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화. 모카뱅크 (9)
[공모주 청약시 환매청구권이란?]
[티슬라 요건으로 상장한 모카뱅크, 공모가의 90퍼센트 가격에 되팔 수 있는 옵션 있어]
[모카뱅크 환매청구권 대기 수량 약 2,500만 주. KD증권 감당할 수 있나?]
SBC라디오 프로그램 ‘즐거운 라디오 생활’에서 나간 발언은 즉시 기사화됐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뭐야? 이거 환불되는 거였어?
-오오! 90퍼센트 가격에 증권사가 되사준다고?
-이거 진짜야? 난 왜 몰랐지?
-증권사가 말 안 해줬으니까. 지들한테 불리한 건 절대 안 알려 줌.
-컨티뉴 캐피탈 직원이 말해주지 않았으면 몰랐겠네.
-공모주로 받은 거 팔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네. 주가가 얼마나 떨어지든 46,800원에 팔 수 있으니.
-이런 거 있는 줄 모르고 22,000원에 팔았는데, 혹시 다시 사서 환매청구권 행사할 수 있나요?
-아! 안타깝지만 그건 안 됨. 한번 팔면 끝임.
-쓰레기 주식은 반품하자. 반품이 답이다!
-이딴 주식 니들이 다시 가져가라~
-환불원정대 출발!
* * *
그동안 증권사들은 모카뱅크의 주가를 띄우기 위해 노력했다.
[모카뱅크, 은행이 아닌 금융 플랫폼]
[AI 알고리즘을 통한 개인 신용 정밀분석]
[빅데이터를 활용한 금융 혁신!]
마치 모카뱅크가 금융 시스템 전체를 바꿀 것처럼 떠들어댔고, 인터넷은행이 마치 엄청난 신기술이라도 있는 것처럼 포장해 장밋빛 전망을 펼쳤다.
여기서 가장 열심이었던 것은 당연히 KD증권.
덕분에 청약은 100대 1이 넘는 경쟁률로 완판됐고, KD증권은 막대한 수수료와 시세차익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컨티뉴 캐피탈의 리포트 하나가 그 흐름을 바꿔놓았고, 대표와 경영진의 매도가 결정타를 날렸다.
이제 KD증권이 공언했던 전망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환매청구권이 걸려있는 만큼 KD증권은 주가가 공모가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방어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현재 주가는 공모가의 절반 이하로 폭락했다.
조경휘 사장은 그저 조용히 환매청구권 행사 기한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조금만 더 버티면 환매청구권은 자연히 소멸되고 KD증권이 책임을 질 일도 없어진다.
그런데…….
컨티뉴 캐피탈 직원이라는 놈이 라디오를 통해 모카뱅크 공모주에는 환매청구권이 있다는 사실을 광고하는 바람에 그 희망은 사라졌다.
박현동 본부장이 다급하게 보고했다.
“환매청구권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조경휘 사장은 깜짝 놀랐다.
“뭐!?”
사실 모카뱅크 공모주를 받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환매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모카뱅크의 주식을 계속 보유하고 싶은 투자자라 해도 마찬가지다.
환매청구권을 행사해 46,800원에 증권사에 되팔고, 장내에서 그 절반 가격에 다시 매수하면 되니까.
반대로 KD증권 입장에서는 시장에서 반값이면 살 수 있는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매수해야 한다.
만약 2,500만 주가 전부 환매청구권을 행사한다면, 이를 받아주기 위해서는 주식과 채권 등 다른 자산을 팔아야 할 판이다.
“아, 안 돼…….”
조경휘 사장은 망연자실했다.
‘대체 왜 이렇게 됐지?’
사실 원인은 매우 간단했다.
바로 기업의 실제 가치와는 동떨어진 높은 공모가를 책정했기 때문이다.
KD증권이 높은 공모가를 약속했고, 덕분에 단독으로 공모 주관사 자리를 따냈다.
멀쩡한 국내 은행주들 놔두고, 별 상관도 없는 해외 기업들과 비교해 높은 멀티플을 적용했고, 상장 이후에도 주가는 크게 올랐다.
기업의 실제 가치에 비해 주가가 고평가됐으니, 주주 입장에서는 팔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기존 주주들은 신주모집보다 구주매출을 택했고, 대주주는 블록딜로 매각을 진행했고, 대표와 경영진은 스톡옵션을 행사해 전부 팔아치웠다.
처음부터 적절한 수준의 공모가를 책정했다면, 이런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컨티뉴 캐피탈은 그 틈을 정확하게 노리고 찔렀다.
“모, 모카뱅크 측 상황은?”
박현동 본부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쪽은 지금 직원들이 집단행동에 나섰습니다.”
“……응?”
* * *
[KD증권, 환매청구권으로 인한 손실 5천억 원 넘어]
KD증권 주가는 환매청구권으로 인한 손실 우려로 하한가를 쳤다.
문제는 이게 모카뱅크에게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KD증권이 환매청구권으로 돌려받은 물량을 언제까지 떠안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이를 다시 시장에 매도해야 할 테고, 이는 다시 주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이 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매도는 쏟아졌고 공매도에 불이 붙었다.
오버행 이슈가 불거지며 주가는 더욱 하락하며, 모카뱅크의 주가는 2만 원 선도 깨졌다.
공모주를 청약받은 사람들은 환매청구권을 행사했고, 이후 매수한 사람은 주식을 매도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주식을 처분했지만, 모카뱅크 직원들은 보호예수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주가가 떨어지는 만큼, 직원들의 사기도 떨어졌다.
