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22화
호위 표사가 되다(2)
“도, 도련님. 죄송합니다. 제가 서둘러…….”
감우량은 허둥지둥대며 당황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감우량은 저 남루한 중년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였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설마 이렇게 대놓고 황금표국 셋째 공자에게 멋대로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따라서 중간 소개 입장인 자신의 상황이 난처해졌다.
“아닙니다.”
감우량이 직접 나서서 공야월에게 의뢰 퇴짜를 놓으려는 순간!
장운이 앞으로 나와 그를 제지했다.
“하겠습니다. 하지요.”
장운은 혹시라도 공야월의 마음이 변할까 봐 서둘러 의뢰를 승낙하였다.
표행 한 번으로 엄청나게 뛰어난 검을 얻을 수 있다니.
이것은 하늘이 내린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장운이 그와의 만남에 기뻐하는 이유는 또 하나 더 있었다.
‘과거 나는 천하제일검 검신이었던 시절, 그가 만든 검을 사용하였다.’
공야월과 깊은 관계는 없었어도 서로 공통된 인맥인 천룡거사를 알았고, 그를 통해 공야월로부터 검 하나를 받았는데 이게 웬걸?
진정한 명필(名筆)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헛소리에 불과했다.
천하제일검 장인랑의 손에 공야월이 만든 검이 쥐어지는 순간!
장인랑은 기뻐하긴커녕 오히려 탄식을 내뱉었다.
-어찌하여 이런 검을 진즉 만나지 못했을까?
무려 천하제일검에게 그런 박탈감을 느끼게 만든 장인이 바로 이 만철야장 공야월이었다.
“크흐흐, 그래. 그래야지. 금령검객 장 대협의 아들이라면 그런 기질이 있어야지.”
공야월도 자신 나름대로 놀라는 중이었다.
이렇게 쉽게 승낙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혹시 제 위의 형님들에게도 찾아가셨습니까?”
장운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의 눈치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랬네. 이 섬서 땅에서 금령검객의 핏줄을 건들 인물이 누가 있단 말인가? 한 사람을 고용하여 그 이상의 효과를 낳을 수 있으니 말이야. 그래서 첫 번째는 과묵공자를 찾았으나 소문대로 과묵하더군. 나를 보지도 않고 거절했으니까. 둘째도 마찬가지지. 내가 대금을 곧바로 치를 수 없다고 하니 노발대발하더군.”
장운의 말이 옳았다.
공야월은 많은 사람들을 우르르 데리고 가는 성정이 아니었다.
실제로 공야월은 장운 위의 형들에게도 찾아갔었다.
그의 말대로 장천호의 아들들 한 명만 고용해도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 나름의 머리를 굴린 까닭이었다.
하지만 장룡과 장건은 공야월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결국 그들은 제 손으로 굴러들어 온 황금을 장운에게 던져 버린 것이다.
그토록 질투하고 시기하는 셋째 동생에게 말이다.
“의뢰 내용은 무엇입니까?”
장운이 또 한 번 묻자 공야월은 별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이 답했다.
“별것 아니네. 내 자식들이 있는 사천성으로 나를 안전하게 호송해 주면 되지. 가끔…… 날파리들이 꼬이거든.”
장운은 그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제일의 대장장이인 공야월을 알아보는 사람은 드물었으나, 가끔은 그의 정체를 알고는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협박하거나 위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오죽했으면 공야월은 자신의 대장간을 접근하기 어려운 사천성의 무더운 야산에 만들었다.
“좋습니다. 수락하지요.”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호위 표사 노릇 한 번에 천하제일 장인의 무기를 받을 수 있다면 이것은 어마어마한 이득이니까.
“두말하기 없기네. 도중에 포기하는 법은 없으니.”
공야월의 말에 장운은 오히려 웃었다.
“바라던 바입니다.”
오히려 그의 입장에서 보표행이 끊기면 안 되었다.
