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510화 (510/529)

510화. K-바가지 (3)

누구나 좋은 아이디어는 있다.

다만 이를 구체화한 다음 실행하는 게 어려울 뿐이지.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세부 내용을 짜보았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나 신청하는 사람이나, 가입 기간이 길고 커뮤니티 활동을 많이 한 사람들 위주로 뽑죠.”

애니버스에서 오랜 기간 활동을 한 사람이라면 팬클럽 내에서 서로 아는 사람도 많을 테니,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집을 제외하면, 동성끼리만 받도록 하구요.”

“숙소를 제공하는 자원봉사자는 미리 주소를 등록하게 하고, 앱에서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건 어떨까요?”

시스템 구축과 신고센터 마련 등 당장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우리에게는 스노우 크래시가 있으니까.

시간이 촉박하긴 해도 이미 블랙우드 인터내셔널을 위해 해당 시스템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만큼,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에 이 방법이 성공을 거두면 향후 다른 도시에서 행사를 기획하고 개최할 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동호 선배가 말했다.

“그런데 바가지요금이 숙박비만의 문제는 아니잖아. 요즘 노점상 가격이 장난 아닌 모양인데.”

박정웅 사장은 동의했다.

“부산시가 이번 페스티벌 기간 동안 몇몇 장소에서 노점을 허가해줄 방침입니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대한민국 전역에서는 사흘에 한 번꼴로 온갖 지역 축제가 열린다.

그리고 이 축제에서 항상 이슈가 되는 것은 노점상들의 바가지요금.

일반 가게야 축제야 끝나도 장사를 해야 하는 만큼, 괜히 바가지요금을 씌웠다가 소문이라도 나면 오히려 마이너스다.

하지만 노점은 축제가 끝나면 영업도 끝나니, 부담 없이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울 수 있다.

서울 물가가 비싸다지만, 지역 축제에 한번 가보면 서울 물가는 애들 장난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묵 한 그릇에 1만 원은 기본이고, 조각난 파전이 2만 원, 돼지고기 몇 점이 5만 원 등등.

이 가격이면 알렌 에버하트도 비싸다고 화성으로 도망갈 것이다.

바가지요금에 한번 당한 사람은 다시는 그곳으로 가지 않고, 그렇게 점점 아무도 안 찾는 축제가 되어간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페스티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 부분은 지자체에 협조를 요청하죠. 노점상들에게 미리 판매 상품과 가격, 정량을 제출하게 하고 조건에 맞지 않는 곳은 아예 허가를 내주지 말아 달라고.”

“알겠습니다.”

지유가 말했다.

“앱에서 바가지요금 신고제를 운영하는 건 어떨까요? 도시별로 집계해서 바가지가 심한 곳은 향후 페스티벌 개최지에서 제외한다고 하면, 효과가 좀 있을 것 같은데.”

동호 선배는 반색했다.

“아하! 주위의 감시와 견제를 통해 바가지 상인들이 발을 못 붙이게 만들자는 거로군.”

“네.”

바가지요금으로 인한 이익은 판매한 상인이 가져가지만, 손해는 주위 상인들이 나눠서 받는다.

대목에 한탕 해먹으려는 바가지 장사꾼이라면 모를까.

지역 상인도 그렇고, 지역 주민도 그렇고, 자기 동네가 관광객들에게 바가지 씌우는 곳이라는 오명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부적인 실행 방법까지 논의하고 난 뒤에야 회의가 끝났다.

어느새 해가 졌다.

난 지유에게 말했다.

“오늘 큰 도움이 됐네. 고마워.”

“아니에요, 선배님. 도움이 됐다니 제가 더 감사하죠.”

“뭐 먹고 싶어? 다 사줄게.”

“아니에요. 저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

여기서 더 뺄 살이 있나?

“그래? 그럼 살 빠지게 소고기나 먹을까?”

“……네?”

동호 선배는 옆에서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어트에는 역시 소고기지.”

결국 저녁은 소고기로 정해졌다.

