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5화
다시 태어난 장운(3)
“으으, 호준.”
“이게 무슨 짓인가?”
아직 숨이 붙어 있던 두 표사가 바둥거리며 말했지만 호준은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싸늘한 얼굴이었다.
“미안하게 되었네. 내 사정이 좀 급해.”
미안하다는 말과 달리 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는 대력도 호준.
실상은 그러했다.
이급 표사 대력도 호준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재화를 빼돌리고 있었다.
물론 거의 티가 나지 않는 수준이었고 그는 때를 노리며 한탕 벌인 다음, 황금표국을 떠나 몰래 잠적할 계획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이 밀어내기 표행이었다.
책임 표두도 없고 표사도 적으며 동행 인원도 간단하기에 금자를 빼돌리기 이만큼 쉬운 표행도 없던 것이다.
“이상하게 절름발이 병신 놈이 따라나선다기에 뭔가 찜찜하다 했거늘.”
호준이 장운의 합류에 있어 고지식한 태도를 보였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는 데 있어 혹시라도 변수가 될까 봐 경계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장운에게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 말도 안 돼!”
대력도 호준과 함께 1여 년 동안 표행을 해왔던 쟁자수들은 크게 놀라고 말았다.
쏴아아아!
어찌나 당황했던지 그들이 짊어지고 있던 짐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고 아니나 다를까?
장운의 예측은 정확했다.
그 짐 사이에는 철재, 싸구려 금속과 더불어 교묘하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금자와 금괴가 존재했던 것이다.
“장운, 어떻게 알았지?”
호준은 다른 사람들 따위에 시선조차 주지 않고 오로지 장운만을 노려보았다.
장운을 호명하는 데 있어 존중이나 어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그 행동은 당연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차피 죄다 도륙을 내어 죽인 다음 떠날 계획이었다.
그러니 셋째 공자가 아니라 그 할아비가 와도 존칭을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소리. 소리가 명확하게 들렸다.”
장운은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과거 많은 황금을 다룬 적이 있었고, 황금만이 내는 소리는 매우 개성있고 독특하였다.
“그럴 리가. 소리를 대비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같이 싸매었는데…… 황금 소리만 포착했다고? 거짓말.”
호준은 특유의 거대한 근육을 꿈틀대며 고개를 저었다.
장운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이류 중에서 상급으로 꼽히는 나조차 그 소리를 포착할 수 없다.’
하물며 호신술도 제대로 배우지 않았을 것 같은 절름발이가 그것을 포착했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 어쨌든 상관없어. 네놈들은 이 자리에서 다 죽게 될 것이다.”
대력도 호준은 오랫동안 황금표국에 몸을 담고 있었던 만큼 체계에 대해 확실히 알았다.
휘익!
그는 거대한 태도(太刀)를 휘둘러 이미 쓰러진 표사의 팔을 잘라내었다.
“끄아아아악!”
“아악! 악!”
그것은 긴급 상황을 뜻하는 신호탄을 공중 위에 쏠까 봐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쟁자수를 다루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부터 손끝 하나라도 움직이는 놈이 있다면 목을 베겠다.”
호준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사실 그의 진정한 정체는 사파에 속하는 무림인이었으며 고향은 본디 하남성 인근이었다.
구파일방의 수좌인 소림의 영향력이 확실한 하남성에서 소림과 친분이 있는 절의 주지를 시비 끝에 살해한 다음 신분을 숨겨 여기까지 들어왔던 것이다.
표행도 지겹고 대충 한 몫 챙겨서 섬서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갈 계획을 꿈꿨다.
‘그런데 저런 병신에게 덜미를 잡힐 줄이야.’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깔끔하게 모두 죽인 다음, 그대로 멀리 떨어진 기루에 들러 진탕 즐길 테니까.
저벅저벅.
