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30화
불문(不問) 표행을 떠나다(2)
‘드디어 아버님으로부터 전언이!’
장운은 그 말을 전해 듣는 순간 약간의 설렘과 동시에 긴장이 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호에서 세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표국주 장천호의 직접 의뢰라니.
긴장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것이었다.
“최대한 아는 사람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그 소식을 들을 때 같이 있던 쟁자수 중의 상수 노관이 말했다.
본래 그는 일선에서 은퇴하였지만, 장운의 일이라면 설령 무릎을 펴지 못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따라갈 생각이었다.
노관의 장점은 행동력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지식이었기에 필수였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한 명의 표두, 다섯 명의 표사, 그리고 열 명의 쟁자수.
장운은 가장 먼저 쟁자수를 구성하였다.
이럴 때 장운이 직접 쟁자수를 발로 뛰며 경험하였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노관의 추천과 자신이 직접 겪으며 유능한 쟁자수들을 모두 긁어모은 결과, 어렵지 않게 열 명을 맞출 수 있었다.
‘그다음은 표두 차례.’
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표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전뢰창 감우량이었다.
“저를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우량은 장운의 부름에 한걸음에 달려와 웃고 있었다.
‘이런 소속감은 처음이다.’
과거 장룡 휘하의 파벌에 속했을 때는 소속감이나 안정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감우량은 상부에 잘 보이기 위하여 알랑방귀를 뀌는 사람도 아니었고, 중용의 묘를 중시하는 인물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배제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잘나가는 장운 소속에서 표두를 맡고 있으니 하늘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아닙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나저나…… 표두님과 쟁자수들은 모두 구성하였는데 문제는 다섯 명의 표사들입니다.”
문제는 바로 표사를 누구로 정하느냐였다.
다섯 명 중 한 자리는 장운의 것이었고 남은 자리는 네 명.
공교롭게도 믿을 만한 인물이 없었다.
현재 장운을 따르는 인물이 많다고 하지만, 그중 대부분은 쟁자수들뿐이었고 믿을 만한 사람은 기껏해야 두어 명 정도였다.
“으음, 저도 추천하기가 곤란한 것이…… 저와 함께 표행을 떠난 이들 대부분이 첫째 도련님 혹은 둘째 도련님 소속의 인물입니다.”
감우량의 말은 정확했다.
실제로 이급 표사를 관리하는 것은 둘째인 장건의 몫이었고 일급 표사를 관리하는 것은 대공자인 장룡의 몫이었다.
그런 관계로 파벌에서 자유로운 표사는 지극히 적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만약 다른 파벌이어도 상관없으시다면, 적어도 배신하지 않을 표사 두 명은 추천해드릴 수 있습니다.”
감우량은 과거 자신과 함께 표행을 떠나며 파벌이나 이해관계 없이 오로지 표행 성공만을 위해 노력했던 강직한 두 명의 표사를 떠올렸다.
“그럼 그 두 사람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남은 자리는 총 두 자리.
지금부터가 고민의 연속이었다.
‘남은 두 명은 어떻게 한담?’
장운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을 무렵, 감우량이 제안을 하였다.
“마침 그 어느 소속도 아닌 중립의 표사들이 머무는 공간이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연무장에서 훈련이 한창일 것인데…… 한번 보러 가시겠습니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헷갈릴 때는 순수하게 무공 실력을 보는 것이 더 나았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생각해 보니 나는 그동안 다른 표사들과 소통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동안 바빴으며 매일매일 금령풍운검법을 익히고, 무영신투를 만나 혼령운행공을 익히고 있었으니 다른 표사들과 친분을 쌓고 사귈 시간이 없었다.
표행에 나설 때는 뜻하지 않게 여러 일에 휘말려 표사들과 진득하게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다.
“알겠습니다. 가 보지요.”
* * *
그리하여 장운은 감우량과 노관을 대동한 채 중립의 표사들이 거주하는 연무장을 은밀히 찾았다.
