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24화
호위 표사가 되다(4)
‘저건 내 검이 분명하다!’
장운은 검은색 천으로 잘 감겨 있어도 초령검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년간 애병으로 사용하였는데 몰라보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한눈에 알아보다니, 과연 안목이 보통은 아니로군.”
공야월은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초연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이제 진실을 밝힐 때가 온 것이다.
“내 이름은 월 노야가 아니라 대장장이인 공야월일세.”
그의 말에 장운은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놀란 척 대답하였다.
“만철야장 공야월!”
만 가지 종류의 모든 철을 자유자재로 제련할 수 있다는 전설의 대장장이라는 말에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자네도 검의 길을 걷는 자라면 천하제일검 검신 장인랑을 알고 있겠지?”
장인랑 이야기가 나오자 장운은 정말로 놀라 버렸다.
“물론이지요. 제가……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자신의 입으로 본인을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말하자니 여간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지만,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 장인랑이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을 걸세. 이에 그를 아끼는 지인과 함께 그의 행적을 추적하였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에서 그가 사용하던 애검 초령검만을 발견할 수 있었지.”
장운은 그의 말을 들으며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무림맹과 사흑천의 손에 죽은 뒤, 공야월은 분명 천룡거사 님과 함께 나를 찾은 것이 틀림없다!’
장운에게 천허심법이라는 천하의 절기를 전해준 인물이자 사부격 인물인 천룡거사!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공야월과 절친한 관계였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고말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검신이 덜렁 이 초령검만 남겼다는 것은…….”
공야월은 급기야 침울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는 실질적으로 장인랑과 깊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직접 내어준 무기의 주인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바랐다.
특히 천하제일검의 손에 자신이 직접 만든 검이 쥐어져 있다는 것은 장인만이 느끼는 기쁨이자 자부심이기도 하여 검신에 대한 관심이 각별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파와 살수들은 검신의 초령검을 갖고자 공 대협의 뒤를 쫓는 것입니까?”
“이제 와서 낯간지럽게 대협은 무슨. 공 노야라고 부르게. 아무튼 그럴 걸세.”
공야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인했다.
혹자는 검신 장인랑의 목도 아니고 초령검에 무슨 가치가 있냐고, 초령검을 어렵사리 쟁취할 바에 차라리 그만큼 뛰어난 검을 공야월에게 제작해 달라고 하는 게 어떠냐 반문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그렇군요. 그럼 이 초령검은 실종된 검신을 상징하는 최후의 조각이나 마찬가지군요.”
장운은 이제야 모든 것을 깨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초령검은 검신 장인랑을 대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검을 취한다면 자신이 직접 장인랑을 꺾었다며 으스댈 수 있었다.
또한 강호에는 무수히 많은 장인랑의 원수와 더불어 추종자가 존재하였다.
그런 자들에게는 부르는 것이 값이리라.
그리고 또 하나 더.
-검신의 검, 초령검은 천하제일의 명검으로 무공을 모르던 장인랑을 순식간에 천하제일의 고수로 만들어주었다!
이런 허무맹랑한 헛소문까지 공공연하게 떠돌 지경이었다.
물론 무림맹과 사흑천의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았지만 호사가들은 그의 초령검을 몹시도 탐을 냈다.
‘이제야 살수와 사파의 인물들이 그를 노린 게 이해가 간다.’
공야월은 장운을 향해 미안한 감정을 담아 입을 열었다.
“정말 미안하네. 비밀은 새어 나가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처럼 많은 이들이 노릴 줄은 내 꿈에도 몰랐네.”
이것은 진심이었다.
이렇게 위험할 줄 알았다면 애초에 황금표국 셋째 공자의 손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황금표국의 주인, 금령검객 장천호를 찾았을 것이다.
그도 검객인 이상 만철야장의 검을 바랐을 테고, 무기 한 자루 만들어줄 테니 안전하게 호위해 달라고 말이다.
분명 어디에선가 정보가 새어 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일을 크게 만드는 것은 공야월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기에 조용히 가려 했건만 실패하고 말았다.
“공 노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감수한 채 끝까지 초령검을 들고 대장간으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장운은 그것이 궁금했다.
아무리 천하제일검 장인랑을 존경하고 흠모한다고 해도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소중할 수는 없는 법이다.
차라리 그것을 팔거나 누군가에게 내어주면 되는 일을 왜 이러는 걸까?
“장인의 마음을 모르는군.”
장운의 물음에 공야월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검신이 사라지고 그가 사용하던 초령검을 찾았을 때, 나는 여기저기 날이 빠지고 닳아버린 그의 검을 보면서 몹시도 슬펐지. 검신이 이리도 허무하게 사라질 줄 알았다면 내 진즉 초령검을 갈고 닦아 더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을 하고 말이야.”
그렇다.
공야월이 검신의 초령검을 들고 굳이 사천성까지 가는 이유.
그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나는 검신이 남긴 초령검을 다시 수리하여 불세출의 명검을 벼려낼 생각이네. 따라서…… 천하에 오만 잡귀들이 다 달려들어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걸세. 설령 내 목이 달아난대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네.”
이것은 천하제일의 장인이자 검신을 존경했던 일인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아직 내 작업실이 있는 사천 목리까지 거리가 많이 남았지. 나는 여기서 자네가 호위를 포기해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떠나도록 하겠네.”
이제 막 사천성 인근까지 들어왔으니 이제 와 돌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믿었다.
장운은 그런 공야월의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절하겠습니다.”
