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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75화 (275/529)

275화. 뉴욕의 연말 (4)

내 정체를 들은 에릭 로즈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대단한 투자를 많이 하셨던데.”

“뭘요.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난 그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동생분이 혹시 뉴욕 타임즈의 바넷사 로즈 기자 아닌가요?”

내 말에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유명하잖아요.”

정확히는 트리시에게 들었다.

그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동생이 이 자리에 있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은 취재가 있어서 함께 못 왔네요.”

“연말은 기자들이 바쁜 시기죠.”

트리시도 지금 취재를 위해 타임스퀘어 광장에 나가 있다.

난 에릭 로즈와 잠시 대화를 나눈 다음, 샴페인을 마시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있으면 어색하거나 긴장되기 마련. 하지만 그런 기분은 별로 들지 않았다.

이유는 아마도 내가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겠지.

이런 자리에서 만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든 사업적으로든 큰 도움이 되기 마련.

만약 내가 평범한 사모펀드 대표였다면, 부자들을 상대로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방식과 수익률을 설명하며 투자를 권유했을 것이다.

소수의 인원에게 많은 자금을 끌어모으는 사모펀드는 항상 부자들의 투자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들에게 큰돈을 벌어다 준다.

그러나 컨티뉴 캐피탈은 패밀리 오피스.

누구의 투자도 받지 않고, 오직 내 돈을 벌 뿐이다.

그러니 내가 먼저 다가가서 일일이 인사를 하거나 고개를 숙일 필요도 없다. 그저 적당히 파티를 즐기다 가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한 여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금발에 새하얀 피부, 검은색 미니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녹색 눈동자는 총명하게 빛났고, 굳게 다문 입술에서는 강한 성격이 엿보이는 듯했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이런 파티는 처음인가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다른 파티에서 당신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파티를 많이 다니는 모양이다.

그녀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에밀리 클로에예요.”

“한미루입니다.”

“컨티뉴 캐피탈에 대한 얘기는 귀가 아프도록 들었어요.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얘기를 하던데요.”

“좋은 얘기였나요?”

“안 좋은 얘기도 있긴 하죠. 컨티뉴 캐피탈의 공매도로 인해 큰 손해를 봤다고 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고. 아! 그래도 이번 일은 멋졌어요.”

“무슨 일이요?”

“페이스노트 말이에요. 안 그래도 린스타그램에 광고 뜨는 게 지겨웠거든요.”

그녀는 마치 친한 사이처럼 옆에서 재잘거렸다.

외모도 외모인데 표정과 목소리에는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나중에 제 신탁자산을 어떻게 투자하면 좋을지 상담을 드리고 싶어요. 제가 아직 그 정도 큰돈을 다룰 수 있을지 자신이 없거든요.”

“얼마나 되는데요?”

“7000만 유로예요. 소시에테리옹에 묶여있어서 제가 25세가 될 때까지는 손도 못 대지만요.”

소시에테리옹은 프랑스의 은행.

참고로 프랑스 은행들은 은행(Bank)이라는 명칭을 거의 쓰지 않는다.

“프랑스인인가요?”

“예. 아버지가 프랑스에서 원전 사업을 하고 계세요. 듣기만 해도 지루하지 않아요? 원자력 에너지라니. 전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그런 멋없는 사업은 하고 싶지 않아요.”

프랑스 하면 보통 패션과 와인이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실제로는 제조업과 에너지 강국이다. 특히 원전 쪽에서는 막강한 파워를 지니고 있다.

그녀는 그러한 원전 사업체를 운영하는 집안의 외동딸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제가 당신의 사업을 물려받기를 바라시지만, 전 별로 생각 없어요. 요즘도 그 문제를 놓고 싸우는 중이에요. 아버지는 신용카드와 용돈으로 절 조종하려 하는데, 정말 지긋지긋해요. 전 제 사업을 하고 싶어요.”

“어떤 사업인가요?”

그러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뉴욕은 세계 최고의 도시예요. 모두가 이 도시를 사랑하죠. 그러니 이 도시에 걸맞은 새로운 파티와 행사가 있어야 해요. 아시다시피 기존 파티들은 너무 올드하잖아요. 전 뉴욕을 빛낼 여러 행사들을 기획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 NYSC, 뉴욕 소셜 클럽을 준비 중이에요.”

“뭐하는 클럽인데요?”