이미 표사들 사이에는 장운 도련님께서 국주님이 내리는 표행에 나선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렇다면 자신을 좀 더 피력하기 위해 경쟁이 붙거나 소란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고자 했다.
“먼저 추천할 만한 인물은 중립의 표사들 중에서도 무공이 가장 고강하다는 태력권(太力拳) 주천이라는 자입니다. 하늘이 내린 체구와 더불어 강한 힘의 소유자로, 드물게 외공으로 대성한 자입니다.”
감우량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한 명 한 명 정보를 알려주고 천거를 하고 있었다.
“그다음은 하북 출신의 고수로…….”
“으음.”
장운은 그들의 면면을 살피면서 고민에 잠겼다.
솔직히 말해 모두가 다 고만고만했으며 마음에 쏙 드는 인물이 없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어엇?”
장운의 눈에서 예리한 빛이 흘렀다.
연무장 구석에서 키가 땅딸막하고 탄탄한 체구의 소유자가 눈에 들어온 까닭이었다.
“저자는 누구지요?”
장운은 그에게 몹시도 호기심이 생겼다.
목이 두껍고 다부진 체격에 비해 내공이 이미 일류 중에서도 최상에 육박하고 있었다.
“아! 저자는…….”
장운이 그에게 호기심을 보이자 감우량의 안색이 굳어졌다.
하필이면 골라도 저런 자를 골랐느냐는 얼굴이었다.
“반골(反骨) 응운곤이라는 이급 표사입니다.”
“반골? 이급 표사요?”
장운은 총 두 번 놀라고 말았다.
처음에는 매우 독특한 별호에 놀랐으며 두 번째는 뛰어난 내공 실력에 비해 이급 표사에 지나지 않아 경악하였다.
적어도 일급 표사는 충분히 되어 보였던 것이다.
“네. 실력은 나쁘지 않은데, 아니, 매우 출중한데…… 표행에 나서는 족족 자신보다 높은 표사나 표두들과 마찰을 일으켜서 그렇습니다.”
감우량의 말은 옳았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다름 아닌 반골이었다.
그는 황금표국 내부 표사들 사이에서 반골로 통하였다.
“호오, 그렇습니까?”
장운은 기이하게도 그에게 더 눈이 갔다.
‘저자는 분명 일급 표사 이상의 실력을 지녔다.’
그 뛰어난 실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반골이라 낙인찍힌 것에 호기심이 생기고 있었다.
또 하나 더 눈에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음? 여성 표사도 있군요?”
연무장 반대편에는 여성 표사들도 존재했는데, 아무래도 다른 표사들보다 무공 실력에서는 아쉬운 것이 사실이라 다들 평범해 보였다.
장운의 안목은 탁월한 것이어서 그녀들 중에서도 한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의 절반을 붕대로 칭칭 감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한 화상 자국이 선명한 사람이었다.
‘엇! 저 여인은…….’
장운은 한 달 전에 본 것 같은 여인과 마주하자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저자는 누구지요?”
장운이 호기심을 보이자 감우량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옥수(飛玉手) 천세은이라는 여성 표사입니다. 안타깝게도 본 표국을 처음 찾았을 때부터 얼굴의 절반 이상이 끔찍한 화상 자국으로 가득했던 인물이지요. 그 상처를 어떻게 입었는지 물으면 입을 열지 않으며, 그 어떤 표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아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도 고립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비옥수 천세은은 뛰어난 암기술의 고수로 한쪽 눈이 없는 치명적인 부상에도 불구하고 일류 고수 반열에 도달한 인물이었다.
한데 단점도 극명했으니 사회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이었다.
결국 선택지는 단 두 가지뿐이었다.
‘평범한 표사들을 뽑느냐, 실력이 뛰어난 대신 단점이 명확한 표사들을 뽑느냐 그 선택이로군.’
장운은 다시 한번 고민에 빠졌다.
이번 표행에 심혈을 기울여 표사를 뽑는 까닭은 아버지의 의뢰를 성공하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만약 장운이 표두가 된다면 자신을 보좌해 줄 여러 표사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두 형이 먼저 시장을 점거하여 뛰어난 표사들을 휩쓸어 간 실정이었다.
