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소셜 네트워크 (9)
페이스노트 본사에서는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골든버그 CEO는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가뜩이나 엔플의 개인정보 강화 조치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그런데…….
미처 사태를 수습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WST의 기사가 터졌다.
사실 나온 내용 자체는 별것 없었다. 하지만 이건 탐사보도. 후속 기사에서부터 본격적인 폭로가 시작될 것이다.
“내부고발자는 누굽니까?”
인사를 담당하는 커넬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에밀리 하우젠으로 추정됩니다. 허위정보 담당 프로덕트 매니저로 두 달 전 퇴사했습니다. 퇴사 수개월 전부터 사내 소셜 미디어에서 대량의 자료를 확보한 모양입니다.”
골든버그 CEO는 에밀리 하이젠을 떠올렸다.
그녀는 여러 차례 알고리즘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녀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내부고발을 택했다고?’
그 정도 실력과 커리어라면 어느 기업이든 골라서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고발을 했다면 얘기가 다르다.
다들 말로는 내부고발자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어느 기업도 내부고발자를 반기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의 커리어가 끝장날 위험을 무릅쓰고 제보한 것이다.
어째서일까?
그 순간, 골든버그 CEO의 머릿속에 자신을 찾아왔던 동양인 청년이 떠올랐다.
‘설마 그자가 이번 일을 꾸민 건가?’
컨티뉴 캐피탈은 일이 터지기 전에 대량의 공매도를 쏟아냈다.
페이스노트의 주가가 하락하면 이익을 보는 만큼 그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예전부터 WST는 컨티뉴 캐피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도 하고.
마이크 골든버그는 그동안 컨티뉴 캐피탈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투자를 성공했는지, 얼마나 많은 기업을 무너뜨렸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페이스노트는 미국 시총 5위의 빅테크 기업.
컨티뉴 캐피탈이 이제까지 상대한 모든 기업들을 합쳐도 페이스노트만큼의 규모가 안 된다.
그래서 공매도했다는 얘기는 들었을 때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해올 줄이야. 그날 말한 건 선전포고였나?’
과연 기사의 파급력이 얼마나 될까?
알고리즘에 대한 논란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이제까지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잘못 대응했다가는 엄청난 후폭풍이 불어닥칠 수도 있을 것이다.
“에밀리 하이젠과 친한 사람이 누가 있죠? 당장 접촉해보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친분을 내세우든, 돈으로 회유를 하든, 고소하겠다고 협박을 하든 상관없다.
그녀가 언론 인터뷰 등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막아야 했다.
골든버그 CEO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떻게든 막으세요. 돈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습니다.”
* * *
마크 필립스 조지아주 상원의원.
바쁜 일정을 소화하던 도중 그는 보좌관의 보고를 받았다.
“한미루라는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말에 그는 깜짝 놀랐다.
“그게 정말인가?”
필립스 상원의원은 작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는 휴가를 내고 가족들과 함께 올랜도로 여행을 떠나기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런데 이륙 직전 활주로에 한국인 청년이 엔진이 이상하다며 난리를 쳐서 비행기를 회항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웬 이상한 놈 때문에 가족여행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로 엔진이 폭발했다!
이륙 후 이런 일이 생겼다면 비행기가 추락할 수도 있었던 상황.
그 청년이 자신과 가족, 그리고 모두를 살린 것이다!
아무리 감사를 해도 부족할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뒤로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연락도 없었다.
그러던 도중 우연한 기회에 그 이름을 듣게 됐다.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는 하나하나가 미국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토머스 모터스 폭락부터 시작해, 스노우 크래시 인수,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랜섬웨어 사태 등등.
정치권과도 관련 있는 일이 많았던 만큼, 그는 컨티뉴 캐피탈의 공동대표 이름을 알 수 있었다.
‘한미루라니! 설마 그 청년인가?’