“뉴욕의 실력 있는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투자하죠. 클럽 회원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와 파티를 열구요. 부동산 투자자, 금융인, 미술가, 음악가, 디자이너, 요리사 등등. 이미 뉴욕의 수많은 명사가 참여하고 있어요. 뉴욕 최고의 소셜 클럽이 될 거고, 모두가 이곳에 들어오고 싶어 할 거예요.”

상류층들을 위한 소셜 멤버십을 만들겠다는 건가?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사업을 설명했다.

“오래된 빌딩을 임대해 라운지로 꾸밀 예정이에요. 건물 전체를 소셜 클럽 회원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말이죠.”

행사와 파티를 주최하는 것은 상당히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다.

누군가 나서서 이러한 귀찮은 일을 대신해준다면 다들 기꺼이 반기겠지.

“투자금이 많이 필요하겠는데요.”

내 말에 그녀는 풋 하고 웃었다.

“돈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투자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럼 뭐가 중요하죠?”

“최고의 행사를 만드는 게 중요하죠. 최고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요. 미루 씨도 함께하는 게 어떤가요?”

“제가 거기에 들어갈 자격이 될까요?”

“그럼요. 컨티뉴 캐피탈 CEO가 자격이 없으면 누가 자격이 되겠어요? 저희 클럽의 고문으로 모시고 싶어요.”

난 잠시 그녀를 관찰했다.

잠깐 얘기해본 결과 이름도 들어본 것 같고, 얼굴도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직접 봤을 리는 없을 테니 뉴스나 영상 같은 매체를 통해 접했을 텐데……. 그게 이번 생이었나, 저번 생이었나?

“아!”

생각났다.

에밀리 클로에! 프랑스 재벌 상속녀!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래요?”

난 씨익 웃었다.

“그냥 가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어요.”

“아하! 투자에 대한 영감 같은 건가요?”

“비슷하죠.”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나에게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잉그리드 게이블. 현재 소호 최고의 신예 디자이너예요. 그가 디자인한 옷을 보면 에르메스와 샤넬이 얼마나 지루한지 깨닫게 될 거예요.”

“반가워요.”

“이쪽은 윌리엄 바콜. 브로드웨이 뮤지컬 기획자예요. 친해지면 언제든 VIP를 위한 좌석을 예약할 수 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험프리 헤이워드. CKB은행 대출 부문 이사예요.”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다.

내가 에밀리를 만난 건 조금 전.

그런데 그녀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친하게 굴었다. 게다가 지금 모습을 보면, 마치 그녀가 나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주는 모양새다.

어쨌거나 그녀 덕분에 난 파티장의 아싸에서 순식간에 인싸가 됐다. 많은 사람이 그녀에게 나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느새 내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에밀리는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서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그녀와 친한 줄 알지 않을까?

에밀리는 나에게 물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그렇게 많은 투자를 성공시킨 비결이 뭔가요?”

그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됐다.

그도 그럴 것이 컨티뉴 캐피탈은 모든 투자를 성공했고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비결 같은 게 있다면 알고 싶겠지.

가장 확실한 비결은 오토바이 타고 치킨 배달하다가 차에 치이는 거지만…… 아무나 따라 하면 안 되는 관계로 나만 알고 있기로 했다.

아무에게나 쉽게 알려주지 않으니 비결인 거지.

“투자로 돈을 버는 건 매우 쉽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사기를 알아채는 겁니다. 토머스 모터스는 차를 언덕에서 굴렸고, 롤프 부치는 자신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거짓말을 했고, 페이스노트는 알고리즘의 편향과 개인정보 유출을 숨겼습니다. 이러한 사기를 잘 파악하면 손실을 피하고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에밀리 클로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어떻게 파악할 수 있죠?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내는 방법 같은 게 있나요?”

“정말로 알고 싶어요?”

“네. 궁금하니 어서 말해줘요.”

이렇게 알고 싶어 하니 어쩔 수 없다.

“좋습니다. 그럼 시범을 한번 보여드리죠.”

난 그녀를 가리켰다.

“여기 있는 에밀리 클로에 양을 주목해주세요. 그녀는 매력적인 외모에 당찬 성격을 지녔습니다. 예술과 패션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고, 뉴욕의 최고급 호텔에서 머물며 마음껏 쇼핑을 하죠. 그리고 지금은 상류층을 위한 뉴욕 소셜 클럽이라는 멋진 비즈니스를 기획 중입니다.”

“고마워요.”

