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GL엔텍 (3)
[컨티뉴 캐피탈, GL엔텍 지분 5퍼센트 취득]
[GL엔텍 주가 이상 급등. 배후는 컨티뉴 캐피탈?]
[거래소 측, 시세 조종 흔적은 없어]
기사가 나오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응? 컨티뉴 캐피탈이 5퍼센트를 샀다고?
-대체 뭐지?
-아니, 쟤들은 공매도 좋아하지 않았나?
-조금 전까지 GL케미칼 신나게 공매도하더니, 왜 GL엔텍을 사?
-그럼 그동안 주가를 끌어올린 게 컨티뉴 캐피탈인가?
-기사 보니까 대략 8조 원은 쏟아부은 것 같다는데.
-만약 10만 원 이하일 때부터 샀으면, 지금 대략 두 배는 벌지 않았나?
-그거야 어디까지나 평가액이고, 그 가격에는 절대 못 팔지. 당장 컨티뉴 캐피탈이 매도하면 폭락할 텐데.
-애초에 8조면 웬만한 코스피 기업 주식을 다 사들이는 게 가능함.
-8조라고 해봐야 어차피 GL케미칼 공매도로 번 돈 아님?
-ㅋㅋㅋ GL그룹에서 GL엔텍 사라고 친절하게 돈 넣어줌.
-정확히는 GL케미칼 소액주주들 돈이지. GL그룹은 한 푼도 손해 본 거 없음.
-대체 저걸 뭔 생각으로 산 거지?
* * *
GL엔텍 상장 이후.
컨티뉴 캐피탈은 작정하고 GL엔텍 주식을 매수했다.
넥스트로젠과 유성ES 공급 계약과 함께, 수소트럭 투자 계획을 연달아 발표함으로써 GL엔텍 주가를 최대한 끌어내렸고, 덕분에 좀 더 손쉽게 주식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매수를 하면 할수록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20만 원에도 25만 원에도 매도가 나오는 족족 사들였다.
난 데이비드의 전화를 받았다.
[누군가 눈치채기 전에 매수를 끝내서 다행입니다.]
“고생하셨어요.”
컨티뉴 캐피탈이 매수한 주식은 전체 발행량의 5퍼센트. 수량으로는 4천만 주가 살짝 넘는다.
이 정도 양을 매수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매수 버튼만 클릭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날 시세와 매도량에 맞춰서 조금씩 꾸준히 주문을 넣어야 한다.
이런 경우 보통 몇 개월에 걸쳐 천천히 매수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특정 세력이 주식을 매집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좀 무리해서 사들였다. 그리고 5퍼센트가 넘자 법에 따라 공시를 냈다.
[이걸로 코스피 시총 2위 기업을 손에 넣었군요.]
고작 5퍼센트로 뭘 할 수 있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웃으며 말했다.
“정확히는 코스피를 손에 넣은 거죠.”
* * *
컨티뉴 캐피탈이 공시를 낸 건 장 마감 직후.
때문에 당장 시장에 충격이 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난리가 났다.
그동안 컨티뉴 캐피탈이 나설 때마다 증시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발생했다. 때문에 다들 컨티뉴 캐피탈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분석에 나섰다.
하지만 미리 한미루에게 언질을 들은 성윤아는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날 일을 떠올렸다.
증권사 사장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한미루는 본인 할 말만 하고 가버렸다.
그 자리에서 한미루가 요구한 것은 세 가지.
첫째, 개인투자자들의 주식을 멋대로 공매도를 위해 대여하지 말 것. 둘째, GL엔텍 공모에는 적은 수량만 참여할 것. 셋째,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옵션 발행은 하지 말고, 했다면 반드시 헤지를 할 것.
결정은 각 증권사의 몫이었다.
일개 개인의 지시를 따를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한미루의 말을 흘려듣지 못했다.
허민웅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허석윤 사장에게 말했고, 유성증권 정남철 사장 역시 유재호 회장의 지시가 있었는지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DA증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말을 따른다고 해서 크게 손해 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그 판단은 옳았다.
그 순간,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 이름을 확인한 성윤아는 전화를 받았다.
“예, 오빠.”
허민웅은 인사를 건너뛰고 말했다.
