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화. 모카뱅크 (10)
우리사주를 매수한 것은 분명 직원 개인의 선택이다.
사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욕망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최소한 경영진이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설마 대표와 경영진이 직원들 뒤통수를 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런데 이제 와서 개별의 선택을 운운한다고?’
다른 직원들도 차례대로 질문을 했지만, 임재경 대표는 책임질 만한 답변을 최대한 피했다.
간담회가 진행될수록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직원들의 표정은 점점 험악해졌다.
임재경 대표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이 자리는 지난 일을 탓하기보다는 모카뱅크의 미래를 위해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김근수는 냉소적인 투로 말했다.
“건설적인 얘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피해 복구를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회사는 주가를 올리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준비 중입니다. 어려움을 겪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사내대출을 지원하겠습니다.”
회사에서 추가로 대출을 해준다면 당장 숨통은 트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갚아야 할 돈이 늘어나는 것이니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스톡옵션 매도는 시장의 신뢰를 저버린 행동입니다. 저희 직원들은 대표님과 경영진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합니다.”
그 말에 다른 직원들 역시 암묵적인 동의를 보냈다.
임재경 대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다른 경영진의 의사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번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매각한 주식을 다시 매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재매입을 한다구요? 수량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금액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수량입니다.”
“…….”
그 말에 다들 놀라 입을 쩍 벌렸다.
한마디로 스톡옵션 112만 주를 팔았으니, 다시 112만 주를 사들이겠다는 것.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천만에.
팔 때는 주당 105,000원이었지만, 지금은 17,000원이다.
판 금액이 1,176억 원인 반면, 사는 금액은 190억 4천만 원에 불과하다. 주식을 사고도 여전히 980억 원의 돈을 챙긴 셈이다.
“내부자거래방지법과 자본시장법 등 법률적 검토를 거친 이후, 매입 시점을 정하겠습니다. 이는 책임경영 강화의 일환인 만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긍정적 효과를 끼칠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가 상승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겁니다.”
무슨 대단한 결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렇게 해서 정말로 주가가 반등한다면 대표님과 경영진은 오히려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
김근수는 대표의 면상에 마이크를 집어 던지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말했다.
“그건 진정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피해를 본 직원들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을 요구합니다.”
임재경 대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대표님과 경영진이 우리사주를 사주실 것을 제안합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주가는 공모가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영진은 고점에서 스톡옵션을 매도해 3천억 원을 벌어들였습니다. 이 수익으로 기금을 조성해 직원들의 우리사주를 공모가에 일부라도 매수해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30퍼센트…… 아니, 단 10퍼센트라도 좋습니다. 경영진이 본 이익으로 직원들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보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설마 이런 제안을 받을 줄 몰랐던 만큼 임재경 대표는 당황했다.
당연하게도 시중에서 17,000원에 거래되는 주식을 세 배가 넘는 52,000원에 사주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임재경 대표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우리사주를 경영진이 되사주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김근수는 바로 반박했다.
“경영진이 상장 직후 스톡옵션을 전량 매도한 것 역시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설마 이익이 되는 행동은 전례가 없어도 해도 되고, 손해가 되는 행동은 전례가 없으니 해서는 안 되는 겁니까?”
“그러니까 그 문제는…….”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찾는 그를 향해 직원들은 일제히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쏟아지는 시선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침묵이 농도를 점점 더해가는 가운데 임재경 대표는 억지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그, 그 부분에 대해서는 경영진의 의사를 확인해보고,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 검토해보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투자 결정은 어디까지나 직원 개별의 선택…….”
그 말에 참다못한 한 직원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까부터 보자 보자 하니까 뭐 하자는 뭡니까? 뭐? 개별의 선택? 지금 직원들 놀립니까?”
임재경 대표는 깜짝 놀랐다.
“지, 진정하세요!”
하지만 전재산을 날리고 빚더미에 앉은 직원들이 그 말 한마디에 진정할 리 없었다.
다른 직원들도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지금 직원들 사정이 어떤지 압니까?”
“전 빚 갚으려고 퇴근 후에 대리운전에 배달까지 뛰고 있습니다!”
“다들 이혼에 파혼에. 누구 하나 극단적 선택을 해도 놀랍지가 않은 상황입니다.”
“며칠 전 경영진들이 다 같이 골프 치러 간 거 맞습니까?”
“하나같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남 일처럼 여기고! 비전 제시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만, 일이 이 지경이 됐으면 최소한의 위로와 공감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내 주식 어떡할 거야!?”
간담회장은 순식간에 성토장이 됐다.
“가, 간담회는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놀란 임재경 대표는 그 말을 끝으로 도망치듯 허둥지둥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 * *
[모카뱅크 경영진, 직원들 우리사주 손실 분담할 생각 없어]
[임재경 대표, 아쉽긴 하지만 우리사주 매수는 직원 개별의 선택. 피해라 보지는 않아]
[모카뱅크 직원 간담회 파행으로 치달아!]
[직원들 집단행동 나서나?]
간담회 파행 이후.
사내 분위기는 더욱 악화됐고,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다.
-엌ㅋㅋㅋ 개별의 선택. 이거 어디서 들어본 말 같은데?
-야, 이 멍청한 직원 놈들아! 누가 우리사주 받으라고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냐? ……라고 임재경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야! 지린다. 살면서 회사 대표가 직원들에게 누칼협 시전하는 걸 보게 될 줄이야.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저런 대표 믿고 일한 직원들이 불쌍하다.
-막말로 세상의 경우란 경우는 우리가 다 어기고 살지만, 직원과 대표는 경우를 따져야지. 우리사주 산 건 직원 돈 아니냐?
-ㅎㅎ 지가 팔아서 폭락시켜놓고 다시 매수.