모두가 힘없는 표정으로 출근했고, 어깨를 늘어뜨린 채 퇴근했다. 표정에는 생기가 없었고, 누구도 웃거나 농담을 하지 않았다.
주가를 보면 숨이 턱턱 막히고,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았다. 그동안 아무리 열심히 다이어트를 해도 빠지지 않던 살이 쭉쭉 빠질 지경이었다.
막대한 손실을 봤지만, 이자 날짜는 꼬박꼬박 다가왔다.
김근수는 처음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모카뱅크의 시작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인터넷은행이 되겠냐는 부정적인 시선에도 구성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일했다.
매일같이 야근했고, 오류가 생겼을 때는 모두가 밤새가며 고쳤고, 투자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모두가 얼싸안고 기뻐했다.
모카뱅크는 그의 집이었고, 경영진과 직원은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상장이 결정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동안의 노력이 보상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료 직원이 우리사주를 바로 팔겠다며 퇴사했지만, 그는 퇴사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다.
모카뱅크는 평생을 함께할 직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그 결과가 이거라는 건가?’
김근수는 이를 갈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딴 회사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러나 그만두고 싶어도 빚 때문에 그만둘 수도 없었다. 이건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사주를 산 모든 직원들이 마찬가지.
직원들은 일하는 동안에도 사내 메신저를 통해 불만을 토로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떨어질지 감도 안 잡히네요.
-어차피 팔지도 못하는데, 주가를 확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전 조만간 이혼할 것 같네요. 하기야 제 잘못으로 5억 원 넘는 빚을 졌으니, 무슨 할 말이 있을까요? 차라리 이혼하는 게 가족들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부모님 퇴직금까지 다 날려먹었습니다.
-경영진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가가 끝도 없이 하락하는데, 손 놓고 있네요.
-자신들은 이미 다 팔았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거겠죠.
익명의 글을 올리는 다른 직원들과는 달리, 김근수는 실명과 직급을 공개한 채 경영진을 포함한 전직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상장 직후 경영진이 스톡옵션을 전부 처분하는 바람에 회사에 대한 신뢰는 바닥까지 추락했고, 주가는 폭락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직원의 사기가 떨어졌고,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할 지경입니다. 평소 직원들과의 소통을 강조하셨던 만큼 임재경 대표님께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직원들에게 명확하게 해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수많은 직원이 호응했고, 어쩔 수 없이 임재경 대표는 직원들과의 간담회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 *
업무가 끝난 뒤.
대회의실에 직원들이 모여들었다.
잠시 후, 임재경 대표가 단상 위에 올라섰다. 그는 평소처럼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임재경 대표는 직원들과 농담을 하고 장난을 치는 듯 격의 없는 소통을 하기로 유명했다. 때문에 직원들 역시 항상 웃는 표정으로 그를 대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임재경 대표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최근 있었던 여러 문제로 인해 직원들의 걱정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김근수는 다른 직원들을 대신해 마이크를 잡았다.
“대표님을 포함한 경영진은 스톡옵션을 고점에서 전부 처분했습니다. 게다가 평소 소통을 중시하던 것과는 달리, 그 과정에서 직원들과 한마디 상의조차 없었습니다. 이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듣고 싶습니다.”
“먼저 스톡옵션 행사와 매각 과정에서 대내외적인 소란이 일어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법적으로도 경영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지 않았습니까?”
“매각할 당시만 해도 공모주는 100퍼센트 이상 수익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가 폭락은 꼭 경영진의 매도 때문이라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전체 거래량에 비해 스톡옵션 매도량은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컨티뉴 캐피탈을 비롯한 헤지펀드들의 공매도가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
그의 말대로 경영진의 매도는 전체 거래량에 비해 미미했다.
그러나 이건 궤변이나 다름없다.
중요한 건 거래량에서 얼마를 차지했냐가 아닌, 누가 팔았나느냐다.
일반적으로 대표와 경영진의 주식 매도는 시장에서 엄청난 악재로 받아들인다.
분위기는 점점 더 안 좋아졌다.
“만약 경영진이 상장 직후 스톡옵션을 전부 매도할 것을 알았으면, 직원들은 우리사주를 사지 않았을 겁니다.”
“아직 손해는 확정된 게 아닙니다. 우리사주의 보호예수가 풀릴 때까지는 아직 한참의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그때까지 주가를 회복시키면 피해 역시 없을 것입니다.”
그 말에 직원들은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떠올랐다.
‘이게 뭔 개소리야?’
한마디로 아직 안 팔았으니, 피해가 없다는 것.
김근수는 욕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물었다.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여쭤보겠습니다. 지금 우리사주를 산 직원들이 피해가 없다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직원들이 피해를 봤습니까, 보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피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인지 임재경 대표는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했다.
“불편을 끼쳐드린 점 자체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근수는 반드시 대답을 듣겠다는 듯 계속해서 질문했다.
“확실하게 말씀을 해주십시오. 경영진의 매도로 피해를 주셨습니까, 피해를 안 주셨습니까? 의도했느냐는 얘기가 아닙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피해를 줬는지 피해를 준 바가 없는지 대표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결국 임재경 대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좀, 어, 뭐…… 이렇게 표현드려서 개인적으로 아쉽긴 합니다만, 그 부분은 직원 개별의 선택이었고, 피해라고 보지는 않고 있습니다.”
“…….”
그 말에 직원들은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순간, 잘못 들었나 했다.
이게 지금 수억씩 빚더미에 앉은 직원들에게 대표가 할 수 있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