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400화 (400/529)

400화. 모카뱅크 (12)

얘기를 전해들은 동호 선배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태 이 자식이 간 보다가 팔 타이밍을 놓쳤다고?”

“네.”

“아니, 그 자식은 팔라고 미리 말을 해줘도 못 알아먹네.”

“심정은 이해가 되잖아요.”

동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회사까지 때려치웠으니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었겠지.”

조만간 폭락한다는 걸 알아도 나만은 고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 착각하기 마련.

가격이 오를 때는 올라서 못 팔고, 떨어질 때는 떨어지니 못 판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본전이라도 건지기 위해 허겁지겁 내던지는 것이다.

그나마 최한별이 옆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금까지도 폭락한 주식을 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어떻게 한대?”

“다시 취직자리 알아보고 있대요.”

“흠, 은행 쪽은 재취업이 쉽지 않을 텐데.”

데이터와 플랫폼을 중시하는 것은 인터넷은행만이 아니다. 시중 은행들 역시 빠르게 디지털 전환을 시도하는 중이다.

은행들은 행원 채용은 줄이는 반면, IT 인력 채용은 늘리는 중.

일부 은행은 아예 공채를 폐지했고, 일부 은행은 지점 폐쇄와 감원에 나섰다.

주요 은행들의 IT인력 비중은 7퍼센트를 넘었고, 내년까지 10퍼센트로 늘릴 예정이다. 이렇다 보니 행원의 취업문은 점점 좁아지는 추세.

경태는 IT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일반 행원인 만큼, 한번 나오면 다시 들어가기가 힘들 것이다.

그래서 퇴직에 큰 결심이 필요했던 거고.

“그래도 빚은 안 졌다니 다행이네. 모카뱅크 직원들은 좀 심각하던데.”

“거기는 지옥이 따로 없죠.”

“이래서 회사를 잘 골라야 해. 나처럼 말이지.”

애사심이 넘치는 표정이다.

첫 연봉으로 1억을 주고 매년 두 배씩 올려주기로 했으니, 현재 동호 선배의 연봉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좀 벌었어요?”

동호 선배는 씨익 웃었다.

“그럭저럭.”

금융사에서는 온갖 정보가 오간다.

증권사 직원이 일하면서 알게 된 기업의 내부자정보를 활용해 개인적인 투자를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불법이다.

그러나 컨티뉴 캐피탈은 이를 허용한다.

우리가 하는 투자는 내부자정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까.

동호 선배는 따로 해외에 투자사를 설립해 따로 투자했다. 덕분에 연봉과는 별개로 자산이 나날이 늘어나는 중이다.

“아무튼 경태는 좀 불쌍하네. 애 키우려면 돈도 많이 들어갈 텐데 백수라니.”

“조만간 선배한테 연락해올 거예요.”

“나한테 왜?”

“취직시켜달라고.”

그 말에 동호 선배는 손을 내저었다.

“뭐? 안 돼. 그런 부정청탁은 안 받아.”

“불쌍하다면서요?”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말해줘도 못 알아먹는 놈을 어디다 써? 실력도 없는 애가 낙하산으로 들어와봐야 회사 분위기만 엉망 되는 거지. 저축은행이나 캐피탈 같은 곳이라도 알아보라고 해.”

난 고개를 끄덕였다.

“흠, 훌륭하네요.”

“왜?”

“그냥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지사장으로서 공과 사를 명확하게 구분할 줄 아는 모습이다.

동호 선배는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그나저나 요즘 스타트업 업계가 난리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을 싸들고 찾아왔다는데, 지금은 투자금이 싹 다 말랐다더라고.”

모카뱅크 사태로 인해 스타트업 업계에는 한파가 몰아치는 중.

이전까지만 해도 매출이 증가하기만 하면,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기업이라도 다들 돈을 밀어넣기에 바빴다.

수익모델이 있는지 없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IPO만 하면 쉽게 자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카뱅크 사태로 인해 공모가에 대한 심사가 까다로워지며 자금 회수에 비상이 걸렸다.

다들 투자를 중단하고, 기존에 투자한 기업들에 대한 긴급점검에 들어갔다.

그런데 실상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투자받은 돈으로 투자나 사업을 확장하기보다는 흥청망청 쓴 곳이 한둘이 아니다.

