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화. 악플 (4)
김범석은 은세 사건에 대해 말해주었다.
달빛라떼는 9인조 걸그룹으로 여러 차례 음악방송 1위를 한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그룹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루머가 퍼졌다.
바로 은세가 주동해 가장 어린 멤버를 왕따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물론 다른 멤버들까지도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일부 팬들은 그동안 올라온 SNS 글과 공연 도중 특정 장면을 편집해서 은세를 왕따 주범으로 몰아붙였다.
결국 달빛라떼는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룹은 해체됐다.
그리고 은세는 솔로 데뷔를 준비하던 도중 목숨을 끊었다.
“악플과 루머에 대한 공포도 있었을 테고, 자기 때문에 팀이 해체됐다는 책임감도 있었겠죠. 뭐, 그런 일로 죽겠냐 싶겠지만, 이제 겨우 스물두 살짜리 애예요. 그 나이에 그런 일을 겪었으니…….”
김범석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예전에는 연예인 자살 사건 같은 걸 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나와는 별 상관없는 사람들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유와의 친분 때문인지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난 단호하게 말했다.
“한국 엔터 업계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정리하죠.”
* * *
동호 선배의 연락을 받은 로코코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바로 회사로 달려왔다.
안경을 쓴 40대 남성은 명함을 내밀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로코코 엔터테인먼트 손지성 대표입니다.”
대표가 직접 왔구나.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하기야 갑자기 엔터 업계 최대 투자자인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장 연락을 받았으니, 중소 엔터사 대표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동호 선배는 그에게 물었다.
“최근 라벤더베리에 관한 루머를 들었는데, 알고 계시죠?”
그러자 손지성 대표는 깜짝 놀라며 두 손을 내저었다.
“아! 그, 그건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 저희가 뭐라고 팬클럽을 강제로 해체시키겠습니까? 믿어주십시오.”
“아, 아니. 사실이 아닌 건 알아요. 두개골 안에 우동사리가 들어있지 않고서야 그런 루머를 믿을 리 있겠습니까?”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그 말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손지성 대표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도 못 합니다. 애들은 숙소에서 울고 있지, 행사는 줄줄이 취소되고, 음악방송 출연도 무산되고.”
“음악방송까지요?”
“예. 일부 팬들이 몰려가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있다고 해서요.”
“으음.”
세상에는 두개골 안에 우동사리가 들어있는 사람도 있는 법이지.
“대형 기획사들은 그나마 루머에 대한 관리가 됩니다. 하지만 저희 같은 중소 기획사는 대응에 한계가 있습니다.”
인터넷상의 루머와 악플은 심각한 문제다. 때문에 대형 기획사들은 아예 전담팀을 따로 두고 있다고 한다.
그는 울먹거렸다.
“우리 애들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같이 데뷔한 다른 그룹들 뜨는 거 보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더 연습하고. 군부대 공연도 열심히 다니고. 팬미팅할 때도 최선을 다하고. 이제 좀 빛을 보나 했는데…….”
“난 그에게 물었다.
“고소할 생각은 안 해봤어요?”
“왜 안 해봤겠습니까? 변호사 만나서 상담도 해봤죠.”
“그런데 왜 안 했어요?”
“괜히 고소했다가 이미지만 더 안 좋아질 수 있으니까요. 섣부른 대응으로 루머나 반발을 더 키울 우려도 있구요.”
연예인 입장에서는 이런 루머가 알려지는 것 자체가 마이너스적인 요소다.
송자석 대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너무 어이없는 루머라서 시간이 지나면 금방 가라앉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루머가 얼마나 가겠는가?
어차피 시간이 결국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라벤더베리는 해체한 뒤겠지.
난 고개를 저었다.
“이건 가만히 있어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요?”
“일단 고소부터 해야죠.”
“그, 그럼 일이 커지지 않겠습니까?”
“예. 지금보다 일을 훨씬 키워야죠. 국내 언론과 외신에 대대적으로 나오고,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일로 만드는 겁니다.”
“……예?”
“연예인이라고 언제까지 참아야 합니까? 고소할 건 고소하고, 처벌할 건 처벌해야죠.”
본인이 잘못해서 욕먹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마녀사냥 당하는 걸 참고 있을 이유는 없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고소를 해봐야 별 소용없을 겁니다.”
“어째서요?”
“루머의 진원지가 투위터라서요.”
해외 기업이라 해도 한국에서 서비스를 하는 이상 한국법을 따라야 한다.
따라서 범죄 수사에 협조하는 게 당연하지만, 백날 자료를 요청해봐야 연락도 받지 않는 경우가 태반.
인적사항이 특정돼야 수사를 시작할 수 있는데, 자료가 넘어오려면 몇 달이 걸린다.
난 손지성 대표에게 말했다.
“그 문제는 걱정하지 말고 허위사실 유포로 싹 다 고소하세요. 뒷일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 그런데 어째서 컨티뉴 캐피탈이 이 일에 관심을 가지시는 겁니까?”
컨티뉴 캐피탈이 이런 문제에 신경 쓸 정도로 그렇게 한가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에게 부탁을 좀 받아서요.”
잠시 후, 손지성 대표는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 *
알렌 에버하트는 투위터 인수 후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한때 투위터가 파산하거나 망할 거라는 우려도 나왔지만 다행히 아직 멀쩡했다. 기업들이 떠나며 광고매출이 폭삭 주저앉긴 했지만.