곧이어 장운은 일언지하에 그의 말을 거절하였다.
“어째서인가? 자네는 아무 득도 없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전에는 공야월에게 무기 한 자루 얻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닌 것이 전생에 자신이 사용했던 초령검이며, 자신을 기리는 모습을 보고도 그를 돕지 않는다면 대장부가 아니리라.
“저 역시…… 천하제일검 검신을 존경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공야월은 그의 말에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그 이유 때문에 목숨을 걸고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더.
“어찌 겁이 난다고 공 노야님을 내버려 두고 내뺄 수 있단 말입니까?”
공야월은 혼자서도 가겠다고 하였지만 장운이 사라진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살수나 사파 무인의 손에 걸려 사살당하거나 초령검을 빼앗길 공산이 더 컸다.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표행을 마쳐보겠습니다.”
* * *
공야월을 호위하는 장운의 표행은 계속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초령검에 대한 소문이 끽해야 흑의방이나 살수 몇 명에게만 알려졌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보다 더 상위의 적들에게 알려졌다면 장운도 무리였을 것이다.
“제게 꾀가 하나 있습니다.”
또한 장운은 전생처럼 그저 무공만 강한 무인이 아니었다.
장운은 이대로 가다간 살수나 사파 무인들과 조우한다고 판단하여 사천성에서도 험하다는 산행(山行)의 길을 택했다.
“그렇군! 살수나 사파의 적을 만날 바에…… 차라리 익숙한 녹림 산적을 만나겠다는 건가?”
공야월도 눈치가 없는 인물은 아닌지라 장운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다.
“바로 그겁니다.”
흑의방의 세력이나 잔인한 살수보다 오히려 깊은 산중의 산적이 더 안전했다.
표국과 녹림이 이미 서로 필요로 하여 공생한다는 것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촤르륵!
장운은 곧바로 공야월을 깊은 산중으로 이끈 다음, 황금표국의 일급 표사 이상만 지참할 수 있다는 정확한 지도를 펼쳐 들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사천성에서도 최남단에 위치한 바로 이 목리입니다. 그리고 현 위치는 섬서와 가까운 광원(廣元)이라는 곳이지요. 이 사이의 험한 산들만 골라 갈 예정입니다.”
장운의 말에 공야월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약간의 부정 섞인 의견을 내어놓았다.
“중간에 산이 없는 지점을 거쳐 가야 하는데?”
그의 말에 장운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 인근에는 구파일방의 명문이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아미파, 아미산이 있는 곳입니다. 흑의방 놈들이 제아무리 날뛴다고 해도 아미파의 영역에서 칼부림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장운은 실로 획기적인 계획을 세웠다.
녹림의 산채가 있는 험한 산으로 이동한 다음, 목리로 향하는 길목에서 녹림이 있는 산이 없거나 평지가 있을 시, 그 지역의 패자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사천성에는 많은 명문 정파들이 있다.’
장운은 생각했다.
이 사천성에는 구파일방에 속하는 아미파와 청성파는 물론이오, 오대세가에 속하는 사천당문도 있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제법 명성을 자랑하는 굵직한 문파가 많으니 흑의방의 영역을 벗어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리라.
“오! 오오!”
장운의 계획에 감탄한 공야월이 반색하며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이런 기지를 발휘하다니!’
처음에는 첫인상이 유약해 보여 좀 못 미더웠다.
흑의방 무인을 쓰러뜨릴 때는 믿음직스러웠으나, 장운 하나로 흑의방 전체를 이기진 못하리라 관망했다.
더욱이 이곳은 금령검객의 명성이 발하는 섬서의 땅도 아니니 낭패를 보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장운은 무공뿐만 아니라 지혜와 더불어 위기를 타파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다행히도 이 사천 땅의 녹림 산채는 우리 황금표국과 적대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통행료라고 불리는 산세를 낸 다음, 정중히 예우를 갖춘다면 그들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녹림도들은 오히려 장운을 도왔으면 도왔지, 공격하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산속에만 처박혀 있는 통에 초령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간 일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경계할 필요도 없었다.
* * *
“그럼 표행 완수까지 대운을 빌겠소, 형제여.”
장운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일부러 녹림의 산채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 결과, 흑의방은 물론이고 살수들은 감히 접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더욱이 이 녹림의 산적들은 일반인들은 감히 따라올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기상천외한 산속의 지름길에 대해 통달하였기에 장운과 공야월은 예상보다 빨리 아미파의 영역, 즉 아미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운은 끝까지 안내를 도와준 적송산채의 호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서둘러 자리를 이동하였다.
‘과연 산속과는 달리 여기서부턴 여러 사람들의 눈빛이 느껴지는군.’
본격적인 위험은 바로 지금부터였다.
산속을 떠나 마침내 아미산의 영역에 도착하자마자 장운과 공야월을 향해 날카로운 무언의 기운들이 느껴졌다.
그 기운은 어찌나 강력하고 노골적이었던지 무공을 모르는 대장장이 공야월마저 찌릿함을 느낄 정도였다.
“역시 만만치 않군. 이들이 이리도 빨리 따라올 줄이야.”
공야월은 기가 죽어 중얼거렸다.
적들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라, 사천성의 중간 지점인 아미산을 거쳐 갈 것을 예측하여 이곳에서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곳은 고요한 아미파의 성지이기에 누구 하나 나서는 법이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여러 시선이 교차하고 있을 무렵, 장운과 공야월 사이로 한 명의 무인이 등장했다.
“백룡군자(白龍君子) 장월상 대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