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화. 블록 밸리 (3)
블록 밸리의 등장은 게임 업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인디 게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에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지녔다.
블록 밸리는 출시 일주일 만에 3천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성공을 거뒀다.
놀라운 사실은 가입자 중 절반 이상이 16세 미만의 청소년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게임이 끝없이 등록되고 있었다.
에이튜브에는 하루에만 60년 분량의 동영상이 업로드 된다.
그 이유는 에이튜브가 광고수익을 쉐어하기 때문.
에이튜버들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영상을 올리고, 더 좋은 영상을 제작하려고 노력한다.
만약 그 영상들을 에이튜브가 직접 제작하려 했다면, 수십만 명의 직원을 고용했어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블록 밸리 역시 마찬가지다.
게임 내에서 유저들은 콘텐츠 해금, 아이템과 스킨 판매 등으로 게임 속 재화인 록스를 벌어들일 수 있고, 일정 금액 이상이 모이면 출금할 수도 있다.
게임사가 가져가는 수수료 25퍼센트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개발자의 몫이다.
돈은 언제나 강력한 동기가 된다.
개발자에게 합리적 보상이 주어진다는 소문이 퍼지자, 아예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 속(블록 스튜디오)으로 출근해 게임을 제작하는 1인 개발자들이 늘어났다.
게임 전문 스트리머들 역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들은 재빨리 블록 밸리를 주력 콘텐츠로 삼아 방송을 진행하거나, 블록 스튜디오 안에서 게임을 만드는 법을 정리해 영상을 올렸다.
탐 스콧 CEO는 투위치나 에이튜브뿐 아니라, 레전드게임즈 스토어를 통해서도 스트리밍이 가능하다고 적극 홍보하며, 게임 방송을 유도했다.
때문에 AMZ가 운영하는 세계 최대 인터넷 방송 플랫폼 투위치는 이용자가 빠져나가지는 않을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게임 업계와 스트리밍 업계 외에 또 하나 타격을 받은 곳은 바로 SNS.
페이스노트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주수익은 광고다.
광고를 많이 보게 하기 위해서는 이용자가 최대한 많은 시간 체류하게 만들어야 한다. 때문에 그동안 의도적으로 청소년들을 중독시키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운영해왔다.
그런데 블록 밸리의 등장으로 인해 10대들의 이용시간이 감소하는 것이 지표로 확인될 정도였다.
직접 게임을 해본 페이스노트 CEO 마이크 골든버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단지 글과 사진으로 소통하는 페이스노트나 린스타그램과는 달리, 블록 밸리에서는 아바타끼리 모여 얘기를 나누고 각종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메신저 기능을 넣어 게임에 들어와 있지 않은 친구와도 연락할 수 있고, 바로 친구를 게임 안으로 초대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거대한 가상세계잖아.’
아마 많은 10대들이 이곳을 자신들의 생활공간으로 여겼다.
그는 페이스노트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 플랫폼 강자들을 뛰어넘어 메타버스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래에 열릴 거대한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VR 기술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메타버스야말로 페이스노트의 미래였다.
그런데 블록 밸리는 초기 형태의 메타버스를 구현했다.
‘만약 이 회사를 인수했다면…….’
공교롭게도 블록 밸리 개발사를 초기에 인수한 곳은 컨티뉴 캐피탈.
링크랩스를 빼앗아간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게임을 통해 이용자들을 빼앗아가고 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그는 일전에 회사에서 만났던 한 남자를 떠올렸다.
‘설마 처음부터 모든 걸 계획하고 있었나?’
마이크 골든버그는 자신의 예상보다 메타버스 시대가 빨리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그 주도권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는 것도.
* * *
하나의 게임이 성공했을 경우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음원, 콘서트,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 다른 모든 문화산업을 합쳐도 게임 하나에 안 된다.
블록 밸리는 벌써부터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이 될 거라는 얘기가 나왔고, 퍼플게임즈의 기업가치는 끝없이 치솟았다.
인디 게임 제작자에서 순식간에 스타 개발자로 떠오른 세 사람에게는 인터뷰 요청이 쏟아져 들어왔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피하는 루퍼스와는 달리, 찰스와 켄은 열심히 나서서 게임을 홍보했다.