폭락하던 티슬라 주가는 PIF가 대량매수에 나서며 저점 대비 두 배로 올랐다. 고점 대비해서는 여전히 30퍼센트 이상 하락한 금액이지만, 그래도 위기는 벗어나는 모습이다.
주가 회복 덕분에 그는 다시 세계 최고 부자 자리를 탈환할 수 있었다.
투위터, 티슬라, 스페이스Z 경영만으로도 숨 쉴 틈 없이 바빴지만, 그럼에도 투윗은 멈추지 않았다.
[티슬라는 PIF의 투자를 환영한다!]
[새로 만든 스페이스Z 로켓 어때? 굵고 단단해 보이지 않아?]
[투위터의 추천 알고리즘을 개선 중이야. 다소 장애가 있을 수 있어!]
[우리는 항상 가짜뉴스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앱마켓 수수료 30퍼센트에 대해 다들 어떻게 생각해? 좀 비싼 것 같지 않아?]
방금 투윗을 올린 알렌 에버하트는 일전에 만났던 컨티뉴 캐피탈 공동대표를 떠올렸다.
“한미루라…….”
알렌 에버하트는 기업가이자 혁신가였고, 세계 최고의 부자였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였다.
때문에 그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그의 명성에, 그의 재능에, 또는 그의 재산에 짓눌려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한미루는 달랐다.
자신을 상대하면서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엔플과 구블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고, 그들을 무너뜨리겠다고 선언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대놓고 비웃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말하니 왠지 다르게 들린단 말이지.’
어쩌면 정말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감한 투자,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그리고 두둑한 배짱까지.
‘마음에 들어.’
왠지 강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수많은 천재들이 그러하듯 알렌 에버하트는 독선적이고 괴팍한 성격을 지녔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은 많아도 친구라 할 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때문일까?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니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자주 연락했다.
[투위터를 한번 해보는 건 어때? 계정 만들면 내가 팔로워 해줄게.]
[텍사스에는 언제 놀러 올 거야? 여기 바비큐가 끝내줘.]
[자선파티 같은 건 관심 없어?]
[한국은 좀 어때? 거기에 공장 짓는 거 괜찮을까?]
그와 연락하고,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줄을 서있다.
기업인, 금융인, 할리우드 스타, 스포츠 스타 등등.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주지사, 상원의원, 하원의원 할 것 없이 별 시답잖은 일로 연락이 왔다. 거기에 일일이 답변하자면 하루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한미루는 그가 먼저 연락을 해도 별로 반응이 없었다. 그저 간간이 답장이 오는 정도였고, 먼저 연락이 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치 그의 존재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듯 보였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지? 왜 나에게 관심이 없는 거지?’
세상 사람들이 다 자신의 말 한마디, 투윗 한 줄에 주목하는데!
이렇게 되자 왠지 오기가 생겼다.
알렌 에버하트는 사이버트론의 사진을 찍어서 문자를 보냈다.
[사이버트론 시제품 나왔는데 갖고 싶지 않아? 한 대 보내줄까?]
문자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미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역시! 그럼 그렇지.’
알렌 에버하트는 일부러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여전히 바쁘게 살고 있지.”
[사진 보내준 거 봤어요. 멋지네요.]
“하하! 그렇지?”
그는 자랑하듯 제원을 늘어놓았다.
“사이버트론은 티슬라 기술의 결정체나 다름없어. 시속 60마일을 주파하는 데 4.5초면 충분하고, 한 번 충전에 350마일을 갈 수 있어. 지금 시제품이 나왔는데, 갖고 싶다면 내가 특별히…….”
[아니요. 그건 괜찮아요.]
그 말에 알렌 에버하트는 당황했다.
“어째서!?”
다들 갖고 싶어서 안달 나 있는데!
그냥 준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주행 인증받기 전에는 타고 다니지도 못할 텐데요.]
“인증이야 받으면 되지. 티슬라 코리아에 얘기해서 바로 인증 신청하라고 할게. 원한다면 집에 충전기까지 설치해줄게.”
[번거롭게 그럴 필요까지야. 그리고 아직 출시하지도 않은 차를 타고 다니면 사람들이 다 쳐다볼 거 아니에요?]
“오히려 좋잖아.”
[…….]
관종인 사람과 관종이 아닌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보다 부탁드릴 게 좀 있어서요.]
“뭔데? 설마 돈 빌려달라는 얘기는 아닐 테고.”
[무슨 일이냐면…….]
한미루는 상황을 정리해서 설명해주었다.
“한국의 걸그룹이 투위터에 올라온 루머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고?”
[예. 지금 한국 경찰이 수사 중이니, 투위터 쪽으로 자료 제출 요청이 갈 겁니다.]
“그래서?”
[투위터가 수사에 협조해줬으면 한다는 거죠.]
“흐음.”
딱히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문제가 될 만한 부탁도 아니다.
국가 기관의 수사에 협조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동안 내심 서운했던 알렌 에버하트는 괜히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이유는?”
[요즘 투위터가 가짜뉴스의 온상이라고 말이 많던데. 이럴 때 허위사실 유포 수사에 대해 적극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지 않겠어요?]
“흐음.”
[뭐, 싫으면 어쩔 수 없구요.]
“아, 아니, 싫다는 건 아니고.”
[아! 그리고 오코너 버거가 텍사스에 매장을 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우선 티슬라 근처에 푸드트럭부터 열려고 하는데…….]
그 말에 알렌 에버하트는 흔쾌히 대답했다.
“좋아. 협조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