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화. 개혁 (9)
[에이튜브, 채널 250여 개 일시 삭제!]
[에이튜브의 가이드라인 발표! 어길 시 채널 삭제할 것!]
[구블이 가짜뉴스 정리에 나선 배경은?]
[자칫 표현의 자유를 위협할 수도 있으니 신중해야……]
현시연TV는 그동안 많은 위기(?)를 겪어왔다.
출석요구에 불응하는 바람에 경찰서에 끌려가 강제 조사를 받은 적도 있고, 소송에 걸려 법정에 선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도 여러 건의 소송이 걸려있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위기는 처음이었다.
1년에 무려 30억 원씩 도네챗이 들어오는 채널이다.
조회수에 따른 광고 수익, 방송 도중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광고 수익, 그리고 계좌로 직접 들어오는 후원금까지 포함하면 매년 5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 채널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일단 급한 대로 에이튜브가 아닌 자체 홈페이지에 영상을 게재했지만, 시청자는 이전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현시연TV는 버튜버들과 자웅을 겨루던 에이튜브 최대 정치 채널이었다.
이런 채널이 사라지자 이때를 틈타 수많은 정치 에이튜브들은 구독자 유치에 열을 올렸다.
[충격! 김판호, 노용국 끝났다!]
“현시연TV는 죽었어. 이제 더는 없어. 하지만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살아가! 방송을 시작한다면, 삭제를 각오하리! 경고를 먹더라도 삭제만 당하지 않는다면 나의 승리다!”
[현시연TV 삭제 대참사!]
“……그러나 저희 햄토리 뉴스가 여러분 곁에 아직 있습니다. 좋아요, 구독, 댓글, 알림 설정해주세요. 가장 빠르게 뉴스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번에 새로 멤버십을 오픈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경악! 구블의 언론 탄압!]
“……정권과의 싸움은 저희 홍상덕 뉴스가 책임지겠습니다. 저희는 김판호 회장님과 노용국 기자님의 의지를 이어받아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네챗과 아래 계좌로 후원 보내주세요.”
자신들 돈줄…… 아니, 구독자들이 다른 채널로 넘어가 도네챗을 쏘는 모습을 보니, 복장이 뒤집힐 것 같았다.
김판호는 입에 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저 돈이 다 우리 돈인데!”
차라리 고소나 소송을 당했다면 얼마든지 대응할 자신이 있다. 그러나 채널 삭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노용국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왜 채널이 삭제된 거지?’
물론 삭제당할 만한 짓을 했기 때문에 삭제됐다.
뭐가 잘못인지 걸리는 게 셀 수도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그런 짓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됐다.
대체 이유가 뭘까?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수십 건의 고소와 소송에도 채널은 멀쩡했다. 그런데 컨티뉴 캐피탈을 건드리자마자 채널이 날아갔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호, 혹시 한미루가 손을 쓴 게 아닐까요?”
노용국의 물음에 김판호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대체 그놈이 어떻게 우리 채널을 삭제했다는 건데?”
“그건…….”
어떻게 했는지는 당연히 모른다.
하지만 왠지 그럴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취재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인데, 한미루는 재계에서 이미 유명한 존재였다.
그러나 다들 그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했다. 마치 모두가 그를 두려워하거나 경외하는 분위기였다.
‘설마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린 건가?’
* * *
동호 선배는 창밖을 내다보더니 말했다.
“이제 조용하네.”
“그러게요.”
건물로 쳐들어간다 어쩐다 하던 놈들이 이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현시연TV가 컨티뉴 캐피탈 앞에서 취재와 시위를 벌인 것은 진정한 언론(?)으로서 진실을 밝히기 위함…… 같은 건 쥐뿔도 아니고, 단지 돈이 되기 때문이다.
과격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도네챗과 계좌 후원이 쏟아져 들어오니, 더더욱 열을 올렸다.
하지만 방송을 못 하면 돈도 안 들어온다. 그러면 자연히 취재와 시위를 할 이유도 없어지는 것이다.
“진작 구블이 일을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역시 채널 삭제가 직빵이다.
이번에 구블코리아가 콘텐츠 정리에 나서며, 현시연TV는 물론이고, 그동안 문제가 됐던 다른 채널들 역시 줄줄이 삭제됐다.
구독자 150만 명의 사이버 렉카 채널, 구독자 80만 명의 혐오 채널 등등.
그러나 삭제가 된 것은 어디까지나 선을 넘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비슷한 다른 채널은 여전히 활동 중이다.
가짜뉴스, 국뽕, 혐오, 선동 콘텐츠들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기는 힘들겠지.
그래도 가장 심했던 채널이 삭제됐기 때문인지 다들 몸을 사리는 분위기였다.
사실 이런 채널들이 돈을 벌든 말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이들이 돈을 버는 동안, 그 피해를 사회가 뒤집어쓴다는 것.
이번 사회보험 개혁에 대해서도 벌써 온갖 가짜뉴스가 퍼지는 중이다.
정권이 국민연금을 빼돌리기 위한 수작을 부리는 거다, 의료계와 결탁했다, 여기저기서 뒷돈을 받아먹었다, 개헌이 임기를 단축하는 게 아니라 독재로 가려는 수작이다 등등.
누가 이런 말을 믿겠나 싶지만…… 이는 여론 형성에 꽤 큰 영향을 끼친다.
세상에는 에이튜브에서 나온 말만이 진실이라 믿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이러한 가짜뉴스를 정리하면, 남궁석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회사 이메일 주소로 메일이 하나 왔다.
[현시연TV의 노용국 기자입니다.
