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화. 치킨 게임 (6)
최근 라디오 방송들은 진행 장면을 녹화해 이를 에이튜브로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는 SBC 라디오 프로그램 ‘즐거운 라디오 생활’ 역시 마찬가지였다.
홍인균 회장이 출연한 편은 엄청난 인기를 끌며 하루만에 에이튜브 영상 조회수가 100만 회를 넘었다.
덕분에 SBC라디오 채널 구독자수까지 크게 올라갔고,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팩트로 완전 두드려 패네.
-ㅋㅋㅋ 치킨값 3만 원은 되어야 한다고 큰소리치더니,
-ㅋㅋ 어떻게든 통통치킨 깎아내리려다가 팩트폭행 당하고 버로우~
-진행자가 미리 준비 많이 했네. 이 프로그램 진행자 누군가요?
-SBC 진세연 아나운서입니다.
-영상 봤는데 겁나 이쁨. 지유랑 좀 닮은 듯. 좀 어른스러운 지유랄까?
-그야 지유의 사촌언니니까.
-와, 진짜? 대박.
-오늘부터 ‘즐거운 라디오 생활’ 구독한다.
-아직도 프랜차이즈 치킨 시켜 먹는 흑우들 업제?
-어떻게 2만 원짜리 치킨이 7천 원짜리만도 못하냐?
-ㅋㅋㅋ 지들이 비싸게 팔 때는 시장경제. 남이 싸게 팔면 시장 질서 교란.
-아니, 비싸면 안 시켜 먹으면 된다며? 그래서 안 시켜 먹고 싼 마트 치킨 사먹겠다는데 뭐가 문제지?
-안 시켜 먹는 게 문제입니다.
-치킨값이 비싸다고 욕하는 건 참을 수 있다. 그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안 시켜 먹는 건 참을 수 없다!
-통통치킨이 6,990원인데, 가맹점에 공급하는 염지닭 5,700원 실화냐? 가맹점 피 좀 그만 빨아먹어라.
-가맹점에 공급하는 원재료 가격만 내려도 최소 5천 원은 인하할 수 있을 듯.
-응~ 3만 원까지 올려봐, 병신아~ 통통치킨 사먹으면 그만이야~
홍인균 회장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살면서 이런 망신을 당한 적은 처음이다.
프랜차이즈 업계와 가맹점주들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여론을 돌려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가맹점에 공급하는 식자재 가격이 높다는 점만 부각되는 바람에 여론이 더욱 악화됐다.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직원에게 소리쳤다.
“당장 SBC 라디오에 연락해서 광고 전부 빼겠다고 해!”
* * *
[통통치킨, 출시 일주일 만에 14만 마리 판매!]
[레드킹 치킨, 치킨 선호도 조사에서 1위!
[S마트 양재호 사장, 통통치킨 판매 늘릴 것]
출시 이후 통통치킨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10년 전, 리테마트가 대통치킨을 출시했을 때도 이 정도 인기는 아니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웬만한 프랜차이즈 치킨보다 맛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마트 개점 전부터 치킨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마트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일제히 즉석식품 코너로 달려가서 소리쳤다.
“통통치킨 한 마리!”
“대체 치킨 언제 나오나요?”
“빨리 치킨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아침 일찍 갔는데, 구경도 못 하고 옴.
-사려면 개점 전부터 줄 서야 함.
-어느 지점에 남아있는지 어떻게 아나요?
-그거 S마트 어플 들어가면 뜹니다. 보면 치킨 나오는 시간이랑 수량까지 다 나와 있어요.
-2만 원이어도 상관없으니, 레드킹 맛이라도 보고 싶다. 핵존맛탱구리라던데.
-가격만 비싼 프랜차이즈보다 백만 배 나음.
-기진이 형! 판매량 좀 늘려줘!
