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31화 (331/529)

331화. 요코하마 일렉트론 (2)

한미루가 돌아가고 나자 유재호는 바로 권혁준 부회장을 호출했다.

R&D센터에 있던 노년의 박사는 바로 달려왔다.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유재호는 한미루와의 대화를 그에게 전해주었다.

역시나 권혁준 부회장은 깜짝 놀랐다.

“요코하마 일렉트론을 인수하자는 겁니까?”

“예.”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유성전자의 주요 거래처. 그런 만큼 기업 상황에 대해서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었다.

권혁준 부회장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같은 장비회사라고 해도 요코일렉은 동우정밀과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알고 있습니다.”

기업은 인수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그 뒤가 더 중요하다.

동우정밀은 그저 한국의 작은 장비회사였을 뿐이다. 이 회사가 망해서 없어졌다 한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인수도, 인수 이후에 투자를 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세계 반도체 장비회사 2위의 거대 기업. 이 기업을 인수하는 것에는 온갖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설사 인수한다 한들 경영권을 행사할 수도 없고, 핵심기술에 접근할 수도 없을 겁니다.”

보통 과반의 지분만 확보하면 기업을 멋대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키오노스는 진작 프랑스의 SPME에 합병됐겠지.

반도체와 같은 국가 기간산업은 각종 법률적 조항으로 묶여있다. 결국 인수에 성공한다 해도 일본 정부의 통제에 따르고, 지금처럼 독립적인 경영을 보장해줘야 할 것이다.

“미국의 규제도 변수입니다.”

반도체 기업의 가장 큰 리스크는 미국의 규제.

만약 EUV 장비의 중국 수출이 허가됐다면, ESML의 주가는 지금보다 30퍼센트는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규제에 따라 ESML은 단 한 대의 장비도 중국으로 수출하지 못했다.

“요코하마 일렉트론의 급성장에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이 있었습니다. 중국은 지원금을 줄 테니 공장을 더 지어달라고 압박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만약 미국이 또 다른 규제에 나선다면,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인수할 경우 시너지는요?”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겁니다.”

“…….”

요코하마 일렉트론의 장비는 모든 팹에 납품된다.

따라서 모든 반도체 회사가 고객이다. 그런데 이 기업을 유성전자가 인수한다면, 경쟁사들이 좋아하겠는가?

PSMC와 안텔, 마이크록 등…… 모두가 강력하게 반발하겠지.

바로 거래처를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가능한 것들부터 대체재를 찾으려 할 것이다.

“지금 반도체 시장은 팽팽한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들까지도 복잡하게 얽혀있죠. 까딱 잘못 건드렸다가는…….”

“벌집을 들쑤시는 꼴이 되겠죠.”

한일관계, 미중관계, 양안관계 등등.

제3자가 인수하는 거라면 모를까, 유성전자가 인수한다면?

과연 다른 경쟁자들이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까?

게다가 유성전자는 데이터센터 산업에 뛰어들었고, 코스믹스토어에까지 투자하는 바람에, AMZ, NS, 구블 등 우호적인 기업마저 적으로 돌아섰다. 지금도 사방에서 견제를 받고 있고.

점점 골치가 아파진다.

‘대체 이 기업을 왜 인수하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요코하마 일렉트론을 인수하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유성전자가 인수에 나설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뭔가요?”

“한 대표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볼 건 없다는 겁니다.”

그 말에 유재호는 피식 웃었다.

그 말대로다.

한미루의 조언 덕분에 유성그룹 전체가 막대한 이익을 얻었으니까.

만약 동우정밀을 인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처음 유성전자가 동우정밀을 인수했을 때만 해도 모두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유성전자 같은 거대 기업이 어째서 그런 구멍가게 같은 기업을 인수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비접촉 NIL 기술을 공개하자 얘기가 달라졌다.

이게 성공한다면 7나노 이하에서 NIL 방식의 사용이 가능해지고,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럼 대당 2, 3억 달러씩 하는 ESML의 EUV 장비에 의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때문에 현재는 유성그룹의 인수합병 중 가장 잘한 일로 평가받고 있다.