술 한 잔 마셨습니다. 후원이 잘 안 들어와도 좋습니다. 하지만 현시연TV 하나만 기억해주세요. 진심을 다해 전합니다. 저희가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습니다. 밤낮으로 고민했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의 진심이 느껴지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미친놈인가?
대체 내 이메일은 어떻게 알아낸 거야?
난 답장 대신 조용히 삭제 버튼을 눌렀다.
* * *
김판호와 노용국은 폐쇄된 채널을 살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에이튜브 측은 정책에 따라 폐쇄 조치를 한 것이니, 이의가 있으면 구블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소송을 하라고 말했다.
한국이라면 모를까, 미국에서 소송을 할 수는 없는 노릇.
해봐야 이길 것 같지도 않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컨티뉴 캐피탈 앞에서 시위하던 둘은 구블코리아로 몰려가 머리띠를 동여매고 시위를 벌였다.
다행히 아직 남아있는 지지자들이 시위에 함께 참여했다.
구블코리아 본사 앞에 ‘현시연TV’ 깃발이 휘날렸다.
두 사람은 목청껏 부르짖었다.
“에이튜브는 즉각 언론 탄압을 멈춰라!”
“우리 채널 살려내라, 이놈들아!”
* * *
난 오랜만에 성윤아와 단둘이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와! 저 여기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여기 어떻게 알았어요?”
“동호 선배에게 추천받았어요.”
원래 부대찌개랑 제육볶음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민아름과 사귀더니 사람이 변했다.
우리는 파스타와 샐러드를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가장 큰 주제는 역시나 남궁석이었다.
“남궁석 대통령은 정말 대단하네요. 이번 일을 보니 왜 미루 씨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 전 좋아한다고 한 적 없는데요.”
“그럼 안 좋아해요?”
“음.”
이 질문을 받으니 좋아하는 게 맞는 것 같긴 하다.
적어도 내가 만난 한국 정치인 중에서는 가장 훌륭한 사람이니까.
“이번 개혁과 개헌은 다들 유심히 지켜보고 있어요.”
“윤아 씨 어머니도요?”
“그럼요. 정년이나 임금 체계는 물론이고, 보험회사에 끼치는 영향도 엄청 크니까요.”
“하긴 그러네요.”
DA금융그룹은 금융그룹이라는 걸맞게 손해보험과 생명보험사도 있다.
사회보험 개혁이 통과되면, 보험사들도 그에 발맞춰 움직이겠지.
“오늘은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거예요?”
“내일 미국에 가거든요. 한동안 못 볼 것 같아서요.”
내 말에 성윤아는 눈을 크게 떴다.
“미국은 무슨 일로요?”
“일이야 많죠. 선우한테 게임사도 사줘야 하고.”
“벌써 여러 곳 인수하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엄청 큰 곳이에요.”
회사 이름을 들은 그녀는 깜짝 놀랐다.
“아이스스톰을 인수할 거라구요?”
“아직 비밀이니, 윤아 씨만 알고 있어요.”
“네.”
비밀이라는 말에 그녀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미루 씨는 정말 선우 씨를 좋아하네요.”
“뭐, 그렇진 않아요.”
“그럼요? 혹시 전생에 신세라도 졌어요?”
“음…….”
집세도 안 내고 좀 오래 얹혀살긴 했지.
“그만큼 능력 있는 녀석이니까요.”
1회차 때 신세 진 것도 신세 진 거지만, 선우를 보며 항상 안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야 회귀 전까지는 그리 대단한 실력이 있는 투자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선우는 1회차 때도 천재 개발자였다.
그런 놈이 그 재능을 썩혔다니!
그래서 과연 얘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정말로 세상을 뒤집어 놓을 만한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어떨지.
“그럼 친구 게임사 사주러 가는 거예요?”
“그렇긴 한데…….”
그 게임사가 좀 비싸다.
게임사를 사주기 위해서는 일단 돈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돈을 벌 좋은 방법이 하나 생각났다.
“그 전에 게임판매사를 하나 사려구요.”
“게임판매사요? 뭔데요?”
“거기가 어떤 곳이냐면…….”
* * *
게임스타트(GameStart).
미국 뉴멕시코에서 시작해 미국 전역 약 5,500여 곳의 매장을 둔 비디오게임 전문 판매회사다.
매장에서는 콘솔 게임기와 비디오 게임기, 게임 굿즈 등을 판매한다.
한때는 북미 지역 게임 최대 유통사이자,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자주 들르는 곳이었지만, 현재는 쇠락의 길을 걷는 중이다.
가장 큰 이유는 게임 유통의 형태가 변한 것.
과거에는 콘솔과 컴퓨터로 게임을 즐겼지만, 현재는 모바일 게임의 시장점유율이 절반을 넘는다.
그리고 콘솔과 컴퓨터 게임 역시 유통의 중심은 스트림, 소뉴 네트워크, NS 게임몰 등의 ESD로 넘어갔다.
인터넷에서 클릭 한 번으로 쉽게 게임을 구매할 수 있는 만큼, 굳이 시간 내서 오프라인 게임숍을 갈 이유는 없다.
때문에 게임스타트의 고객과 매출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였다.
그나마 중고 게임 거래장터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
이에 게임스타트는 새로 경영진을 영입하고, 인터넷 판매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겠다고 발표했다.
게임 유통의 주도권이 ESD로 넘어간 상황에서 인터넷 판매가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발표 이후 주가는 상승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스타트 CEO는 미켈 코헨은 한 손님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미켈 코헨입니다.”
동양인 청년은 그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한미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