* * *

[(WST) 부산 K-팝 페스티벌 앞두고 숙박비 바가지요금 기승!]

(전략)

……참가 팀만 53팀으로 부산 전역에서 합동 콘서트, 팬미팅, 행사 등이 열릴 예정이다.

그런데 부산의 숙박비가 폭등하며 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대규모 행사나 축제의 경우 숙소 가격이 오르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10배씩 오르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실제로 애니버스의 팬클럽 커뮤니티에서는 ‘일방적으로 예약을 취소당했다’, ‘추가금을 요구당했다’, ‘1박에 15만 원이던 숙소 가격이 하루아침에 150만 원으로 올랐다’ 등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부 숙소들이 기존 예약자들의 예약을 무더기로 취소하며, 피해는 ‘부산 K-팝 페스티벌’의 참가자만이 아닌 일반 여행객들에게도 번졌다.

페스티벌 관계자는 ‘지금 숙박비를 보면 이번에만 장사하고 말 것인가 의심이 들 정도다. 전세계인들에게 관광도시 부산의 이미지가 나빠질까 봐 걱정된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부산시 측은 ‘요금 안정을 위해 합동지도점검, 부당요금 신고센터 운영, 관련 단체와의 간담회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요금 인상을 막을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는 못했다.

일부 K-팝 팬들은 숙박비만이 아닌, 음식과 서비스의 바가지요금도 걱정이라 말했다.

한국의 행사나 축제에서 바가지요금을 겪었다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략)

이번 K-팝 페스티벌은 K-팝의 위상과 부산이라는 도시를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바가지요금이 기승을 부린다면, K-팝과 K-드라마의 흥행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좋은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가 매우 크다.

* * *

레이첼 로무.

뉴욕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그녀는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주한미군에서 복무한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서 3년을 지냈다.

때문에 한국 문화에 익숙했고, 평소에도 K-팝을 즐겨 들었다.

아버지를 도와주고 자신의 장학금을 지원해 준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한국이 더욱 좋아졌고, 친구들에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K-팝과 재밌게 본 한국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었다.

평소 별 관심 없던 친구들마저 그녀로 인해 K-팝 팬이 됐을 정도다.

레이첼은 부산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K-팝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소식에 세 명의 친구와 함께 부산에 놀러 갈 계획을 세웠다.

아직 티켓 오픈 전임에도 비행기와 숙소 예약부터 끝마쳤다.

그런데 이게 웬걸?

숙소 예약이 갑자기 취소됐다.

호텔 측에서는 오버부킹으로 인해 취소가 불가피하다고 했지만, 현재 해당 호텔은 예약 사이트에서 버젓이 판매 중이었다.

그녀가 예약한 가격보다 열 배 비싼 가격에 말이다.

레이첼은 직접 숙소로 연락해 항의도 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애니버스에는 그녀와 비슷한 일을 당한 팬들이 수두룩했다.

-와아! 호텔에서 메일 와서 방 없다고 일방적으로 취소하더니, 그새 500달러 붙여서 올려놨네 ㅋㅋㅋ

-부산은 지금이 관광 비수기라고 들었는데 아닌가?

-한국이 원래 이런 곳이었어?

-내가 본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이런 일 없었는데.

-가려다가 더러워서 안 간다.

-이번에만 장사하고 다음부터는 장사 안 할 생각인가?

-원래 페스티벌 갔다가 며칠 더 관광하려고 했는데, 바로 돌아와야겠네요 ㅜㅜ

-그냥 페스티벌 취소하고 온라인 공연으로 돌리면 좋겠다.

레이첼은 친구들을 만나 상의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친구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숙소를 예약하려고 해도 너무 비싸.”

“가뜩이나 생활도 빠듯한데, 더 이상의 지출은 무리야.”

“아쉽지만, 이번에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

부산행을 취소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갑자기 애니버스에서 공지가 떴다.

[부산 K-팝 페스티벌 관련 숙박 공유 자원봉사 안내]

페스티벌 참가를 위해 놀러 온 다른 팬들을 위해 부산 지역에서 숙소를 제공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비싼 숙박비 문제를 해결하고, 애니버스에 모인 팬들이 서로 소통과 교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취지는 더할 나위 없이 과연 좋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귀찮은 일을 하려 할까?