설사 이번 인수로 손해를 본다 한들 그동안 얻은 이익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겁니다. 요코하마 일렉트론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보세요.”

“알겠습니다.”

* * *

내 얘기를 전해 들은 데이비드는 나에게 물었다.

[진심이십니까?]

“농담이라기에는 너무 재미없지 않았나요? 그나저나 알고 계셨나 보네요. 벌써 업계에 소문이 퍼진 건가요?”

[소프트박스 그룹이 손실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을 테니까요.]

난 그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럼 인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이유는요?”

그는 딱 잘라 말했다.

[너무 비쌉니다.]

비상장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방식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반면 상장기업 가치평가는 가장 확실한 기준이 있다.

바로 주가다.

[중요한 건 가격입니다. 나쁜 기업도 싸게 사면 좋은 거래고, 좋은 기업도 비싸게 사면 나쁜 거래입니다.]

맞는 말이다.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분명히 좋은 기업이다. 문제는 그게 좋은 기업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미 주가에 반영되어 있다.

여기에 프리미엄까지 얹어준다면, 까딱 잘못했다가는 최고점에서 살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기업을 꼭 인수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예.”

[그럼 그렇게 해야겠군요.]

“이유가 뭔지도 안 물어보시나요?”

[때가 되면 말씀해주실 것 아닙니까?]

오랫동안 같이 일하니 이런 게 편하다.

“잘 아시네요. 분석해서 자료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난 전화를 끊었다.

이제 한 명의 동의만 더 얻으면 되겠군.

* * *

동호 선배와 나는 회사에서 손님을 맞았다.

동호 선배는 깍듯하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예. 공주님…… 아니, 본부장님께서도 잘 지내셨죠?”

“그럼요.”

그녀는 회사를 둘러보았다.

“예전에 비해 훨씬 넓어졌네요. 사람도 많아졌고.”

“그때는 직원도 없고 저희끼리만 있었으니까요.”

내 말에 그녀는 회상하듯 말했다.

“그래도 그때 참 재밌었어요.”

동호 선배는 공감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도 그때 가장 즐거웠던 것 같아요.”

원래 사람이 성공하고 나면 어렵던 시절 고생했던 기억이 미화되기 마련이지.

우리는 미팅실에 앉았고, 직원이 커피를 내왔다.

난 맞은편에 앉은 여성의 얼굴을 보았다.

갈색 머리카락에 짙은 색의 피부.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그녀의 이름은 사라 에이버리. 다름 아닌 사우디 국부펀드 본부장이자, 러시펀드의 최고운용책임자다.

일 때문에 연락은 가끔 하지만, 직접 만나는 건 오랜만이다.

“연말 파티 이후로는 처음이네요.”

난 그녀의 드레스 차림을 떠올렸다. 눈을 떼기 힘들 만큼 아름다웠지.

뭐, 지금 모습도 예쁘기는 마찬가지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뭐, 바쁘게 일했죠.”

사우디 왕가의 전용기를 타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투자를 집행하고 있으니까.

참고로 연기금 관계자들은 어느 나라를 가든 큰 환영을 받는다. 세상에 외국자본 싫어하는 나라는 없으니까.

사우디 국부펀드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덕분에 그녀의 이름은 금융계에 잘 알려져 있다. 아마 사우디 여성 중에서는 외국에서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미루 씨도 많이 바빴던 모양인데요.”

연초부터 여러 일들이 있긴 했지.

페더를 무너뜨리고, 엔플과 구블과 소송을 벌였으니.

“자료는 봤나요?”

“예. 오면서 봤어요.”

난 데이비드가 정리한 자료를 먼저 보내주었다. 그래야 얘기하기 편할 테니까.

“요코하마 일렉트론을 매각할 정도면, 인사이트펀드의 손실이 엄청난 모양이네요. 투자사들이 이탈할 거라는 얘기도 있던데.”

인사이트펀드의 규모는 약 1000억 달러.

절반은 소프트박스 그룹이 투자했고, 나머지 절반은 전세계 연기금, 빅테크 기업, 그리고 글로벌 금융사가 투자했다.

원래는 여기에 사우디 국부펀드(PIF)도 참여해 투자 규모를 더 키울 생각이었으나…… 컨티뉴 캐피탈과 손잡고 러시펀드를 만들며 빠졌다.

