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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28화 (328/529)

328화. 일상2 (4)

최현숙은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원래 그녀가 원했던 그림은 상대의 홈그라운드에 들어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

그것만큼 짜릿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선물을 들고 나타나는 바람에 모든 게 틀어졌다.

권미자의 눈앞에는 온갖 진귀한 명품들이 즐비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현질(?)에 다들 압도된 것 같은 표정. 최현숙조차도 기가 질릴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설마 아들과 짜고 일부러 이런 건가?’

그런데 당사자의 표정을 보니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정작 본인이 놀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으니까.

딸을 가진 한 아주머니가 슬쩍 물었다.

“혹시 아드님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 건가요?”

“한국대 경제학과 나와서 현재는 외국계 투자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사실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나 한국대라는 말에 모두가 반응했다.

“어머어머! 아들이 한국대였어요?”

“아들이 한국대라는 얘기는 왜 안 하셨어요?”

“우리 애도 한국대 지망하는데.”

지역에서 가장 잘사는 아파트인 만큼 학구열 역시 남달랐다. 그런데 이웃 주민의 아들이 한국대라니!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한미루는 싹싹하고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러한 태도는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 모습에 최현숙의 마음은 더욱 불편해졌다.

그녀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다. 그런데 누구를 닮았는지 지지리도 공부를 못해서 아무 대학이나 간신히 졸업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지 빽으로 대기업 입사에 성공했다는 것.

‘아들이 한국대 나왔다고 내 앞에서 유세를 떨어!’

정작 권미자는 아들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자신의 아들과 비교하니 속에서 열불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반면 주위 아주머니들의 반응에 권미자는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한미루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얘기 나누고 계셨어요?”

“으응. 그게…….”

그는 안내문을 들고 읽어보았다.

“스마트 보안 시스템 얘기하고 계셨나 보네요. 안 그래도 세나한테 얘기 들었어요. 이거 도입하고 경비원 20퍼센트 자를 예정이라고.”

‘아들까지 동원해 반대할 생각인가?’

어떤 수작인지 뻔히 들여다보였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최현숙은 바로 말했다.

“우리 아파트가 오래전부터 추진하던 사업이고, 이미 주민들의 동의까지 전부 끝마쳤어요. 반대를 하려면…….”

그런데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미루가 말했다.

“전 적극 찬성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을 어떻게 믿습니까? 경비원들 해고하고 CCTV와 보안 시스템을 설치하는 게 돈도 아끼고, 아파트도 더 안전해질 수 있죠.”

“……응?”

“명품 아파트에는 그에 맞는 스마트한 보안 시스템이 필수입니다. 저희 집은 당연히 동의합니다.”

그 말에 최현숙은 마음이 좀 풀어졌다.

‘뭐야? 벽창호 같은 아줌마와는 달리 아들은 말이 좀 통하는데.’

“그리고 업체 선정은 입찰이 아니라 지금처럼 수의계약으로 진행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공개입찰이라는 게 결국 최저가 업체를 선정하는 건데, 제일 싼 가격을 제시한 곳에 뭘 믿고 맡기겠습니까? 싼 게 비지떡이라고, 시공을 날림으로 해서 나중에 오히려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믿을 만한 업체를 선정해서 적절한 가격에 계약하는 게 오히려 돈을 아낄 수 있는 길입니다.”

그 말에 최현숙은 반색했다.

‘어쩜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하지?’

이유야 뻔하다. 아버지 사업을 생각해 국회의원의 아내인 자신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는 거겠지.

최현숙은 신나서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유원시큐리티는 우리 아파트에 CCTV를 설치하고 보안 관리를 해주는 업체거든요. 이 정도로 믿음직하고 일 잘하는 곳은 찾기 힘들어요.”

“다행이네요. 그럼 조사 결과도 아무 문제없이 나오겠네요.”

“……조사요?”