그런데 자원봉사자에 대한 혜택이 알려지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뭐!? 원하는 공연을 선예매할 수 있게 해준다고?

-두 장까지 선예매 가능!

-진짜야? 뮤키즈 콘서트는 1분 컷인데.

-미쳤네ㅎㄷㄷ 이 정도면 50만 원 받는 것보다 낫지 않나?

-바로 집 사진 찍어서 신청함!

-참여하자고 바로 엄빠 설득함. 엄빠도 바가지 상인들 때문에 부산 이미지 안 좋아진다고 분노하고 계셔서 바로 허락해주심.

-이야! 애니버스 진짜 일 잘하네.

-그래그래. 이렇게 해야지.

-K-팝 팬들끼리 숙박 공유라니! 이거 대체 누구 아이디어냐? 지리는데.

-지유가 팬들을 위해 아이디어를 냈다는 얘기가 있음.

-에이~ 설마~

-진짜입니다. 애니버스 측에서 공식적으로 숙박 공유 자원봉사는 지유의 아이디어라고 밝혔어요.

-오! 지유 제법이네~

-아! 생각해보니 지유 한국대구나.

-헉! 그러게. 학교 얘기는 거의 안 해서 까먹고 있었다.

-예쁘고, 노래 잘 부르고, 연기 잘하는데, 머리까지 똑똑하다니.

-이런 애한테 악플을 다는 인간들은 대체 뭘까?

-딱히 관심 없었는데 악플러들 선처 안 해주고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인터뷰 보고 팬 됐음!

실제로 애니버스 유저들은 너도나도 숙박 공유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에는 바가지요금에 대한 반감 역시 한몫했다.

그러자 줄곧 폭등하던 숙박료가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비싼 가격에 예약했던 사람들마저 줄줄이 취소했다.

이에 배짱장사하듯 가격을 올리던 바가지 상인들은 당황했다.

“아니! 이런 식으로 하면 우리 같은 서민들은 뭐 먹고 살라고!”

“한철 벌어 겨우 먹고사는데!”

“안 된다, 이놈들아!”

“숙박 공유는 불법 아닙니까?”

“이러다가 범죄라도 생기면 누가 책임진답니까?”

“당장 신고합시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시 당국에 숙박 공유를 중단시켜 달라는 민원을 넣었다.

이에 대해 부산시는 공식적으로 답변했다.

[……도심에서 내국인에게 돈을 받고 숙박을 제공하는 행위는 불법입니다. 하지만 돈을 받지 않는 자원봉사는 불법이 아닌 만큼 지자체가 나서서 단속과 제재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이를 본 바가지 상인들은 분노했다.

“자원봉사는 무슨 자원봉사? 원하는 공연을 우선 예매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명백한 대가성 아니냐?”

“당장 못하게 막아야 한다!”

일부는 시청 앞으로 우르르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애니버스는 당장 숙박 공유를 중단하라!”

“숙박 서비스 종사자들의 생계를 보장하라!”

“소상공인 생존권 보장하라!”

안타깝게도 여론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아, 개꿀이네. 보고 있으니 속이 다 시원함!

-이번 기회에 텅텅 비어봐야 정신 차리지. ㅎㅎ

-제발 등허리에서 내려놔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셔서 시원하게 내려드렸습니다!

-이번 숙박 공유 조치로 인해 소상공인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또한 범죄 우려가 매우 큽니다.

-네. 다음 바가지 상인.

-관광객들 생존권이나 좀 보장해 줘라~

-니들이 받는 가격이 범죄임!

-숙박비 비싸서 길에서 자다가 범죄가 일어나면 그건 누가 책임질 건데? ㅋㅋ

-아니, 언제는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게 당연하다면서요?

-그건 가격 오를 때만 적용됨 ㅎㅎ

-아, 가격 떨어지는 건 안 된다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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