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20화
정식 비무(2)
“후훗, 이거 재밌군.”
본래는 장운에게 반발을 하려던 적엽검 구양모.
그는 이내 그 마음을 거두고 말았다.
‘설마…… 황금표국에 과묵공자(寡默公子) 말고 이런 인재가 있을 줄이야.’
구양모의 눈이 옹이구멍은 아니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무공을 지닌 이들은 모두 진검을 빼어 든 장운의 모습을 보며 감탄 일색이었다.
그것은 구양모도 마찬가지였다.
자신 또래의 인재는 고작해야 과묵공자라고 불리는 장룡 정도인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소문으로는 회생 불가의 얼간이인 줄로만 알았던 장운이 이렇게 괜찮은 실력자일 줄이야.
더 놀라운 것은 황금표국의 주인인 금령검객 장천호의 말이었다.
“종남의 속가제자인 구 소협은 당황하지 말고 본래의 목적대로 진행하시게. 만약 우리 장운이가 패배한다면…….”
그는 심지어 한술 더 뜨기까지 했다.
“황금표국을 꺾었다고 주장해도 묵인하지.”
장천호의 말에 또 한 번 황금표국 내부는 기름을 끼얹은 불처럼 끓어올랐다.
그 말인즉슨 장운이 현재 황금표국을 대변한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 아닌가?
“좋습니다, 장 대협. 남아일언(男兒一言)은 중천금(重千金)이라 하였습니다. 명성이 자자하신 장 대협께서 말씀을 지키리라 믿겠습니다.”
그 말에 구양모의 투쟁심도 같이 끓어올랐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 큰 기회였던 것이다.
여태껏 황금표국에 도전한 많은 자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였다.
아니, 얻긴커녕 장룡이나 다른 고수들의 손에 무참히 깨어져 역시 황금표국은 황금표국이란 말을 증명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저 장운은 예상보다 강할지언정 절대적으로 실전 경험이 부족할 것이다.’
종남파에서 구양모에게 알려준 소문에 의하면 장운은 본래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무공을 배워온 것이 아닌 폐인이라고 들었으니까.
요즘 들어 각성하였다 해도 실전 경험을 쌓아온 자신이 노련함에서 압도하여 승리하리라 의심치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그 대신 제가 구 소협을 꺾는다면…… 종남을 꺾었다고 주장해도 되겠습니까?”
장운의 패기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우와아아아!
장운의 시원시원한 말에 장운을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어 소리를 질렀다.
사실 이 모습은 과거 천하제일검 검신 장인랑의 모습이기도 했다.
탁월한 실력에서 나오는 자신감과 더불어 호쾌한 말솜씨!
그는 이것 때문에 주목을 받았으며, 동시에 그 말솜씨 때문에 의도치 않게 정파와 사파 모든 이들의 집중과 시기를 받게 된 것이다.
“뭐, 뭐라고?”
구양모는 이것은 예측하지 못했던지 크게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그래야 균형이 맞지 않겠습니까? 설마…… 구 소협께서는 자신 없으신 건 아니겠지요?”
급기야 장운은 그를 도발하기까지 했다.
“이, 이런!”
자신의 경험이 더 노련하리라 장담하였던 적엽검 구양모.
그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의 별호와 검법처럼 얼굴이 새빨개지고 말았다.
처음 진검을 빼어 들었을 때 그 날카로움이 비범하여 약간 인정했다고 하나, 그의 관념 속에서 황금표국 셋째 아들 장운은 그저 최근에 좀 괜찮아진 절름발이에 불과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나는 다 좋소이다!”
결국 구양모는 정식 비무에 임하기도 전에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며 제의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 모습에 다시 한번 황금표국 내부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지만 장운이 구양모를 이길지는 의문이 들었다.
“형님, 장운이가 저자를 이길 수 있을까요?”
수뇌부가 있는 단상에서 다소 떨어진 장건이 장룡에게 물었다.
“흥!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저 적엽검은 나보다 한 수 정도 떨어지며 일류 고수들 중에서도 단연 최상급의 실력을 가졌다. 그러니 장운이가 일류에 도달하였어도 그를 이기기 힘들 것이다.”