바로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조금만 움직여도 죽이겠다고 협박하여 쟁자수들은 물론, 노련한 상수인 노관마저 얼어붙은 그때, 장운이 천연덕스럽게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자, 움직였다. 어쩔 건데?”
한술 더 떠서 표사인 호준을 향해 도발까지 시전하는 장운이었다.
“허허허, 이거 참. 재밌군, 재밌어.”
그 당돌한 모습에 호준은 태도를 휘두르는 것조차 잊은 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설마 저렇게 대범하리라곤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지를 갈기갈기 베어주마!”
웃음은 곧 분노로 변질이 되었다.
호준은 자신의 태도를 휘두르며 특유의 무겁고도 웅장한 도법을 발휘했다.
‘내 실력이 아직 일류에 미치지 못하지만 어설프게 호흡법을 익힌 절름발이 정도는 순식간에 죽일 수 있다!’
대력도 호준은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다른 이류 수준인 표사들도 아무리 방심했다고 하나 제대로 반격조차 하지 못한 채 쓰러지지 않았는가?
그만큼 호준의 실력은 표사치고도 제법 쓸 만한 것이었다.
부우우웅!
어중이떠중이라면 제대로 들지 못하는 거대한 태도는 호준의 내공을 머금은 채 무겁고도 거대한 움직임으로 나아갔다.
그 공격이 어찌나 강맹하던지 스치기만 해도 그대로 피부가 찢어져 피가 흐를 것만 같았다.
“안 돼!”
“도련님!”
노관을 비롯하여 모두가 다 장운의 참혹한 운명을 걱정하고 있을 때!
바로 그때 반전은 시작되었다.
“무겁고 진중하다. 하지만 느려.”
장운은 호준의 생각처럼 미련하고도 어리석은 절름발이가 아니었다.
파앗!
약간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있지만 더할 나위 없이 빠른 몸놀림으로 속도가 부족한 호준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것도 매우 손쉽게.
“아, 아니!”
호준은 자신의 공격이 빗나가 허공을 가르자 크게 당황하며 태도를 다시 회수하려 했지만, 공격이 무겁고 진중하다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회수하기 어렵고 느리다는 뜻이 된다.
휘익!
언제 준비했는지 장운은 투박하고 날이 뭉툭한 장검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쓰러진 표사 한 사람의 무기였다.
그래도 목검보단 나았다.
날이 날카롭지 않아도 진검이었고 천하제일검 검신에게 진검이 쥐어졌다는 것은 하나를 의미했다.
서걱!
맨 먼저 장운은 호준의 손가락 하나를 베어냈다.
그의 방어가 단단하기도 했지만 태도를 움켜쥔 손은 무방비였기 때문이다.
“크윽!”
순식간에 호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손가락 하나가 잘려 나갔음에도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은 그의 인내심 때문이었다.
하나 장운이 노린 것은 그의 무력화였다.
거대한 힘과 진중한 도법은 손가락이 온전할 때 제대로 된 힘이 실린다.
손가락 하나를 잃자 위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고 그것은 곧…….
“내 절뚝이는 다리보다 못한 신세라는 거지.”
장운은 더 이상 실력을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쓰러진 표사와 쟁자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동안 필사적으로 익힌 천허심법은 물론이오, 혼원무극검법의 첫 번째 초식을 사용하였다.
-일식(一式) : 전진검(前進劍)!
그 첫 번째 초식은 횡으로 베어내는 것이자 기초 중의 기초에 속하는 초식이었다.
무엇이든지 기초가 중요하다고 설파하였던 장운.
그의 논리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일식 전진검은 매우 단순한 검로와 투로를 가졌지만 그만큼 막강한 힘을 지니기도 했다.
콰지지직!
결국 장운의 검은 태도를 움켜쥔 거대한 호준의 손을 베어냈으며 동시에,
주르르륵!
가슴의 앞섬도 베어내는 괴력을 선보였다.
참으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분명 장운이 들고 있는 검은 뭉툭하기 이를 데 없는 투박한 검인데 이처럼 날카로운 예기를 선보이다니.