“미루 씨 말 따라 인사이트펀드에 투자하지 않기를 잘했네요.”

“뭐…….”

그런데 사실 인사이트펀드가 이 지경이 된 것에는 내 책임이 크다.

건빵봉지에서 별사탕만 골라 먹듯, 알짜 기업들은 러시펀드가 먼저 투자했으니까. 게다가 스노우 크래시가 클라우드 시장을 집어삼키는 바람에 렉스가 망하기도 했고.

게다가 렉스 파산은 어디까지나 시작일 뿐. 현재 인사이트 펀드의 투자 포트폴리오 전체가 흔들리는 중이다.

내가 아니었다면 소프트박스 그룹이 이 정도로 큰 손실을 보지는 않았을 테고, 요코하마 일렉트론이 지금 매물로 나올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미안하긴 하다.

“그래서 컨소시엄을 만들어 요코하마 일렉트론을 함께 인수하자는 건가요?”

“바로 그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건 스타트업 투자와는 전혀 달라요.”

제조업을 인수한다는 것은 사람과 공장을 함께 사들인다는 것. 물건이 안 팔린다고 해서 직원을 자르고 공장을 폐쇄할 수는 없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돈 먹는 하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중국 반도체 굴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업입니다.”

“저희가 안 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럼 컨티뉴 캐피탈과 유성전자 둘이 해야겠죠.”

“이미 결정을 내린 모양이네요.”

“예.”

“경쟁사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그래서 하려는 거예요. 경쟁사들에게 한 방 먹일 좋을 기회거든요.”

사라는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좋아요. 그럼 저희도 함께하죠.”

“잘 생각하셨어요.”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일단 일본에 좀 다녀오려구요.”

“일본이요?”

“예. 송 가즈키 회장도 만나보고, 요코하마 일렉트론도 둘러보게요.”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사라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일본에 가도 되나요?”

“예? 제가 못 갈 이유라도 있나요?”

“사마라 회장 탈출 사건으로 일본 검찰에 찍히지 않았나요?”

“아…….”

맞다.

그런 일이 있었지.

* * *

난 일본 출장을 앞두고 사마라 회장에게 연락했다.

그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바쁠 텐데, 어쩐 일인가?]

“안부 인사차 연락드렸습니다. 회장님께서도 요즘 바쁘시다면서요?”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현재 그는 넥스트로젠 사우디지사의 고문을 맡고 있다.

미국 공장은 미국 내 수요도 감당하기 힘든 관계로 사우디 제다에 연간 10만 대 생산 규모의 신공장을 건설 중.

이에 필요한 비용은 전부 PIF가 지원했다.

넥스트로젠은 수소차 플랫폼 기업.

어디까지나 플랫폼만 만드는 만큼, 완성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자동차 기업들과의 협력이 필수다.

대체 중동에 무슨 자동차 기업이 있기에 사우디에 공장을 짓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기서 생산된 제품 대부분은 유럽으로 수출할 계획이다.

제다는 홍해와 맞닿아 있는 도시. 수에즈 운하면 지나면 유럽과 바로 연결된다.

[전부 자네 덕분이지.]

“좀 쉬셔도 되지 않나요?”

비록 회장직에서도 쫓겨나고 보석금 20억 엔도 몰수당했지만, 평생 써도 다 못 쓸 만큼의 돈을 벌었다.

그럼 그 돈으로 놀고먹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일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돈은 문제가 아니네. 내 나름의 복수지.]

“복수요?”

[키오노스는 망해가는데 내가 잘나가는 걸 보면 그놈들 배가 아프지 않겠나? 날 회장직에서 내쫓은 걸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 주는 거야말로 남자의 복수지. 하하!]

“…….”

세간에서는 그런 걸 보통 뒤끝이라고 합니다.

대범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뒤끝이 철철 넘치는 남자였다.

[자네 소식은 잘 듣고 있네. 이번에는 또 어디에 투자할 생각인가?]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그는 10년 넘게 일본 최대 반도체 기업 키오노스의 회장이었다. 그런 만큼 요코하마 일렉트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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