장룡은 단언하며 무정히 동생의 패배를 예상했다.
사실 이것이 중론이었다.
심지어 황금표국 대부분의 고수들도 잘해봐야 무승부가 고작이리라 믿었다.
“두 사람은 준비가 되었는가?”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뒤로한 채 운명의 정식 비무 시작이 다가왔다.
이 비무의 중심에는 매우 이례적으로 장천호가 직접 나서서 비무 시작을 알리기로 하였다.
끄덕!
구양모는 오만하게도 고개를 까딱거렸고,
“넵!”
장운은 당연히 정중하게 대답을 하였다.
“비무 시작!”
장천호의 외침과 동시에 마침내 황금표국과 종남파의 명예가 걸린 정식 비무가 시작되었다.
본래는 여태 그랬던 것처럼 종남파의 사소한 도발에 불과하였으나, 어쩌다 보니 각 문파와 표국 간의 자존심 문제로 번지고 말았다.
즉,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하는 비무였다.
‘네놈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두고 보자.’
선제공격은 구양모의 몫이었다.
그는 종남파에서 속가제자들에게 알려주는 무공 중 단연 가장 수준이 높고 고강하다는 적엽칠검(赤葉七劍)의 검공을 꺼내 들었다.
과거 종남파의 조사가 종남산의 가을 단풍이 물드는 자연의 모습을 보며 큰 깨달음을 얻어 만든 무공이 바로 이 적엽칠검이었다.
본래 이 무공은 종남파의 다른 무공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지만, 초식이 단 일곱 개로 이루어진 단조로움 때문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결국 이 무공은 속가제자 중에서 선택받은 몇몇이 터득하는 절기가 되고 말았다.
-남산홍엽(南山紅葉)!
구양모는 아무래도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그는 적엽칠검 중에서도 중반부 초식을 사용하였는데 종남산이 빨갛게 익어가는 단풍의 기상을 표현한 남산홍엽 초식이었다.
파아아앗!
흡사 단풍이 물들어가는 것처럼 구양모의 검기는 굽이굽이 변화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장운의 전신을 쇄도하였다.
‘이게 정녕 속가제자의 솜씨라고?’
그 검기 공격의 비범함에 무영신투, 지금은 추영객 영사춘 넷째 집사로 위장 중인 그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한때 구파일방 모든 곳에서 자잘한 것을 훔쳐봤기에 그들의 수준을 잘 알고 있었는데 구양모의 실력은 일대제자와 동일하였다.
아니, 일대제자 중에서도 비범한 것이었다.
-무영보법(無影步法)!
하나 장운에게는 그 무영신투가 직접 상세하게 알려준 무영보법이 존재했다.
이 무영보법이 실로 무서운 이유는 겉으로 볼 때 너무나도 평범하고 흔해 보여서 티가 잘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그림자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파앗!
결국 구양모의 검기는 아슬아슬하게 장운의 머리카락 몇 올을 잘라내며 스쳐 갈 뿐이었다.
“아직이다!”
구양모는 이를 빠득빠득 갈며 곧바로 후속의 공격을 준비하였다.
어차피 단 일검으로 그를 이기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피한 것은 의외긴 하지만 이렇게 쉽게 끝내면 재미가 없지.’
감히 종남의 명예를 들먹인 것에 적잖이 화가 난 그는 재차 적엽칠검의 절초를 자랑하였다.
-적엽만검(赤葉滿劍)!
적엽칠검의 여섯 번째 초식이자 적엽칠검의 모든 초식을 통틀어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며 상대의 눈을 현혹시키는 검기가 난무하였다.
“아, 안 돼!”
“위험해!”
그 위기일발의 장면에 황금표국의 많은 이들은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겉으로 볼 때 현재 장운의 모습은 운 좋게 첫 번째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였으나 후속타를 피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큭.”
오죽하였으면 장운을 싫어하는 장건조차 시선을 돌렸다. 황금표국의 명예가 땅에 떨어질 것을 예측하고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에 비해 구양모는 기세등등하여 위력을 한층 더 키우고 있었다.
‘나와 종남파를 기만한 죄. 반드시 피를 보고 말리라.’