[공시 봤지? 거기 지금 분위기 어때?]
“난리도 아니에요. 화안증권은요?”
[안 그래도 지금 허석윤 사장 만나러 화안증권으로 가는 길이야. 와아! 진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그러게 말이에요.”
한미루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기가 막힌다, 기가 막혀. GL케미칼을 공매도했을 때부터 이걸 계획하고 있었던 건가?]
“아마 그렇겠죠.”
[모두가 미루가 짜놓은 판 위에서 움직였던 셈이네. 이래서 옵션을 헤지하라고 했던 거구나. 미리 말 안 해줬으면 어쩔 뻔.]
성윤아는 그 말에 동의했다.
“증권사들이 개인투자자들 주식을 공매도에 대여해줬다는 게 알려지면 큰 문제가 될 거예요.”
다행히 이 세 증권사는 한미루의 말을 듣자마자, 개인투자자 주식을 공매도에 활용하는 것을 중단했다.
하지만 다른 증권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 엄청난 후폭풍이 일 것이다.
“아무래도 미루 씨 제안을 따라야 할 것 같은데, 오빠 생각은 어때요?”
[그래야지. 미루 말은 무조건 따라야지.]
* * *
KD증권.
유성증권 미래증권과 함께 대한민국 3대 증권사 중 하나로 불리는 곳이다.
KD증권은 미래증권, 재신증권 등과 함께 GL엔텍의 상장주관사였다.
무려 16조 원을 모집하는 사상 최대의 공모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가장 많은 물량을 배정받은 KD증권은 수수료로 수백억 원을 벌어들이고, 신규 계좌까지 크게 늘어났다.
사람이 도움을 받았으면 갚는 것이 인지상정.
때문에 KD증권은 줄곧 GL엔텍 매수 추천 리포트를 쏟아냈다. 처음 목표가로 25만 원을 제시한 것도, GL엔텍이 수년 안에 DATL을 넘어설 수 있다고 한 것도 전부 KD증권 애널리스트들이었다.
그런데 주가는 어느새 목표가로 제시한 25만 원을 넘었다.
[GL엔텍 4거래일 만에 25만 원 돌파!]
[MSCI 지수 편입을 앞두고, 시총 200조 원으로 증가]
[GL엔텍 어디까지 오르나?]
KD증권 사장 조경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상승세가 너무 빠른데.’
그는 박현동 본부장을 호출해 지시를 내렸다.
“대체 누가 GL엔텍 주식을 사고 있는지 한번 알아봐.”
“알겠습니다.”
그런데 막상 알아보기도 전에 컨티뉴 캐피탈의 공시가 뜨며 의문이 쉽게 풀렸다.
“컨티뉴 캐피탈이라고? 이놈들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GL엔텍 주식을 5퍼센트나 산 거지?”
박현동 본부장이 말했다.
“아무래도 주가를 조작하려는 속셈인 것 같습니다.”
“흐음, 주가조작이라……. 주식을 매집해 끌어올려 비싼 값에 팔고 나가겠다는 건가?”
“그럴 겁니다.”
“쉽지는 않을 텐데.”
8조 원이면 상위 십여 곳 정도를 제외하면 상장기업 99퍼센트의 주가를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누구도 그런 짓을 하지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당연하게도 8조 원이 없기 때문.
자산도 아니고 현금 8조 원을 한 번에 움직일 수 있는 회사가 몇 곳이나 되겠는가?
둘째는 그렇게 해도 큰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주식을 잔뜩 사서 주가를 올려 봐야 더 비싸게 사줄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다. 파는 순간 주가는 다시 폭락하니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의 주가가 오른 것은 컨티뉴 캐피탈의 매수 때문.
일부 수량이야 비싼 값에 팔아치울 수 있겠지만, 어차피 컨티뉴 캐피탈이 매도에 나서면 주가는 금세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컨티뉴 캐피탈은 공모가 기준으로 80조 원이던 회사를 매수해 현재는 200조 원까지 끌어올렸다.
지금도 이미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과연 여기서 얼마나 더 끌어올릴 수 있을까?’
작전세력들이 장난질을 쳐서 상장회사 주가를 열 배 스무 배 올리는 건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시총이 얼마 안 되는 코스닥 중소기업의 경우.
