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29화
불문(不問) 표행을 떠나다(1)
금룡린갑은 그렇다 치더라도,
‘만철야장 공 노야와 그 제자분들께서…… 내 휘하에 가담하겠다고?’
장운은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그 어느 누구의 밑에도 들어가지 않던 고고한 만철야장과 그 장인들이 자신과 뜻을 같이하겠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장운은 혹시라도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싶어 재차 확인할 정도였다.
“물론이네.”
놀라는 장운에 비해 공야월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공 대협. 다시 한번 재고해 주십시오. 제 아들이라고 하나…… 이 선택은 심사숙고(深思熟考)하여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오죽했으면 장천호조차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라고 만류를 하였을까?
호들갑을 떠는 두 사람에 비해 공야월은 침착하기만 했다.
“기간은 짧았어도 충분히 생각하여 내린 판단입니다. 저는 금령공자 장운에게서 크나큰 미래를 보았습니다. 조금이나마 그 미래를 여는 것에 있어 손 하나를 돕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 말은 장운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과거에 이어 현생까지 도움을 주다니, 어찌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랴.
“물론 장운 소협 휘하에 가담하여 몸을 의탁하되, 우리 만철당(萬鐵黨)은 원할 때만 무기와 갑옷을 만들 것이며, 원치 않을 때는 아무리 장운 소협이라 하더라도 거절할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황금표국과 장운에게 만철야장과 그 제자들로 이루어진 만철당이 가담을 하는 것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은 물론이오,
‘어쩌면…… 진정으로 화산파, 종남파와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장천호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섬서성의 패권을 나누는 삼대 세력이라고 불려도 화산과 종남이 섬서의 팔 할 이상을 나누고, 황금표국은 이 할도 안 되는 부분을 중소 군파와 나누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만철당의 합류는 어쩌면 삼 할, 아니, 그 이상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제가 거주하는 금옥관에는 아직 많은 방이 비었으며…… 귀한 손님들께서 거주하기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합니다. 본 황금표국의 주인이신 국주님의 허락만 있다면 저는 쌍수를 들고 환영이지요.”
장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천호가 입을 열었다.
“허락하고말고! 장운, 너는 공 대협과 만철당의 장인들께서 거주하시기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한다.”
언제나 냉철하고 대범한 모습과는 달리 쩔쩔매는 모습에 장운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장천호는 시간이 좀 흐르니 다시 냉철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엄격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본래 자신만의 세력을 만드는 것은 표두 이상의 직책을 지닌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법이다. 안타깝게도 장운 너의 현 직책은 표사다.”
공야월과 만철당의 가담은 좋았지만 황금표국의 표법은 엄격했다.
이것은 장룡이나 장건도 예외는 아니어서 외가가 아무리 세력이 크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표두를 단 이후, 파벌을 구축할 수 있던 것이다.
“하여, 본래 표두 선발전에 참가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 조건은 백 건 이상의 표행을 경험해야 하며 구 할 이상의 성공률을 구축해야 가능하지만…… 표사 장운의 공이 너무나도 커서 이례적으로 예외를 두고자 한다.”
이건 반대가 아니라 반대를 가장한 기회였다.
그만큼 장천호의 기분이 좋다는 것을 의미했다.
“표사 장운에게 내 직접 표행 하나를 의뢰하겠다. 이 표행을 성공리에 수행한다면! 표행 경험이 적은 너에게 표두 선발전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겠다!”
장천호의 말에 장운은 화들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기립하고 말았다.
‘표두!’
세간 사람들은 표두 직위를 우습게 볼지 몰라도 천만의 말씀이었다.
이급 표사에서 많은 공을 세워야 일급 표사로 승급하고, 일급 표사에서 최소 오 년 정도 굵직한 경험을 해야 표두 선발전에 참가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 표두 선발전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기에 떨어지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둘째 공자인 장건조차 두 번이나 떨어지고, 외가 측에서 간신히 입김을 넣어 붙은 것이 표두 선발전이었다.