딸 엘레나에게 전해 듣기로 그는 한국에서 펀드 부실을 폭로한 다음 투자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한미루라는 이름이 한국에서 얼마나 흔한지는 잘 모르지만, 이게 우연일 리 없다.
필립스 상원의원은 그날 본 동양인 청년의 모습을 떠올렸다.
조금도 의심 없는 확신에 찬 눈빛, 자신 있는 표정.
그라면 분명 성공할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성공해도 너무 성공했다.
컨티뉴 캐피탈 공동대표라니!
회상을 끝마친 필립스 상원의원은 걸려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마크 필립스입니다. 전화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의원님. 한미루입니다.]
목소리를 들으니 그날 일이 떠올라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미국에 있구요.]
“혹시 컨티뉴 캐피탈의 대표가 맞습니까?”
[어! 알고 계셨나요?]
“딸에게 들으니 세계 최고의 투자자가 되겠다고 말했다던데, 정말로 그렇게 됐군요.”
[하하! 아닙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대체 어디까지 올라가겠다는 거지?’
어쨌거나 이렇게 연락했다는 건 뭔가 용건이 있다는 것이다.
“혹시 저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까?”
[예.]
“뭔가요?”
[기자를 한 명 만나주셨으면 합니다.]
필립스 상원의원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페이스노트와 관련된 일입니까?”
[예. 만나보시고 얘기를 들어보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아무리 자신과 가족의 생명의 은인이라지만, 권력을 남용해야 하는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자를 하나 만나달라는 건 그리 큰 부탁이 아니다.
“그거면 됩니까?”
[예. 아! 그녀가 하는 얘기는 전부 사실이니 믿으셔도 좋습니다.]
* * *
내가 직접 의회 청문회를 열어달라고 부탁한다면 그건 청탁에 해당 된다.
하지만 기자 한 명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은 큰 문제 없다. 오코너 기자의 말을 듣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그가 판단할 문제니까.
난 1회차 때를 떠올렸다.
필립스 상원의원은 당시 의회 청문회를 추진했다.
하지만 내부고발자가 나타나지 않은 데다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가 심해 결국 무산됐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떨까?
난 트리시에게 말했다.
“약속 잡아놨으니, 워싱턴 D.C.에 다녀와요.”
내 말에 그녀는 놀라며 물었다.
“저 혼자요?”
“같이 가고 싶지만, 지금 제가 같이 가면 모양이 별로 안 좋잖아요.”
공매도를 한 만큼 지금 난 이해당사자다.
연결해주는 것까지는 할 수 있어도, 그 이상 나서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필립스 상원의원을 잘 설득해보세요.”
트리시는 엄청나게 당황했다.
“제, 제가요? 상원의원을요? 무슨 말인지 몰… 루겠……?”
“…….”
왜 이렇게 당황해?
하기야 상대는 차기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거물 정치인.
만나서 인터뷰하는 것도 부담일 텐데, 설득까지 하라고 하니 부담 100배겠지.
“트리시라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요.”
“아, 알았어요.”
왠지 힘이 난 것 같은 표정이다.
* * *
공매도를 한 이상, 해당 기업의 주가를 최대한 끌어내려야 한다.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에서는 공매도한 다음, 매도 리포트를 내는 것이 합법이다. 거짓만 없다면 말이지.
1회차 때와는 다르게 내부고발자도 확보했고, 의회 청문회까지 열 예정이다.
난 골든버그 CEO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링크랩스를 인수할 생각이다. 과연 이 정도로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있을까?
기왕 하는 거, 최선을 다해야겠지?
난 어딘가로 연락했다.
“안녕하세요, 한미루입니다. 잘 지내시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십니까?]
그녀의 이름은 엘리노어 리드.
FBI 사이버범죄 수사관이다.
“요즘 수사 실적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스노우 크래시와 손잡기를 잘했죠?”
내 말에 그녀는 소리 내서 웃었다.
[예. 큰 도움을 받고 있네요.]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랜섬웨어 사태 당시,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스노우 크래시는 FBI와 NSA를 고객으로 삼았다.
