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8화
금령풍운검법(金靈風雲劍法)(2)
장운이 마침내 아버지이자 국주인 장천호와 교감을 이루는 순간,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형님! 이대로 가만히 계실 겁니까?”
장룡이 거주하는 금천관(金天館)에 보기 드문 인물이 모습을 보였다.
그는 둘째 장건이었다.
본래 장건은 아버지와 더불어 맏형을 상대하는 것을 매우 꺼려 하여 그를 은근히 피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었다.
“으으음.”
좀처럼 입을 잘 여는 법이 없어 과묵공자(寡默公子)라고도 불리는 장룡은 깊은 수심에 빠졌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아버님께서 장운이에게 쏟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장건이 반쯤 미쳐서 금천관까지 찾아온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맨 처음 장운이에게 패배하여 눈을 떴을 때 장건은 좌절했을지언정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흥! 금령풍운검법이 어떤 검법인데? 절름발이 따위가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야.
그도 어깨너머 형과 아버지로부터 그 검법을 견식하고 체험해 보기까지 했기에 잘 알고 있던 것이다.
난해할뿐더러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다변(多變)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바삐 움직여야 한다.
따라서 다리가 불편한 장운에게는 상성이 최악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이한 소문이 흘러들어 왔다.
-장운 도련님께서 무려 일주일 만에 금령풍운검법의 기본 기초를 완전히 숙달하셨다!
이는 한 달 만에 주파한 장룡보다도 훨씬 더 빠른 기록이었다.
맨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아버지 장천호의 태도가 이상했다.
표행과 표국 관리도 뒷전으로 하고 오후만 되면 장운과 함께 연무장에서 도통 나올 생각이 없던 것이다.
“심지어 표국 내부에서는 어떤 소문이 도는지 아십니까? 우리 황금표국의 정통 후계자는 장룡 형님이나 제가 아니라 셋째인 장운이 놈이 될 거라고들 떠들고 있습니다!”
장건은 여전히 장룡이 침묵과 헛기침으로 일관하자 보다 더 센 소리들을 곁들었다.
흠칫!
그 소리에 처음으로 묵묵하던 장룡의 두 눈빛이 흔들리고 말았다.
하나 그것도 잠시일 뿐.
“건아, 너무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해라.”
장룡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으나 한번 입을 열면 반드시 필요한 말만 했다.
장건도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화를 억누르며 입을 다문 채 형의 이야기를 경청하였다.
“너도 알다시피 장운이의 다리는 온전치 못하다. 지금 일류나 초일류의 경지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절정의 경지가 필요한 순간에서는 그를 옭아매는 장애물이자 자충수(自充手)가 될 것이다.”
“……!!”
장룡의 말에 이번에는 장건이 놀라며 두 눈을 부릅떴다.
일리가 있다고 느낀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룡은 현재 그 절정의 경지를 주파한 무골이 아니던가?
경험자가 직접 말을 하였으니 이보다 더 신뢰가 갈 수 없었다.
“또 하나 더. 장운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오늘따라 입을 많이 여는 장룡.
그러나 그의 말은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외가(外家)의 존재다.”
그 말에 장건은 약간의 미소를 머금을 정도였다.
실제로 장룡의 외가는 섬서성에서 전통이 깊은 문파, 풍검문(風劍門)으로 장천호가 풍검문을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본래의 금령검법에 섞을 무공으로 풍검문의 절기인 풍운십이검(風雲十二劍)을 원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외가가 든든한 것으로 따지자면 첫째인 장룡이 최고였다.
풍검문은 아직도 그 성세를 유지하며 섬서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문파니 말이다.
씨익!
한참을 전전긍긍하던 장건.
그는 외가 이야기가 나오자 그제야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과연…… 그렇군요.”
장룡에 이어 장건의 외가도 매우 든든했다.
그는 전 중원에 전표를 발행하는 만광전장(滿光錢帳)을 외가로 두었던 것이다.
만광전장에서 발행하는 전표는 섬서뿐만 아니라 전 중원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장천호가 황금표국의 몸집을 불리고 무수히 많은 표사들과 쟁자수들을 고용하기 위한 종잣돈이기도 했다.
‘반면 장운의 외가는 섬서의 전통 있는 오래된 상단에 불과하다.’
장천호는 첫째 부인에게서 무공을, 둘째 부인에게서 자금을 얻었고 셋째 부인은 섬서성의 인맥을 위해 혼인하였다.
그 상단은 섬서성의 관리부터 부유한 상인과 상단까지 연줄이 깊었고 제법 부유한 편이었지만 장운의 친모가 일찍 죽어 버리고 장운이 겉돌고 있어 사이가 소원해졌다.
“그래도 장운의 외가도 제법 쓸 만하지 않습니까?”
장건은 안심하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그 상단은 예전만 못해도 전통의 상단이었기에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했던 것이다.
“모르는 소리. 그곳은 요즘 들어 가세가 기울어 후계자조차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물가에 내어놓은 자식이나 다름없는 장운이를 도울 여력이나 있겠느냐?”
큰형의 확답에 장건은 이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과연 형님이십니다!”
말수가 적다고 해도 장룡 또한 음흉한 마음이 있기에 그를 마주 보며 따라 웃었다.
“그러니 큰 걱정하지 말거라. 시간이 지나면 장운에 대한 아버님의 관심도 차차 소홀해지게 될 터이니…….”
밤이 깊어짐에 따라 좀처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두 형제의 이야기도 깊어졌다.
과연 그들의 바람대로 장천호와 장운의 관계는 소원해질까?
그 귀추가 주목되는 순간이었다.