공야월의 무기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저는 아시다시피 장운이라고 합니다. 저는 의뢰인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냥…… 월 노야라고 부르게.”
공야월은 장운과 황금표국이 자신의 정체를 완전히 모른다고 판단하여 월 노야라 부르라고 했는데 이는 그가 나이에 비해 훨씬 더 늙어 보였기 때문이다.
월 노야는 당연히 그의 본명인 공야월을 뒤집어서 부르는 것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정체를 감추고 신분이 탄로 나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실제로도 황금표국에는 고향의 자식들을 보러 간다고 명시하였다.
“알겠습니다, 월 노야.”
그렇게 장운의 첫 호위 표사행이자 천하제일의 장인인 공야월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 * *
지금 장운과 공야월, 두 사람은 섬서성을 열심히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솔직히 말해 떠나기 전 감우량은 걱정을 많이 했다.
의뢰인이 생각보다 무례하고 거칠어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야월은,
“자네는 왜 이렇게 내 뒤에 멀찍이 떨어져 서 있나? 이거 원, 겸상도 안 하겠다는 뜻인가?”
이동하는 동안 툴툴대며 까칠한 성격을 보였는데, 그럴 때마다 장운은 부드럽고 조리 있게 대답을 하였다.
“갑작스러운 적이 나타날 때를 대비하여 제가 뒤를 점하고 있는 겁니다. 또한 사천성으로 향하는 길은 그쪽 토박이이신 월 노야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더욱이 장운의 통찰력은 전생을 통해 제대로 다져진 것이기에 공야월도 함부로 얕잡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흠칫!
지금도 공야월은 장운의 빠른 눈치에 감탄하며 말했다.
“내가 사천성 토박이인 것은 어떻게 알았지?”
목적지가 사천성이라고 하여 모두가 다 그곳 토박이는 아닌 법이다.
더욱이 공야월은 정체를 감추고 있는 까닭에 장운을 몹시도 수상쩍게 여기며 물었다.
“말투와 발음은 잘 감추셨습니다만…… 조금 전 간이 식당에서 식사하실 때 간을 아주 맵고 떫게 드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원 대륙이 아무리 넓어도 그렇게 먹는 사람들은 사천성, 그것도 이남 지역 분들밖에 없지요.”
장운의 말이 옳았다.
공야월은 그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던 것이다.
“흥! 소문보다 눈치가 빠르군. 그렇네. 내 고향은 사천성에서도 운남과 가까우며 가장 더운 지역인 목리(木里)라는 곳이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향이 아니라 만철야장의 대장간이 있는 곳이었으며, 그곳은 예전부터 대대로 화(火)의 기운이 강한 곳이었기에 불을 다루며 금속을 제련하는 공야월에게 제격이었다.
“밤이 늦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머물다 가시죠.”
황금표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이틀 내내 먼 길을 달려왔을 무렵, 장운은 멀찍이서 객잔 하나를 발견했다.
“좋지. 아차!”
공야월도 특유의 무덤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의뢰가 끝날 때까지 자네가 음식값이나 숙소값을 계산하도록 하게. 다 끝나면 내 값을 넉넉히 쳐줄 테니 걱정은 말고.”
이에 장운은 웃음이 나려는 것을 참았다.
어찌 그 말을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공야월이 값을 넉넉히 쳐주겠다는 말은, 장운이 가지고 있는 검을 갈아주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하나 만든 것을 주겠다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마침 제가 여비는 넉넉히 챙겨왔으니 월 노야께서는 마음 편히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장운은 최대한 예의 바르게 말하였다.
그의 비위를 맞춰 명검(名劍)을 얻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과거 나는 공야월이 만들어준 검으로 세상을 호령하였다.’
그 검이 때때로 검신의 목숨을 구해주기까지 했다.
그 검에 대해 막대한 값을 주지도 않았으며 얼굴을 마주 보고 얻지도 않았다.