사무실을 강남으로 옮기고, 가족을 직원으로 고용해 거액의 연봉을 주고, 법인차를 새로 뽑고, 5성급 호텔을 통째로 빌리고, 해외시장을 개척하겠다며 여행을 다니는 등등.

일부 대표는 재빨리 핸드폰을 끄고 잠적하기까지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타트업에 대한 불신이 업계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물이 빠지면 누가 수영복을 입지 않았는지 드러나는 법이지.

난 동호 선배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이거 받아요.”

“이게 뭐야?”

“스타트업 목록이요. 한 스무 곳 뽑아놨어요. 여기는 괜찮은 곳들이니 투자하겠다고 슬쩍 접근해 봐요.”

“응? 컨티뉴 캐피탈 때문에 스타트업 업계의 자금줄이 말랐는데, 우리가 나서서 투자하자고?”

난 웃으며 말했다.

“원래 남들 투자 안 하고 발을 뺄 때가 투자하기 가장 좋은 시점이에요. 지금이라면 두 팔 들고 환영하지 않겠어요?”

투자 조건 역시 좋아질 테고.

물론 옥석을 가리는 게 쉽지 않지만, 뭐가 옥이고 뭐가 돌인지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

동호 선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야! 돈은 이렇게 버는 거구나.”

* * *

난 아래로 내려가서 강선우를 만났다.

여전히 백수 같은 모습으로 개발에 매진 중이다.

“넌 요즘 집에 왜 안 들어와?”

“집에 가봐야 뭐해?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하는 게 낫지.”

“…….”

얘 이러다가 과로로 죽는 거 아니야?

“그래도 친구 왔는데, 커피나 한 잔 줘.”

“니가 타 마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손수 믹스커피를 타주었다.

손님 대접에는 역시 맥심이지.

참고로 맥심은 유성그룹 회장실에도 비치되어 있다. 비서에게 물어보니, 찾는 손님들이 꽤 있다고 한다.

“이번에 루트비 스튜디오 초토화시켰던데.”

“아! 그건 내가 한 거 아니야.”

그저 약간의 불똥이 튀었을 뿐이다.

“뭐, 어차피 망할 곳이긴 했지.”

“로드 오브 타워 해봤어?”

선우는 한마디로 말했다.

“뽑기좆망겜이야.”

“역시.”

“그런데 그 뽑기좆망겜이 출시 후 한 달간 매출 1천억을 찍었지.”

상장 당시에는 그 매출을 기준으로 공모가를 책정했다.

공모가 기준 루트비 스튜디오의 시총은 3조 원. 그런데 현재는 공모가 대비 70퍼센트가 날아가며 1조 원 아래로 내려왔다.

선우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패키지 게임이라면 최소 150만 카피를 팔아야 해. 그런데 그 매출을 한 달 만에 뽑은 거지. 개발비는 50억도 안 되는데 말이야.”

이게 바로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랜덤박스로 떡칠한 모바일게임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개발비는 저렴한 반면, 성공하면 리턴이 크니까.

문제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는 중이다.

뽑기좆망겜이 뜰 확률 자체가 뽑기좆망겜인 셈이랄까? 뜬다 해도 지금처럼 바로 추락하기도 하고.

뭐, 어차피 게임사 입장에서는 뽑을 만큼 뽑아먹었으니 상관없겠지만.

난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그보다 스테피아는 서비스 종료했네.”

“뭐, 그럴 줄 알았어.”

애초에 한국은 서비스 국가가 아닌 만큼 슬쩍 지나가는 뉴스로만 나왔다.

하지만 이는 게임 업계에서는 꽤 큰 뉴스였다.

스테피아는 구블의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

마치 에이튜브에서 동영상을 스트리밍하듯, 게임을 스트리밍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사실 구블이 시장에 진출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게임 체인저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

“돈도 엄청 쏟아붓지 않았나?”

“엄청 쏟아부었지. 퍼스트파티 게임 출시한다고 스튜디오도 인수하고, 게임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니까.”

그러나 결과는 폭망.

서비스 시작 2년도 안 돼 문을 닫았다.

“그럼 산하에 있던 스튜디오들은?”

“전부 해체됐지.”

게임 산업에서 고배를 마신 것은 구블뿐만이 아니다.

