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화. 치킨 게임 (4)
한미루는 집들이에 온 사람들에게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하겠다고 주방에 섰다.
메뉴는 다름 아닌 치킨!
민아름은 작은 목소리로 이동호에게 물었다.
“미루 씨 요리 잘해요?”
“글쎄요. 한 번도 못 봤는데.”
반조리 식품이나 밀키트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생닭을 미리 재워놓았다.
다들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한미루는 요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마치 요리사처럼 능숙하게 닭에 튀김옷을 입혀 튀기고 소스를 만들었다.
대충 봐도 하루 이틀 해본 솜씨가 아닌 듯했다.
성윤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집들이는 핑계였고, 나한테 만들어주려고 연습한 건가?’
정소진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요리까지 잘하다니. 미루 오빠 너무 멋있어.’
닭을 튀기고, 소스를 발라 오븐에 굽자 집안 가득 향긋하고 매콤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냄새는 꽤 괜찮은데.”
“맛있을 것 같아요.”
다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침을 꿀꺽 삼켰다.
* * *
‘핵존맛탱구리’가 대체 뭔 소리인가 싶었는데, 대충 엄청 맛있다는 뜻인 듯했다.
먼저 먹어본 한세나가 엄지를 치켜들자,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집어 먹기 시작했다.
치킨을 입에 넣어본 사람들은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성윤아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이거 너무 맛있는데요.”
“그래요?”
“예. 저번에 같이 먹었던 치킨보다 훨씬 맛있어요.”
그야 이건 미래의 진화된 레시피로 만든 거니까.
다이어트하느라 치킨을 끊었다던 세나는 손에 양념을 묻혀가며 열심히 집어 먹었다.
“우왕! 넘 맛있당.”
“안 뺏어가니까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할라.”
“나중에 또 먹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아! 오빠가 만들어서 배달해주면 되겠다. 그치?”
“아니. 배달 끊었어.”
그 이유는 차에 치여 회귀했기 때문.
난 그 옆에서 오물오물 조신하게 먹는 소진이에게 물었다.
“맛있어?”
그러자 소진이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렇게 맛있는 치킨은 처음 먹어봐요. 오빠는 어떻게 이렇게 요리를 잘하는 거예요?”
성윤아도 물었다.
“맞아요.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던데. 연습이라도 한 거예요?”
“음…….”
사실 여기에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긴 사연이 있다.
이 얘기를 설명하려면 회귀하기 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 얘기를 다 해줄 수는 없는 관계로 대충 얼버무리려는데, 세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칫, 뭐야? 설마 귀여운 여동생에게 만들어주려고 몰래 연습한 거야? 살짝 감동인데.”
“……응?”
아니, 얘는 뭔 쓸데없는 착각을 하고 앉았어?
동호 선배는 닭날개를 뜯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거 진짜 맛있네. 이 정도면 치킨집 차려도 되겠는데.”
이미 차려봤다.
1회차 때 치킨집 하며 느꼈던 거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남들이 맛있게 먹어준다는 것은 꽤나 뿌듯한 일이다.
이런 기분도 오랜만에 느끼는구나.
“천천히 먹고 있어요. 다음 치킨 만들어줄게요.”
내 말에 성윤아는 놀라며 물었다.
“또 있어요?”
“그럼요.”
미래에 유행할 레시피가 어디 이거 하나뿐이겠나?
* * *
현재 S마트 즉석식품 코너에서 판매하는 치킨 한 마리의 가격은 9900원.
민기진은 이를 7천 원으로 낮춰 이벤트를 벌일 예정이었다.
그의 지시에 따라 S마트 양재호 사장은 과거 인맥을 살려 치킨 전문가들을 마트로 영입해왔고, 직원들을 교육했다.
민기진은 준비를 하면서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다.
이제까지 사업을 해온 경험상 반값 치킨 이벤트는 크게 성공할 거라 자신했다.
걱정이 되는 것은 바로 한미루가 만들겠다는 소스.
‘아니, 대체 어떻게 치킨 양념 소스를 만들겠다는 거야?’