한미루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기업의 비리와 부실을 캐내는 전문업체에 의뢰해 유원시큐리티에 대해 뒷조사를 시켰거든요.”

그 말에 최현숙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뭐라구요!? 누구 마음대로 기업을 뒷조사해요?”

“예? 하면 안 됩니까?”

“아, 아니. 하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요즘 바지사장을 내세우고 실소유주는 따로 있는 페이퍼 컴퍼니 같은 기업이 많다고 해서요. 이런 업체는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제대로 보상받기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최현숙은 애써 웃음을 지었다.

“구,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어요? 그런 조사에는 비용도 많이 들어갈 텐데.”

한미루는 손을 내저었다.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 명품 루미안 파크뷰 아파트의 스마트 보안 시스템을 책임질 회사인데 뒷조사는 필수죠. 그래야 주민들의 피해가 없지 않겠습니까?”

“…….”

최현숙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설마 뭔가를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유원시큐리티의 실소유주가 그녀의 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녀만이 문제가 아니라, 남편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이다!

“이, 일단 이 문제가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서요.”

“예? 주민동의 절차와 업체 선정 모두 끝난 것 아닌가요?”

“…….”

최현숙이 할 말을 찾는데, 갑자기 벨소리가 울렸다.

한미루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잠시 전화 좀 받겠습니다. 여보세요.”

처음에는 웃으며 전화를 받았는데, 점차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확실한 거예요? 만약 잘못된 정보라면 그쪽이 책임져야 할 겁니다.”

그러더니 잠시 최현숙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눈빛과 표정에 그녀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그쪽으로 갈 테니 자료 보고 얘기하죠.”

한미루는 전화를 끊었다.

최현숙은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 그래요? 무슨 일이죠?”

그러자 한미루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회사 일 때문이에요.”

‘뭐야? 지금 비웃은 거야?’

한미루는 최현숙을 신경 쓰지 않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저 이만 가볼게요.”

“밥도 안 먹고?”

“예. 급한 일이 좀 생겨서요. 다음에 올게요.”

한미루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한 다음 집을 나갔다.

그러자 주민들은 슬쩍 권미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아드님이 지금 몇 살이라고 했죠?”

“결혼은 했나요?”

“혹시 여자친구는 있나요?”

“한국대 나왔다구요?”

“지금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가요?”

특히 딸 가진 엄마들이 적극적이었다.

아파트에 도는 안 좋은 소문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한국대 나와 돈 잘 벌고, 미혼인 아들이 있는데, 그딴 헛소문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다들 웃고 떠드는 분위기였지만, 최현숙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설마 알아내지 못했겠지? 절대 그럴 리 없어.’

* * *

이 정도면 충분히 임팩트를 줬겠지?

난 집을 나오면서 오랜만에 뉴스트리거 민홍수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어쩐 일이십니까?]

“제보할 게 하나 있어서요.”

내 말에 그는 바로 물었다.

[뭡니까?]

“저희 아파트 입주자대표 비리에 관한 건데요…….”

난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딱히 놀라운 사실은 아닌지,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군요. 사실 그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그런데 좀 알아보니, 그 입주자대표 남편이 국회의원이더라구요.”

그러자 그는 깜짝 놀랐다.

[그게 정말입니까? 누군가요?]

“기동욱 의원이라고 하네요.”

난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과연 어느 쪽이 고개를 못 들고 살게 되려나?

* * *

며칠 동안 최현숙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불안에 떨었다.

‘알았을까? 몰랐을까?’

차라리 그 자리에서 뭐라고 했다면, 적극적으로 반박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말도 안 하지 않으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유원시큐리티를 뒷조사한다는 거지?’

뒷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뭔가를 알았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주민동의까지 다 받아놓은 판에 이제 와서 안 하겠다고 무를 수도 없었다.

‘그 아줌마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찾아가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만약 뭔가를 알게 됐다면, 그걸 빌미로 협상을 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아무 얘기도 없는 걸 보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게 분명하다.