그런데 곧바로 표두 선발전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은…….
‘아버님께서 내게 오 년 이상의 시간 허비를 제거해 주시겠다는 뜻이다!’
때마침 자신 때문에 공야월과 만철당이 합류하게 되었으니 예외를 둔다고 해도 반대를 표할 사람은 없었다.
물론 저 멀리서 장룡 파벌의 대표적 인물인 첫 번째 대표두 일섬쾌검(一閃快劍) 벽유삼과 장건 파벌의 인물인 폭풍권 철대종이 반발하고 싶어 입이 씰룩대고 있었지만, 감히 그럴 수는 없었다.
“장운 표사는 내 제의에 임하겠는가?”
장천호가 물었다.
다시 말해 장천호가 직접 내리는 표행을 성공시킨다면 조만간 열릴 하반기 표두 선발전에 참가할 기회를 무상으로 내리겠다는 것이었다.
‘이건 어마어마한 기회다.’
거절한다면 바보 천치였다.
“임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반드시 표두가 되어 공야월 대협과 만철당 장인분들에게 부끄럼 없는 무인이 되겠습니다.”
이것으로 폭풍과 같았던 긴급 총회는 끝이 났다.
결국 장운은 금룡린갑과 초령검에 이어, 천하제일 대장장이와 그 제자들마저 차지하게 되었다.
* * *
본래 표두가 아닌 자는 따로 세력을 구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장운은 직책은 낮을지언정 신분이 높았기에 비공식적으로 공야월과 만철당 장인들을 금옥관으로 합류시킬 수 있었다.
“오오! 생각보다 깔끔하고 정갈한 곳이구려.”
다행히도 공야월과 그 제자들은 장운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머물고 있는 금옥관을 퍽 마음에 들어 하였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장운은 오늘 자신을 위해 머나먼 길을 온 그들에게 정중히 포권을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제가 아직 직책이 낮은 관계로 공 대협과 장인분들을 흡족하게 모시지 못했습니다.”
물론 만철당의 활동에는 지장이 없다곤 하나 장운이 표두 직위를 달지 못한다면 언제까지나 비공식적인 합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장운은 반드시 표두가 되리라 다짐하였다.
“허허헛, 아닐세. 내가 장운 소협을 따르는 것은 직위나 신분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뛰어나기 때문이니까.”
공야월의 대답에 이번에는 그 제자들이 놀라는 중이었다.
‘정녕 만철야장 어르신이 맞는 것인가?’
‘그 까칠하던 사부님께서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이야.’
‘이렇게 유한 사부님의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특히 철을 제련하고 무기를 만드는 작업에 있어 그 어느 누구보다 엄격하고 까다로우며 괴팍하기까지 한 공야월이었기에, 제자들의 놀라움은 두 배였다.
이렇게 부드러운 모습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표두가 되려고 무리를 하거나 서두르지 않아도 되네.”
공야월의 배려에 장운은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는 하인인 갑호라고 합니다. 저와는 거의 형제나 다름없는 관계죠. 필요한 것이 있거나 저를 찾으실 일이 있다면, 이 친구를 호출해 주십시오.”
장운은 그들에게 갑호를 소개했고, 갑호는 형제나 다름없다는 말에 또 한 번 황소 눈에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하핫, 알았네. 그럼 이 금옥관에서도 가장 넓은 곳에서 제자들과 편히 지내도록 하지.”
천하제일의 장인 만철야장 공야월이 편하게 지내겠다고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장인은 진정 장인다웠다.
그들은 오자마자 금옥관에 머물면서 전뢰창 감우량을 비롯하여 쟁자수들의 무기를 주로 손봐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게 정녕 쟁자수의 무기인가?”
“셋째 도련님이 계신 금옥관의 인물들은 모두 이와 같은 무기를 쓰고 있나?”
“심지어…… 불을 일으키는 화섭자나 풀을 베는 낫마저 너무나도 완성도가 높다!”