-S마트 조리 직원입니다. 조리실에서 최대한 생산할 수 있는 양을 최대 800마리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1000마리를 튀기고 있습니다. 출근하면 다른 일 하나도 안 하고 하루 종일 치킨만 튀기고 있습니다. 옆에서 다른 직원은 소스만 버무리고 있구요. 이젠 닭만 봐도 신물이 납니다. 통통치킨 하나도 맛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프랜차이즈 치킨 시켜 드세요 ㅜㅜ
물론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통통치킨 관련된 리뷰와 기사에는 악의적인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ㅅㅂ 마트 치킨이 맛있어 봐야 얼마나 맛있다고?
-냉동닭 튀긴 거라 질기고 맛없음. 염지도 안 해서 냄새나고 느끼하고.
-쯧쯧! 거지도 아니고 7천 원짜리 치킨 먹겠다고 달려가냐? 한심하다, 한심해.
-통통치킨 환장하는 놈들 = 돈 없고 시간 남아도는 백수들
-마트 치킨 맛도 없고, 위생 상태 개더러움. 아는 사람이 마트 치킨 먹고 배탈 나서 응급실 실려 감. 의사가 그러는데 대장균이랑 조류독감 감염으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마음의 준비하라 했음.
-배달도 안 해주고, 콜라랑 무는 별도 구매해야 하고. 그렇게 따지면 7천 원이 싼 것도 아님.
-마트까지 발품 팔아 몇 시간 기다려 식은 치킨 사 먹느니, 프랜차이즈 치킨 시켜 먹는 게 백만 배 나음.
-마트 치킨과 프랜차이즈 치킨은 수준이 다릅니다. 대체 왜 프랜차이즈가 욕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재료의 품질과 맛을 생각하면, 프랜차이즈 치킨은 전혀 비싼 게 아니다!
-그럼그럼. 특제소스로 특수조리 과정을 거쳐 정성 들여 만든 프랜차이즈 치킨 최고!
하지만 S마트 측이 특정 집단이 조직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을 포착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하자, 놀랍게도 그 많은 댓글들이 일시에 삭제됐다.
* * *
통통치킨 판매를 진두지휘한 민기진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인기를 끌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통통치킨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인플루언서나 에이튜버들은 알아서 리뷰를 하며 돈도 안 받고 홍보를 해주었고, 심지어는 줄을 대신 서는 알바나 중고마켓에 웃돈을 얹어 되파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례적인 인기에 언론과 외신에서도 이를 다뤘다.
전문가들은 인기 요인을 두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압도적으로 저렴한 가격. 웬만한 프랜차이즈 치킨 단품 가격이 2만 원 이상으로 오른 것에 대해 소비자들은 강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S마트가 저렴한 가격에 치킨을 출시하자 소비자들이 열광한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맛이다.
배달이 중심인 프랜차이즈 치킨과 마트 즉석조리식품 코너에서 판매하는 치킨은 시장이 어느 정도 구분되어 있다.
단지 싼값에만 판매했다면 마트 치킨은 찻잔 속 태풍에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함께 출시한 레드킹 치킨, 골드캐슬 치킨, 블랙나이트 치킨이 웬만한 프랜차이즈보다 맛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엄청난 흥행을 불러온 것이다.
판매량은 일 평균 2만 마리.
만드는 족족 팔려나간 덕분에 재고도 남지 않았지만, 수익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S마트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줬다.
바로 집객 효과와 홍보 효과다.
1인 가구와 2인 가구가 늘어나고,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며, 마트를 찾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있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일단 사람을 마트로 불러 모으는 것이 우선이다.
그동안 매장 배치를 바꾸고, 할인 품목을 늘리는 등 여러 방법을 써봤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통통치킨이 그 역할을 해냈다!
마트까지 가서 통통치킨만 사 들고 나오는 사람은 별로 없다. 2만 원이 넘는 치킨을 저렴하게 샀다고 생각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마련.
7천 원짜리 치킨 사러 갔다가, 10만 원 넘게 장 보고 왔다는 후기가 줄을 이었다.
덕분에 S마트는 방문자 수와 매출 모두 크게 늘어났다.
민기진은 자신이 만났던 남자를 떠올렸다.
한미루는 외부에는 팀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민기진은 그가 실제로는 데이비드 록허트와 함께 본사 공동대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컨티뉴 캐피탈과 손잡으면 큰 이익을 얻는다고 하더니.’
