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소셜 네트워크 (8)
난 페이스노트를 나왔다.
왠지 잘 믿기지가 않는다.
내가 마이크 골든버그 CEO를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니. 죽었다 살아났더니 별일을 다 겪는다.
어쨌거나 좋은 경험이었다.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자, 새벽에 나갔던 트리시가 와 있었다.
“제보자는 잘 만났어요?”
그녀는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미루 말대로 페이스노트 직원이었어요.”
트리시는 대화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들려주었다.
“저한테 말해줘도 되는 거예요?”
“예. 제보자에게 컨티뉴 캐피탈의 사내 리포트를 보여주고 정보공유를 허락받았어요.”
하기야 제보자가 말한 내용들은 이미 사내 리포트에 전부 적혀 있었을 테니, 굳이 비밀로 할 필요가 없다.
“페이스노트는 괴물이나 다름없어요. 설마 이런 일들을 알고도 방치했다니.”
다시 말하지만, 이게 뭐 대단한 비리나 비밀 같은 게 아니다.
페이스노트의 알고리즘이 편향되어 있고, 중독과 우울증, 분노와 증오를 유발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언론과 논문을 통해 지적된 사안이다.
그중 가장 유명했던 건 올해 초 나온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보도였다. 기술 비즈니스 매체의 심층 보도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노트는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까딱 잘못하면, 잠깐 이슈가 됐다가 금방 사그라들 수 있다.
폭로는 하는 것만큼이나 얼마나 키우느냐가 중요한 법.
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했다.
“청문회가 열린다면 제보자가 출석할까요?”
내 물음에 트리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분명히 그럴 거예요.”
난 1회차 때를 떠올렸다.
WSJ의 기사가 나간 뒤 여론은 들끓었고, 정치권에서 의회 청문회를 열려고 했다.
이를 주도했던 것은 한 상원의원.
결과적으로 불발된 이유는 내부고발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트리시가 그 내부고발자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정말로 청문회를 열려고 한다면, 페이스노트는 로비스트들을 총동원해서 막으려 들 것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법이지.
그러니 나는 나대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트리시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미루는 왜 이렇게 이번 일에 관심을 갖는 거예요?”
“아! 제가 얘기 안 했나요?”
“무슨 얘기요?”
“페이스노트를 공매도했다는 얘기요.”
그녀는 깜짝 놀랐다.
“어, 얼마나요?”
“400억 달러 조금 넘게요.”
반응은 잠시 후 나왔다.
“……예?”
금액이 좀 크긴 하지?
* * *
실리콘밸리에서 일정을 끝낸 우리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일이 바쁜 관계로 숀 오코너는 다음 기회에 보기로 했다.
트리시는 비행기 안에서도 자료를 훑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내부고발자가 건네준 자료는 무려 4800페이지 분량.
퇴사하기 전에 사내 소셜 미디어인 ‘페이스노트 워크스테이션’을 싹 뒤져서 내부 보고서와 연구 자료를 긁어모았다고 한다.
이걸 다 정리해 기사를 쓰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공항을 나오자 트리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 쓰려면 한동안 회사에만 틀어박혀 있어야겠네요.”
그녀가 기사를 얼마나 잘 쓰느냐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난 트리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힘내요. 파이팅!”
내 말에 그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 알았어요. 열심히 할게요.”
의욕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니 든든하다.
트리시는 회사에 들어가기 전 나에게 말했다.
“음, 저기…… 여행 즐거웠어요.”
여행이라기보다는 출장 아니었나?
어쨌거나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퍼스트 클래스에 JR블랙우드 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이 좋았던 모양이다.
“저도요. 다음에 또 같이 가요.”
내 말에 트리시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정말이죠? 약속한 거예요.”
“예.”
기사만 잘 쓴다면, 뭘 못 해주겠나?
난 호텔에 들어가기 전, 뉴욕의 엔플스토어에 들렀다.
마침 엔폰12s가 출시된 지 얼마 안 돼 매장에는 신형 폰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번에 카메라도 좋아지고, 배터리도 늘어났던데.”
“화면 부드러운 거 봐.”
“워치도 하나 살까?”
이걸 보니 엔플의 인기를 알 만하다.