에밀리는 내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고개를 살짝 숙였고, 사람들은 가볍게 박수를 쳤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러나 에밀리 클로에의 정체는 사기꾼입니다. 이런 것에 속으면 돈을 벌 수가 없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난 에밀리 클로에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풉! 재밌는 농담이네요.”

그러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 역시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다들 농담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다.

난 계속해서 말했다.

“그녀에게는 7000만 유로의 신탁자산이 있다고 하는데, 이를 확인해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녀의 부모님이 프랑스에서 원전 사업을 하는데, 만나거나 연락해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심지어 그녀가 정말로 프랑스 출신인지 확인해본 사람도 없을 테죠. 그렇다면 정말로 에밀리 클로에는 프랑스 재벌의 상속녀일까요? 어쩌면 모든 게 거짓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번에는 진짜 당황했는지 샴페인잔을 든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제 그만해요. 별로 재미없어요.”

이상하네. 난 재밌는데.

그래서 계속하기로 했다.

“왜요? 당신은 사기꾼이 맞잖아요.”

에밀리는 두 눈을 치켜뜨며 소리치듯 말했다.

“하! 웃기지도 않네요. 제가 사기꾼이라구요? 그러는 당신은 뭐죠? 정말로 컨티뉴 캐피탈 대표가 맞나요?”

원래 사람은 할 말이 없으면 화를 내기 마련.

“예. 전 맞아요. 원한다면 이 자리에서 록허트 대표와 영상통화를 할 수도 있죠. 아니면, 스노우 크래스의 시드 루카스 CEO와도 연결이 가능하죠. 그런데 당신은요? 누가 당신의 신분을 증명해줄 수 있나요?”

“여기 있는 모두가 제가 누군지를 알아요! 저를 모르는 건 당신뿐이죠.”

“진짜요? 정말로 사람들이 에밀리 클로에가 누군지 안다구요?”

난 잉그리드 게이블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에밀리 클로에가 프랑스 재벌 상속녀라는 건 누구한테 들었나요?”

그는 당황하며 말했다.

“어, 바콜한테요.”

이번에는 윌리엄 바콜에게 물었다.

“어째서 에밀리 클로에가 상속녀라고 생각했죠?”

“저도 다른 사람한테 들었어요. VIP만 예약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자주 예약하기도 했고…….”

“그리고 그녀는 VIP만 예약할 수 있는 브로드웨이 전용 관람석을 자주 예약했을 겁니다. 당신을 통해서요. 다른 사람은 그걸 보고 그녀가 상속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어어…….”

“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당황한 듯 서로를 보았다.

한 여성이 말했다.

“자, 잠깐만요. 에밀리의 재력은 진짜예요. 쇼핑 한 번에 수만 달러를 결제하고, 전용기를 타고 함께 칸쿤으로 휴가를 갔는데.”

“그건 다 여러분들의 돈입니다. 여러분들이 빌려주고 투자한 돈으로 사치와 향락을 즐긴 거죠.”

난 다시 에밀리 클로에를 보았다.

“당신을 안다고 생각하는 건 모두가 착각하는 겁니다. 유명인이 당신을 상속녀라 믿으니, 그저 따라서 믿을 뿐이죠. 아버지 성함이 뭔가요? 원전사업체 이름은요? EDF와 거래를 하고 있나요? 한번 말해 봐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부자 아버지와 통화할 수 있나요?”

에밀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랑은 지금 사이가 안 좋아요. 싸우고 미국에 왔으니까요.”

“사업체 이름이 뭔가요? 전화 한 통이면 확인할 수 있는데.”

“그걸 제가 당신에게 왜 말해줘야 하죠?”

솔직히 대단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황해 아무 말도 못 했을 텐데. 이 정도 강단은 있어야 상류층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험프리 헤이워드는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정말로 클로에 양이 사기꾼이라는 겁니까?”

“예. 혹시 대출 신청한 거 있으면 당장 중단하세요.”

“…….”

표정을 보니 상상도 못 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에밀리는 발작하듯 소리쳤다.

“어떻게 감히! 내가 누군 줄 알아요? 오늘 처음 만났는데, 당신이 나에 대해 어떻게 안다는 거죠?”

난 태연하게 대답했다.

“제가 사기꾼을 알아보는 데 천부적인 재능 같은 게 있어서요. 사기꾼은 특유의 악취가 나거든요.”

“뭐, 뭐라구요?”

사실은 그딴 거 없다.

그냥 나중에 그녀가 사기꾼이라는 게 전세계에 알려질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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