이제까지 컨티뉴 캐피탈을 적대시한 기업은 망하거나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반대로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를 받거나 손잡은 기업은 다들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컨티뉴 캐피탈은 이번 일로 대체 무슨 이익을 얻는 거지?’
* * *
난 진세연과 통화했다.
“방송 대박 터졌던데. 뉴스에도 여러 차례 나오고.”
해당 장면은 ‘치킨값이 3만 원은 돼야 한다’는 발언과 함께 짤방과 밈으로 퍼져나갔다.
진세연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긴 한데…… 지금 우리 분위기 별로 안 좋아.]
“어째서?”
[BQQ치킨 측에서 지금 광고 다 빼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거든.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항의 전화도 엄청 오고 있고.]
고작 이 정도 일로 광고까지 빼겠다고 협박하다니. 너무 치졸하지 않나?
뭐, 반발이 있을 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
[그래서 지금 큰일이야. 가뜩이나 라디오는 예산도 빠듯한데. 나 이러다가 잘리면 어떡하지?]
“걱정할 것 없어.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진짜? 어떻게?]
“아, 잠깐만. 손님 맞아야 해서 나중에 얘기해줄게.”
난 회사로 온 손님을 보고는 전화를 끊었다.
“어서 오세요.”
그는 다름 아닌 민기진 전무.
오늘 만난 이유는 향후 마케팅 전략에 대해 논의하기 위함.
“전화로 해도 되는데요.”
“마침 시간이 좀 나서요.”
그 정도 위치쯤 되면 시간은 ‘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바쁠 텐데도 굳이 찾아온 걸 보면 이번 기회에 친분을 쌓기 위함이겠지.
그는 자리에 앉자 보고하듯 말했다.
“판매량은 현재 레드킹 치킨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골드캐슬과 블랙나이트가 그다음입니다. 후라이드 판매량은 10퍼센트 미만이구요. 마트 조리실 직원들은 다른 튀김류 생산을 포기하고 하루 종일 닭만 튀기고 있는데도 생산량이 판매량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산을 더 늘리기 위해 일단 인력을 재배치하는 중입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뭘요. 양재호 사장의 의견에 따라 감자튀김을 추가하고, 튀김유도 더 고급으로 바꿨습니다. 또한 직원들에게 품질과 위생에 각별히 신경 쓰라고 지시했습니다.”
장사가 잘되면 원가를 아끼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양을 줄이거나 재료를 싼 걸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이익률이 크게 달라지니까.
그러나 양재호 사장은 프랜차이즈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만큼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통통치킨 판매를 대형마트뿐 아니라, SSM과 쇼핑몰, 편의점 등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인가요?”
“프랜차이즈 업계의 반발입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현재 한국프랜차이즈협회 협회장은 바로 BQQ치킨 홍인균 회장.
그는 중소 프랜차이즈들과도 협력해 통통치킨 판매중지 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골목상권 침해와 소상공인 생존권을 주장하며, 판매 중단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리테마트의 대통치킨 역시 그렇게 해서 일주일 만에 판매가 중단됐고.
그때랑 지금은 사정이 좀 다르다지만, 어쨌거나 소상공인 대 대기업 프레임으로 공격하면, 신세기그룹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그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뭔가요?”
난 계획을 설명해주었고, 민기진 전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예. 이렇게 하면 개인 치킨가게 사장들과 중소 프랜차이즈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겁니다.”
민기진 전부는 슬쩍 물었다.
“그런데 정말로 로열티를 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이 치킨 레시피를 만든 사람은 바로 나. 따라서 로열티를 요구할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예. S마트 측 마진도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로열티를 받는다면 그만큼 가격을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 모두가 싼 치킨을 사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한동안 생각하던 민기진 전무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예.”
“이번 일이 컨티뉴 캐피탈에는 아무런 이익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직접 레시피까지 연구하시고, 이런 전략까지 세우시고. 이번 일에 이렇게 나서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하기야 돈도 안 되는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으니, 신기하게 생각되기도 하겠지.
난 농담처럼 말했다.
“글쎄요. 제가 전생에 치킨집이라도 했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