따라서 장운은 후발 주자로서 실력이 평범 혹은 떨어지는 표사를 취하느냐, 아니면 실력이 뛰어난데 큰 단점이 존재하는 표사를 취하느냐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다.
“반골 응운곤과 비옥수 천세은을 뽑도록 하겠습니다.”
이로써 한 명의 표두, 다섯 명의 표사, 열 명의 쟁자수로 이루어진 표행단이 완성되었다.
* * *
“왔느냐?”
다시 하루가 지나고 장운은 자신이 직접 선별한 표행단을 꾸린 채 표국주인 금령검객 장천호 앞에 섰다.
“네, 국주님.”
장운은 정중히 포권을 하였고 그것은 뒤에 있는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반골로 통하는 응운곤마저도 금령검객 앞에서는 정중히 포권을 취하고 있었다.
‘퍽 재미있는 자들을 선발했구나.’
장천호는 막내아들 뒤에 서 있는 자들의 면면을 살피며 은밀하게 미소를 지었다.
반골 응운곤과 비옥수 천세은은 물론이고 남은 두 명의 표사는 제각각 장룡과 장건 파벌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표두와 쟁자수 선정도 흥미로웠다.
전뢰창 감우량은 기대가 되는 표두일지언정 표두들 중 막내나 다름이 없어 그를 우두머리로 정한 것은 약간의 위험이 존재했다.
그런데도 장운은 그를 신뢰했다.
쟁자수도 노련하지만 노쇠한 상수 노관을 비롯하여 경험이 많은 자들로만 선별한 것이다.
“그래, 준비는 모두 마쳤나?”
“제 선에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취했습니다.”
장운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실제로 갑작스러운 표행 제의를 앞에 두고 응운곤과 천세은은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장운이 설득한 것이다.
-이번 표행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단! 표행이 끝났을 때 사람들에게 찍혀 있는 낙인이나, 마음에 깊이 자리한 상처들이 조금이나마 희석되어 있을 겁니다. 그것은 제가 약속드릴 수 있지요.
그와 더불어 표행을 성공하면 만철당 장인들이 무기를 수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든 무기를 주겠다고까지 약속했다.
이에 응운곤은 설득되었으며 한참을 망설이던 천세은도 곧이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좋다. 내 너에게 부탁할 표행은…… 바로 불문(不問) 표행이다.”
마침내 밝혀지는 표행의 정체!
그것은 놀랍게도 불문 표행이었다.
불문, 묻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이 표행은 의뢰한 물건의 내용을 표두는 물론이오, 표행에 가담한 자들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의뢰인은 오로지 표물이 도착할 행선지만을 알려줄 뿐이었다.
‘따라서 주로 사파나 흑의방 인원들이 이 불문 표행을 많이 맡긴다.’
불문 표행의 표물은 주로 살아 있는 사람이나 시신, 혹은 원한 서린 보물이나 피 묻은 금자가 대부분이었기에 뒤가 구린 자들이 많이 의뢰했다.
그 대신 의뢰 대금이 매우 셌으며 표물 내용을 모르기에 많은 표두들, 표사들이 자신의 표행 성공 확률을 위해 거부하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직접 불문 표행을 맡기시다니.’
도대체 이것은 무슨 꿍꿍이란 말인가?
장운은 그의 말에 당황하면서도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가 표두 선발전이 걸린 표행에서조차 자신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불문 표행을 선택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장운에게 거는 기대가 무척이나 크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높은 난이도의 위기는 장운에게 있어서 곧 기회나 다름없었다.
“네, 어느 성으로 운송하면 되겠습니까?”
장운은 처음 맡는 불문 표행에 크나큰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목적지는 산서성 길현(吉韅)에 위치한 나루터에 도착하는 것이다.”
“나루터?!”
나루터라는 말을 듣자마자 장운은 놀라며 외쳤다.
나루터가 목적지란 말은 곧…….
“그렇다. 이번 불문 표행은 육지가 아니라 수로를 따라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