최현숙은 애써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 내가 괜히 쓸데없이 신경 쓰는 거겠지.’

그런데…….

[(뉴스트리거 단독) 송도 루미안 파크뷰 아파트 입주자대표의 충격적인 비리 행각]

(전략)

송도 루미안 파크뷰 아파트는 무려 2200세대의 대단지 아파트로 현재 스마트 보안 시스템 설치를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입주자대표는 수의계약으로 업체를 선정했는데, 해당 업체의 실소유주가 입주자대표의 동생으로 밝혀졌다.

(중략)

또한 입주자대표 최모 씨는 경비원들로 하여금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오게 했다.

이에 대해 익명의 경비원은 ‘입주자대표의 지시에 따라 서류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주민들에게 사인을 받아야 했다. 마치 내 사형 선고서에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것 같은 참담하고 비참한 심정이었다’라고 말했다.

취재 결과 대다수의 주민들은 경비원 해고 사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입주자대표 최모 씨는 우리국민당 기동욱 의원의 아내라는 것이다.

기동욱 의원은 과거 ‘공동주택을 위탁 관리하는 경우 계약의 중요사항에 대해 전체 입주자 등의 과반수 동의를 받아야 하고, 경쟁입찰 시에는 입찰의 종류 및 방법, 낙찰 방법, 참가자격 제한 등이, 수의계약 시에는 계약 상대자 선정, 계약 조건 등이 동의받아야 한다’라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기동욱 의원실에 해명을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와! ㅅㅂ 존나 쓰레기네.

-남편이 국회의원인데 그거 얼마나 된다고 해먹냐? 이해가 안 됨.

-2200세대면 월 관리비만 3억 원이 넘음. 저런 계약 한 번 하는 데 수천만 원씩 리베이트가 오감.

-헉! 미쳤네 ㅎㄷㄷ

-동생 사업 밀어주려고 스마트 보안 시스템인지 뭔지를 추진한 거야?

-알아보니 거기는 사실상 유령업체나 다름없다고 함.

-경비원들에게 집집마다 경비원 해고 동의를 받아오라고 시키다니. 저게 인간이 할 짓이냐?

-그동안 얼마를 해먹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기동욱 아웃!

* * *

기동욱 의원은 아내를 향해 소리쳤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최현숙은 당황하며 말했다.

“여보. 진정해요.”

“진정? 이런 개망신을 당했는데,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남편 정치하는 데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앞길을 막아?”

최현숙 역시 할 말은 있었다.

“아니, 그 돈을 나 혼자 먹어요? 다 당신 잘되고, 우리 가족 잘되자고 그런 거잖아요!”

사실 흙수저인 그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지역 유지의 딸인 최현숙과 결혼한 덕분. 처가와 아내의 지원이 없었다면 애초에 정치는 꿈도 못 꿨을 것이다.

“그럼 걸리지나 말든지!”

최현숙이 입주자대표의 권한을 활용해 그동안 남동생의 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것은 사실.

그러나 그냥 남들 받는 리베이트 정도였고, 그렇게 심한 것도 아니었으니 대충 해명하면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건 이번에 추진한 스마트 보안 시스템 설치였다.

순수하게 입주민을 위한 마음이었다면 모를까, 본인의 사익 추구를 위해 경비원을 무더기로 해고하려 했으니, 여론의 질타가 쏟아질 수밖에.

“대체 어떤 놈이 저걸 고발한 거야?”

최현숙는 그날 봤던 그 집 아들의 표정과 눈빛을 떠올렸다.

본인 입으로 직접 뒷조사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걸 언론에 제보한 게 분명하다!

최현숙은 악에 받쳐 소리쳤다.

“이게 다 그 집 때문이야! 그 집이 처음부터 날 입주자대표에서 몰아내기 위해 음모를 꾸민 거라구요! 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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