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478화 (478/529)

478화. 이노센트 (1)

현재 아이스스톰의 상태는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심각했다.

매튜 스트리블링 CEO는 창립부터 자금까지 아이스스톰을 이끌어온 수장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실력으로 보나 인성으로 보나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수차례 성추문에 대한 보고를 받았지만 이를 묵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해자들은 그와 오랜 기간 함께 일한 동료였기 때문이다.

그는 가해자들을 감싸주었고, 그들이 법적인 문제를 피하고 거액의 보상을 챙겨 퇴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마 이렇게라도 덮는 게 회사를 위한 길이고, 모두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최악의 성추문 사태가 터지자 그는 책임을 지고 CEO직에서 물러났고, 관련자들은 줄줄이 퇴사했다.

잘못한 사람을 내쫓는 거니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수십 년 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들이 회사에서 쫓겨나는 걸 본 개발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좀 달랐다.

게임 업계에서 동료들끼리의 유대감이란 남다르다.

가해자들이 쫒겨나듯 회사를 떠나자, 일부는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나 스튜디오를 차렸다.

마침 지금은 투자를 받기에 어느 때보다 좋은 시기였다.

쫓겨난 사람이나 떠난 사람이나, 한 명 한 명이 총괄 디렉터, PD, 팀장이다 보니, 아이스스톰의 여러 프로젝트는 방향을 잃고 표류했다.

그래서 데이브 굿실 CEO가 회사 매각에 나선 거고.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매각할 일은 없었겠지.

어쨌거나 아이스스톰에는 새 CEO가 필요하다.

사실 1회차 때 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됐다.

왜냐하면 그때는 맥스비전 스톰이 통째로 NS 게임사업부에 인수되었으니까. CEO 역시 NS 측 인사를 새롭게 앉히며 빠르게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NS가 아닌 SW게임즈가 아이스스톰을 인수했다. 그리고 SW게임즈는 NS 게임사업부만큼 인력풀이 없다.

선우가 아무리 천재 개발자라고 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

그나마 투자야 지시만 내리면 밑에서 알아서 실행에 옮기지만, 선우는 본인이 직접 회사를 운영하고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

가뜩이나 SW게임즈 확장하기도 바쁜데, 아이스스톰 문제에까지 매달릴 여유는 없겠지.

물론 세상에는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에, 세계 최대 민간 우주기업에, 거대 SNS 기업까지 운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그 인간이 특이한 거니 논외로 치자.

결론은 선우의 지시에 따라 아이스스톰을 잘 운영할 만한 새로운 CEO를 찾아야 한다는 것.

CEO를 찾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내부에서 찾아 승진을 시키는 것, 둘째는 외부에서 데려오는 것.

현재 있는 CEO도 그만두고 싶어 하는 판이니 내부에서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지금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

내부의 인물은 이미 회사의 구성원들과 각종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만큼 개혁의 칼날을 휘두르기 힘들다.

결국 외부에서 데려오는 게 답이다.

그리고 여기에 매트 쿠퍼가 가장 적임자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매트 쿠퍼는 어떤 사람일까?

선우는 그에 대해 딱 한마디로 정의했다.

“RPG의 신이지.”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게임이 있다.

당연히 그만큼 게임 개발자 역시 무수히 많다. 그중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스타 개발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극소수.

특히 ‘무슨무슨 게임의 아버지’ ‘무슨무슨 장르의 신’ 같은 칭호는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가 게임을 만들 때 가장 중시한 것은 내러티브.

똑같이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는 스토리라도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게임의 재미는 천차만별로 갈린다.

그는 항상 ‘그 게임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면 그건 이미 실패한 게임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해나가야 할 동기를 부여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가장 잘하는 사람이 바로 그였고.

그는 게임의 내러티브를 만드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또 하나의 장점은 넘치는 생산성.

지치지도 않는지 90년대부터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수많은 명작들을 남겼다.

그가 직접 만들거나 관여한 작품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겟아웃 시리즈’, ‘리터널 시리즈’, ‘데드 스피드 시리즈’ 등등.

어떻게 보면 게임을 만들기 위해 태어났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스스톰과 비슷한 시기에 터진 미투로 인해 그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는 제작을 맡고 있던 게임에서 전부 하차했고, 그가 만든 콘텐츠는 삭제되거나 축소됐다. 또한 대형 퍼블리셔는 기존에 서비스하던 게임에서 그의 이름을 지웠다.

그렇게 매트 쿠퍼는 게임업계에서 완전히 쫒겨났다.

“아이스스톰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알지?”

“성추문 때문이지.”

“그런데 성추문으로 난리 난 회사 CEO로, 미투로 쫓겨난 사람을 데려오자고?”

“무고일 가능성도 있지 않겠어?”

내가 금융업계 일은 잘 알아도 게임업계 일은 잘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이걸 알고 있는 이유는 선우에게 들었기 때문.

그러니까 난 1회차 때 선우에게 들은 얘기를 지금 다시 선우에게 해주고 있는 것.

내 말에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좀 억울한 측면이 있긴 하지. 부하 직원도 아니고. 그냥 알고 지내던 여성이었으니까. 심지어 성폭행을 공론화한 사람도 당사자가 아닌, 둘을 소개해준 친구고.”

“그렇지.”

게임업계에 성차별이 만연하다는 것과 여성 개발자들이 각종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아이스스톰에서 터진 성추행, 성폭행, 성차별 역시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일부 개발자들이 게임쇼나 게임 컨퍼런스 뒷풀이에서 마치 락스타 행세를 하며 여성팬들에게 찝쩍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고.

