디지털 전환이 느린 나라다.

그나마 과거에 벌어놓은 자산과 기술력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것도 슬슬 한계에 부딪히는 중이다.

오죽하면 한국에도 뒤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중에 한국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니까.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잘해야겠지.

라멘 한 그릇 먹고 돌아가는 길에 난 데이비드의 연락을 받았다.

“어떻게 됐나요?”

[성공했습니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솔직히 말씀드려 이 방법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말했잖아요. 일본 공무원들 일 처리가 의외로 허술하다고.”

사마라 회장을 탈출시키는 일은 요인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이나 다름없다.

원래대로라면 최소 몇 달은 준비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난 탈출 방법과 루트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저 내가 생각한 방법대로 탈출이 가능한지만 확인하면 되니 비교적 빠르게 끝났다.

하지만 여전히 변수는 남아있었다.

1회차 때 사마라 회장이 탈출했을 때는 지금처럼 감시가 빡세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집 밖으로 나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다행히 잘 해결됐다.

100퍼센트 끝난 건 아니지만,이 정도면 80퍼센트는 성공한 셈이지.

TV도 인터넷도 조용한 걸 보면 아직까지 일본 수사기관이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건가?

사마라 회장이 무사히 일본을 떠난 이상,내가 계속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굳이 서둘러 떠날 필요는 없었기에 푹 잔 다음, 다음 날 로비에 연락했다.

“체크아웃하겠습니다. 공항으로 갈 거니 차량 준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난 짐을 챙겨 1층으로 내려갔다.

준비된 차에 올라타려는데, 웬 남자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한미루 씨 되십니까?”

“아씨! 깜짝이야. 무슨 일이에요?”

“잠시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난 그들을 훑어보았다.

“싫다면요?”

“지금 공항으로 가도 어차피 출국은 안 될 겁니다.”

“그래요?”

이제 눈치챈 모양이네.

난 손에 든 비행기 티켓을 들어 보였다.

“상관은 없는데, 티켓은 다시 발권해주시나요?”

* * *

난 남자들과 함께 차에 올라타 도쿄지검으로 향했다.

분명 응접실이라고 들었는데 왠지 취조실 같은 느낌의 장소로 안내됐다.

체포가 아닌 임의동행인 만큼 핸드폰과 여권 등 소지품은 뺏기지 않았다. 잠시 핸드폰을 하며 기다리자 아는 얼굴이 들어왔다.

요시네 켄타로 검사.

그는 따지듯 나에게 물었다.

“사마라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가택연금 중이니 집에 있겠죠.”

그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집에 없으니 물어보는 겁니다.”

난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 정말요? 그럼 어디 갔나요?”

“그건 그쪽이 알고 있을 텐데요.”

검사의 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내가 탈출에 관여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듯했다.

뭐,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하지만 난 그저 입국해 사마라 회장을 만난 것밖에 없다. 의심은 할 수 있겠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다.

난 펄쩍 뛰었다.

“아니,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탈출을 돕지 않았습니까?”

“제가요? 전 계속 호텔에 있었는데요. 그런데 경찰도 지키고 있고 CCTV도 있던데, 사마라 회장이 무슨 수로 집을 빠져나간 건가요? 설마 땅굴을 팠을 리는 없을 테고.”

“음향장비 케이스에 몸을 숨겨서 빠져나갔습니다.”

“아! 그런 방법이.”

탈출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바로 CCTV를 분석해 알아냈을 것이다.

이게 바로 파티를 연 이유였다. 친척과 지인들이 모인 제법 큰 규모의 파티였던 만큼 악단을 불렀고, 그들은 음향장비를 들고 왔다.

음향장비를 옮기는 케이스는 사람이 들어가기에도 충분한 크기다.

사마라 회장은 그 안에 몸을 숨겨 악단이 떠날 때 몰래 집을 빠져나간 것이다.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마라 회장이 없어졌으면 수사기관이 알아서 찾아야지,왜 저에게 묻는 건가요?”

사람 잡아다놓고 본인의 무죄를 입증해보라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정말 모릅니까?”

“예.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자 요시네 검사는 두 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버럭 소리쳤다.

“거짓말 마! 사마라를 어디에 숨겼어!?”

똑같은 영어인데 왠지 존댓말이 반말로 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존댓말 캐릭터 아니었어?

사실 그가 이 정도로 흥분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이번 수사를 지휘하며 일약 스타 검사로 떠올랐다. 나중에는 정계에 입문,내각관방장관 자리까지 오른 다음 차기 총리로까지 거론된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마라 회장 탈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을 경우.

원래 내년이면 그는 승진해서 이번 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특수부로 자리를 옮기고,덕분에 책임을 비껴갈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탈출 시기가 앞당겨지는 바람에 온전히 그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만약 사마라 회장을 잡지 못한다면, 여기서 그의 커리어는 끝장이다. 이 정도로 큰 실수를 저지른 검사에게 다시 기회를 줄 리 없다.

검사직을 내려놓는 것은 물론 정계 진출도 무산될 것이다.

좀 안타깝긴 하지만…… 뭐, 어쩌겠나? 내가 걱정해줄 문제도 아니고.

난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설마 제가 사마라 회장을 일본 어딘가에 숨겨놨을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럼 아니야?”

생각이 너무 일본이라는 틀 안에만 갇혀있는 것 같다. 이럴 땐 좀 글로벌적으로다가 생각할 필요도 있는데 말이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일본 내에 숨어 있어 봐야 언젠가는 잡힐 거 아닙니까? 그럼 보석 조건 위반으로 다시 구속이죠. 여론도 악화될 테구요.”

“그래서?”

“탈출이 사실이라면 외국으로 도망치지 않았을까요?”

내 말에 요시네 검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나마 일본 내 어딘가에 숨어 있다면 붙잡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일본을 떠났다면?이땐 일말의 가능성조차 사라진다.

“그럴 리 없어.”

“어째서요?”

“그가 공항이나 항만 검문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아?”

뭐,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일본은 선진국이고,입출국이 매우 까다로운 나라다.

실제로 사마라 회장이 탈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몰래 비행기를 타고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그 순간, 부하직원이 들어와 그에게 다급한 표정으로 뭐라 말했다.

들리긴 했지만 어차피 일본어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요시네 검사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칙쇼!”

이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 * *

요르단 수도 아만.

이곳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마라 회장의 아내가 중대발표가 있다며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동안 일본에 갇혀있는 남편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며 인터뷰조차 꺼렸던 그녀가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하자,내외신 기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일본 기자 역시 포함되었다.

“갑자기 긴급 기자회견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지?”

“사마라 회장과는 얘기가 된 건가?”

“일본 정부가 뭐라고 반응하려나?”

회견장에 모여든 기자들은 대체 무슨 발표가 나올지 궁금해하며 기다렸다.

잠시 후, 기자회견장에는 사마라 회장의 아내가 나타났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그녀의 옆에는 중년 남성이 함께였다.

처음 기자들은 그를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는 달리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멈칫한 것도 잠시.

누군지 알아챈 기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헉!”

“설마…….”

“말도 안 돼!”

나타난 사람은 티에리 사마라.

일본에 갇혀있는 줄로만 알았던 키오노스 전 회장이 1만 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요르단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의자에 앉은 사마라 회장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일본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고합니다. 당장 일본을 떠나십시오. 일본 사법부는 언제든 당신의 삶을 짓밟고 파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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