두 기관은 클라우드를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뒤로 FBI와 NSA의 수사 실적은 쭉쭉 올라갔다.
스노우 크래시와 수사기관은 이를 클라우드의 효율성 때문이라 홍보했지만, 실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모나앱은 범죄자들의 필수앱.
미국인이 후즈앱, 한국인이 타톡을 쓰듯, 범죄자는 모나앱을 쓴다.
하지만 아무나 쓸 수는 없다.
암시장에서 특수 핸드폰을 구매해야 하고, 기존 가입자 3명의 추천과 함께 가입비 5천 달러, 1년 사용료 5천 달러를 내야 한다.
잡범들은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다 보니, 모나앱은 범죄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계급장으로 통할 정도였다.
모나앱을 사용한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급이 되는 중범죄자라는 뜻. 범죄자들에게 모나앱이 깔린 스마트폰이란, 슈퍼카나 명품시계와도 같다.
범죄자들이 모나앱을 선호하는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막강한 보안성 때문.
슈퍼컴퓨터로도 해킹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발자가 백도어를 만들어 놨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시드는 모나앱의 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수사기관에 제공했다.
모나앱 안에서는 자잘하게는 마약 거래부터, 크게는 테러 모의까지…… 온갖 범죄 대화들이 오고갔다.
FBI와 NSA는 들통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를 수사에 활용했다.
오히려 너무 잘 잡으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일부러 놓치기도 하면서 말이지.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연락주셨습니까?]
“신고를 좀 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신고요?]
“예. 루카스 CEO가 다크웹에서 찾은 자료인데, 아무래도 FBI의 수사가 필요해 보여서요.”
* * *
WST의 페이스노트 탐사보도는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오코너 기자는 각종 내부자료를 근거로 그동안 페이스노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그로 인해 어떠한 일이 일어났고,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분석하는 후속 기사를 내보냈다.
WST가 내부문건을 다른 언론사들과도 공유하겠다고 밝히며, 뉴욕 타임즈와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포스트, CNN 등 미 15개 언론사들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페이스노트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기사를 시리즈로 내보내기로 했다.
[페이스노트 알고리즘은 위험하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분노와 증오를 유발!]
[린스타그램 10대 이용자들 중, 12퍼센트가 자살 충동 느껴]
[내부고발자 폭로 일파만파. 골든버그 CEO의 대책은?]
[컨티뉴 캐피탈, 사내 리포트 공개]
[록허트 대표, 페이스노트는 부도덕한 기업……]
-뭐야? 이게 진짜야?
-청소년을 중독시키고, 우울증을 일으킨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야?
-이용 시간을 늘리기 위해 혐오를 조장하는 콘텐츠 등의 노출을 막지 않고 있는다고? 미친놈들인가?
-에이, 설마. 무슨 음모론도 아니고.
-이래서 SNS는 인생낭비라고 하는 건가?
-컨티뉴 캐피탈은 대체 뭐지? 설마 내부고발자 얘기를 먼저 듣고 공매도한 건가?
-이거 불법 공매도 아님?
-당장 SEC가 나서서 조사해야 한다!
-이번에 공개한 거 보니, 내부고발자 제보 전에 이미 사내 리포트를 작성해서 공매도했다던데.
-자체 분석 결과가 내부고발자가 말한 내용과 일치함. 근데 컨티뉴 캐피탈이 먼저 씀.
-이 새끼들 타이밍 오지네~
-ㅅㅂ 컨티뉴 캐피탈 공매도했다니까, 다른 헤지펀드들까지 일제히 달려들어 공매도하고 있네.
-공매도충들 다 죽었으면 ㅜㅜ
사태가 커지자 결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연방거래위원회(FTC)는 폭로된 페이스노트 내부문건, 일명 ‘페이스노트 페이퍼’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상원 상업과학교통위원회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하고, 마이크 골든버그 CEO에게 청문회 소환장을 발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