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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26화 (326/529)

326화. 일상2 (2)

난 허민웅과 술을 마시며, 화안에너지와 병진공업의 향후 투자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슬슬 끝날 때쯤 핸드폰이 울렸다.

누군가 해서 보니 동생이다.

“잠깐만요.”

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오빠. 어디야?]

“밖에서 술 마시는 중이야.”

[나 지금 강남에서 친구 만났다가 헤어졌는데, 오늘 오빠 집에서 자고 가도 돼?]

“왜 집에 안 가고?”

[내일 낮에 근처에서 소진이 만나기로 했단 말이야.]

“…….”

공부를 안 하는데도 많이 바쁘구나.

“차 타고 왔어?”

[응.]

“그럼 가는 길에 나 좀 데리고 가.”

[어딘데?]

난 주소를 불러주었다.

허민웅이 물었다.

“누구야? 여자 목소리 같던데.”

“여자면 왜요?”

“아니, 혹시 여친 생겼나 해서.”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동생이에요. 데리러 오라고 했어요.”

“아! 여동생 있다고 했지? 아버님한테 얘기 들었어. 너 닮았으면 똑똑하겠네.”

“아니요.”

나 안 닮아서 바보다.

잠시 후, 세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빠!”

그러더니 옆에 있는 남자를 보며 물었다.

“누구……?”

원래 허민웅은 표정과 말투가 살짝 건방진 편이다. 술 마시면 더욱 그렇고.

그런데 세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한 태도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허민웅이라고 합니다. 미루와는 친구이자 형제 같은 사이고, 아버님과 함께 사업도 같이 하고, 가끔 골프도 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세나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알아요. 아빠한테 양주랑 골프채 선물해주신 분 맞죠?”

“아, 예. 맞습니다. 그게 바로 접니다.”

허민웅은 가끔 뉴스에도 나온 만큼 대중에게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편이다.

그러나 역시나 세나는 얼굴을 보고 이름을 들었음에도 화안그룹 둘째 아들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 동생은 뉴스를 보지 않으니까.

“명절 때 보내주신 한우 잘 먹었어요.”

허민웅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대단한 것도 아닌데요. 다음에 또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미루한테 여동생이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이렇게 미인인 줄은 몰랐네요.”

“앗! 정말요?”

“예. 제가 원래 빈말 안 하는 성격입니다.”

빈말 안 하는 성격인 건 맞는데 빈말하는 걸 보니 많이 취한 모양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잔하고 가세요. 여기서 가장 비싼 술 한 병 시킬게요.”

“뭔 소리예요? 얘 지금 차 타고 왔는데.”

“아! 그렇지. 그럼 여기서 가장 비싼 콜라 한 병 시킬까요?”

“…….”

펩시콜라가 아니라, 코카콜라 시키겠다는 뜻인가?

“됐고, 이만 일어나죠.”

우리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가게 앞에는 빨간색 미니쿠퍼 컨버터블이 대기 중이었다.

“저 갈게요. 음주운전 하지 말고 대리 불러서 조심히 들어가요.”

“엇, 잠깐만.”

허민웅은 재빨리 안주머니에 지갑을 꺼내들어 안에 있는 돈을 전부 빼들었다. 대충 5만 원짜리 십여 장과 여러 장의 수표.

그걸 몽땅 세나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용돈하세요.”

말릴 새도 없이 세나는 좋다고 두 손으로 덥석 받았다.

“감사합니다아!”

“…….”

양심적으로다가 이 정도 금액이면 한 번쯤은 사양할 만하지 않나?

그러나 내 동생은 양심이 없다.

난 세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동작 그만. 수표는 빼.”

세나는 울상을 지었다.

“아, 왜에? 나 요즘 용돈 부족하단 말이야.”

“…….”

대체 용돈이 왜 부족해?

난 세나의 손에서 수표를 빼앗았다.

100만 원짜리가 여섯 장이다.

하기야 요즘 세상에 누가 10만 원짜리 수표를 들고 다니겠는가?

난 그것을 다시 허민웅에게 돌려주었다.

“대학생인 애한테 돈을 이렇게 많이 주면 어떡해요?”

“아니, 난 대학생 때 이만큼 썼는데.”

“…….”

그거야 재벌이니까.

세나는 혹시 내가 현금도 빼앗아 갈까 봐 걱정했는지 재빨리 주머니에 넣었다.

현금만 해도 대충 50만 원은 되는 것 같다. 용돈을 받아서인지 세나의 표정과 태도가 달라졌다.

“오빠 친구분이니 앞으로 말씀 편하게 하세요.”

“하하,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저도 앞으로 민웅 오빠라고 부를게요.”

“…….”

그래. 용돈 주면 다 오빠지.

* * *

난 조수석에 앉았고, 세나는 네비를 켜고 집을 향해 운전했다.

이젠 운전도 제법 익숙해진 모습이다.