금옥관에 머무르며 표행을 하는 이들은 순식간에 태풍의 눈이 되었다.
그들이 들고 다니는 모든 무기는 물론이오, 값비싼 화섭자마저 보수해 주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낫이나 하다못해 쟁기마저도 튼튼하고 날카롭기 이를 데 없었으니, 만철당 장인들의 합류는 그야말로 획기적이었다.
-무인도 아니고 장인들이 뛰어나 봐야 얼마나 가치가 있겠어?
맨 처음 이들을 일부러 얕잡아 보던 이들, 즉 장룡과 장건 파벌의 표두, 표사들마저 완전히 눈이 돌아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감우량 표두 휘하의 무인들이 모두 만철당의 무기를 쓰자 일대일 대결에서 승리할 확률은 물론, 표행 성공률마저 수직 상승으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나 이들 같은 삼류 및 이류 하수 급에서 무기 차이는 그 어떤 것보다 명확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을 휘하에 보유하고 있는 장운의 태도였다.
“황금표국의 인물이라면 누구나 금옥관의 만철당으로 찾아오라!”
장운은 파벌이나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황금표국 소속인 것이 확인될 경우, 일인에 무기 하나는 무료로 수리 및 보수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쭈뼛대던 이들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금옥관은 이들을 찾는 표사 및 표두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룰 지경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엇? 형님?”
심지어 장룡과 장건도 금옥관 앞에서 나란히 줄을 서서 자신들의 애병을 맡기려 하였다.
장운이 그것을 발견하고 간신히 웃음을 참으면서 그들을 불렀다.
맨 처음 그들은 무기가 뭐가 중요하냐며 자신들은 절대로 만철당에 가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 이렇게 기나긴 행렬 뒤에 쥐 죽은 듯이 서 있으니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어험, 험험!”
부끄러움은 결국 오롯이 이들의 몫이었다.
장룡은 끝까지 과묵공자로서 입을 다물며 헛기침을 하였고,
“그으, 저어…….”
장건은 설마 여기서 껄끄러운 장운을 만날 줄은 몰랐던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그들의 뒤에는 장운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폭풍권 철대종과 일섬쾌검 벽유삼까지 나란히 줄을 지어 있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괜찮습니다. 제 눈치 보지 말고 편히 일을 보시지요.”
장운은 그런 형제들에게 관대하게 말을 하다가도 꼭 한 방 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데…… 맨손으로 오셨습니까?”
아무리 일인에 한해 무기 하나 수리가 공짜라고 해도 상도덕이 있는 법이다.
그것도 무시해 왔던 동생의 덕을 보면서 맨손으로 왔냐고 눈치를 주었다.
그 말에 장룡, 장건을 비롯하여 표국 내에 국주를 제외하고는 무서울 것이 없다는 두 명의 대표두들 마저 진땀을 흘리고 말았다.
* * *
장운 휘하의 만철당은 황금표국 내부에서 크나큰 반향을 일으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천호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다.
-금옥관 내부에 천하 그 어느 대장간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최상의 대장간을 만들도록 하라!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
공 대협과 장인들께서 흡족할 만한 대장간을 반드시 준공하도록 하여라!
장운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럼 그렇지!’
장운은 절대로 손해를 보는 장사를 하지 않았다.
그가 만철당의 장인들을 괜히 무료로 풀었겠는가?
맨 먼저 공짜로 이들의 실력을 풀어 명성을 얻은 다음, 금옥관 내부에 대장간을 유치시킬 계획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운의 계획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그리하여 장운이 거주하는 금옥관에 장룡, 장건 두 형의 거처에도 없는 화려한 대장간을 건축할 수 있었다.
대장간을 만들겠다는 공언과 함께 장운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도 날아들었다.
“표사 장운은 표두 한 명과 표사 다섯 명, 그리고 열 명의 쟁자수를 선별하여 내일까지 본 표국 본관 앞에 정렬하라!”
마침내 황금표국 국주인 장천호가 직접 의뢰하는 표행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