최신 폰이라고 해도 어차피 내 입장에서는 다 구형 폰이다. 그래도 디자인만큼은 언제 봐도 훌륭하다.
이러니 인기가 있는 거겠지.
유성전자가 좀 보고 배워야 할 텐데.
난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NOS 업데이트는 언제 진행되죠?”
“다음 주 화요일입니다.”
“구매하겠습니다.”
난 바로 핸드폰을 사서 유심을 넣고 개통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페이스노트를 깔았다.
* * *
달력이 12월로 넘어갈 무렵.
엔플은 예정대로 자사 기기의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그러자 엔폰과 엔패드를 비롯한 모든 엔플 기기에서는 앱을 실행할 때 이전에는 없던 경고 문구가 떴다.
[해당 앱이 다른 회사의 앱 및 웹사이트에 걸친 사용자의 활동을 추적하도록 허용하겠습니까?]
누군가 내 활동을 일일이 추적한다고 하면 거부감이 들기 마련.
역시나 경고를 본 이용자 10명 중 9명은 ‘허용’ 대신 ‘추적 금지 요청’을 눌렀다.
시장은 발칵 뒤집혔다.
[엔플 개인정보 강화 조치!]
[앱 추적 금지 조치로 페이스노트가 입을 타격은?]
[페이스노트, 엔플의 개인정보 강화 조치에 광고 매출 둔화 우려]
[구블, 엔플과 마찬가지로 개인정보 강화 조치 검토]
페이스노트는 디지털 광고시장의 절대 강자다.
매출의 95퍼센트 이상이 알고리즘을 통한 타겟형 광고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 조치로 인해 엔플 기기 이용자들에게는 타겟형 광고가 불가능해졌다.
재롤드 행크 PR 디렉터는 나서서 맹공을 퍼부었다.
“엔플의 개인정보 보호 강화 조치는 맞춤형 광고 제작을 어렵게 해 수백만 소상공인에게 피해를 줄 것이다. 광고 지원 서비스는 인터넷의 성장과 활력에 필수적이다. 엔플은 자유 인터넷 시장을 해치고 있다!”
뉴욕타임즈 등 주요 일간지에 엔플의 부당한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는 광고를 내는 한편, 소송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엔플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이용자들에게는 자신들의 데이터를 보호할 권리가 있다. 데이터를 착취해 돈을 버는 기업은 개혁되어야 한다. 엔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권리다.”
페이스노트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엔플 편이었다. 게다가 구블까지 비슷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알려지며 주가는 하루 만에 8퍼센트가 폭락해 시총 1조 달러가 깨졌다.
이 와중에 컨티뉴 캐피탈이 페이스노트를 공매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컨티뉴 캐피탈, 지난달에 페이스노트 대량 공매도!]
[약 400억 달러 공매도 추정!]
[록허트 대표, 페이스노트의 사업 모델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고 주장]
-뭐야? 설마 엔플 조치를 예상하고 공매도한 거였어?
-진짜 대단하다.
-ㅎㄷㄷ 400억 달러 공매도라니.
-그래봐야 페이스노트 시총에 비하면 5퍼센트가 안 되네.
-이 새끼들은 맨날 숏만 치네. 장투는 안 하냐?
-다 맞추는 것도 신기함~
-그런데 생각보다 주가가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데.
-짧게 먹고 청산하려나?
* * *
데이비드가 말했다.
“정말로 보스의 말대로 됐군요.”
난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기의 문제였을 뿐이죠.”
엔플은 재작년부터 계속 개인정보 강화를 주장해왔다. 그걸 이번에 실행한 거고.
역시나 시장은 이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8퍼센트 하락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무려 8천억 달러…… 원화로는 90조가 날아갔다.
웬만한 대기업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거나 다름없다.
주가 하락 덕분에 이전까지는 4퍼센트가량 손실이었으나, 이제는 이익으로 돌아섰다. 그래 봐야 수수료 빼면 남는 건 얼마 안 된다.
고작 이거 먹자고 공매도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진짜 충격은 이제부터 시작이지.
난 조셉에게 지시했다.