알아본 바에 따르면 한미루는 요식업에 종사해본 경험도 없다.
그런 문외한이 만든 소스가 각종 전문가들이 연구해 만들어 낸 소스보다 맛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자신을 하는 거지?’
문제는 상대가 상대인 만큼 맛없어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만약 한미루가 열심히 연구해서 만들어 온 소스를 안 쓰겠다고 한다면?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컨티뉴 캐피탈과 협력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앙심을 품고 신세기그룹을 적대시할 수도 있다.
‘맛없으면 뭐라고 거절하지? 그냥 무조건 맛있다고 해야 하나?’
민기진이 고민하는 사이, 한미루가 그를 찾아왔다.
* * *
역삼동 S마트.
난 이곳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반갑습니다.”
한 명은 일전에 만났던 민기진 전무, 그리고 다른 한 명은 S마트를 총괄하는 양재호 사장이다.
그는 S마트로 오기 전 유명 프랜차이즈의 대표이사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 두 사람과 함께 S마트의 조리실로 향했다.
“오! 마트 조리실은 이렇게 생겼군요.”
양재호 사장이 설명해주었다.
“이곳에서 각종 튀김류를 만들어 판매 중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큰 규모다.
위생복을 입고 위생모를 쓴 직원들이 부지런히 조리 중이었다. 고소한 튀김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생산량은 얼마나 될까요?”
“모든 설비를 최대한 가동한다면 하루 1천 마리까지 가능할 겁니다.”
“그 정도면 적당하겠네요.”
난 이곳에서 갓 만든 치킨을 먹어보았다.
마트에서 파는 치킨 역시 프랜차이즈와 마찬가지로 생닭이 아닌 염지닭으로 조리한다.
치킨 프랜차이즈 3대장에 비한다면 살짝 부족하긴 해도 이 정도면 충분히 맛있는 치킨이라 할 수 있다.
후라이드 기본기는 충분하니, 중요한 것은 소스.
“그럼 제가 소스를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
난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냄비에 재료를 넣으며 소스를 만들었다.
먼저 만든 것은 레드소스.
난 완성된 소스를 튀긴 닭에 골고루 바른 다음 다시 오븐에 구워 두 사람 앞에 내밀었다.
“드셔 보시죠.”
치킨을 먹어 본 민기진 전무와 양재호 사장은 깜짝 놀랐다.
“이, 이 맛은…….”
“어떻게 한낱 치킨에서 이런 맛이!”
민기진 전무는 다급하게 물었다.
“이건 대체 무슨 소스입니까?”
“제가 개발한 레드소스입니다. 그래서 레드킹 치킨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이걸로 끝이 아니다.
난 바로 다른 소스도 만들었다.
이번에 만든 것은 각각 골드소스와 블랙소스.
난 황금색과 검은색 치킨을 내놓았다.
“이건 골드캐슬 치킨과 블랙나이트 치킨이에요.”
골드캐슬 치킨은 마치 꿀을 바른 듯 달콤하고 향긋했고, 블랙나이트 치킨은 짭조름했다.
이 셋은 레드킹과 함께 일명 한정치킨 3대 메뉴로 손꼽혔다.
민기진 전무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 이걸 정말로 직접 개발하신 겁니까?”
“혼자 개발한 건 아니고, 도움을 받았죠.”
내가 만든 치킨의 레시피는 원래 한정치킨의 것.
따지고 보면 타인의 레시피를 훔친 셈이다. 하지만 죄책감은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치킨값을 2만 원으로 올리지만 않았다면, 나도 이렇게까지는 안 했을 테니.
“이 치킨들의 장점은 식은 뒤 데워먹어도 맛있다는 겁니다.”
바로 만들어 집 앞까지 배달해주는 프랜차이즈 치킨과는 달리 마트에서 파는 치킨은 만든 뒤 먹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아무래도 갓 튀긴 치킨에 비하면 맛이 떨어지기 마련.
때문에 일부러 튀김옷을 얇게 하고, 소스가 깊이 스며들게 했다.
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어때요? 이 정도면 S마트에서 팔아도 될 것 같지 않아요?”