애초에 시총이 작은 만큼 직전 비용도 수십억밖에 안 들고, 주가가 올라봐야 시총은 수백, 수천억이 고작이다.
하지만 GL엔텍은 다르다.
현재 주가에서 두 배만 올라도 시총이 200조 원 늘어난다.
‘이게 가능할 리가…….’
그 순간, 조경휘 사장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미친!”
갑작스런 욕설에 박현동 본부장은 깜짝 놀라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조경휘 사장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컨티뉴 캐피탈의 목적은 주가조작 따위가 아니야.”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놈들은 증시를 조작할 생각이야!”
“……예?”
현재 주가를 기준으로 GL엔텍이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8퍼센트.
만약 여기서 주가가 두 배가 오르면 비중은 16퍼센트, 세 배가 오르면 24퍼센트로 높아진다.
GL엔텍 주가가 움직이면 코스피 지수가 움직이는 식이다.
문제는 GL엔텍이 코스피200에 편입됐다는 것이다. 코스피의 대표 종목 200개를 모아놓은 코스피200 지수는 거의 모든 선물옵션과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으로 활용된다.
‘한 종목으로 인해 코스피200이 오르고 내린다면?’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조경휘 사장은 소리치듯 말했다.
“당장 지수와 관련된 선물옵션과 파생상품 전부 체크해!”
* * *
[(WST 단독) 컨티뉴 캐피탈, GL엔텍 주식 매수는 이제 시작]
(전략)
컨티뉴 캐피탈은 약 8조 원(70억 달러)을 투자해 GL엔텍 주식 5퍼센트를 매수해 80.3퍼센트를 보유한 GL케미칼에 이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록허트 대표는 GL엔텍 매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GL엔텍은 매우 좋은 주식이다. 이 정도로 단기간에 주가가 상승할 주식은 흔치 않다.”
그는 주가 상승 요인으로 수급을 지목했다.
GL엔텍의 유통 주식 수는 9.6퍼센트로 그리 많지 않다. 문제는 이 수급 요인이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대주주인 GL케미칼은 원래 6개월인 보호예수 기간을 투자자 보호를 위해 3년으로 늘렸고, 청약을 받은 기관들에게도 의무확약 대신 1년 이상의 보호예수를 강제했다.
의무확약과 보호예수 모두 일정 기간 동안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이 둘에는 큰 차이가 하나 있다. 전자는 어길 수 있지만, 후자는 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의무확약은 페널티를 부여받긴 해도 약속을 어기고 주식을 매도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보호예수는 다르다.
해당 기간 동안 주식을 예탁결제원에 맡기고 기간이 끝나면 돌려받는 만큼, 그전에는 매도하고 싶어도 수중에 주식이 없으니 매도가 불가능하다.
향후 11개월 동안 오버행 이슈가 없지만, 매수세는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컨티뉴 캐피탈이 5퍼센트를 매수했으니, 현재 시장에 남은 주식은 4.6퍼센트.
그런데 코스피200 편입으로 인해 이미 패시브 펀드와 연기금들이 대거 매수에 나섰다. 지수구성 주요 종목은 아무리 주가가 올라도 다시 팔기가 힘들다. 오히려 이제까지 못 산 펀드들은 서둘러 사야 하는 상황이다.
매수를 주춤하고 있던 기관들까지 매수에 나선다면, 가뜩이나 부족한 물량이 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공매도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GL엔텍의 적정가를 13~15만 원 정도로 평가했다.
다른 배터리 회사들과 비교했을 때 그 이상은 분명히 고평가였다. 때문에 GL엔텍 주가가 15만 원을 넘어서자 공매도가 쏟아졌다.
현재 GL엔텍의 공매도 물량은 전체 주식의 2퍼센트 정도로 추정된다.
이 정도면 크게 부담이 될 물량은 아니다.
하지만 거래 가능한 주식이 극도로 줄어들고 있는 만큼 이들은 빠르게 숏커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된다면 거래 가능한 GL엔텍 주식은 2퍼센트 미만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얼마를 더 매수할 거냐는 질문에 대해 록허트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3퍼센트 정도를 추가로 매수할 계획이다. 우리는 아직 GL케미칼로 벌어들인 수익을 다 쓰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