아이스스톰 사태 이후, 게임 업계에서도 각종 폭로가 터져나왔다.

이는 마땅히 지지하고 응원해줘야 하는 일이지만…… 그중 억울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

역사와 전통이 있는 회사인 만큼, 아무나 CEO로 데려오면 내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모두가 인정할 만한 실력 있는 사람을 데려와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이미 다른 게임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매트 쿠퍼만 한 사람이 없다.

“미투 때문에 업계에서 퇴출됐다는 얘기는, 반대로 말하면 그 문제만 해결되면 다시 업계로 복귀할 수 있다는 얘기지.”

만약 성폭행 문제가 터지지만 않았어도 모든 게임사가 그를 데려가기 위해 혈안이 됐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 딱 기회다.

“주식뿐 아니라 사람도 저점에서 잡아야 해. 잘나갈 때 잘해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하지만 힘들 때 잘해준 사람은 평생 가는 법이지.”

내가 안심하고 한국에 올 수 있는 것은 데이비드가 있기 때문. 만약 데이비드 록허트가 없었으면, 이렇게 여유로운 생활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선우에게도 나처럼 일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

“흐음, 일리가 있는 얘기야.”

고개를 끄덕이던 선우는 나를 보며 물었다.

“확실히 무고 맞아?”

“그럼. 확실해.”

“어떻게 알아?”

“철저한 정보 수집과 분석의 결과랄까?”

다행히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컨티뉴 캐피탈쯤 되면 정보가 여기저기서 굴러들어오니까.

“그런데 그걸 왜 지금 말해줘?”

“그건…….”

나도 방금 생각났기 때문이지.

“매트 쿠퍼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

“나야 모르지.”

“그럼 어떡해?”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이 한 명 있지.”

“누구?”

“지난번에 만나봤잖아.”

내 말에 선우는 바로 눈치챘다.

“아!”

* * *

게임 웹진 게임스파크의 편집장 짐 슈나이더.

탈고를 끝마친 그는 자신이 작성한 기사를 몇 차례 훑어보며 이를 올릴지 말지 고민에 빠졌다.

[성폭행 혐의로 업계에서 쫓겨난 ‘RPG의 신’. 결백을 주장하다!]

……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짐 슈나이더는 몇 달에 걸려 이 사건을 취재했고, 피해자의 증언과 당사자의 주장을 비교해보았다.

그 결과 내린 결론은 매트 쿠퍼가 억울하다는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기사를 올리고 난 뒤의 반응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최대한 사견을 배제한 채 공정하게 취재해 기사를 썼지만, 대중들이 그렇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최근 문화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바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다.

이는 비디오 게임 업계 역시 마찬가지.

외국에서는 이를 ‘PC의 바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 미국에서 느끼는 PC의 영향력은 ‘PC 토네이도’나 다름없다.

초창기 PC는 특정 인종, 성별, 종교에 대해 선입견과 차별을 줄이자는 방향이었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여러 인종을 등장시키고, 남녀 성비를 맞추고, 주요 등장인물에게 동성애자라는 설정을 추가했다.

여성 캐릭터가 예쁠 경우 성 상품화 논쟁이 벌어질 수도 있기에 일부러 외모를 너프시켰다.

심지어는 PC를 넣겠답시고 기존 시리즈의 설정과 캐릭터의 아이덴티티마저 붕괴시키는 일도 흔했다.

이에 대해 게이머들은 분노하고 반발했지만, 평론가들은 높은 점수를 매겼다.

이제 PC는 하나의 ‘문화적 사조’였다.

이 흐름을 잘 따르면 개념인, 지식인, 깨인 사람이 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즉시 적폐, 인종차별자, 성차별자, 혐오론자로 낙인찍힌다.

사실 짐 슈나이더는 미투 운동에 우호적인 입장이었고, 이를 지지하는 기사를 몇 차례 썼다.

잘못은 처벌받아야 마땅하고, 그로 인해 게임업계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억울한 희생양이다.

미투가 터지면 진위여부와는 관계없이 일단 당사자는 범죄자로 낙인 찍혔다.

이미 매트 쿠퍼는 게임업계에서 ‘기록말살형’에 처해졌고, 아직 판결도 나오지 않은 사건임에도 뉴욕타임즈까지 그의 성폭행을 기정사실화해서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개 게임 웹진에서 그를 옹호하는 기사를 올린다면?

‘내가 그 후폭풍을 감탄할 수 있을까?’

언론인로서의 자존심과 여론의 비판 사이에서 고민하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스마트폰 액정에 뜬 이름을 본 짐 슈나이더는 깜짝 놀랐다.

강선우.

다름 아닌 SW게임즈의 CEO다.

그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강선우입니다. 잘 지내셨죠?]

“그렇습니다.”

[책 집필은 잘되시나요?]

“이제 마무리 작업 중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강선우는 본론을 꺼냈다.

[혹시 매트 쿠퍼 씨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예?”

뜬금없는 질문에 짐 슈나이더는 당황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요.]

“어째서요?”

[아이스스톰 CEO 자리를 제안하려고 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짐 슈나이더는 당황했다.

“그가 미투로 업계에서 퇴출됐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런데 왜……?”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테니까요.]

“…….”

짐 슈나이더는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말한다는 건 그의 결백을 믿고 있다는 건가?’

잠시 후, 그는 입을 열었다.

“제가 한번 연락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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