“이, 이게 무슨…….”
더 놀라운 것은 호준의 심정이었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어!’
아무리 자신이 방심했다고 하나 이류에서도 손꼽히는 자신이 보지 못했다.
그것은 곧 하나를 의미했다.
장운의 실력은 일류에 육박하는 날카로움을 지녔다는 것!
물론 아직 내공만 따졌을 때 일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였어도 장운에게는 검신으로서의 경험과 무공이 존재했다.
아직 온전치 못하여도 사람 하나는 순식간에 쓰러뜨릴 수 있는 날카로운 송곳니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대력도 호준. 네놈은 감히 본 황금표국에 적법한 절차에 의해 고용된 표사임에도 불구하고 표국의 재산을 외부로 빼돌리려고 하였다. 본 표국 표법에 의해 네놈을…….”
장운은 검의 옆면으로 호준의 안면을 그대로 후려치며 말을 이어나갔다.
“제압하고 호송하도록 하겠다!”
콰직!
그것으로 전투는 종결되었다.
두 사람의 대치부터 전투의 종말까지 불과 호흡 몇 번을 하는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와아아아아!
장운이 호준을 쓰러뜨리자마자 장내는 일순 광란의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도저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 것인가?
“도련님!”
“장운 쟁자수!”
쟁자수들은 이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대력도 호준이 누구던가?
이급 표사들 중에서는 제대로 대응할 상대가 없어 이류 고수들 사이에서 폭군이라고 불리는 자였다.
그런데 그런 자를 어렵지 않게 제압할 줄이야.
“아직 기뻐하기는 이릅니다. 손이 잘린 표사들을 지혈하고 표물을 수습해야 합니다.”
장운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동안 상수 노관의 교육을 주경야독하며 제대로 공부한 보람이 있었다.
황금표국 표법을 줄줄 외우는 것은 물론이고 어떠한 경우에도 표행과 표물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과연 금령검객 장천호 표국주님의 핏줄이시다!’
호부(虎父) 밑에 견자(犬子)가 없다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아 첫째 아들은 뛰어난 무인이었고, 둘째 아들은 상재(商材)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오로지 셋째 아들인 장운만이 다리를 절며 비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 되었다.
노관은 마침내 방황을 끝내고 높은 곳으로 비상하는 장운의 찬란한 모습에 감탄, 또 감탄하고 말았다.
* * *
“뭐, 뭐라고? 대력도 호준이…… 그런 짓을 해?”
황금표국의 둘째 공자이자 대력도 호준 소속인 이급 표사부를 관리하는 장건은 맨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두 귀를 의심하였다.
당연한 것이 자신 휘하의 표사가 사건을 일으켰으니 이는 곧 자신에 대한 평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대력도를 쓰러뜨린 것이…… 장운, 그 절름발이라고?”
바로 장운의 활약이었다.
장건은 동생의 활약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솔직히 어머니가 다르고 배다른 형제인 만큼 그에게 애정 따윈 없었다.
오히려 못난 행동을 일삼아 온 탓에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로 치부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대력도 호준을 쓰러뜨리는 데 이어 황금표국의 귀한 자산이 외부로 송출되는 것을 저지하다니.
‘그것도 처음으로 나서는 표행에서 쟁자수의 신분으로!’
장건은 물론이오, 첫째 공자도 처음으로 표행을 나섰던 순간이 있었다.
하나 무공에 두각을 드러내는 첫째조차도 첫 표행에서 이런 대활약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럴 리 없다. 말도 안 돼!”
자신 휘하의 사람이 큰 실책을 범하고 전혀 생각지 않았던 배다른 동생의 활약에 장건은 화를 내며 양 주먹을 내려쳤다.
콰앙!
심지어 전신이 떨려오기까지 했다.
‘도대체…… 도대체 장운, 그 머저리 같은 놈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