[(WST) 블록 밸리 공동CEO 인터뷰]
(전략)
찰스: 처음 개발 방향은 샌드박스 형태의 싱글 플레이 게임이었습니다. 블록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게임이었죠.
켄: 그러다가 문득 블록을 쌓아 게임을 만들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블록을 게임 엔진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개발 방향을 틀었습니다.
찰스: 게이머들의 창의성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게임을 만들어내기도 하니까요.
켄: 몇몇 게임들은 저희가 만든 게임보다 훨씬 낫던데요. 사실 저희가 그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지 않거든요.(웃음)
찰스: 현재 수수료는 25퍼센트입니다. 향후 매출이 커지면 수수료 비율을 더 낮추고, 수익을 지속적으로 개발자들에게 지원할 생각입니다. 저희의 목표는 앞으로 더 많은 개발자들이 더 좋은 게임을 더욱 쉽게 만들 수 있도록 개발툴을 업그레이드하는 겁니다.
(중략)
찰스: 게임의 성공에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공동 창업자 중에서는 현재 CTO를 맡고 있는 루퍼스 베일리가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켄: 컨티뉴 캐피탈은 최고의 파트너입니다. 만약 컨티뉴 캐피탈이 없었다면, 블록 밸리가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두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해당 인터뷰가 알려지자, 컨티뉴 캐피탈 역시 주목을 받았다.
-뭐? 블록 밸리가 컨티뉴 캐피탈 거였어?
-개발 초기에 가능성을 알아보고 투자했다는데.
-아니, 그 많은 인디 게임사들 중에서 어떻게 퍼플게임즈를 골라 인수한 거지?
-경영진 중에 게이머가 있나?
-쟤들이 기업 인수도 해? 맨날 공매도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투기자본 아니었나?
-뭔 소리야? 레전드게임즈도 인수했는데. 인수 후 투자해서 레전드게이즈 스토어 싹 따 뜯어 고쳐줌.
-아! 그래서 레전드게임즈가 전세계 퍼블리싱을 맡은 건가?
-레전드게임즈에 이어 퍼플게임즈에도 투자한 걸 보면, 게임에 진심인 모양인데.
-한국에 뭔 SW게임즈인가 하는 곳도 투자했다고 하는데.
-거긴 뭐하는 곳이야?
-글쎄. 나도 잘 모름.
-스노우 크래시도 컨티뉴 캐피탈 종속회사임.
-뭐? 스노우 크래시가 컨티뉴 캐피탈 거였어?
-오! 놀랍. 의외로 건실한 사모펀드였네.
-건실하긴 뭐가 건실하냐!? 그래봐야 투기자본이지!
-투기꾼 본성 어디 안 간다~
-저놈들 때문에 날려먹은 내 코인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눈물이 나ㅜㅜ
* * *
난 세 사람에게 물었다.
“모두가 주목하는 스타 개발자가 된 기분은 어때요?”
내 물음에 다들 얼떨떨하다는 표정이었다.
“글쎄요.”
“아직 실감이 잘 안 납니다.”
다들 아직 모르고 있겠지만, 지금 성공은 시작에 불과하다.
난 회귀하기 전에 봤던 리포트와 기사를 떠올렸다.
당시 기준으로도 누적 가입자는 3억 명, 일일 접속자는 5천만 명이었다.
미국 10대 중 50퍼센트가 블록 밸리에 가입했고, 일일 평균 이용시간은 150분으로 에이튜브와 페이스노트를 크게 앞질렀다.
그야말로 10대들의 놀이터가 된 셈이다.
“소뉴와 NS, 그리고 린텐도에서는 콘솔 버전을 출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최근에는 크로스 플랫폼이 대세로 떠오르며, PC뿐 아니라, 모바일과 콘솔의 동시 출시도 늘고 있는 추세다.
나이트라이트가 대표적이다.
1회차 때, 블록 밸리는 PC로만 출시했다. 모바일로 내놓은 것은 한참 후의 일.
이번에 동시 출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스노우 크래시 덕분.