게임은 모든 문화산업을 통틀어 가장 큰 규모. 그리고 성장세 또한 가장 가파르다.

이 거대한 시장을 IT 공룡들이 놓칠 리 없는 만큼, 구블뿐 아니라 엔플과 AMZ도 일제히 뛰어들었다.

“엔플과 AMZ 역시 상태가 안 좋기는 마찬가지야. 알겠지만 돈만 쓴다고 좋은 게임이 나오는 건 아니니까.”

TV, 스마트폰, 자동차는 일반적으로 비싼 제품이 좋은 제품이다.

그러나 문화산업은 그렇지가 않다.

수억 달러 들여서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10만 달러에도 못 미치는 제작비로 만든 인디 영화가 훨씬 재밌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마찬가지로 게임 역시 돈을 쏟아붓는다고 반드시 좋은 게임이 나오는 건 아니다.

“그래도 NS는 잘하고 있잖아.”

“걔들은 레벨이 다르지. NS가 이 바닥에 들어온 지가 20년이 넘어. 그동안 삽질도 무지하게 했고.”

중고 게임 CD 거래를 기술적으로 차단하겠다고 해서 욕 처먹질 않나, 콘솔 설계를 잘못하는 바람에 냉납 현상이 생겨서 수천만 대를 리콜하질 않나.

그래도 이렇게 무수히 많은 삽질을 하면서 NS는 노하우를 쌓았고, 현재는 안정적으로 게임업계에 정착했다.

선우는 나를 보며 물었다.

“지금 게임 업계에서 위챈트, 소뉴, NS, 린텐도 다음으로 치는 곳이 어딘 줄 알아?”

“어딘데?”

“컨티뉴 캐피탈.”

그 이유는 컨티뉴 캐피탈 산하에 레전드게임즈와 블록게임즈가 있기 때문.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SW게임즈만 대박을 치면 되겠네.”

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말 하지 마. 안 그래도 부담돼 죽을 것 같아.”

SW게임즈는 여러 블록밸리 게임을 선보였다.

출시한 게임마다 줄 세우기에 들어가며, 오리지널 게임이라 할 수 있는 판타지아 테일즈에도 엄청난 기대가 쏟아졌다.

1회차 때는 그럭저럭 실력 있는 개발자였던 강선우는 이제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개발자가 됐다.

본인은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천재 개발자로 여기는 분위기다.

그야말로 ‘천재로 돌아왔다’랄까?

“개발은 잘돼 가?”

“다 뜯어고치고 있긴 한데,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로키를 활용해 트레일러 제작하니 편하던데.”

“로키 최고지.”

실사만이 아니라, 게임 영상도 얼마든지 모델링해서 뽑아낼 수 있다.

“판타지아 테일즈 개발 끝나고 나면 어떻게 할 거야?”

“다른 게임 만들어야지. 지금 만들고 싶은 게임이 한둘이 아니야. 시간과 인력이 없을 뿐이지.”

회귀가 영향을 끼친 게 사실이라면, 내가 미래에 뜰 기업들을 알고 있는 것처럼 얘는 미래에 뜰 게임들을 알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본인이 그 게임을 개발할 만한 능력도 지니고 있다.

“게임 스튜디오를 인수하는 건 어때?”

“응?”

만들고 싶은 게임은 많은데, 몸은 하나뿐.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외주다. 내가 못하면 남에게 시키면 된다.

“스테피아 망하면서 스튜디오들 다 해체됐다며? 그중 괜찮은 곳을 인수해 자회사로 두는 거지.”

“돈은 어디서 나서?”

“빌려줄게.”

마침 모카뱅크 덕분에 잔고가 두둑해졌다.

“친구가 사업한다는데, 몇조 원 빌려주는 게 대수야? 부담 갖지 말고 받아.”

“아, 아니. 부담되는데.”

“괜찮아. 게임 만들어서 벌어서 갚으면 되지. 자신 없어?”

“만약 게임 만들었는데 못 갚으면?”

“그럼 더 많은 게임을 만들면 되지.”

“……응?”

난 선우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친근하게 말했다.

“자자, 갖고 싶은 게임사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 뭐 사줄까?”

“흠, 진짜?”

“물론이지.”

그러자 선우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아이스스톰 사줘.”

“어…….”

그건 너무 비싸지 않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