“학교는 잘 다니고 있어?”

“응. 재미는 없지만. 여행 갔을 때가 좋았는데. 다음 방학 때 우리 데리고 또 여행 가면 안 돼?”

여기서 말하는 ‘우리’란 소진이 외 두 명이겠지?

“어디 가고 싶은데?”

“유럽 가자. 파리 가서 에펠탑도 보고 노트르담 성당도 보고 싶어.”

“거기 화재로 불탔는데.”

“앗! 진짜? 언제?”

다시 말하지만, 내 동생은 뉴스를 보지 않는다.

“아무튼 유럽 일주 한번 해보고 싶어.”

“뭐, 재밌긴 하겠네.”

다른 건 몰라도 여행은 찬성이다.

인생 살면서 여행만큼 남는 게 없는 법이지.

그런데 스케줄 때문에 내가 같이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애들끼리만 보내기는 좀 불안하고.

경호원이랑 가이드 붙여주면 되려나?

난 동생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세나는 놀란 표정으로 집 안을 둘러보았다.

“와! 저기 보이는 거 한강이야? 오빠 엄청 좋은 데 사네.”

“어차피 월세야.”

집 한 채 사서 이사해도 되지만, 귀찮아서 안 하는 중이다.

나야 호텔에서 지내는 일이 더 많기도 하고.

“왔냐?”

방에서 선우를 본 세나는 반갑게 인사했다.

“앗, 선우 오빠! 오랜만이에요.”

“어! 세나야? 여긴 어쩐 일이야?”

예전에 선우가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왔던 만큼 세나와도 자주 봤다.

“내일 강남에서 약속 있다고 해서 오늘 자고 가기로 했어.”

“그렇군.”

내 말에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은 넓고 방은 많으니 손님이 와도 딱히 불편할 건 없다.

씻고 화장을 지운 세나는 내가 준 티셔츠와 트레이닝복을 입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아! 편하다!”

난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어렸을 때는 툭탁거리며 지냈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그래서인지 남매임에도 뭔지 모를 어색함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로 남매 같이 편한 느낌이다.

왠지 귀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1회차 때도 내가 먼저 잘해줬다면, 좀 더 친한 사이가 되지 않았을까?

지나간 일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이제부터라도 잘해주면 되겠지.

“오빠는 우리 가고 나서 뭐했어?”

“뭐하긴. 일했지.”

“그 사람이랑?”

“누구?”

“시드였나?”

“아! 시드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가지.”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단해?”

“응. 천재 프로그래머야. 전세계를 뒤져봐도 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을걸.”

“진짜? 그런데 왜 그때는 바보라고 했어?”

“…….”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괜히 캐묻기 전에 난 화제를 돌렸다.

“부모님은 잘 계시지?”

“그럼. 집에는 언제 올 거야? 안 그래도 엄마가 한국 왔으면 집에 좀 오래.”

“가야지.”

“그러고 보면 이사한 집에는 아직 와본 적 없지 않나?”

“그러네.”

부모님 이사시켜놓고 정작 난 그 집에 간 적이 없구나.

“집은 어때?”

“엄청 좋아. 최고야. 산책로도 잘되어 있고, 공원도 가깝고. 단지 안에 이것저것 다 있어.”

하기야 송도에서 제일 좋은 아파트에 제일 큰 평수니.

“아! 그런데 아파트에 부녀회장인가 하는 아줌마가 있는데, 남편이 국회의원이래.”

“그래서?”

“엄마랑 사이가 별로 안 좋은 모양이야.”

“흐음, 동네 텃세 같은 건가?”

“막 이상한 소문도 퍼트리는 것 같고. 은근히 따 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자세히 얘기해 봐.”

“그러니까…….”

얘기를 들어보니 그냥 적당히 넘어갈 만한 일은 아닌 듯하다.

“다음 주에 우리 집에서 모임 한다고 하니 참고해.”

상당히 중요한 정보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알아서 다행이네. 아주 잘 말했어.”

“뭐얼.”

어머니가 이런 곤란한 상황에 처해계실 줄이야.

아들이 나설 때인가?

원래 사람은 평소에 잘하는 것보다 결정적 순간에 임팩트를 주는 게 중요한 법.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결정적 순간이다.

* * *

송도 루미안 파크뷰 아파트.

지역에서 가장 크고 비싼 아파트인 이곳의 펜트하우스에 누군가 이사 왔다.

이 아파트 단지에 펜트하우스는 단 두 채뿐. 비싼 분양가로 인해 준공 후 수년 동안 비어있었는데, 그 집이 이번에 팔린 것이다.

당연히 주민들의 관심이 쏠렸다.

“뭐하는 집이래요?”

“원래 작은 공장 하나 했는데, 남편 사업이 이번에 대박이 터진 모양이에요.”

“화안에너지 협력사라는 얘기가 있던데.”