* * *
“너는 정말…… 타고난 검객이다.”
장룡과 장건이 회의론을 점치는 사이, 장천호와 장운의 사이는 시일이 지나면 지날수록 돈독해져갔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닫고 열 하나를 내놓는 수준이니, 아비로서 스승으로서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아닙니다. 아버님 덕분에 벌써 일성의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장운은 차분히 대답하였으나 감격에 겨운 상태였다.
누군가는 찬란했던 전생에 비하면 초라한 결과물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몰라도 장운에겐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장천호와 함께한 도합 한 달의 배움 속에서 그는 많은 것을 느끼고 성장하였다.
특히나 검신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조차 뛰어난 절학인 금령풍운검법을 시작하자마자 일성이나 깨우쳤다는 것은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럼…… 잠시 성취를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
장천호는 그렇게 말한 다음, 장운과 마찬가지로 날이 뭉툭한 목검을 움켜쥐었다.
사전에 공격을 하겠다고 알려 시험의 의사를 표한 것이다.
이는 장운의 성취를 의심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아비로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파앗!
장운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장천호의 검이 황금빛으로 달아오르며 순식간에 장내를 구름과 바람을 일으켰다.
어떠한 초식을 사용하지 않아도 단순한 기초만으로도 금령풍운검법의 오묘한 조화를 불러일으키는 그는 초절정 고수 중에서도 매우 강한 편이었다.
‘과연!’
장운은 이에 감탄하면서 아비에 비하면 미약하나마 그 혼탁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검을 펼쳤다.
장천호와 마찬가지로 작지만 영롱하게 빛나는 황금빛의 검이 아비의 검을 옆으로 밀었다.
장천호는 금령풍운검 일성의 힘으로 검을 휘두른 것이고 장운 역시 일성의 힘으로 그것을 막아낸 것이다.
장천호가 힘을 조절했다고 하지만 장운의 비상한 감각을 선보이는 장면이었다.
“좋구나, 좋아!”
장운의 반응에 장천호는 이제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아쉽게도 이제 헤어질 때가 다가왔다.
“이제 너는 걸음마를 뗀 상태이다. 지금부터는 혼자 스스로 깨우치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장천호은 감동 어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장운을 알면 알수록 놀라움의 연속이자 기쁨의 연속이었다.
‘아니, 어쩌면…… 너는 스승이 필요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들었으나 자신이 좀 많이 나갔다고 믿었다.
아무래도 자기 손으로 직접 받은 핏줄이니 애정을 많이 품었다 판단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버님의 귀한 시간을 빼앗을 수 없지요.”
“아니다. 무공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내게 볼일이 있다면 이 연무장을 찾아오려무나. 본관을 지키는 무인들에게는 내 미리 이야기를 해놓을 테니까.”
장천호는 막상 셋째 아들이 혼자서 무공을 익힌다고 하니 자기도 모르게 진한 아쉬움의 감정을 느꼈다.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의 추억은 이것뿐이지 않은가?
‘후계 자리 결정은 아직이다. 벌써부터 세 아들 중 누군가에게 정을 쏟지 말자.’
장천호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으나 다른 아들들과 다르게 아픈 손가락이자 포기했던 아들의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기도 모르게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네, 아버님. 그리고…….”
장운은 조금 주저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간 너무 즐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두 사람의 짧았던 무공 수련은 끝이 났지만, 연대의 끈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마침내 혼자서 금령풍운검법을 연마하게 된 장운.
처음에는 약간의 어색함이 있을지언정 검을 쥐고 집중하니 그런 것들은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파바바밧!
목검으로 순식간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며 금령풍운검법의 여러 개성 중 하나인 황금빛과 세찬 바람을 부르는 장운의 검법!
장운이 이 검법에 만족하는 이유는 검법 자체가 뛰어나서였다.
또한 황금표국의 주인을 상징하는 무공이기에 완벽하게 익혀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더더욱 매진해야겠다.’
그렇게 다시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본연의 무공인 혼원무극검법과 더불어 금령풍운검법에 몰두하여 두 검법에 심취한 그 순간!
솨아아아!
돌연 장운의 전신에서 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
장운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였으나 그것도 잠시.
‘드디어 왔구나!’
전생의 경험상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마침내 일류의 경지를 뛰어넘어 초일류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씨익!
장운은 예기치 않은 성과에 무척이나 기뻐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일류 수준에 도달한 지 몇 달이 흐르지 않아 곧바로 초일류에 도달하고 말았다.
이는 전생과 비교해 보아도 어마어마한 속도이자 경악스러운 발전이었다.
“초일류까지 이렇게 빨리 도달할 줄이야.”
아무리 전생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나 장운의 발전 속도는 빠르고 흡족한 것이었다.
장운은 무공 입문이 느렸지만 결국 자신의 나이 또래보다 훨씬 더 강해졌으며 상승세를 제대로 탄 상태였다.
이는 모두 전생의 경험과 기억 때문에 가능한 일이리라.
‘이제 남은 것은 절정의 단계다.’
마침내 초일류의 수준에 도달하게 된 그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절정의 경지는 아무나 주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노력해도 일류는 뛰어넘었지만, 절정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들을 초일류의 고수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또한 현재 장운의 상태는 다리가 온전치 않았는데 세간의 무인들이 말하길 절정의 영역부터 신체가 불편하다면 절대로 도달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런 만큼 방심은 금물이었다.
‘혼원무극검법과 금령풍운검법.’
전생에는 오로지 혼원무극검법밖에 몰랐다.
“이번 생에는 이 두 무공 모두 다 완벽하게 익힌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검법을 익히고 있자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장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