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7화
따라오는 보상(2)
사람들은 겉보다 속이 중요하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나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보이는 것은 오로지 외형밖에 없고 그에 따라 첫인상을 판별하는 것도 외관이다.
사치를 부리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황금표국 셋째 공자라는 위치에 걸맞은 차림이 필요했다.
“그…… 원래 그랬던 것처럼 다리를 가리는 하의로 사올깝쇼?”
갑호는 약간 주저하며 물었다.
이런 질문은 장운과 가장 가까운 자신조차 조심해야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장운은 언제나 절고 있는 다리에 시선이 모이는 것을 꺼려 하여 펑퍼짐한 하의를 선호했던 것이다.
“날이 더워지고 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
주인의 변화에 갑호는 기뻐하며 인근 포목점에서 가장 깔끔하면서도 은은히 귀티가 나는 금의(錦衣)와 가죽신을 사 왔고, 그사이 장운은 욕탕으로 가 몸을 씻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장운은 스스로를 꾸미는 걸 포기했다.’
장운은 뜨끈한 욕탕에 전신을 뉘이며 생각했다.
과거의 장운은 이런저런 이유로 삶을 놓아버린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자신을 꾸밀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장운은 달랐다.
“기껏 이렇게 잘생긴 미남으로 태어났는데 아깝잖아.”
장운은 다 씻고 나와 동경(銅鏡)을 바라보았다.
동경에는 미끈하게 잘 빠졌으며 훤칠하게 잘생긴 미소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는 그가 전생에서 유일하게 가지지 못한 것 중 하나였다.
검신 장인랑의 외모는 다소 투박하고 뼈대가 굵고 키가 조금 작은 편에 속하였다.
그러나 황금표국 셋째 공자인 장운은 달랐다.
얼굴은 과거 섬서성에서 손꼽히는 미녀였던 모친을 쏙 빼다 닮았고 키나 체형은 뛰어난 고수인 아버지 장천호를 닮았다.
다리를 저는 것만 빼면 첫째나 둘째보다도 훨씬 더 훤칠한 모습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장운의 모습이었다.
“갑호야. 사 온 옷을 좀 주거라.”
“예? 예, 옙!”
갑호는 오랜만에 씻고 나와 이리저리 치장한 장운의 모습을 보며 생경한지 크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의 놀라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윽!
장운은 전신을 가리는 펑퍼짐하고 남루한 옷을 벗고는 갑호가 사 온 금의와 가죽신을 신었는데, 이럴 수가!
역시 남자도 꾸미기 나름이었다.
옷차림을 정갈하게 하고 산속에 사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삐죽대던 머리를 동백기름으로 정리하니, 너무 놀라 충격적일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 아닌가?
“도련님! 너무 보기 좋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좀 잘 씻고 잘 꾸미고 다니라고 말입니다.”
갑호는 어찌나 감동했던지 또 한 번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였다.
갑호는 이 황금표국에서 유일하게 장운을 아끼고 가족으로서 사랑하는 인물이었다.
나이도 큰형과 막내 정도 차이가 나서 자신의 친동생처럼 아끼던 차였는데 이렇게 보기 좋은 모습으로 있으니 눈물이 절로 나왔다.
“허허, 울긴 왜 우느냐. 목욕재계 두 번만 더 하면 아주 통곡을 하겠네.”
갑호의 그런 모습에 장운은 조금 쑥스러웠던지 머리를 긁적였다.
“아, 갑호야.”
“네, 도련님.”
“저어…….”
“말씀하십시오.”
“나는 혹시 그…… 약혼자나 정인 같은 것은 없었느냐?”
장운이 조심스레 물었다.
일반 집안과는 달리 황금표국 같이 제법 뼈대가 있는 가문은 예로부터 미리 정해진 약혼녀가 있거나 정략혼인이 횡행했던 것이다.
그래서 장운은 내심 질문을 던졌다.