-팔 때 가격 105,000원. 살 때 가격 17,000원.
-고점 매도, 저점 매수에 지렸다. 이쯤 되면 주식의 신 아닌가?
-신은 무슨. 그냥 먹튀 사기꾼이지~
-미친놈인가? 되사려면 지가 판 금액에 그대로 사야지 의미가 있지.
-ㄴㄴ 사내 간담회에서 한 직원이 경영진이 수익 낸 돈으로 기금 마련해서 우리사주 10퍼센트라도 사달라고 요구하니까 빤쓰런 함.
-이쯤 되면 직원들이 우리사주 사달라고 칼 들고 협박해도 킹정!
-내일 출근하면 직원들에게 맞아 죽을 듯.
-(속보) 모카뱅크 직원들, 내일 각목 들고 출근~
-내일 신문 1면 기사 예상. ‘임재경 대표, 변사체로 발견’
정말로 신변의 위협을 느꼈는지, 어쩐지 몰라도 임재경 대표는 회사에 나오지 않았고, 경영진은 직원들을 피해 숨어다녔다.
일부는 출장을 핑계로 해외로 떠났다.
결국 임재경 대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고, 다른 경영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임재경 대표 및 경영진 집단 사퇴!]
[모카뱅크 이사회, 임시 대표 선임 착수]
[신규 사업 차질 우려……]
임재경 대표는 창업자가 아닌, 전문경영인.
먹튀로 인해 논란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가 실력 있는 경영자고 모카뱅크를 여기까지 성장시킨 장본인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기업에게 있어서 상장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상장을 통해 모은 투자금으로 기존 사업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벌여야 한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시기에 대표와 경영진이 일제히 사퇴한 것이다!
간담회에서 밝혔던 주식 매입 계획 역시 당연히 취소됐다.
이사회는 부랴부랴 임시 대표를 선임하겠다고 밝혔지만, 경영 리스크는 피할 수 없었다.
-책임지고 사퇴 좋아하네. 그냥 빤쓰런 아님?
-책임을 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스톡옵션 매도한 금액 뱉어내는 거 아님?
-그게 싫어서 사퇴함.
-하기야 1천억 땡겼으니, 나 같아도 일하기 싫겠다.
-스톡옵션 달달허다~
-직원분과 소액주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희는 수백억 원씩 챙겨서 따뜻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카뱅크 경영진 일동-
신규 사업 진출은 일제히 취소됐고, 시스템의 오류도 잦아졌다.
하지만 사기가 떨어진 직원들은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며, 주어진 업무만 할 뿐이었다.
-ㅅㅂ 뭔 은행 앱이 맨날 튕기냐? 송금이 안 되면 어쩌자는 거야?
-서버 점검을 하루종일 하나?
-모카뱅크 계좌 해지합니다.
-입금하지 않습니다. 송금하지 않습니다. 노노뱅크!
-이런 기업은 이용 안 하는 게 답임.
-돈 옮기고, 앱 삭제 완료!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퉤퉤!
-아직도 모카뱅크 이용하는 흑우들 없제?
모카뱅크는 독점 기업이 아니다.
기존 은행이라는 수많은 대체재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모카뱅크가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여느 은행보다도 빠르게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가입자가 정체된 것도 모자라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동안 모카뱅크의 높은 멀티플을 정당화했던 성장성마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태가 점점 커지자 MSCI는 지수 편입을 슬그머니 취소했다.
대표와 경영진의 사임, 직원들이 사기 저하, 고객 이탈 등 온갖 악재가 겹치며, 모카뱅크 주가는 끝도 없이 추락했다.
결국 모카뱅크 주가는 1만 원이 깨지며 9천 원 선으로 주저앉았다.
* * *
상장 직후 주가가 고점 대비 90퍼센트, 공모가 대비 80퍼센트가 떨어지는 것은 코스닥 작전주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
그런 기업은 대부분 기껏해야 시총이 수백억이고, 일반인들은 들어본 적조차 없는 곳이다.
애초에 거기에 뛰어든 사람들은 단타족이나 주식꾼들인 만큼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모카뱅크는 코스피 시총 10위 안에 들고, 한때는 시총이 50조 원을 넘어선 기업이었다.
이 정도로 큰 기업이 상장 직후 이렇게 폭락한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때문에 투자자들의 피해 역시 엄청났다.
우리사주를 산 직원들은 수억씩 빚더미에 앉았고, 뒤늦게 매수한 개인투자자들 역시 투자금 대부분을 날렸다.
오죽하면 언론에서 ‘개미지옥’, ‘소액주주 학살극’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반면 컨티뉴 캐피탈은 또다시 공매도 대박을 터트렸다.
컨티뉴 캐피탈이 공매도한 금액은 3조 5천억 원.
리포트 발표 이후에도 계속해서 공매도를 쏟아냈기 때문에 매도 평균 가격은 6만 원까지 낮아졌다.
현재 주가면 수수료를 제하고 80퍼센트. 대략 2조 8천억 원을 벌어들였다.
동호 선배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뭐 총체적 난국이네. 경영진은 먹튀하고, 고객들은 떠나가고. 남아있는 건 직원들뿐인가?”
“이래서 빚이 무서운 거죠.”
빚 다 갚을 때까지는 퇴사도 못 하는 신세다.
“KD증권도 망하겠는데. 조만간 CB 발행하거나, 유상증자할 거라는 얘기가 돌고 있어.”
공모가의 90퍼센트에 모카뱅크의 주식을 떠안게 된 KD증권은 휘청거렸고, 급하게 다른 계열사에 긴급자금을 요청했다.
“KD증권만 문제가 아니죠.”
“그럼?”
티슬라 요건으로 상장한 기업, 그리고 상장을 대기하고 있는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 떨고 있을 증권사가 한둘이 아닐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