개발 단계부터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크로스 플랫폼을 염두에 두었다.
게임을 다운로드 받지 않고 인터넷 접속만으로도 즐기는 게 가능한 만큼, 콘솔 이식은 크게 어려울 게 없다.
“그쪽도 출시를 준비해야겠네요.”
콘솔의 무덤이나 다름없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과 유럽의 콘솔게임 비중은 거의 30퍼센트에 육박한다.
콘솔 버전을 내놓으면 훨씬 빠르게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게임이 잘나가고 있지만,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열심히 게임을 만들었다 해도 버그가 없을 수는 없는 노릇.
개발진들은 새벽마다 게임사의 4대 명검 중 하나라는 임시 점검을 뽑아들고, 밤잠 안 자고 버그를 수정했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게임 내의 성범죄.
블록 밸리가 10대들의 놀이터로 떠오르자 온갖 성범죄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미성년자에게 접근해 연락처와 학교 등을 물어보거나, 돈을 주겠다며 만남을 제안했다.
이에 이번에는 긴급 점검의 칼을 뽑아들어 불량이용자를 신고하고 차단하는 패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이걸로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사람이 다섯 이상 모이면 트롤이 한 명쯤은 껴있다는 말처럼, 다수가 모이는 온라인 게임에는 악성 이용자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이들을 그냥 방치했다가는 선량한 이용자들이 떠나는 일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강하게 규제를 했다가는 일반 이용자들마저 피해를 입게 된다.
난 딱 잘라 말했다.
“초기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아예 데이팅 관련한 게임을 만들거나 플레이하는 걸 원천적으로 금지해야죠.”
“그렇게 하면 게임의 자유도가 훼손되지 않겠습니까?”
온라인게임 내에서 캐릭터들끼리 연애나 결혼을 하는 건 흔한 일이다. 일부 게임에서는 이를 하나의 콘텐츠로 활용하기도 한다.
알고 보니 둘 다 남자였다는 것도 흔한 클리셰.
넷카마, 후로게이, 캣피쉬(Catfish) 등등.
“블록 밸리는 10대의 이용률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10대들은 가상세계를 현실세계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데이팅 관련 콘텐츠를 허용한다면, 각종 성범죄와 그루밍 범죄에 노출될 겁니다.”
성범죄의 경우 그 경계가 명확하지가 않다.
미성년자에게 돈을 주겠다며 만남을 제안하는 거야 불법이니 차단한다 쳐도, 밥이나 선물을 사줄 테니 만나자고 하는 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긴 시간 회의 끝에 운영진은 데이팅 관련 게임 제작과 플레이를 원천 차단하기로 결정하고 공지를 올렸다.
그 외에 스티브 보스틱이 회사로 찾아와 애걸복걸하는 소소한 일이 있었다.
“우리 함께 했던 그날들을 떠올려 봐. 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게임을 만들었잖아. 내가 그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다들 잘 알잖아.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내 몫을 좀 챙겨줘.”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울며불며 소리쳤다.
“이 계약은 사기야! 10만 달러 돌려줄 테니, 매출의 0.5퍼센트를 내놔! 아니면, 언론에 고발할 거야! 내 돈 내놔!”
더 들을 것도 없이 그냥 쫓아냈다.
켄은 경멸을 감추지 않았다.
“대표님 말씀대로 그때 10만 달러 주고 끊어내길 잘했네요.”
“발암요소는 미리미리 제거해놔야 암에 안 걸리는 법이죠.”
찰스는 나에게 말했다.
“이번 기회에 회사명을 바꿀 생각입니다.”
어차피 1회차 때도 그랬던 만큼 난 별로 놀라지 않았다.
“세 분이서 얘기가 된 건가요?”
켄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퍼스도 동의했습니다. 사실 지금 회사 이름은 스티브가 지은 거라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보라색이 자기 시그니처 컬러라나 뭐라나.”
“뭐로 바꿀 생각인가요?”
“블록게임즈로 바꾸려고 합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블록 밸리를 계속 발전시켜나갈 테니까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죠.”
그렇게 퍼플게임즈는 블록게임즈로 사명을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