전생은 오로지 검법 외길이었기 때문에 여인이라곤 손목조차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그였다.
“없습니다.”
“뭐?”
그런데 돌아오는 말은 단호하고 충격적이었다.
“아예 없었습니다. 도련님께서 준수하셔서 꽤 인기가 많았지만, 신체의 아픔에 일찍 좌절하셔서 죄다 거절하셨지요.”
갑호의 말에 장운은 예전의 그를 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건 굴러온 복을 걷어찬 것이지 않은가?
“흠흠,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혹시라도 내가 외상을 하거나 빚을 진 곳이 있다면 이 남은 금자로 갚도록 하라.”
장운은 갑호에게 남은 금자를 준 다음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 오후부터는 추영객 영사춘 집사에게 무공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 * *
“왜 하필 나를 골랐지?”
인적이 드문 한적한 수련장에서 홀로 서 있는 노인, 추영객 영사춘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에게 황금표국 다른 무인에게 없는 장기인 신법이나 경공이 있지만, 대부분의 무인들은 검법이나 도법에 매료되곤 했다.
그것은 첫째나 둘째 공자도 마찬가지라 그는 열 명의 절정 고수들 중 유일하게 도련님들 무공 수업에 나가지 않은 장본인이었다.
‘설마…… 내 정체에 대해 알아챘나?’
영사춘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의 진정한 정체는 신법이 뛰어난 추영객이 아니라 무영신투(無影神偸) 장유백이었다.
별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무려 오십 년 동안 최고의 도둑으로 활약해 온 전설의 대도(大盜)이자 천하제일의 경공을 구가하는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그런 잘 나가는 무영신투조차 일생일대의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으니, 사흑천주 광혈흑마 태상천이 아끼는 보물을 훔치다 그 자리에서 들키고 말았다.
그리하여 무영신투는 사흑천의 추격을 받게 되었고 그들의 집요한 추적을 피하고자 정체를 숨긴 채 황금표국의 집사로 들어온 것이다.
“그럴 리 없다. 그 광기 어린 태상천조차 내 행방을 모르고 있다.”
장유백은 고개를 저었다.
동시에 그는 지금 살짝 가슴이 뛰고 있었다.
본래 뛰어난 재목을 찾아 자신의 여러 재주를 전수해야만 했다.
그런데 오랜 기간 사흑천의 추적으로 인해 제대로 된 제자를 들이지도 못하였다.
‘내 대(代)에서 끊길 수는 없다.’
사실 이것은 그의 오랜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제법 쓸 만한 인재를 찾아 무영신투의 재주를 전수하고 싶은데 마땅한 재주를 찾지 못하였다.
실은 황금표국까지 들어온 이유도, 무림에 무공으로 그리 유명하지 않으면서도 제법 뛰어난 인재들이 모인다길래 몸을 의탁한 것인데 하나같이 눈에 차지 않았다.
“흐음, 그런데 셋째 공자는 다리를 전다고 하지 않았나?”
무공을 전수할 후인을 찾고 있는데 무영신투 입장에서 장운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모름지기 신법과 경공은 하반신이 가장 중요한 법인데 다리에 약점이 있으니 대성하기 힘들다 여긴 것이다.
그렇게 대충 시간이나 때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때였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어느새 장운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틀림없다! 무영신투가 확실해.’
장운은 보자마자 영사춘이 무영신투임을 알아보았다.
대담하게도 무영신투는 변장을 하거나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이는 표국주 장천호의 무공이 몹시 뛰어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랜 기간 변장술로 무마하기 힘들어서였다.
오히려 어설프게 변장을 하였다면 장천호나 태상천과 같은 이에게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맨 얼굴로 승부를 하였고, 또한 무영신투의 맨 얼굴을 아는 이는 세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공교롭게도 검신 장인랑은 그의 맨 얼굴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영사춘을 보자마자 무영신투임을 확신하였다.