본래 문파의 명예를 건 정식 비무에서는 피를 보는 것은 물론, 가끔 사망하는 자도 속출했다.
그러니 구양모는 그 틈을 타서 장운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금령선풍(金靈旋風)!
전선이 이미 구양모의 적엽칠검으로 인하여 새빨갛게 물들고 있을 무렵, 그 붉은빛을 일순 죽여 버리는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금령풍운검법의 상징이자 황금표국을 상징하는 밝은 황금빛이었다.
장운은 이미 금령풍운검법을 이성까지 익힌 상태였고 공격 초식을 사용할 정도는 되었다.
파바바밧!
순간 공중에서 붉은 검기와 황금빛의 검기가 얽히고 말았다.
변화로 유명한 적엽칠검은 분전을 펼쳤으나, 금령풍운검법은 유연하면서도 그에 못지않은 유려한 변화를 일으키며 점점 황금빛으로 붉은빛을 종식시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안 된다.’
구양모는 순식간에 위기에 몰리자 허둥지둥대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매우 역설적이게도 상대보다 노련함을 과시했던 그였으나 현재 모습은 장운이 주도하고 구양모가 이끌려가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으하아압!”
구양모는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 내공으로 승부를 보았다.
상대가 무공 입문이 느렸던 것을 상기하였고 내공으로 우위를 점하려 했다.
하지만 장운의 내공은 구양모를 압도하고 있었다.
주르륵!
서로 초식과 검기를 내뿜은 채로 밀어내려고 내공 힘겨루기를 펼친 결과, 구양모가 완전히 밀려 넘어지지 않은 것이 용했다.
‘아니, 이 무슨…….’
구양모는 현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여 고개를 들어 장운을 바라보는 찰나!
“하압!”
장운은 그를 뒤로 밀어낸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여전히 금령선풍 초식을 유지하던 그는 돌연 황금빛으로 물든 진검을 길게 내밀었다.
이는 본래 금령선풍의 초식에 없는 행동이었으나,
-이 초식은 길게 내밀면 오히려 더 위력이 강해지겠구나.
천하제일검 검신 장인랑이 판단하기에 약간의 보완을 걸친 것이다.
그 결과!
서걱, 서거걱!
듣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구양모의 앞섬이 잘려 나가고 말았다.
자신만만하던 종남의 속가제자는 순식간에 의복을 잃은 채 민망한 앞가슴을 만천하에 내놓고 있었다.
“크, 크윽!”
가슴팍이 잘려 나가지 않은 것이 용했다.
구양모는 크게 당황하며 뒤로 후퇴하려 했지만 장운은 한 번 잡은 사냥감은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번쩍!
재차 검을 휘둘러 이미 무력화가 된 구양모의 어깻죽지를 정확히 찔러 버렸다.
“으아악!”
살점을 뚫고 뼈를 건드리는 크나큰 고통에 구양모는 미처 참아내지 못하고 비명을 내뱉었다.
그러나 장운은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감히 속가제자를 보내어 본 표국을 시험하려 해?”
장운이 화난 부분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미 장운은 황금표국과 한 몸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무영진퇴각(無影進退脚)!
장운은 이미 검을 놓아버린 구양모를 곧장 걷어차 버렸다.
계속해서 공격이 허용되는 것은, 이것은 친선의 대련이나 친족끼리 비무가 아니라 양측 문파의 명예를 짊어진 정식 비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외부의 개입은 금물이었으며 비무에 임하는 장본인만이 멈출 수 있었다.
즉, 패배를 시인하면 된다.
“커컥! 커어어억!”
장운의 발차기에 구양모는 그대로 뒤로 발라당 넘어지며 하늘 위로 별을 보고 말았다.
섬서 인근에서 속가제자 중 단연 최강으로 불렸던 적엽검 구양모.
그는 심지어 방심하지도 않았는데 쓰라린 패배를 당하였다.
“더 하겠는가?”
장운은 완전히 넘어져 대(大)자로 엎어진 그의 목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더 물을 것도 없었다.
“크윽! 패, 패배를…… 인정하겠소.”
불과 일각이 지나가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