내 물음에 양재호 사장이 먼저 말했다.
“물론입니다. 한정치킨이나 BQQ치킨의 시그니처 메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어서 민기진 전무는 확신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무조건 대박입니다. 내놓으면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깜짝 놀랄 겁니다.”
* * *
BQQ치킨.
10대 재벌그룹의 지원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성장한 한정치킨과는 달리 BQQ치킨은 동네 매장으로 시작했다.
창업자인 홍인균은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젊은 시절 먹고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시장 바닥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모은 돈으로 작은 치킨가게를 차렸다.
BQQ치킨의 시작이었다.
그는 가게를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치킨을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지 밤잠도 안 자며, 레시피를 연구했다.
맛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그의 가게 앞에는 손님들이 길게 늘어섰다.
그렇게 지점을 하나씩 늘려나갔고, 현재는 무려 1800여 개의 가맹점을 거느린 대형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작년 매출은 한정치킨에는 조금 못 미치는 5600억 원.
얼마 전에는 치킨을 팔아 번 돈으로 강남에 번듯한 사옥도 세웠다. 중견기업의 회장이 되었지만, 그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금도 치킨사관학교에서 연구원들과 함께 직접 신제품을 개발하고, 언론과 대중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그는 수년 전부터 계속해서 BQQ치킨의 고급화를 추진했다.
톱스타를 광고 모델로 기용했고, 마케팅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이렇게 해서 치킨이 잘 팔리면 가맹점도 이익을 보는 만큼, 마케팅비는 당연히 가맹점주들에게 부담시켰다.
그가 말하는 고급화란 곧 가격 인상을 의미했다.
가격을 올리는 방법도 가지각색이었다.
비싼 신메뉴를 출시한 다음 기존 메뉴를 단종하거나, 원래 그냥 주던 콜라를 뺀 다음 다시 콜라를 넣으며 콜라비 명목으로 가격을 올리거나, 2천 원을 올린 다음 한동안 2천 원짜리 할인 쿠폰을 뿌리는 행사를 하는 등등.
그렇게 야금야금 2천 원, 3천 원씩 올리다 보니 어느새 치킨 단품가격이 2만 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치킨이 3만 원은 돼야 한다고 말해 여론의 거센 역풍을 받았다.
그건 실언이 아니었다.
비난이 쏟아질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발언을 한 이유는 가격 인상의 추진력을 얻기 위함.
홍인균 회장은 언론에 적극적으로 항변했다.
“치킨은 필수품도 아니고, 대체재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찾아보면 저렴한 치킨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치킨을 좋아하시면 그걸 사드시면 됩니다. 하지만 더 맛있고 품질 좋은 치킨을 원한다면 그만한 비용을 지불하는 게 당연합니다.”
어차피 비난을 해도 시켜 먹을 사람은 시켜 먹는다.
실제로 치킨값 3만 원 발언이 나간 뒤로 여론은 들끓었지만, 역시나 매출은 별 변동이 없었다.
‘그럼 그렇지.’
자신감이 붙은 그는 더욱 강하게 발언했다.
“K-치킨이 유명해진 것은 고급화 전략이 통했기 때문입니다. 고급 재료와 정성을 듬뿍 쏟은 프리미엄 치킨 덕분에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음식이든 고급 음식은 가격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동네에서 포장해서 파는 초밥은 1만 원이지만, 오마카세는 10만 원, 20만 원을 넘어갑니다. 치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장에서 튀긴 치킨은 5천 원, 7천 원이지만, 정성 들여 만든 고급 치킨은 3만 원, 아니, 그 이상을 받아도 됩니다.”
그는 이 말을 직접 입증하려는 듯 기습적으로 BQQ치킨 전메뉴 가격을 2천 원 인상했다.
동시에 원가와 물류비가 올랐다는 핑계를 대며 가맹점에 공급하는 원재료 가격도 일제히 올렸다.
그런데 BQQ치킨이 가격 인상을 공지한 바로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S마트, 통통치킨 출시! 가격 6,990원!]
이를 본 홍인균 회장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이놈들이! 치킨을 이렇게 싸게 팔면 어쩌자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