“아닐세. 내가 빨리 온 건데. 그나저나…… 본 표국에는 뛰어난 다른 고수 분들도 많은데 왜 나를 선택했는지 물어봐도 되나?”
영사춘은 다소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는 자신의 신출귀몰한 실력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황금표국 내부 일에만 몰두를 하였다.
물론 흑사천의 시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무공을 배우겠다는 일반 표두들도 거의 없었는데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그것이 궁금하였다.
그의 질문에 장운은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자신의 왼쪽 다리를 내밀었다.
“넷째 집사님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제 다리는 태어날 때부터 온전치 못하였지요.”
놀랍게도 장운은 돌려 말하는 것이 아닌 정공법을 택했다.
“……!!”
시작부터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장운의 과감함에 무영신투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 떠지고 말았다.
“누가 봐도 경공을 익히거나 보법을 익히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는 추영객 영사춘 집사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나를?”
“그렇습니다. 검을 쓰거나 칼을 다루는 재주는 제가 노력하면 터득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불편한 다리를 쓸 만하게 움직이는 재주는 아무리 생각해도 본 표국에서 영 집사님보다 나은 스승이 안 계십니다.”
장운의 말은 무영신투에게 있어 큰 울림을 주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백아, 너는 우리 무영문(無影門)의 절기를 익히기에 부족함이 많다. 발바닥은 짧고 허리는 길며 무엇보다 짝다리구나.
전대 무영신투이자 자신의 사부에게 들었던 그 말.
무영신투 역시 다리에 불구까지는 아니더라도 경공으로 대성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부를 뛰어넘었다.’
장운의 말을 듣고 있자니 무영신투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영 집사님에게 큰 골칫거리나 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날 자신이 있습니다.”
장운은 다시 한번 그에게 자신을 피력하였다.
이것은 진심이었다.
그가 무영신투임을 알고서 접근한 것도 있지만 설령 무영신투가 아니라고 해도 경공의 대가인 이상 그를 선택했으리라.
사실 경공이나 이동하는 분야는 검신 장인랑의 약점이기도 했다.
검신은 오로지 검도(劍道) 외길이었고 경공 같은 것에 뜻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장운의 신체는 다르다.’
설령 환골탈태를 한다고 해도 경공은 필수였다.
전생의 자유로운 무인이 아니라 현생은 황금표국의 주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표국만큼 경공이 중요한 무가가 또 있을까?
“좋습니다. 경공의 기초를 확실히 알려드리도록 하지요.”
결국 장운의 절실한 태도는 완고하던 무영신투를 넘어뜨리고 말았다.
“제 수업은 조금 혹독할 겁니다. 잘 따라오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합니다.”
으름장을 놓던 무영신투.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기절초풍하고 만다.
* * *
‘지금쯤이면 한창 고전하고 있겠지?’
무영신투 장유백, 현재 황금표국에서는 추영객 영사춘으로 신분을 위장한 그는 무영문 기초의 보법인 무영보법(無影步法)에 대해 알려주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무영문의 기본 보법이라고 해도 난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외워야 하는 이동 구간도 많고 발바닥의 위치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걸음걸이를 지속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첫날이니만큼 가볍게 이동 방식과 구결만 알려주고 그것만 대충 외워도 성공이겠거니 싶었다.
“어느 정도 이해가 가십니까?”
구결을 알려주고 잠시 일을 보기 위해 반나절 정도 외출한 무영신투.
그는 수련장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장운을 확인하고는 아무래도 발을 저는 이상 힘들다 싶은 그때였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장운은 평범한 소년이 아니었다.
그의 전생이 위대한 천하제일검 검신 장인랑임을 기억해야 했다.
그의 탁월한 무재(武才)는 검을 움직이는 법과 몸을 이동하는 법을 가리지 않았다.
-무영보법(無影步法)!
파바밧!
다리가 저는 까닭에 약간은 불완전하기는 해도 하루에 익힌 것치고 더할 나위 없이 멋들어진 무영보법이 수련장 바닥에 수놓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