“저희 남편이 그러는데, 인천 쪽 기업들 사이에서는 지금 유명하대요.”

부녀회장이자 입주자대표인 최현숙은 호기심이 생겼다.

‘어디서 졸부 하나 들어온 모양이네.’

아무리 돈 좀 있다고 해도, 나름 지역 유지인 그녀의 집안과는 격이 다르다.

그런데 그 졸부가 돈이 많긴 많은 모양이다.

“그 집 차 봤어요? 벤츠 S클래스 마이바흐던데.”

“가사도우미도 있고, 운전기사도 있고. 경호원 같은 사람도 있던데요.”

“지난번 잘못 온 우편물 가져다주느라 집에 잠깐 들렀는데, 진열장에 비싼 양주가 즐비하더라구요.”

“JR블랙우드 호텔에서 가족끼리 식사하는데, 지배인이 와서 인사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이번에 새로 생긴 드림월드 골프클럽 회원권도 있대요. 나중에 부킹할 일 있으면 얘기하라고…….”

주민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최현숙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아니, 남편이 사업을 하면 당연히 나한테 먼저 와서 인사를 해야 할 거 아니야?’

이 아파트 단지에는 사업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다들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썼다.

그 이유는 그녀의 남편이 국회의원이기 때문.

정치권력의 힘은 막강하다. 국회의원이 힘을 쓰면 될 일도 안 되게 만들 수 있고,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딱히 그 집안에서는 찾아와서 인사를 하지 않았다.

‘뭐 하자는 거지? 남편 내조 안 하나?’

이때까지만 해도 마음에 안 들지만, 딱히 악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입주자 회의에서 일이 터졌다.

“오늘 가장 중요한 안건은 우리 아파트를 위한 스마트 보안 시스템 설치입니다. 이번 달에 표결 마치고 계약을 할 예정이에요. 단지 전체에 최첨단 무인 CCTV를 설치하고 아파트 경비 인력 20퍼센트를 감축해 관리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습니다. 다들 찬성하시죠?”

국회의원의 아내이자 입주자대표인 그녀가 추진하는 일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손을 들었다.

다름 아닌 이번에 펜트하우스로 이사 온 권미자였다.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예.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요.”

“말씀해보세요.”

“여기 보면 스마트 보안 시스템을 설치하면 관리비 절감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정확히 얼마가 줄어드는 건가요?”

“설치비용은 추후에 확정될 거예요. 다른 아파트들 역시 스마트 보안 시스템을 도입해 관리비가 10퍼센트 이상 줄었다고 하니, 비슷할 겁니다.”

“제가 알기로 무인 시스템의 경우 꾸준히 유지보수를 해야 하는 데다가 짧으면 5년, 길어도 10년 안에 시스템을 전면 교체해야 하지 않나요? 그 비용과 시설의 감가상각비를 생각한다면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이 가구당 1, 2만 원 정도일 텐데. 그러면 그냥 지금처럼 경비원들에게 맡기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다들 친절하고 열심히 하시는 것 같던데.”

그 말에 주민들은 살짝 웅성거렸다.

“가구당 1, 2만 원이면 지금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긴, 지난번 우리 애가 차에 치일 뻔한 것도 경비 아저씨가 구해줬어요.”

“볼 때마다 밝게 인사하는 것도 좋고.”

사실 누구도 선뜻 말하지 못했을 뿐이지, 매일같이 얼굴을 보는 경비원들을 해고한다고 하니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속으로는 당황했지만, 최현숙은 최대한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셔서 잘 모르시나 본데, 스마트 보안 시스템 설치는 작년부터 추진해오던 사업이에요. 그리고 경비원들이 잘해봐야 얼마나 잘하겠어요? 반면 스마트 보안 시스템은 24시간 철저한 관리가 가능하고, 관리 비용이 저렴합니다.”

“하지만 경비원들이 하는 청소, 택배, 재활용과 쓰레기 정리, 제설, 주차 관리 등의 업무를 무인 시스템이 대신할 수는 없지 않나요?”

“그, 그건…….”

권미자는 결정적인 부분을 지적했다.

“그리고 업체를 수의계약으로 진행한다고 하는데, 이 정도 규모의 사업이면 입찰로 해야 하지 않나요?”

그 말에 최현숙은 발끈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뭐예요!? 지금 제가 비리라도 저지른다는 건가요?”

권미자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예? 비리요? 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수의계약으로 스마트 보안 시스템을 설치하고 관리할 회사의 차명 소유주가 그녀의 남동생이긴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주민들 사이에서 약간씩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최현숙은 재빨리 말했다.

“아, 아무튼 이번 일은 다 저희 명품 루미안 파크뷰 아파트를 위한 일입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할게요.”

한 명이 반대한다고 해봐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현숙은 이미 기분이 팍 상한 뒤였다.

‘감히 내가 하는 일에 토를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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