“지금까지 정리한 자료 전부 WST 트리스 오코너 기자에게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 * *
[(WST 탐사보도) 페이스노트는 멈출 수 없는 괴물이 됐다]
(전략)
……이러한 알고리즘의 편향성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됐던 사항이다. 그동안 페이스노트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거짓이라며 부인해왔다.
하지만 각종 내부문건에 따르면, 페이스노트는 문제점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사의 수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내부고발자는 ‘페이스노트, 린스타그램, 후즈앱은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다. 하지만 이제는 오직 수익만을 좇는 괴물이 됐다’고 말했다.
(후략)
WST 트리시 오코너 기자는 페이스노트의 문제를 지적한 탐사보도를 내보냈다.
이전에도 비슷한 기사가 여러 차례 나왔지만, 별문제 없이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이번 기사의 파급력은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오코너 기자는 토머스 모터스를 비롯해 여러 기업의 부실과 비리를 폭로한 스타 기자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미국 빅5라는 페이스노트를 저격한 것이다!
게다가 엔플의 유저 트래킹 금지 조치와 컨티뉴 캐피탈의 400억 달러 공매도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
그런 만큼 그녀의 기사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 * *
난 일전에 같이 갔던 펍에서 트리시를 만났다.
그녀는 잔뜩 지친 표정이었고, 눈 밑에는 진한 다크써클이 내려와 있었다.
“괜찮아요?”
“아니요.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고생 많았어요.”
기사를 냈다고 끝난 건 아니다.
몇 주에 걸쳐 탐사보도를 진행할 예정이니, 이제부터 계속 후속 기사를 써야 한다.
“기사 반응 엄청 좋던데요.”
“접속자가 30배는 늘었어요. 아마 예전 서버였다면 진작 다운됐을 거예요.”
트리시가 처음 토머스 모터스 취재로 특종을 터트린 뒤, WST 홈페이지는 서버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트래픽이 몰렸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클라우드 컴퓨팅.
WST는 이후 스노우 크래시와 계약을 맺고 서버를 옮겼다. 덕분에 접속자가 아무리 늘어도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내부고발자는 어때요? 지금쯤이면 페이스노트에서 조사 중일 텐데.”
“아직 회사에서 연락 오거나 하지는 않았데요. 그런데 정말 이 기사로 의회 청문회가 열릴 수 있을까요?”
“내부고발자가 참석한다면요.”
그녀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미루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거예요? 혹시 정치권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한 명 있어요.”
“누군데요?”
“마크 필립스 상원의원이라고 알아요?”
트리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 사람이랑 친분이 좀 있어요.”
내 말에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요? 정치 자금이라도 냈어요?”
미국 상원의원은 미국 전역에 딱 100명.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게다가 그는 그냥 상원의원이 아닌,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다.
이런 거물 정치인과 친분이 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지.
“그런 건 아니고, 예전에 인연이 좀 있었어요.”
“대체 어떤 인연인데요?”
이게 또 알고 보면 참 신기한 인연이지.
“혹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어떤 기사 쓰고 있었는지 기억해요?”
트리시는 잠시 기억을 떠올려 보는 듯했다.
“애틀랜타 공항에서 일어난 항공기 엔진 폭발 사건에 대한 기사였죠.”
솔직히 좀 놀랐다.
“그걸 기억하네요.”
“당연하죠. 그 순간을 어떻게 잊겠어요?”
“예?”
그러자 트리시는 당황한 듯 손을 내저었다.
“아! 그, 그만큼 놀라운 사건이었잖아요. 거기에 필립스 상원의원과 가족들이 타고 있었고, 웬 한국인이 이륙 직전 비행기를 돌렸다는데…….”
어째서인지 하던 말을 멈추더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설마 아니죠?”
“뭐가요?”
“그 한국인이 미루 씨라거나…….”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맞아요.”
“…….”
트리시는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그녀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마, 말도 안 돼. 그 비행기를 돌린 한국인이 미루였다구요?”
“예.”
“대체 어떻게요?”
“우연이었죠.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어떤 미친놈이 비행기 엔진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타겠는가? 그러니 이건 우연일 수밖에 없다.
난 웃으며 말했다.
“이제 제가 필립스 상원의원과 친분이 있다는 게 믿어지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