-천룡거사가 아끼는 인물이라면 더 두고 볼 것도 없지. 무림의 안녕(安寧)을 위하여 써주도록 하십시오.
이런 글이 적힌 짤막한 서신과 함께 검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 만큼 공야월에 대한 고마움이 무척이나 컸다.
안타깝게도 전생에는 그 빚을 갚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심지어 공야월의 분부대로 무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지.’
검신 장인랑이 추구한 것은 오로지 자신의 무학뿐이었고 그는 독불장군이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공야월에게 그 빚을 갚으리라 다짐하였다.
“……흥! 부잣집 자제는 다르군.”
순수하게 고맙다고 할 법도 한데 공야월은 투박하게 말했다.
사실 이것이 바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시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장운은 그의 성정을 잘 알고 있기에 불쾌하지도 않았다.
말은 저렇게 하면서 고마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식사를 잘 끝내고 배정된 방으로 올라왔다.
“바로 이 방입니다.”
두 사람을 안내하던 객잔의 점소이가 정중히 말하였다.
점소이의 말에 방이 하나뿐임을 깨달은 공야월이 물었다.
“한방을 쓰는 건가?”
“네,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방이 하나라는 말에 공야월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특유의 까칠함을 선보였다.
“이 늙은이를 누가 노린다고. 그냥 방을 두 개 잡지 그랬나?”
바로 그때였다.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저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이 친구를 보기 전까지는.”
장운은 한 치의 동요도 없는 무덤덤한 얼굴로 순간 번개와 같이 신형을 움직였다.
파앗!
순식간에 방 안내를 해준 점소이를 금나수의 수법으로 제압해 버린 것이다.
“아, 아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갑작스러운 상황에 공야월은 크게 놀라고 점소이도 마찬가지였다.
제삼자가 볼 때도 장운이 의심병에 요란을 떤다고 보였다.
하지만 장운의 눈은 절대로 틀리지 않았다.
쨍그락!
장운이 점소이의 소매를 건드리자 그곳에서 날카로운 단검과 더불어 각종 암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새까만 독이 발린 침도 있어서 공야월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알았지?”
장운에 의해 완벽히 제압된 점소이, 아니, 살수의 눈빛이 돌변했다.
그는 일류 살수로서 살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렇게 붙잡힌 것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냥 딱 보면 알지.”
살수의 질문에 장운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를 가지고 놀거나 시비를 걸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전생에서 가장 많이 상대했던 부류가 바로 살수들이었다.’
천하제일검 검신을 노린 자들이 무수히 많았던 탓에 신물이 나도록 살수를 상대했던 것이다.
그 때문일까?
장운은 살수들이 아무리 기척을 숨기고 정체를 감추어도 삼 장 이내로 접근하면 본능적으로 살수를 감지할 수 있었다.
미묘한 살기와 더불어 살수 특유의 소리 없는 발걸음 때문이었다.
“왜 우리를 쫓아왔는가?”
장운이 물었다.
질문에는 이유가 있었다.
살수의 대상이 공야월인지 아니면 자신인지 구분해야 했다.
씨익!
장운의 질문에 살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대로 입안에 감춰놓은 독약을 깨물고 자결하였고 일언반구도 남기지 않았다.
전생의 장운이라면 그 행동을 멈추고 진실을 토하도록 압박했겠지만, 지금의 장운은 아직까지 그런 무공과 내공은 무리였다.
그저 독이 튀지 않게 의뢰인을 뒤로 물러나게 하는 것뿐.
“그르르르.”
순식간에 시체가 되어 쓰러지는 살수를 방치하고 장운은 시선을 옮겼다.
시선의 끝에는 놀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공야월이 서 있었다.
“월 노야. 혹시 저에게 감춘 것이 있습니까? 호위 표사와 의뢰인 사이에는 그 어떤 비밀도 없어야 하는 법입니다.”
이 표행에는 무언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